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25)
무공 쓰는 외과 의사-425화(425/540)
제83장 짬밥(1)
‘하…… 이게 되네?’
민석은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두개골을 절개하고.
뇌막인 경막, 지주막, 연막을 모두 절개하고.
이제 환자의 뇌가 보였다.
환자의 뇌는 꼭 거대하고 말랑말랑한 호두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며 좁게 패인 고랑과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랑이 물결을 이루었다.
민석이 벽시계를 힐끔 거렸다.
마취시간: 62:01:00
수술시간: 53:50:00
현재 시간: 19:30
모든 것이 약속대로 이루어졌다.
준후는 정말 1시간 만에, 아니, 1시간도 안 돼서 수술 부위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압도적인 수술 속도였다.
경이로운 수술 속도였다.
아무리 뛰어난 서전이라도 뇌에 접근하는 데 최소 2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첫 번째 관문은 두개골 절제술.
이는 손이 많이 가고 육체적으로도 힘든 수술이었다.
의료용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야 하고 반듯하게 절개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중에 펼치는 두개골 복원술이 편해진다.)
그런데 준후는 드릴을 양손으로 사용하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외견상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
모르시는 말씀!
드릴을 사용할 때 손에 전해지는 진동이 장난 아니었다.
손가락에 손목은 물론이고 어깨까지 떨려온다.
보통은 주로 쓰는 손으로 드릴을 잡고 다른 손으로 주로 쓰는 손을 받쳐 쥐었다.
그래야 진동을 통제할 수 있으며, 혹시라도 드릴이 다른 부위로 튀어나가는 걸 방지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준후는 한 손으로 소화하기 힘든 처치를 양손으로도 거뜬하게 해치웠다.
“선생님. 양손잡이신가요?”
수술 중에 민석이 준후에게 물었다.
놀라워서 그랬다.
“네. 인턴 때부터 꾸준히 연습했죠.”
“그래서 그런가? 양손에 차이가 없네요? 보통은 양손잡이라고 해도 주력으로 쓰는 손이 있고 보조하는 손이 있기 마련인데.”
“전 그런 거 없습니다. 왼손하고 오른손하고 똑같아요.”
“제 눈에도 그래 보이네요.”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변에 양손잡이 서전 몇 명을 알았다.
전부 후천적인 양손잡이였다.
수술의 질을 올리기 위해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한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준후만큼 양손을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렇다면 준후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싶었다.
세상에 공짜로 얻는 것은 없는 법이기에.
설령 공짜로 얻은 것이 있더라도.
하늘은 공짜로 얻은 것을 도로 빼앗아가기 마련이기에.
두 번째 관문인 뇌막 절개술 역시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고난이도 수술이었다.
뇌막에는 미세 혈관이 분포되어 있었다.
뇌막 절개를 섬세하게 하지 않으면 운명적으로 출혈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준후는 뇌막 절개술도 환상적으로 소화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집도가 아니라.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색종이 공예를 하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게.
주목할 만한 점이라면 준후가 뇌막 절개술에 일반 메스를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burr hole(구멍 뚫는 기계)을 쓰기 마련이거늘 준후의 선택이 뜻밖이었다.
민석은 뇌막 절개술에 일반 메스를 사용하는 서전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burr hole을 두고 굳이 왜 일반 메스를 쓰지? 속도를 단축할 거면 burr hole을 쓰는 게 맞지 않나?’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민석은 참았다.
두개골 절개술 때와 달리.
뇌막 절개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 상태가 필요했다.
집도의인 준후의 신경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준후의 손이 쾌도난마였다.
손목 스냅이 부드러운 반면, 메스의 궤적은 거침이 없었다.
허공에 날카로운 은빛 광휘를 남겼다.
서걱!
서걱!
메스를 맛깔나게 휘두를 때마다.
뇌막이 귤껍질처럼 스르륵 벗겨져 나갔다.
이 역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수술을 보고 있는 건지 마술쇼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상념을 마치고 민석이 준후에게 물었다.
마침내 질문할 타이밍이 왔다.
“말씀하세요.”
“뇌막 절개술에 왜 메스를 쓰셨어요?”
“왜일 것 같아요?”
준후가 눈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되물었다.
민석은 잠깐 고민하다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애초에 몰라서 물었으니까.
“burr hole은 동그란 구 형태잖아요.”
“그렇죠. 새끼손톱 크기죠.”
“면적이 넓은 기구로 뇌막을 절개하면 필연적으로 출혈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뇌막에 분포하는 미세혈관 출혈을 최대한 줄이려고 메스를 썼습니다.”
“아…….”
민석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준후의 뇌막 절개는 타 교수들보다 출혈량이 적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썩션도 두 세 번밖에 안 했다. 혈액팩 교체는 아직 한 번도 안 했고.
그게 다 메스로 미세혈관을 피해서 섬세하게 절개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구나.
“근데요. 선생님. 저 또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호기심 많은 학생이네요.”
준후의 농담에 소독 간호사와 레지던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준후는 농담을 할 만큼 이번 수술에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유가 스태프들에게 자연스레 전해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부드러운 카리스마 아닐까.
“저도 선생님한테 배우면 메스로 뇌막을 절개할 수 있나요?”
“불가능한 건 아닌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예요. 검을 다루는 감각이 필요한 거라.”
“검이요?”
“잠깐 말실수를 했네요. 검이 아니라 메스요. 메스.”
준후가 말을 정정했다.
어쨌거나 저 멋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민석은 크게 흥분했다.
뇌막을 메스로 절개하는 준후의 모습은 꼭 무협 영화에 나오는 협객처럼 근사하고 멋들어졌다.
