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29)
무공 쓰는 외과 의사-429화(429/540)
제83장 짬밥(5)
연대 막사 간부 휴게실.
이훈은 믹스 커피를 홀짝거리고서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취가 풀려서인지.
허벅지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름값 하네.”
이훈이 감탄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피부 섬유종 제거를 받는 동안 이훈은 사실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말만 안 했을 뿐.
긴장한 채로 다리를 파르르 떨어댔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본 결과, 제거술의 비용은 확실히 저렴했다.
그래서 금방 끝나고 쉬운 처치인 줄 알았는데 웬걸?
제거술은 생각보다 고난이도였다.
종양을 절개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종양을 모조리 빼내고 잘라냈다.
하지만 준후는 명성에 걸맞게 피부 섬유종 수술을 깔끔하고 성공적으로 끝냈다.
의술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이훈이 보기에도 준후의 제거술은 완벽했다.
빠르면서 정교한 손놀림.
가위질을 할 때마다 조각조각 잘려나가는 허연 섬유종들.
무엇보다…….
절개술의 백미는 봉합이었다.
섬유종을 제거하면서 피부와 피하 조직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준후는 조직들을 한 땀 한 땀 봉합해 나갔다.
그 경이로운 손재주에 피부층이 호치키스를 박은 것처럼 수평으로 다물어졌다.
수평 매트리스?
수평 매트릭스 봉합이라고 했던 가?
자세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상처를 꿰맨 고운 매듭들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성형외과에서 자주 사용하는 봉합법입니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흉터도 거의 남지 않을 거예요.”
“…….”
“물론 작전 장교님이 매일 의무대에 찾아와서 소독받고 관리만 잘한다면요.”
“아, 네.”
이훈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고 의무대를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야 하는데.
끼이이익.
때마침 휴게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오늘은 평소답지 않게 쩍벌남 모드십니까?”
사내가 씽긋 웃으며 이훈의 옆자리에 앉았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내의 이름은 용훈이었다. 용훈은 이훈보다 2년 늦게 임관했고 인사 장교를 맡고 있었다.
공교롭게 둘 다 이름이 ‘훈’으로 끝났다.
그래서일까.
연대장은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이용훈이라고 묶어서 부르기도 했다.
“허벅지에 뾰루지 같은 거 낫다고 했잖아? 그거 제거술 받았어.”
“잘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전투복 바지에 쓸린다고 아프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치료는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의무대.”
“네? 의무대 말씀이십니까?”
용훈의 눈썹이 정수리까지 닿을 것처럼 치솟았다.
그러다가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쩍벌남 이야기를 꺼내서 작전 장교님도 농담하신 거 맞습니까?”
“아니. 진짜야. 의무대에서 치료 받았어.”
“……그 돌팔이를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책임 안 질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온 중대장님은 예전 중대장하고 달라. 뭔가 적극적이고 실력도 뛰어나더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기사도 한 트럭이야.”
“그 정도입니까?”
“너 중대장님한테 치료 받아봤어?”
“안 받아봤습니다.”
“안 받아봤으면 말을 하지마.”
이훈은 입안이 마르도록 준후를 칭찬했다.
종교인이 신의 존재를 간증하는 수준이었다.
“작전 장교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저도 치료를 받아볼까 싶습니다.”
“넌 어디가 아픈데?”
“제 엄지발가락이 말입니다.”
고개를 숙인 용훈의 눈이 전투화에 머물렀다.
“자꾸 안으로 파고들어 아픕니다. 내성발톱이 중증인지 발톱깎이로 아무리 용을 써도 제거가 안 되지 뭡니까?”
“…….”
“지금 거의 호빵처럼 부었습니다.”
“따로 시간 내기도 그렇고 치료비도 아까우니까 의무대에 가봐. 너도.”
“저는 좀…….”
“글쎄. 나 믿고 일단 가보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렇게 용훈이 떠나고.
이훈은 남은 믹스커피를 한 번에 다 마셨다.
* * *
“와. 중대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용훈이 준후를 바라보며 쌍 엄지를 치켜세웠다.
방금 막 피부에 깊숙하게 박혀 있던 내성발톱이 제거된 참이었다.
텅!
곡반 위로 내성발톱이 떨어졌다.
제거된 발톱이 소 힘줄만큼 질기고 억세 보였다.
저런 괴물이 끝을 모르고 피부 속을 파고들었으니 아픈 게 당연했다.
“오늘 하루는 씻지 마시고요. 아침, 저녁으로 의무대에 소독받으러 오세요.”
준후가 거즈로 용훈의 엄지발가락을 감싸고 살색 플라스터를 붙여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단결!”
용훈은 유쾌하게 경례까지 붙여가며 중대장실을 떠났다.
그런 용훈의 모습을 지켜보며 준후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바로 입소문의 위력이었다.
이훈을 잘 치료해 주었더니 그 소문을 듣고 새로운 환자가 오지 않았던가.
사실 입소문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였다.
그러니 앞으로는 간부 환자들도 부담 없이 의무대를 찾게 될 것이다.
또 간부들은 병사들을 관리하는 입장이었다.
병사들이 아플 때 적극적으로 의무대 치료를 권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준후가 원하는 바였다.
군 병력들이 부담 없이 또 불신 없이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게 하는 것.
의무대의 특성 상 치료 범위에 한계가 있겠지만 일단 의무대를 찾아오는 환자가 많을수록 예비 중증 환자를 잡아낼 확률이 높았다.
아픈 건 서러운 일이다.
