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8)
48화 – 새로운 땅 – 무료 마지막입니다.
아르센은 자신의 밑에 들어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어쩌면 지나치게 엄격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세히 설명했다. 말도 안 되는 사탕발림으로 구슬려 봐야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고, 그래서야 배신당해도 할 말 없을 것이기에.
또한 모험심과 의지, 준법정신을 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아르센은 자신을 따르는 군대를 원했지, 통제되지 않는 깡패 무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병사는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대신 항상 영지 내의 치안을 돌보고 적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경계 지역을 순찰해야 한다. 물론 싸우다 죽을 수도 있지, 때로는 기사나 종자들이 원정을 떠날 때 함께 수발을 드는 역할로 원정을 떠나기도 한다. 물론 위험하고.”
“그냥 바깥의 독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면 병사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출신도 상관없고요?”
“외부인 출신이라면 아주 제한이 없진 않다만 기사가 보증할 정도면 문제없지. 당연히 나는 내 부하를 보증해 줄 것이고.”
“싸우지 않고 그냥 지키거나 수발을 드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니···그건 정통 조직원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인데.”
하지만 아르센과 리노의 대화는 뭔가 어긋난 것처럼 맞물리지 않았다.
아르센이 이런저런 위험과 보상이 있다고 얘기할 때마다, 리노는 위험은 듣지 못한 것처럼 넘기고 보상에만 감탄했다.
이는 ‘좋은 삶’에 대한 두 사람의 기준이 근본적으로 다른 탓이었다.
리노가 듣기에 아르센이 말한 위험과 의무는 나르비크에서 살아가며 감수해야 할 위험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수준이거나 당연한 정도였고, 그에 비해 보상은 말도 안 되게 후하게 느껴졌다.
매번 목숨을 걸고 사냥을 나서야만 간신히 삶을 부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던 그로서는, 벨루안의 병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직업으로 보였다.
리노의 그런 태도를 경솔함으로 받아들인 아르센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병사가 지켜야 할 규율에 관해 설명했다.
명예로운 존재로 대우받으며 일반인들의 존경을 사는 대신 영지가 위험할 때는 가장 앞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
절도나 폭행 등의 범죄로 직위가 해제될 수도 있고, 허가되지 않은 도주나 살인 행위는 무조건 사형이라는 것.
강간이나 우발적인 살인 등 조금 낮은 수준의 중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평생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탄광에 처박히게 된다는 것까지.
어찌나 설명을 빡빡하게 하는지, 옆에서 듣던 엘로이즈가 ‘일부러 쫓아내려는 거야?’라고 몰래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리노는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아르센을 따라가겠노라 말했다.
평생 뼈 빠지게 고생해야 하고 미래도 없는 나르비크에서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건 모험 한 번 하고 훨씬 좋은 곳에서 살겠다며.
괜히 실망할까 싶어 일부러 부정적으로 설명했으나 그마저도 나르비크에 비하면 훨씬 나았는지, 리노는 벨루안이라는 낙원에서 자신을 데리러 아르센이라는 구원자가 왔다는 듯이 굴었다.
결국 리노의 결심이 굳어진 것을 확인한 아르센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한다. 리노.”
“그럼 제가 이제부터 기사님을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저희는 보통 조직을 이끄는 기사를 대장님이라고 부르긴 합니다만···.”
“아르센 경이든 대장님이든 마음대로 불러라. 그리고 여기 이쪽은 엘로이즈 아가씨, 고귀한 영주 혈통의 후예시니 항상 예의를 갖추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대장님!”
엘로이즈는 고귀한 아가씨답게 새침한 얼굴로 리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친한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본모습을 알고 있는 아르센으로서는 꽤 웃기는 일이었지만, 마법사 특유의 거부감과 섬겨야 할 윗사람이라는 사실이 뒤섞인 탓인지 리노는 다소 두려운 기색으로 고개를 숙여 굴종을 표했다.
“혹시 같은 조건으로 제안한다면 따라오려는 사람이 더 있을 것 같나?”
“아마 꽤 될 겁니다! 벗어날 방도가 없으니 이러고 사는 거지, 누가 이런 삶을 좋아하겠습니까? 물론 그들은 저와 달리 기사님이 얼마나 용맹하고 선량한 분인지 직접 느끼지 못했으니 믿음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그건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독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못 데려가는데도?”
“어차피 제가 사는 동네에선 열다섯 살이 넘기 전에 독기를 이기지 못한 놈은 죽습니다. 그 나이가 넘으면 자기 삶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는 거죠. 어린 자식이 딸린 사람은 못 가겠지만요.”
“좋아, 그럼 한번 사람들을 설득해보도록.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내가 알려준 내용을 그대로 전해라. 괜히 없는 말로 구슬리지 말고.”