심지어 겉보기만 화려한 게 아니라.
환자의 회복까지 돕는 전천후 수술 스킬이었다.
“일단 뇌압부터 측정해 볼래요?”
“네. 선생님.”
민석이 환자의 뇌 안으로 Probe(탐침)을 삽입했다.
뇌압 측정기의 눈금이 서서히 오르다가 멈췄다.
“10mmHg입니다.”
“정상 범위네요. 두개골을 열면서 감압이 꽤 된 모양입니다. 수술 전이었으면 30mmHg은 됐었을 것 같은데.”
준후가 만족스럽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본 게임에 들어갈까요?”
* * *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얹고 있었다.
확대된 시야에 약지 손톱만 한 크기의 까만 덩어리가 포착되었다.
까만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혈종이었다.
찢어진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가 응고되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었다.
혈종을 방치할 경우.
혈종이 점점 불어나면서, 뇌압이 상승하고.
뇌부종, 뇌탈출증 같은 2차적인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혈종이 뇌신경을 짓눌러 영구적인 신경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준후가 후송을 극구 반대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썩션.”
“네. 선생님.”
준후가 건네받은 썩션기로 혈종을 빨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혈종이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혈종은 썩션기 입구에 딱 달라붙을 뿐 흡입이 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끈질긴 놈이었다.
“1cc 실린저.”
준후는 건네받은 주사기로 혈종을 푹 찔렀다.
밀대를 끌어당기는데…….
아주 미세한 양의 혈액이 딸려 들어왔다.
하필이면 안쪽까지 굳어 있는 모양이었다.
준후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마에는 지렁이 주름이 잡혔다.
주사기로 피를 뽑아 혈종의 크기를 작게 만든 후 제거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실패로 돌아갔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하죠?”
민석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혈종 제거술에 정석적인 방법이 다 물거품이 되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힘으로 떼어내면 안 되나요?”
잠자코 있던 레지던트가 처음으로 의견을 냈다.
“안 돼. 그럼 혈종하고 혈관이 같이 찢어져. 대참사가 벌어진다.”
민석이 레지던트를 꾸짖듯이 말했다.
레지던트가 의기소침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순간 침울한 분위기가 수술방을 휩쓸었다.
내신, 모의고사에서 항상 1등을 하다가 정작 수능에서 죽을 쑤게 된 상황이었다.
혈종 제거 전까지.
수술은 완벽했다.
하지만 정작 혈종을 안전하게 제거할 방법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
준후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11번 주세요.”
“메스를 쓰시게요?”
소독 간호사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선생님. 주사기를 다시 한번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메스로 절제를 했다가 잘못해서 혈관이라도 손상되면…….”
소독 간호사가 차마 말끝을 잇지 못했다.
상상만 해도 두렵다는 듯.
준후가 혈종 제거술에 메스를 쓰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스태프들이 불안해할까 봐.
하지만 이쯤 되면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사실 정말 중요한 건 스태프들의 불안이 아니라 환자를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이었고.
준후는 혈종만 깔끔하게 제거할 자신도 넘쳤다.
왜냐고?
준후는 무림에서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검객이었으니까.
“주세요.”
“선생님.”
“주세요.”
점잖은 명령.
결국 소독간호사는 마지못해 11번 메스를 건넸다.
11번은 신경, 혈관 조직등을 절개 및 절제하는 미세 칼날이었다.
스태프들이 흘려내는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준후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왼손에 든 포셉으로 혈종의 머리를 끌어올리고.
오른손에 든 메스로 절제를 준비했다.
청풍검법 제14초식 천지풍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메스가 일으킨 바람이 수술포를 가볍게 흔들었다.
서걱!
툭!
마두의 목이 날아가듯.
혈종의 대가리가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 * *
“와, 존경합니다. 서 선생님. 저 지금 팔뚝에 소름 돋았어요.”
곁에 앉은 민석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두개 감압술과 혈종제거술이 고작 2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환자의 상태가 위독했고.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스태프와 수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들린 속도와 정확도가 아닐 수 없었다.
“경력도 있고 경험도 있으니까요.”
준후는 멋쩍게 웃고 말았다.
칭찬은 언제 들어도 쑥스러웠다.
“겸손하기까지 하시네요. 근데 나이 지긋한 교수님들도 서 선생님만큼은 못하던데요?”
“젊어서 빠릿빠릿한 거죠.”
“방금은 경험하고 경력 때문에 잘하셨다면서요.”
이상한 부분에서 디테일한 민석이었다.
준후는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탓일까.
커피 맛이 쓰기보다는 달았다.
도수 병원 의사 휴게실은 좁고 낡았다. 여기서 쉬고 있는 사람은 준후와 민석뿐이었다.
군 병원의 특성상 정규 스케줄 이후 시간대에는 수술을 잘 안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응급 환자가 왜 민간 병원을 두고 군 병원을 찾겠는가.
“오늘은 여러모로 처음 보는 게 많네요. 근데 서 선생님은 다른 교수님들보다 메스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손에 가장 익었으니까요. 메스를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솔직히 혈종을 메스로 제거하신다고 했을 때는 식겁했는데 결과가 좋으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확히 봤습니다. 위험하니까 절대 따라하지 말아요.”
준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그것은 무림 출신 검객이라서 가능했던 처치였다. 설령 스승 재현이라도 아까 전 처치는 소화하기 힘들었다.
준후의 메스는 고작 혈관의 1mm 위쪽을 베고 지나갔다.
그만한 거리 조절은 칼잡이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민석의 광신도(?)같은 찬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던 바로 그때.
끼이이익.
휴게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두 명의 중년 사내가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준후 선생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