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2)
31화 – 결투 (1)
잘 부탁드립니다
한 시간의 휴식시간 동안, 원정대는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근처의 그나마 곧은 나무 몇 개를 잘라내 기둥을 세운 뒤 천을 둘러 큰 천막을 급조하고, 그 안에 열기를 방출하는 마법구를 활성화해 온도를 올렸다.
모두가 그 안에 들어가 비를 피하며 몸을 데웠다.
그리고 결투가 시작되기 전,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크게 항복을 외치거나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 경우 공격하지 말 것, 상대가 의식을 잃고 일어나지 못할 경우 판정패로 보고 공격을 그만둘 것, 한쪽이 공격당해 진에서 떨어질 경우 다른 한 명도 진에서 내릴 것…
양쪽의 문화가 달라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빠르게 규칙을 확정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지!”
언제든 싸울 수 있게 대치한 두 진영 사이에서, 각 진영을 대표해 기사가 한 명씩 나왔다.
벨루안의 기사는 도끼 두 자루를, 아타르의 기사는 날이 한쪽에만 있는 긴 칼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벨루안의 기사, 피르드의 아들 아문드다!”
“안딘의 아들 샬만!”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친 두 기사가 순식간에 진을 몰아 격돌했다.
조금 더 긴 사거리를 가진 아타르의 기사가 먼저 칼을 내리치자, 아문드는 도끼 한 자루로 칼을 받아내며 다른 한 개의 도끼를 휘둘렀다.
상대 역시 왼손에 든 방패로 능숙하게 이를 막아냈다.
격전은 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문드의 진은 두 앞발을 들어 올려 매섭게 상대가 탄 진의 몸통을 할퀴었고, 상대의 진은 뱀 같은 머리를 비틀며 아문드가 탄 진의 머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격렬한 싸움으로 흔들리는 진 위에서 공방전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기사 간의 결투에서 가장 중요한 테크닉 중 하나였다.
몇 차례 격돌했을까, 아문드의 도끼가 적의 옆구리를 얕게 가르며 처음으로 피를 보았다.
“큭!’
“하! 애송이 자식!”
공격이 성공하자 상처를 감싸며 살짝 물러나는 모습에 아문드는 호쾌하게 외치며 도끼를 휙 털어 피를 뿌렸다.
그 모습을 보며 벨루안 영지 쪽 기사들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역시 아문드로군. 저 친구 도끼는 매섭기 짝이 없단 말이지.”
“첫 승부는 무난하게 이기겠는걸.”
이후로도 아문드는 계속해서 전투를 주도하며 상대 기사를 밀어붙였다.
단단한 체구의 아문드는 그에 걸맞게 힘이 강했고, 도끼 하나씩을 나눠 쥐었음에도 어지간한 기사가 두 손으로 무기를 쥔 것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계속해서 밀어붙인 끝에 상대가 칼을 떨어트리는 것을 본 아문드가 잔인하게 웃으며 도끼 한 자루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결투를 관전하고 있던 아르센이 소리쳤다.
“아문드 경! 밑을 조심하십시오!”
공격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던 만큼, 아문드와 상대가 탄 진 역시 가까이 붙은 상태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패배하기 직전에 몰리자, 아타르의 기사는 자기가 탄 진의 긴 목을 움직여 아문드가 탄 진을 휘감아 그대로 몸을 날린 것이다.
무게중심이 휘청해 아문드가 잠시 집중을 잃은 순간, 이미 두 기사의 진은 옆으로 엎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위에 타고 있던 기사들 역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커헉!”
“아문드! 빨리 일어나!”
“아문드 경!”
“죽여, 샬만!”
“지금이다!”
갑작스럽게 넘어진 아문드가 떨어트린 도끼를 찾기도 전, 미리 대비하고 있던 상대 기사가 순식간에 아문드의 뒤로 올라탔다.
상대는 능숙하게 왼쪽 팔을 목에 걸고 다른 한쪽 팔로 아문드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이는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갑옷 입은 상대를 제압하는 그래플링 기술의 일종으로, 이 정도면 달인의 경지라 할 만 했다.
이런 종류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뛰어난 방어기술이 있거나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력이 강해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아문드는 둘 다 아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아문드였지만, 팔 어딘가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며 끔찍한 고통이 밀려오자 더 버틸 수 없었다.
“큭, 끄아아아악! 항복한다, 항복!”
아문드가 항복을 외침과 동시에, 벨루안 진영에서 일제히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아문드를 제압하고 있던 상대 기사는 일부러 한 번 더 힘을 주어 관절을 확실히 꺾어버린 뒤, 혀를 차며 팔을 풀어주고 일어났다.
땅바닥에 엎드린 채 신음하고 있는 아문드의 귀로 비아냥이 들려왔다.
