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92)
위로 돌아온 아르센 일행을 맞이한 것은, 먼저 공략을 시도하다 좌절하고 있던 기사의 일행이었다.
아르센은 그들에게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생존자를 건네주었다.
“피토? 진짜 피토냐?”
기절한 상태라 대답할 수 없는 생존자를 보며, 기사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기뻐했다.
동료들과 한참 기쁨을 표현한 후, 기사가 대표로 아르센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정말, 정말 고맙다. 아니,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말로······.”
그 태도가 마치 생이별한 친형제라도 만난 거 같아, 아르센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아끼는 친구였습니까?”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거든요. 혼자 어린 동생들 먹여 살린다고 고생하느니 크게 한탕 벌자고 꼬드긴 건데, 그래 놓고 나만 살아남았다면 평생 그 동생들 얼굴을 어떻게 봤을지······.”
그 말에 아르센은 기억이 지워지기 직전, 생존자의 처절한 목숨 구걸을 떠올렸다.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게 전부 진짜였을 줄이야.
놀라는 한편, 아르센은 기억 삭제 주문 덕분에 그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때, 기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른 한 명은 못 봤습니까?”
누구를 찾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르센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제대로 들어간 건 아니라서.”
“하긴, 보아하니······.”
기사는 아르센의 뒤쪽에 선 병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갈 때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등짐. 거기다 들어간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나온 그들이 유적 공략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물론, 실제로 유적에서 가져온 물건은 모두 아르센의 배낭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르센은 굳이 상대의 착각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미궁 안을 조금 들어가다가 그 친구를 발견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 꼴을 보니 정신이 확 들어서 더 가고 싶지 않더군요.”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진짜 지옥이 시작되니까요.”
체념한 듯한 어조로, 기사는 아르센이 미처 몰랐던 미궁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미궁 안쪽으로 어느 정도 들어가다 보면, 갑자기 벽의 형태가 바뀐다는 것이다.
당연히 함께 진행하고 있던 동료와도 갈라지게 되고, 기존에 작성하고 있던 지도는 모조리 쓰레기가 된다. 한쪽 벽을 짚어서 가는 수법 역시 쓸모가 없어지게 되고.
정말 침입자에 대한 악의로 가득한 함정이었다.
아마 계승자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아르센 역시 그 안에서 살아 나오기 힘들었으리라.
“그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좀 고마워지는군요.”
기사 역시 미궁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알기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이미 해가 다 져가는데, 오늘은 어디서 야영하실 겁니까?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야영지 꾸리는 걸 돕죠.”
“바로 돌아갈 겁니다.”
아르센의 말에 기사가 놀라며 물었다.
“밤이 다 됐는데 말입니까? 각성석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있습니다.”
“꽤 귀한 물건인데, 대단하시군요.”
아르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기사의 감탄을 흘려넘겼다.
“그쪽은 어쩔 생각이신지?”
“우리는 좀 더 기다릴 생각입니다. 아직 나오지 못한 친구가 한 명 더 있거든요. 식량은 넉넉히 갖고 있었으니, 그 친구도 돌아올지도 모르죠. 적어도 사흘은 더 기다릴 겁니다.”
하지만 도저히 다시 들어갈 용기만은 나지 않는다고, 기사는 가볍게 떨며 말했다.
아르센은 미궁 안에서 보았던, 자살한 남자를 떠올렸다.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동료를 기다리게 두어야 할까? 잠시 고뇌를 거친 후, 아르센은 입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었다.
그리고 나온 말은 자연스러운 기만이었다.
“부디 마지막 동료까지 챙길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르센은 기사와 몇 마디 더 덕담을 나눈 뒤 헤어졌다.
기사는 도시로 돌아간 뒤에 꼭 은혜를 갚겠노라 몇 번이고 거듭 다짐했다.
* * *
아르센 일행은 마수를 밤에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돌, 각성석의 힘을 빌려 밤새 기승수를 몰았다.