나르비크로 가는 길, 유감스럽게도 리노는 두 발로 걸어야 했다.
혹시 적이 나타날 경우 싸워야 하니 아르센의 진에는 다른 사람을 태울 수 없으며, 엘로이즈의 진에 함께 타는 것은 정신건강에 극히 해로운 일이었기에.
사실 괜찮다고 해도 리노는 감히 아르센과 함께 진에 타는 ‘불경한’일을 저지를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일행의 속도가 느렸던 만큼, 가는 도중 마수를 마주치기도 했다.
“어헉!”
갑자기 끼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박쥐 날개를 단 아르마딜로를 연상시키는 마수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철갑박쥐.
키가 2m가 넘고 온몸이 금속 비늘로 뒤덮인 이 마수는, 창칼이 쉽게 박히지 않는 데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해 인근 사냥꾼들에게 큰 위협 중 하나로 여겨졌다.
나무에 숨어있다 지나가는 사냥감을 활공하며 덮치는 것이 이 마수의 주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리노가 다급히 탄성을 토한 순간, 아르센은 이미 검을 뽑아 들고 바람처럼 도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느릿하게 날아오는 마수의 속도에 맞춰 머리에 정확하게 검을 찔러넣었다.
아주 잠깐 저항감이 느껴진 뒤, 우두둑 하고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마수의 머리에 검이 박혔다.
그 모습을 본 아르센은 그대로 마수를 걷어차며 다시 착지했다.
키에엑!
치명적인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수는 살아있었다. 그저 뇌가 으깨져 무력화됐을 뿐.
비명과 함께 바닥에 엎어진 마수는 키이이, 하고 무의미한 신음을 흘리며 팔다리를 버르적거렸다.
꽂혀있던 검을 뽑아내자 하얀 뇌수가 뿜어지고, 마침내 마수의 신음이 멎었다.
“튼튼한 놈이군.”
아르센의 말에 리노가 어이없다는 표정 반, 존경 반을 담아 대답했다.
“이 녀석의 비늘이 뚫리는 건 처음 봅니다.”
“보통은 어떻게 잡지?”
“사냥꾼들은 그냥 도망갑니다. 어차피 발이 느린 놈이라서요. 조금 전에 보신 것처럼 나무 위에서 갑자기 떨어지면 한 명은 거의 죽지만, 한 놈만 노려 공격하니 나머지는 도망칠 수 있거든요.”
사냥꾼은커녕, 오히려 사냥감에 가까운 생존방식. 제대로 된 장비도, 그들을 보호할 기사도 없는 이들이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건 뭔가 돈 될 구석은 없나?”
“글쎄요···비늘도 죽고 나면 쓸모가 없어져서, 기사들이 가끔 잡아도 그냥 버린다고 들었습니다.”
아르센은 죽은 마수의 옆구리 부분을 한 움큼 쥔 채 힘을 주고 쥐어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흑성철 검에 저항하던 것과 달리, 비늘은 아르센의 악력에 쥐어 짜이며 무력하게 으스러졌다.
확실히 비늘은 살아있을 때만 단단해지는 성질을 가진 모양이라, 뜯어낸다 해도 비싼 값에 팔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르센은 마수 사체를 내던지며 말했다.
“그냥 두고 가지.”
그들은 다시 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슬슬 산 너머로 노을이 걸려 조금 있으면 해가 지지 않을까 싶을 무렵, 리노가 외쳤다.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아르센과 엘로이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영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 *
되도록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에, 그들은 완전히 날이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영지 안으로 들어갔다.
나르비크는 한때 화려했으나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퇴락한 고대의 도시처럼 보였다.
길게 뻗은 대리석에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마치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장엄한 건물이 쭉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 건물들은 세월의 파도에 깎여나가 반쯤 무너져 있거나 아예 벽 한쪽이 통째로 날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벽에 담쟁이덩굴 비슷한 무언가가 잔뜩 얽힌 정도는 기본이어서 아르센은 자신이 제대로 된 영지에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인류가 멸망하고 남은 폐허에 들어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물론 그런 건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제법 잘 관리된 건물들도 있긴 했다.
벨루안과 비슷하게 돌과 나무, 흙으로 지어진 중세풍 건물이 곳곳게 서 있었는데 이것은 비교적 작긴 해도 금방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으며,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아르센은 그 모습을 보며 무너진 빌딩 사이사이에 세워진 오두막집을 떠올렸다.
“경계병이 없군?”
“낮에는 나름 자경단이 순찰을 합니다만, 어차피 밤에는 마수가 활동하지 않으니까요. 가끔 약탈자들이 습격하기도 하는데···흔한 일도 아니고, 그냥 재수가 없으려니 합니다.”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고 무책임한 체제였다.