“목숨을 구걸하다니, 수치스럽지도 않나보군.”
“크윽, 이 개자식이…”
아문드가 기이하게 꺾여버린 팔을 감싸 쥔 채 이를 갈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코웃음을 치며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간신히 진에 올라탄 뒤 풀이 죽은 기세로 돌아간 아문드에게, 친한 동료 기사들이 다가와 그를 격려했다.
“운이 없었다, 아문드. 전투는 계속 네가 주도하고 있었어.”
“아문드 경이 이긴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런 방법은 아무래도 비겁하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 사이에서, 라뮌이 싸늘한 목소리로 잘라내듯 말했다.
“어쭙잖게 상대를 깎아내리는 식으로 위로하지 마라. 승부는 정당했어. 진 건 진 거다.”
그의 말에 기사들이 시무룩해지자 팔라토가 허허 웃으며 라뮌을 제지했다.
“너무 그러지 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아문드 경, 이리 와보게. 일단 팔부터 어떻게 하지.”
“알겠습니다, 팔라토 경.”
팔라토는 아문드의 갑옷에서 팔 부분을 조심스레 떼어낸 뒤, 한 번에 힘을 주어 빠진 관절을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잠시 이를 악물며 비명을 참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됐군. 물러서 있게. 그 팔로는 싸우기 힘들 듯하니.”
“면목이 없습니다.”
아문드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자 상대 쪽에서 기사 한 명이 걸어 나와 외쳤다.
“나는 우트르의 아들 마샨이다, 나에게 패배해서 땅바닥을 길 버러지는 어서 나와라!”
“라티아 경.”
라뮌의 나지막한 부름에 두 번째로 예정되어 있던 기사, 라티아가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이즈로의 아들 라티아다! 내가 상대해주마!”
창 한 자루를 꼬나쥔 라티아가 힘차게 외치며 달려 나갔다.
* * *
“이건…”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두 번째로 출전한 라티아까지 맥없이 패배하자, 이제 벨루안 진영은 초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라티아 역시 초반에는 괜찮게 싸움을 이끌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상대의 일격에 팔을 베여 무기를 놓치며 패배했다.
이번에는 미처 항복할 새도 없이 상대가 가슴 한복판에 검을 찔러넣은 탓에 맥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라티아 경의 장례는 영지로 돌아가서 치러야겠고…이제 네 차례군, 팔라토.”
“나까지 패배하면 어쩔 생각인가? 바로 공격할 건가?”
팔라토의 질문에 라뮌은 슬쩍 아타르 진영 쪽을 둘러보았다.
저쪽은 결투에 참여했던 기사 두 명 모두 조금 지치긴 했어도 충분히 싸울 수 있는데 비해, 이쪽은 한 명이 팔이 부러지고 다른 한 명은 아예 죽었다.
이미 기사의 숫자는 역전된 상태였다.
“이미 우리 쪽은 사기가 꺾였다. 바로 공격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 너까지 진다면 일단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섰다가 야음을 틈타 습격할 생각이다. 물론 이기는 쪽이 더 좋겠지만.”
“최대한 노력하겠네.”
팔라토는 바로 뽑을 수 있게 진 위에 투창 몇 개를 꽂아놓은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 그가 상대할 적은 앞서 나온 두 기사에 비해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기사였다.
“아타르의 명예로운 기사, 아슌의 아들 리모다.”
“루드의 아들 팔라토일세.”
상투적인 자기소개를 나눈 뒤, 상대 기사가 팔라토의 손에 든 투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가 되어서까지 투창이라니, 특이하군. 보통 그런 건 종자 때나 쓰는 것을.”
“그건 나야말로 하고 싶은 말일세. 그 괴상한 무기는 도대체 뭔가?”
상대가 든 무기는 마치 검의 날을 늘려놓은 것 같은 기묘한 무기였다.
언월도 같은 것도 아니고, 날이 곧게 뻗은 장검 아래에 긴 자루를 붙여 만든 것 같은 기묘한 외형의 무기.
그것을 빙빙 돌리며 남자가 히죽 웃더니 외쳤다.
“이제 맛보면 알게 될 거다. 어디 한번 덤벼봐라!”
“덤벼야 할 건 자네라네.”
덤덤한 어조로 대꾸한 팔라토는 즉시 투창을 든 채 몸을 비틀며, 타고 있던 진의 몸을 숙였다.
마치 용수철이 튀어나가기 전 굽혀지듯 온몸의 힘이 압축되었다.
그 상태에서 진의 네 다리를 펼쳐 몸을 튕기듯 날림과 동시에, 팔라토의 몸이 돌아가며 투창이 쏘아졌다.
어지간한 마수를 일격에 해치울 수 있는 정확도와 힘을 겸비한, 무시무시한 일격이 상대를 향해 날았다.
