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8)
“방패 들어!”
“그쪽 막아, 뚫린다!”
“야, 이 새끼야! 물러서지 마!”
전투는 혼란 속에서 시작됐다.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허를 찔렸지만, 다행히도 무장 자체는 들어올 때에 비해 충실해진 상태.
발전된 무기와 동료들을 믿으며, 병사들은 방패를 들이대 벽을 세웠다.
근 며칠간, 사냥꾼이 아니라 병사로 교육받은 성과가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어억!”
“저놈 넘어간다! 뒤에서 받쳐줘!”
“방패를 잡혔어! 도와줘!”
원래 외골격 생물은 체격보다 힘이 좋은 법이라, 그 법칙을 따르는지 벌레 마수 역시 근력이 강했다.
한 놈이 방패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자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의 몸이 마구 휘둘렸다.
“놔!”
마법사 한 명이 고함을 지르며 지팡이를 겨눈 뒤 전격을 발사했다.
섬광이 한번 번뜩인 후, 전격에 얻어맞은 마수가 방패를 놓고 물러섰다.
죽이기엔 부족할지언정, 방패를 놓도록 하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던 모양이다.
비틀거리는 마수의 머리를 마법 걸린 칼로 푹 찍어 해치운 뒤, 마법사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네, 네···감사합니다.”
정신이 반쯤 나간 듯 얼이 빠진 가운데서도 병사는 감사를 표했다.
조금 전 그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었음을 알기에.
잠시 후 기운을 차린 병사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전장에 합류했다.
힘이 부족한 동료를 받쳐주고, 모자란 힘은 악을 써서 채워가며.
그렇게 약한 자들은 약자의 방식으로 싸웠다.
이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은 리노는 목에서 피가 나도록 고함을 질렀다.
나약한 자들이 이렇게 본분을 다하는 가운데, 기사들은 방패로 이뤄진 벽을 등진 채 사자처럼 날뛰고 있었다.
키이이익-!
키가 2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사마귀가 칼날 달린 앞발을 휘둘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겁해 물러서거나 막으려 들었을 일격.
하지만 아르센은 오히려 앞으로 달려들며 칼날의 공격을 허용했다. 아주 가볍게, 겉 부분에만 스칠 정도로.
만약 그가 맨몸이거나 가죽 갑옷을 걸쳤다면 순식간에 가슴팍이 찢겨나갔겠지만 단단한 흑성철 갑옷에는 가벼운 흠집이 생길 뿐이었다.
갑옷을 믿고 한 걸음 다가간 대가는 달콤했다.
아르센의 손에 든 장검은 사마귀의 몸통을 파고든 뒤, 위로 솟구쳐 머리를 갈랐다.
사마귀는 상반신이 두 쪽으로 갈라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몸을 살짝 돌리는 것으로 간단히 비껴냈다.
“후우···.”
잠시 호흡을 고르며 좌우를 보니 바즈칼과 마룬 역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다만 둘 다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한 명은 장비가, 다른 한 명은 기량이 문제였다.
‘마룬 저 인간, 근접전은 형편없잖아?’
마룬은 할버드를 들고 나름대로 분전하고 있었지만, 싸우는 기술이고 자세고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장비 자체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마수의 공격에 몇 번씩 얻어맞으며 밀려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바즈칼은 빈약한 무기와 방어구를 지녔음에도 제법 능숙하게 싸우며 버티고 있었다.
[왼쪽으로 물러서!]귀걸이를 통해 날아온 엘로이즈의 말에 아르센은 즉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로부터 정확히 1초 후,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눈앞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밝은 전격이 지나갔다.
잠시 시력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빛이 지나간 후 눈을 뜨자, 앞에는 한때 마수였던 잔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근처의 모든 마수가 죽었기 때문인지 저주의 문이 남아있던 마수의 잔해를 밀어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또 마수들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문이 닫히는 속도가 더 빨랐다.
마침내 문이 완전히 닫히자, 병사들은 잠깐 사이에 탈진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뭐 이렇게 많아?”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와중에도 투덜대는 바즈칼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엘로이즈는 여기저기서 부상으로 신음하는 병사들을 열심히 치료하고 있었고, 치유 주문을 쓸 수 있는 마법사 몇 명도 여기에 합세했다.
부상자는 꽤 많았지만, 다행히도 목숨을 잃은 이는 없었다.
아르센은 주변의 상황을 확인한 뒤, 자신의 진에 걸터앉아 목을 축이고 있는 마룬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마룬 경, 혹시 해서 묻는 겁니다만 이 상황을 극복할 만한 유물은 없습니까?”
“그게, 공격용 유물은 몇 개 있습니다만···.”