벨루안에서도 밤에 약탈자가 습격해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항상 경계병들이 순찰하는 탓에 미처 수확하지 않은 곡물을 들고 도망가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영지 중심부에 있는 기사 조직들이 외곽 지역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었다.
“어디 머무실지는 정하셨습니까? 여기 외곽 쪽이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게 지내실 수 있겠지만, 이 동네에서 구할만한 집이란 게 워낙 변변찮아서요. 그렇다고 안쪽에서 거주하시려면···눈에 띄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내는 게 낫겠지. 당분간은 이곳 기사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빈집 소개해줄 수 있나?”
“다들 워낙 싸구려 목숨인지라 빈집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오늘 죽었을 동료 중에 혼자 살던 놈이 있으니, 그놈 집을 쓰시면 될 거 같습니다. 어차피 주인 없는 집이 됐으니까요.”
그들이 임시로 거주할 집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돌과 나무로 벽을 올리고 밀짚을 얹은 초가집에 안에는 침대 한 개와 테이블 하나, 수납장과 냄비 정도가 있을 뿐.
문에 들어갈 때도 아르센은 머리를 숙여야 했고, 들어와서도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아르센과 엘로이즈가 타고 온 진을 구석에 앉혀 놓으니 집안이 꽉 찬 것처럼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던 리노가 곤란하다는 듯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대장님과 아가씨의 탈것은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차라리 제가 사는 집에서 묵으시겠습니까? 이 집에서는 제가 자고요.”
“아니, 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겠다. 나머지는 내일 얘기하지.”
“알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대장님.”
꾸벅 인사하고 사라지는 리노의 뒷모습을 보며, 아르센은 문을 닫았다.
안에서는 이미 엘로이즈가 마법으로 빛을 밝히고 있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야겠어. 불편하겠지만.”
“이 정도면 호화스럽지. 적어도 지붕이 있잖아? 그동안은 계속 노숙이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화로운 영주관에서 살아온 엘로이즈였지만, 애초에 그리 까다로운 성미도 아니었던데다 이번에 몇 주일 단위로 노숙하며 황야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치른 탓인지 불만 없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간단히 짐을 풀고 갑옷을 벗은 뒤, 두 사람은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방에 하나 있는 침대는 워낙 낡고 더러워 침낭만도 못했다.
“저 사람, 믿을 수 있을까?”
“일단은. 당장 거짓말을 하거나 배신할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아. 내가 보기에는···.”
거의 나를 신으로 모시려 하기라도 하는 거 같다고 말하려던 아르센은, 직접 얘기하기가 영 쑥스럽게 느껴져 말을 삼켰다.
“일단 사람을 모아서 군대를 갖춘 뒤에 별부르미랑 합류하는 게 우선이야. 그쪽에서도 나름 꽤 많은 병력을 보낸다고 했으니 둘이 합치면 어느 정도 쓸만한 수준이 되겠지.”
“그리고 바로 유적을 공략하고?”
“그래. 하지만 유적보다도 우선해야 할 건 군대를 꾸준히 먹여서 충성심을 유지하는 거야.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게 우리가 병사들을 모은 명분인데, 그래놓고 굶겼다가 배신당해봐야 하소연할 말이 없지.”
아르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엘로이즈는 마법을 해제해 불을 껐다. 방 안이 어두워졌지만, 아르센의 두 눈은 모든 것을 선명히 인식했다.
“사람을 이끈다는 건 참 어려운 거 같아. 데로이랑 리다트도 부족할 것 없이 살았는데 아버지를 배신했잖아. 직접 독을 탄 독살범들도, 아버지가 남부럽지 않게 대해준 기사들이었는데.”
“부족하냐 아니냐는 남이 정하는 게 아니니까. 세상 모든 걸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센은 어때?”
묘한 어조로 날아온 질문에, 아르센은 엘로이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둠 탓에 아르센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엘로이즈는 마치 그가 보이는 것처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연한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적어도 영지를 차지하자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진 않을 거 같아. 아버지를 좋아해 본 적은 없지만.”
아르센의 대답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풋 하고 웃는 소리가 이를 끊었다.
한참 웃던 엘로이즈가 침낭 속으로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미안, 괜히 바보 같은 질문을 했네.”
“이해해.”
“정말 바보 같아, 정말로···멍청해. 잘 자. 센. 조금 전 했던 말은 잊어버려 줘···.”
그동안 쌓인 피로가 밀려왔는지, 엘로이즈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그런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던 아르센은 잠든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좋은 꿈 꿔.”
슬슬 피로가 한계에 달한 것이 느껴져, 아르센은 눈을 감고 아늑한 침낭 속으로 몸을 묻었다.
마치 바닥이 꺼지는 것처럼 아득한 느낌과 함께 의식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