집중하여 첫 투창을 간단히 쳐내고 달려들 계획이던 상대 기사가 경악하며 무기를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큭!”
챙 소리를 내며 투창을 쳐내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이 온 몸을 울려 기사는 돌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얼마나 위력이 강하고 그 기세가 매서웠는지 뼈가 울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아주 잠시 주저하는 마음 탓에 회심의 기회가 날아갔다.
온 힘을 다한 투창을 날려 잠시 빈틈을 보였던 팔라토는 곧 중심을 회복해 두 번째 투창을 날렸다.
처음처럼 강한 위력은 아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젠장! 이딴 식으로…!”
두 번째 투창을 막아낸 순간 거의 시간차 없이 날아온 세 번째 투창이 그가 타고 있던 진의 몸통을 꿰뚫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연사속도는, 팔라토가 양손으로 번갈아 투창을 던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기예에 경악한 기사의 눈이 커졌다.
팔라토가 특유의 온화하고 자상한 어조로 말했다.
“어때, 투창도 꽤 괜찮지 않나?”
몸을 관통당한 진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자 기사는 이를 악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차라리 둘 다 진에서 내린다면 승부의 방향추를 돌릴 수 있겠지만, 공격당해 떨어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스스로 뛰어내릴 경우에는 상대 쪽에서 내릴 의무가 없었다.
‘젠장, 아직 괜찮다. 저 녀석의 투창은 정확히 보기만 하면 막거나 피할 수 있어!’
어차피 투창의 수량에는 제한이 있으니 버티면서 투창을 회수하지 못하게만 막는다면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버벅거리는 진의 움직임을 제어해 떨어진 투창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팔라토가 갑자기 진을 앞으로 몰며 칼을 뽑았다.
“미쳤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리해진 상황에 활짝 웃으며 기사가 자신의 검창을 겨눴다.
조금 긴 한손검 정도에 불과한 팔라토의 칼에 비하면 훨씬 길고 무거운 무기를 지녔기에, 백병전으로 싸운다면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다가오는 팔라토를 찌르고자 창을 쭉 뻗으려던 순간, 갑자기 복부가 시큰해지는 기분과 함께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무슨…”
자기도 모르게 밑을 내려다본 기사의 눈에 비친 것은, 마치 몸 안에서 뻗어 나온 것처럼 보이는 투창이었다.
“세상에.”
“저런 게 가능하다고?”
뒤쪽에 있던 아타르 영지의 기사들은 팔라토가 보인 기예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어 시야가 좁아졌던 상대 기사와 달리, 그들은 멀리서 보고 있었기에 팔라토가 어떤 식으로 공격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팔라토는 검을 들어 공격하는 자세로 상대를 현혹함과 동시에, 타고 있는 진의 꼬리를 이용해 투창을 던진 것이다.
진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이 기사의 덕목 중 하나지만 저런 방식으로까지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역시 팔라토 경이다. 머리만 빼면 완벽하네.’
아르센 역시 감탄하며 손뼉을 짝짝 쳤다.
물론 아르센은 특기의 특성상 팔라토를 상대로 싸운다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자신이 있지만, 팔라토가 쌓은 기량 자체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투창이라는 대인전에서 불리한 무기를 가지고도 높은 순위에 꼽힌 이유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경악과 감탄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라토는 온전히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의식을 담아 칼을 맹렬하게 내리쳤다.
이에 상대 기사는 지금 이 상태론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진에서 뛰어내렸다.
그 기민한 대처 덕분에 머리가 날아가는 것은 모면했지만, 칼에 걸린 오른팔이 맥없이 잘려 나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다시 다가오는 팔라토를 보며 팔이 잘려 나간 기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항복! 항복한다!”
“…운이 좋군, 자네.”
무시하고 베어버릴까 했지만, 상대 기사의 항복이 신속했기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결투 자체가 엎어질 수 있었다.
뒤쪽 순서의 동료들을 믿었기에 팔라토는 상대를 베어버릴 마음을 접었다.
어차피 치명상을 입어서 전투력을 상실한 상대이기도 하고.
바로 목 앞까지 칼을 들이댄 상태에서 팔라토가 천천히 물러서자, 아타르 영지 쪽 기사 두 명이 달려와 다친 기사를 수습했다.
배와 팔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것을 본 바타얀이 황급히 외쳤다.
“마법사! 빨리, 마법사를 데려와라! 급하다!”
바타얀의 고함에 병사들이 얼른 뒤쪽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아르센은 그것을 보며 과거 역사 드라마에서 봤던 가마를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안에 있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지붕과 벽이 달린 폐쇄형 가마.
부상당한 기사 앞에 병사들이 가마를 내려놓고 문을 열자, 그 안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