마룬이 직접 보관하고 있던 유물 몇 개를 보고 설명을 들은 뒤, 아르센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없군요.”
처음 나온 것은 일종의 소이 수류탄 같은 유물. 이것을 썼다간 지하 전체가 유독가스로 가득 찰 위험이 있었다.
조금 전 싸움에서 화염 주문을 쓰지 못한 것도 그 이유가 아닌가.
얼음 창을 쏘는 유물이나 독 구름을 뿌리는 유물 역시 각각 다른 이유로 용도가 제한됐다.
전자는 여럿을 공격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고, 후자는 수류탄과 마찬가지로 폐쇄공간에서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해칠 가능성이 높았기에.
“불을 지르고 문을 닫으면 어떻습니까?”
리노가 의견을 제시하자 아르센은 고개를 저었다.
“공기가 어디서 통하고 있는지 모르니 위험하다.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도 계속 안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처음 이 방에 들어올 때만 해도 문 너머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졌지만, 이미 한번 방이 열린 지금 그 마법이 유지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확인하려고 며칠을 버티다 진짜 공기가 부족함을 확인하게 되는 것도 어리석은 결론일 터.
여러 방법을 논의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엘로이즈가 의견을 제시했다.
“아까 챙긴 유물을 확인해보면 어때?”
그녀의 의견에 따라, 아르센은 배낭에서 유물을 꺼낸 뒤 바닥에 늘어놓았다.
투구, 방패, 지팡이 두 개.
우선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물건인 지팡이부터 시험하기로 했기에, 그중 파란색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모두, 옆으로.”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 채 마력을 집중하자, 잠시 후 꽝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꺅!”
“으억!”
주변에서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귀를 막을 정도의 굉음과 충격.
마법을 직접 시전한 아르센 역시 반동 때문에 한두 걸음을 물러서야 할 정도였다.
지팡이가 작동한 곳에 놓여 있던 책상 위에, 마치 거인이 내려찍기라도 한 듯 우그러진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 책상이 금속으로 만들어졌음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굉장한데. 충격파만으로 이 정도라면 기사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어. 단지···마력이 좀 많이 드는군.”
아르센은 기사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마력을 타고났지만, 그런 그조차도 다소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많은 마력이 소모됐다.
결정타를 먹일 때라면 모를까, 평상시에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물건은 아니었다.
“그럼 다음.”
다음으로 집어 든 것은 황금색 지팡이.
1m 정도는 되던 충격파 지팡이와 달리, 팔뚝 길이쯤 되는 작은 물건이었다.
한 손으로 들고 휘두르는 막대기 정도라고나 할까.
그것을 든 채 마력을 집중했지만, 이번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뭐야?”
“왜 그래?”
“아무 일도 안 생기는데.”
바즈칼과 마룬, 엘로이즈가 한 번씩 지팡이를 들고 사용해 보려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황금 지팡이는 나중에 사용처를 찾아보는 것으로 넘어갔고, 다음 물건인 방패 차례가 됐다.
“부탁하겠습니다.”
“물론이죠! 저만 믿으십시오.”
조금 전 지팡이를 사용하는 데 마력을 꽤 소모한 만큼, 이번에는 마룬이 실험을 돕기로 했다.
마룬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방패를 내민 뒤 마력을 주입했다.
잠시 후, 방패가 징징 울리는 것과 함께 은은한 열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뜨거워지는 건가?”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이 없어 보였지만, 황적색 표면에서는 무시무시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험 삼아 조금 전 죽은 마수의 사체 조각 하나를 가져다 댔더니 조각은 구워지다 못해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가열 주문이 부여된 방패군요! 거기다 들고 있는 사람에겐 영향이 없고요. 이것 역시 굉장한 보물입니다.”
그렇게 감탄하며 방패를 이리저리 흔드는 마룬을 향해, 아르센은 손을 내밀었다.
“이제 됐습니다, 마룬 경.”
“네?”
“돌려주셔야죠. 어차피 방패 쓰실 손도 안 남으시잖습니까.”
그 말대로, 마룬은 양손으로 사용하는 긴 할버드가 주 무기이기에 애초에 방패를 쓸 수 없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던 마룬이 방패를 내밀자, 아르센은 그것을 받으며 다음으로 투구를 내밀었다.
투구를 받아 뒤집어쓴 마룬은 잠시 신음을 흘리더니, 이내 투구를 벗으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색이 달라지고 시야가 좀 이상하게 흐릿해지기는 한데···.”
“제가 써보죠.”
마룬에게서 투구를 받아든 아르센은 직접 그것을 착용했다.