국방의 의무라고는 해도, 꽃다운 나이에 군에서 복무하는 일도 서러운 일이다.
그런데 군대에서 아프다?
그 서러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심지어 다쳤을 때 제대로 보상도 안 해준다면 서러움을 넘어서 억울함이 사무칠 것이다.
준후는 아직도 가슴 아픈 사건을 한 가지 기억하고 있었다.
한 군인이 전방에서 근무하던 중 발목 지뢰를 밟아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밟았다.
그런데 치료비의 상당수를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군인이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을 경우 30일 이내의 치료비만 지원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통 터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군병원에서 치료가 안 돼서 민간 병원으로 간 것이거늘…….
게다가 임무 수행 중 다친 것이거늘…….
그 치료비를 국가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면 군인이 어떻게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단 말인가.
“휴우우.”
준후는 심호흡 하면서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잠재웠다.
의료 개혁은 민간뿐만 아니라.
군부대 쪽에서도 꼭 필요했다.
그게 과연 언제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자.
시스템적인 부분이라면 정치에 뛰어든 스승님이 해결해 주시겠지.
생각을 마친 준후는 바람을 쐴 겸 중대장실을 나왔다.
위이이잉.
창고 쪽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창고로 이동하니 치료계 상병 태원이 멸균 증기 소독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멸균 증기 소독기는 오토클레이브라고 불렸다.
외부는 전자레인지와 비슷했고.
내부는 오븐과 비슷했다.
소독이 시작되는지 환기통에서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수술 도구 소독 중이니?”
“네. 중대장님.”
“의외로 관리에 철저하다?”
“저희 의무병도 치료에 관해서는 철저합니다.”
대답하는 태원의 얼굴에 자신감이 서렸다.
마음에 쏙 드는 태도였다.
앞으로 수술 도구를 자주 사용하게 될 텐데.
수술 도구가 멸균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2차 감염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 책임은 오롯이 준후가 져야 하고.
“중대장님은 신경외과 전공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피부도 절개하고 내성발톱까지 뽑으십니까?”
“의대에서 다 배우기는 배워. 실전에서 펼쳐본 적이 없을 뿐이지.”
“그럼 오늘 하신 처치들. 처음 해보시는 거였습니까?”
준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 섬유종 제거는 피부과.
내성발톱 제거는 일반외과의 영역이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보냈던 준후는 둘 다 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각종 무공과 신경외과 수술로 단련된 손재주는 어디에서든지 써먹을 수 있는 마스터 키였으니까 말이다.
“와! 솔직히 놀랐습니다.”
“겨우 이 정도로? 놀랄 일은 앞으로 더 많을 거다. 심장이라도 하나 더 준비해 둬.”
준후의 농담에 태원이 깔깔 웃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의무병 3명과 후송 반장이 치료실로 들어왔다.
“반장님. 복장이 왜 그럽니까?”
준후가 후송 반장에게 물었다.
후송 반장은 준후를 제외한 의무중대의 유일한 간부였다.
계급은 중사.
이름 그대로 응급 환자를 후송하는 일을 맡았다.
앰뷸런스 상태 관리, 엠뷸런스 선탑, 외진 관리 등등이 주 업무인데 일과시간에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표면상으로는 의무중대 소속이지만 사실은 수송부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오늘 오후는 전투 체육이 있는 날입니다.”
후송 반장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투 체육이요?”
“비유를 들자면 중·고등학교 체육 수업 같은 겁니다.”
“간부들도 전투 체육을 하나요?”
“간부들도 하긴 해야 합니다. 짬이 되는 사람은 알아서 잘 빠지지만요.”
“어째 너희들도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
준후는 후송 반장 곁에 있는 의무병들을 훑고서 피식 웃었다.
치료실에 가만히 있고 싶은데 억지로 끌려가는 느낌인 듯 했다.
다들 시무룩한 얼굴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기왕 하는 거 열심히 잘 해보자. 오늘은 연대장님이 포상 휴가도 걸었다고 하니까.”
후송 반장이 양 옆에 있는 병사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오늘 전투 체육에 포상 휴가가 걸려 있었습니까?”
“그래. 어차피 우리가 받긴 힘들겠지만.”
의무병에 질문에 후송반장이 대답했다.
“포상 휴가 받기가 왜 어렵나요?”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늘 전투 체육은 축구인데요. 상대팀에 선수 출신이 있습니다. 간부들 축구할 때도 매번 불려나가는 친구인데…….”
“…….”
“그 친구가 공을 기깔나게 차지 뭡니까? 두 명 세 명이 붙어도 감당을 못합니다.”
후송 반장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으음…… 그러고 보니…….’
준후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현재 준후의 손에는 포상 휴가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전 중대장이 연대장에게 받은 걸 이미 다 써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인수인계를 할 때 포상 휴가증을 받지 못했다.
비록 의무병이 다른 병과의 병사들보다 다소 편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휴가를 갈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후송 반장님. 저도 전투 체육에 참가해도 되죠?”
“글쎄요. 응급 대기를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투 체육은 부대 앞 운동장에서 할 텐데 별 상관없지 않겠어요?”
“그거야 그런데…… 혹시 다치기라도 하신다면…….”
“전 안 다칩니다.”
준후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무공과 내공을 갖춘 준후는 사실상 인간 병기나 다름없었다.
“굳이 안 하셔도 되는데. 전투 체육에 참가하려고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후송 반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다른 의무병들도 궁금하다는 눈치였다.
“뻔하잖아요?”
준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의무병들 포상휴가증 챙겨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