사실 밤을 새서 달리는 것은, 각성석을 이용한다 해도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도 인식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느리게 달리다가는 약탈자에게 기습당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빠르게 달리다가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으니.
물론, 이는 마법의 빛으로 시야를 밝힐 수 있는 여행자 무리에게 적용될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른쪽, 약탈자들 옵니다!”
“마법사!”
가볍게 전격 몇 번. 비명, 그리고 침묵.
빛에 이끌려 다가온 약탈자들은 간단한 주문 몇 방으로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장애물이야, 앞이 환하게 빛나고 있으니 걸릴 일이 없었고.
가장 전방 식별이 힘든 선두에는 기사인 아르센과 마룬이 달리고, 뒤에서는 마룬이 밝힌 빛으로 시야를 확보했다.
본래, 달리는 와중에 잡담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승수를 탄 채 말하는 것이 익숙한 것과 별개로, 달리면서 생기는 소음 때문에 거의 소리를 지르는 수준으로 큰 목소리를 동원해야만 소통할 수 있었으니.
아르센과 엘로이즈는 유물의 도움을 통해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니까······.]달리는 동안, 아르센은 그간 들었던 정보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유적 내에서 아르센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이종족’으로 분류됐었다는 것, 그리고 이번 유적에서는 다른 이들이 ‘전투 인형’과 ‘전투 인형 유사 아종’으로 분류되었다는 것 등.
차분히 이야기를 듣던 엘로이즈가 대답했다.
[전투 인형이라는 거, 들은 적이 있어.] [진짜?]아르센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 모습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는지, 엘로이즈가 웃었다.
[예전에 루덴이 말해준 적 있어. 고대 마법 시대의 저서에서 지나가듯 봤다나. 많이는 아니고, 사용 관리 방법 정도라고 했지만.] [어떤 내용이었는데?] [마법사의 충실한 병기이자 순종적인 노예. 정기적으로 연료를 공급해 주지 않거나 망가졌을 때 수리해 주지 않으면 영원히 쓸 수 없게 된다, 올바른 인형 주인이라면 늘 관리에 주의를 기울일 것. 루덴은 전투 인형이라는 게 나무나 금속 같은 걸 이용해서 만든 움직이는 인형일 거라고 생각하더라. 스스로 움직이는 진 같은.]설명을 들으며, 아르센은 전투 인형의 정체가 생물 병기의 일종이었음을 확신했다.
생물이기에 정기적으로 연료, 식사를 보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망가졌을 때, 즉 상처 입었을 때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상처가 심해져 죽을 것이고.
루덴은 연료와 수리라는 말 때문에 전투 인형의 정체를 잘못 판단했겠지만, 저 설명은 오히려 전투 인형이 생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음식을 제공하거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주인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아 전투 인형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스스로 식량을 얻을 수 없는 노예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인형’이라는 표현 그대로 주인이 직접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아르센은 이에 대한 의견을 엘로이즈와 교환했다.
[그럼.]엘로이즈가 생경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그, 고대 마법 시대에 마법사들이 부리던 생물의 후손이라고? 센은 고대인의 후손이고?] [아마도.]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거기다 센은 마법도 못 쓰잖아.] [어쩌면, 같은 인간인데 인종 같은 것으로 갈라진 거 아닐까?] [인종?] [그러니까, 피부색이나 모발, 안구 등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거지. 예를 들어······.] [센의 보라색 눈처럼?]어두워서 보였을지는 의문이지만, 아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북쪽 사람들의 붉은 머리카락도 그렇고, 그런 사소한 걸로 나누는 것 역시 사람의 본성이니까.]즉, 같은 인간이지만 사소한 유전적 차이가 있고, 아르센의 민족이 엘로이즈나 다른 사람들의 민족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가설이었다.
이후 아르센의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어 없어졌지만, 유적이 주인으로 인정하는 유전형질만은 남아 있어서 드물게 전해지는 것이고.
하지만 이 가설에도 이상한 점은 있었다.
