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28)
무공 쓰는 외과 의사-428화(428/540)
제83장 짬밥(4)
준후는 문제의 뾰루지(?)를 자세히 살폈다.
뾰루지는 갈색 모양이었으며 동그랗게 생겼다. 크기는 콩알보다 조금 작았다.
확실히 바지에 쓸리면 계속 자극을 받아 아플 것 같았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네. 압니다.”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흔히 쥐젖이라고 말하고요. 전문용어로 말하면 피부 섬유종입니다.”
“섬유종이요? 종으로 끝나면 암 같은 거 아닙니까?”
이훈이 겁먹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확실히 피부 섬유종은 비암성 피부 섬유종의 일종이긴 했다.
진단명만 들었을 때는 섬뜩할 수도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피부 섬유종은 양성이에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악성으로 변할 위험은 없습니다.”
준후가 이훈을 달랬다.
피부 섬유종.
외상, 벌레물림, 지속적인 피부 자극 등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죠?”
“치료법은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방치였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굳이 섬유종을 제거할 필요가 없었다.
둘째는 냉동요법이나 전기소작술로 섬유종을 제거하는 방법이었고.
세 번째는 수술적 절제였다.
“오래 걸리지 않는데 제가 제거해드릴게요.”
“중대장님이요? 피부과 전공이세요?”
“아뇨. 신경외과 전공입니다.”
“그럼 피부과에서 받을래요.”
이훈이 준후를 못 믿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군의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것은 비단 병사만이 아니었다. 간부들도 군의관을 못 미더워 했다.
대부분의 군의관은 게을렀다.
환자를 대충 진료했다.
전문의가 아니라 전공의인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군의관 = 돌팔이라는 인식이 생겼을까.
“심각하거나 어려운 처치가 아니에요. 금방 끝납니다.”
“중대장님께 치료를 맡겼다가 제 인생도 끝나는 거 아닙니까?”
자칫 모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던 이훈의 발언에 준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군 생활을 오래한 건 아니지만 군의관 평판이 밑바닥이라는 건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의욕이 생겼다.
군의관을 향한 세간의 인식을 뒤집어 보고 싶었다.
준후가 제 아무리 잘난 서전이라고 해도 환자가 준후를 믿지 못하면 치료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군의관을 향한 의식 개선이 시급했다.
“하긴 제가 작전 장교님 입장이라도 피부과에 가고 싶을 겁니다.”
준후가 3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피부과에 가시는 것도 꽤 번거로울 텐데요? 예약도 잡고 대기도 해야 하고.”
“방치해서 아픈 것보다야 백번 낫죠.”
“저는 이 자리에서 5분 안쪽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뒤탈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이훈은 수줍은 듯 완강했다.
준후에게 치료를 받을 의지가 1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준후 역시 이훈을 놔줄 의지가 1도 없었다.
이훈을 잘 치료해야 준후가 명의라는 소문을 장교들에게 퍼뜨려질 것 아닌가.
상대가 피부과라서 만만치 않겠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작전 장교님. 휴대폰 갖고 계시죠?”
“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일단 피부 섬유종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고요. 그다음에 포털 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해 보세요.”
준후의 말을 들은 이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상적인 내용에 비정상적인 내용 하나가 교묘하게 삽입되어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중대장님 이름을 검색해 보라고요?”
“네. 해보면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제가 말한 대로 해보고 다시 한번 결정을 내리세요. 그때는 저도 붙잡지 않을 테니까요.”
“아, 네. 그러죠…….”
이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전투복 하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자, 미끼는 던졌고 느긋하게 결과를 지켜보면 되겠지.
준후가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준후는 이훈이 피부과에 가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 * *
‘의외로 끈적하게 구네.’
이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단 이훈은 준후가 고마웠다.
자신이 뾰루지라고 알고 있던 것을 피부 섬유종이라고 진단을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준후에게 치료까지 받을 생각은 1그램도 없었다.
제정신이라면…….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민간 병원 의사가 아닌 군의관에게 치료를 받겠는가.
군의관도 군의관을 하기 전에는 민간 병원 의사였겠지만 일단 군복을 입게 되면 신뢰도가 곤두박질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민간 병원 의사는 돈을 받고 치료하고, 군의관은 아무 대가 없이 군대에 끌려와서 치료를 한다.
둘 사이에는 아마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마인드 셋’의 경계선이 있을 것이다.
톡. 톡. 톡.
아까 막말을 한 것 같아서 불편했기에 이훈은 준후가 시키는 대로 했다.
휴대폰으로 피부 섬유종에 대해 알아보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심각한 피부 질환은 아니었다. 그냥 내버려둔다는 사람도 많았다.
치료법도 준후가 말한 것과 동일했다.
레이저 치료를 하거나, 직접 절제를 하거나.
의무대에 레이저 장비가 없으니 준후는 직접 제거를 생각하고 있으리라.
‘의무대에서 직접 절개라니…… 말도 안 되지.’
끔찍한 상상을 하고서 이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검색은 계속되었다.
섬유종 크기에 따른 치료법.
치료법에 따른 치료 비용 등등.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고 이훈은 검색창에 준후의 이름을 검색했다.
순간 휘둥그레지는 눈.
이훈은 검색창에 떠오른 수많은 기사를 확인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준후도 살폈다.
본명 외모도 이름도 같은 동일 인물이었다.
이훈이 몰랐을 뿐.
준후는 의료계의 셀럽(?)이었다.
신경외과 전공에서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엄지로 스크롤을 내리는데 관련 기사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병원 밖에서 응급 환자를 처치한 것도 부지기수였고.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뉴튜브를 운영했으며.
기부나 후원 같은 뜻 깊은 일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검색을 마치고 나니.