이 투구는 독특하게도 전방 눈가리개 부분이 투명한 수정 비슷한 것으로 막혀 있었다. 마치 오토바이 헬멧의 바이저(visor)처럼.
그리고 그 수정을 통해 비치는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이건···.”
눈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며, 동시에 그들의 몸에 담긴 기묘한 빛의 흐름이 보였다.
리노나 다른 병사들은 빛이 온몸에 고요히 잠든 것처럼 보였고, 바즈칼은 빛이 온몸을 돌고 있었으며, 엘로이즈는 빛이 머리 안에 잠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룬은 빛이 온몸을 돌며 동시에 머리에도 따로 무언가가 맺혀 있었다.
거기다 병사들이 든 칼과 방패, 옆에 세워놓은 진, 마룬과 별부르미의 병사들이 가진-아마 유물일 물건에서도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르센은 이 투구의 능력이 마력의 가시화(可視化)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력이 보이는군요. 이 투구를 쓰면.”
“네? 아, 그래서 아까···.”
마법사는 본래 마력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니, 아마 평상시에 보이는 것과 투구가 보여주는 시야가 겹치며 혼란이 일어났던 모양이었다..
아르센은 잠시 투구를 벗은 뒤 달라진 시야에 적응하고자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좋습니다. 일단 물건을 분배하죠.”
유물을 분배하는 기준은 누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 그것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제대로 된 분배는 올라가서 해야겠지만, 전투를 앞둔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우선 충격파 지팡이는 마룬에게 갔다. 그는 기사와 마법사의 마력을 따로 가지고 있어, 마력의 총량만을 따지자면 가장 많은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르센은 투구와 방패를 차지했다. 둘 다 마력을 크게 소모하지 않았고, 아르센의 검은 조금 버겁게나마 한 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럼 다시 돌파하죠.”
“일단 제가 선두에서 이걸 쓰겠습니다.”
지팡이를 흔든 마룬이 가장 앞에 섰고, 그 옆에서 아르센이 문을 열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아르센이 손을 대자 문이 열렸다.
“이거나 받아라-!”
바로 문이 열리는 틈에 지팡이를 쑤셔 넣으며, 마룬이 호쾌하게 외쳤다.
어마어마한 굉음과 충격파가 입구로 밀려들던 벌레 마수들을 덮쳤다.
* * *
조금 전과 달리, 이번 싸움은 굉장히 수월했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선을 제압당한 채 싸웠던 첫 전투에 비해, 이번에는 준비된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니 당연했다.
우선 첫 충격파로 입구에서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던 무리 하나가 날아갔고, 병사들이 완전히 입구를 틀어막은 상태에서 마법사들은 지팡이를 이용해 전격 주문을 쏘았다.
죽은 마수의 시체가 밀려온다 싶을 때면 다시 마룬이 충격파 지팡이를 사용해 공간을 열기를 반복.
아르센과 바즈칼은 기다리고 있다가 병사들에게 버거운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했다.
특히 이번에 얻은 가열 방패는 활성화하고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했다.
가뜩이나 불에 약한 벌레 마수가 상대였기에 더더욱.
키에엑-
마수의 머리에 검을 꽂아 돌린 뒤 걷어차는 것으로 목을 떼어내는 한편, 아르센은 복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져지고, 잘리고, 부서진 마수의 잔해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셀 수는 없지만, 어쩌면 수백 마리쯤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잔해가.
한참 기다린 뒤에야, 마침내 복도에 살아있는 마수가 한 마리도 남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문에서 걸어 나온 바즈칼이 상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다 해치웠나!”
“조용히 해라.”
“네?”
괜히 부활 주문 같은 말을 하는 바즈칼을 타박하며, 아르센은 죽은 마수들의 사체를 찬찬히 살폈다.
[엘리, 혹시 마수에게서 뭐 보이는 거 있어?] [응? 아니, 전혀. 그냥 죽은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마법사의 시야로도 안 보이나보군.’
마법 투구를 쓴 아르센의 눈에는 기묘한 것이 보였다.
죽은 마수들의 머리에서 뻗어 나와 복도 너머로 이어지는 흐릿한 선이.
‘이게 뭘까.’
곧장 떠오른 것은, 이 선이 마수를 조종하거나 유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지만, 비정상적인 마수의 숫자나 공격성으로 봤을 때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대로 복도를 지나 올라갈 수도 있지만, 만약 마수를 조종해 그들을 공격하려던 자가 있다면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복수심에서든,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든.
슬쩍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다행히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충분히 휴식했으면 다시 전투를 준비해라, 유적 내부를 탐사해야 할 것 같으니.”
그리고 저 끝에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이 축제를 일으킨 것이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