다른 민족을 노예로 부릴 정도로 부흥했던 아르센의 민족이 왜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계승자의 형질이란 것이 드물게 나타난다는 것은, 세상을 주도하던 그 민족의 유전형질이 완전히 밀려났다는 의미일 터.
어떤 계기로, 제어권을 쥘 수 없게 되면서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묵묵히 아르센의 가설을 듣던 엘로이즈가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어쩌면 마법사에게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 민족이라서, 마법으로 우수한 문명을 세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이렇게 열렬하게 토론을 나누며 몇 가지 가설을 세웠지만, 당연하게도 모두 가설의 영역일 뿐, 정답이라 확신할 수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정보가 될 만한 것이 부족했기에, 어떻게 생각하든 논리적으로 구멍도 많았고 증명할 방법도 없었던 탓이다.
생각을 정리하기를 잠시, 아르센은 한숨을 쉬며 토론의 끝을 선언했다.
[일단 좀 더 자료를 모아보자. 유적에서 책도 몇 개 가져왔으니, 팔기 전에 읽어보고.] [알았어.]덤으로, 아르센은 유적에서 떠올렸던 별부르미에 대한 의심 역시 전했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너무 그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내가 좀 더 자주 대화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룬이나 다른 마법사들이나 그렇게 악당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글쎄······그러게, 맞아. 내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여기는 걸지도 모르겠다,]찜찜함을 느끼는 한편, 아르센은 엘로이즈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처음 상단주가 정체를 밝혔을 때 뒤통수를 맞는 기분을 느낀 탓인지, 아르센은 늘 별부르미를 악의 조직처럼 여기며 경계했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그들의 별동대는 큰 탈 없이 아르센의 군대에 합류하여 봉사해 왔다. 딱히 사악한 의도를 드러낸 적도 없었고.
[적어도 마룬 경에게는 살짝 물어봐도 될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지나가듯이 물어볼까?] [······아냐, 내가 직접 말해볼게. 그게 낫겠어.]그렇게 이야기를 끝내며,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유적 도시 사티엔이 다시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 * *
해가 얼굴을 내밀며 새벽을 어슴푸레 밝히는 시간, 그들은 마침내 도시 외부 방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을 한 채 문으로 다가가자, 경비병 역시 이를 느꼈는지 다소 정중한 태도로 일행을 검문했다.
“벨루안의 아르센, 어제 나갔고······끝났습니다. 들어가시죠.”
아마 밤에는 이렇게 순조롭게 통과할 수 없었겠지만, 딱 아침이 되었던 덕에 아르센 일행은 복잡한 절차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외부 구역을 순찰하는 야경꾼과 몇 번 마주쳤지만, 그들 역시 퇴근하는 시간인 만큼 굳이 아르센 일행을 제지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저 부지런하기도 하다며 빈정대듯 말할 뿐.
“아침이라 그런가, 되게 적막하네요.”
마룬의 말대로, 사람들로 북적였던 외부 구역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마력등과 온갖 유흥으로 화려한 밤을 즐기는 만큼, 이곳 사람들의 아침은 느린 모양이었다.
상인으로 보이는 몇몇만이 아침 장사라도 준비하는지 물건을 나르고 있을 뿐, 그 외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여관 앞에 도착하자, 마룬은 어린아이들이 그러듯 신나게 문을 박차며 들어갔다.
“내가 돌아왔다!”
그런 마룬과 뒤따라 들어온 아르센을 맞이한 것은, 여관에 남겨둔 바즈칼이었다.
1층 홀의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바즈칼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형님!”
“일찍 일어났군?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아는 척해주지 않는다고 시무룩해 하는 마룬을 무시한 채, 바즈칼이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누가 들을까 두려운 듯, 작게 속삭이는 어조였다.
“큰일 났습니다. 여기서 말하긴 힘들고, 빨리 올라가 보시죠.”
“무슨 일인데?”
“아눈 경이 왔습니다. 별로 상태가 안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