준후의 등 뒤에서 눈부신 후광이 쏟아지는 듯 했다.
“중대장님.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이훈이 감탄조로 말했다.
“대단하다기보다는 열심히 살았다고 보는 게 정확하겠죠.”
“근데 이거랑 섬유종 치료가 무슨 상관인가요?”
“이제 슬슬 저한테 치료를 받고 싶지 않습니까?”
“어…… 그게…….”
이훈이 말끝을 흐렸다.
기사를 검색한 후 마음이 조금 흔들린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치료는 여전히 민간 병원 피부과에서 받고 싶었다.
“작전 장교님이 가진 섬유종 크기라면 직접 절개술이 더 좋은 치료법이라는 건 아시죠?”
“네. 확인했어요.”
“그럼 직접 절개술 치료 비용이 얼마나 되던가요?”
“생각보다 저렴하던데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몇 만 원 정도밖에 안 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차차 준후에게 휘말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세요. 500-600만원 하는 뇌종양수술을 하는 제가 몇 만 원하는 간단한 제거술에 실패할 것 같습니까?”
“…….”
“물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처치를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를 두고 굳이 피부과에 가는 게 정말 현명한 판단이냐는 거죠.”
준후의 말에 이훈은 어느새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처치비용이 몇 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적고 어렵지 않은 처치라는 뜻 아닌가.
심지어 준후는 신경외과 서전이었다.
무려 뇌종양을 제거하는 사람인데 피부 섬유종을 제거 못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또한 준후가 실력이 없었으면…….
포털 사이트에 준후 기사가 도배되지도 않았을 테고.
“저 중대장님께 치료 받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준후가 빙긋 웃었다.
과연 계획대로!
이훈이 스스로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게 한 후 자신의 평판을 이용해 처치를 납득하도록 만들자.
이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수쳐(suture) 세트 준비해. 블레이드는 10번, 봉합사는 8-0 PDS.”
준후가 중대장실 문을 열고 의무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3분쯤 지났을까.
드르르륵.
치료계 상병 태원이 드레싱 카트를 끌고 중대장실로 들어왔다.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드레싱 카트 위에 필요한 물품이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본격적인 처치에 앞서 준후는 수술용 장갑부터 착용했다. 장갑이 쫀쫀하게 손에 달라붙었다.
“리도카인(국소 마취제).”
“여기 있습니다. 중대장님.”
“따끔합니다.”
준후는 태원에게 건네받은 1CC 주사기로 섬유종 주변 부분을 마취했다.
마취를 기다리는데 준후만 여유가 있었다. 이훈도, 태원도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중대장실의 분위기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팽팽했다.
“처치하는 건 나인데 왜 네가 초조해하고 난리니?”
준후가 피식 웃으며 태원에게 물었다.
“뭔가 대단한 처치를 하시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습니다.”
“대단할 것까지는 없는데?”
“전 중대장님께서는 수쳐 세트를 한 번도 안 쓰셨거든요.”
“정말? 단 한 번도?”
“네.”
“그래도 상처가 찢어지면 봉합은 했을 거 아니야.”
“일단 소독만 하고 외진 보내서 꿰맸습니다.”
태원의 말에 준후가 혀를 찼다.
이전 중대장은 생긴 것도, 말도 뺀질뺀질했는데 치료까지 뺀질뺀질하게 본 모양이었다.
이러니까 병사나 간부가 군의관을 X으로 보는 것 아니겠는가.
준후가 노력한다고 해도, 군의관 전체를 향한 불신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준후가 있는 부대에 있는 이들은 군의관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당장은 그거면 족했다.
“지금은 어때요? 감각이 느껴져요?”
준후가 수술 부위를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며 물었다.
수술 부위 소독은 부분 마취 전에 이미 했다.
“둔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죠.”
“메스.”
태원이 건네 메스를 오른손에 쥐고 준후가 피부 섬유종을 가로로 절개했다.
스으으윽.
손목을 따라, 메스의 궤적을 따라 피부가 갈라졌다.
자로 댄 것처럼 반듯한 일자(一)였다.
긴장한 태원이 다리를 떨고 있었음에도 절개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흔들리는 대나무 위에서도 마인들과 진검승부를 펼쳤던 준후였다.
고작 다리가 떨리는 진동에 칼끝이 흐트러질 리 없었다.
만약 준후가 흉부외과의였다면 OPCAB(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수술)도 너끈하게 해냈을 것이다.
(OPCAB은 심장이 박동치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심장 수술이다.)
피부가 찢어지면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태원이 타이밍 좋게 거즈로 피를 닦아냈다.
상병이라서 눈치가 빨랐다.
보통은 멍하니 처치를 지켜보다가 준후가 지시를 내리면 그때 움직였을 텐데 말이다.
“포셉.”
“네. 중대장님.”
준후는 포셉으로 절개창의 상단부분을 눈꺼풀 들어 올리듯 들어올렸다.
피부 아래 숨어 있던 하얀 지방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들을 제거하는 게 오늘 수술의 목표였다.
“씨저(scissor, 수술용 가위).”
“메스가 아니라 가위를 쓰십니까?”
준후의 판단이 의외라는 듯 태원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메스보다 가위가 편할 때도 있어.”
“아……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
“당연히 못 하겠지. 넌 의무병이고 난 의사야.”
준후의 지적에 태원이 얼굴을 붉혔다.
준후 딴에는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고 유명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한 건데 정작 태원은 지적을 한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찰칵. 찰칵.
고요한 중대장실에 가위 부딪치는 소리만 요란하게 퍼졌다.
준후는 정확히 섬유종만 분별해서 가위로 조각조각을 잘라냈다.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손놀림.
이훈의 눈도, 태원의 눈도.
감히 준후의 손을 뒤쫓아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