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34)
무공 쓰는 외과 의사-434화(434/540)
제84장 환상과 환장(5)
“중대장님은 수도 병원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약제계 일병 정민이 물었다.
한국 수도 병원에 도착한 후 외진 환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던진 질문이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걸?”
“외진 나오면 도수 병원에서 하루 종일 계시길래 여쭤보았습니다. 병원에서 마땅히 할 일도 없으실 텐데…… 저희와 PC방이라도 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 의미였니?”
준후가 피식 웃었다.
“일이야 만들면 돼지. 난 신경 쓰지 말고 너희끼리 잘 놀아.”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단결!”
“단결!”
정민과 운전병이 경례를 붙이고 떠났다.
혼자 남은 준후가 1층 로비를 걸었다.
한국 도수 병원 로비는 오늘도 군인들과 면회객으로 붐볐다. 대학병원에 버금갈 정도였다.
잠깐 한 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앞뒤 좌우로 다른 사람에게 부딪칠 것 같았고 사방에서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준후는 이런 상황에서 기이한 모순을 느꼈다.
병을 치료하는 곳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에서.
가장 강렬한 생기가 느껴진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생각을 조금 깊게 해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병원을 찾는 사람은 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이거나 누군가가 치료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곳이었다.
즉, 병원이란 생(生)의 의지가 가장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면.
병원이 활기찬 것도 충분히 말이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곳은 2층 외과 중환자실이었다.
드르르륵.
준후는 가드와 간호사의 제지를 받지 않고 중환자실 안으로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병원장이 미리 손을 써둔 덕분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코가 찌릿했다.
똥오줌 냄새와 소독약 냄새, 살이 짓무른 냄새들이 뒤섞인 오묘한 악취가 후각을 공격했다.
이 고약한 냄새를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준후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는 스테이션은 중환자실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
중환자실은 직사각형 형태였는데.
가운데 통로가 있고 좌우로 환자들이 누운 베드가 나란히 배치되었다.
베드와 베드는 칸막이로 나뉘어져 있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었다.
환자 감시 장치의 전선과 비위관(콧줄), 각종 수액 등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중앙 통로를 가로지르던 준후의 발걸음이 한 침상 앞에서 멈췄다.
침상 앞 환자표에 ‘유경욱’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환자.
준후가 그림자 수술로 직접 집도한 환자였다.
준후가 경욱을 집도한 지도 벌써 일주일 전의 이야기였다.
수술은 무사히 또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환자의 의식은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수술 전 환자의 상태.
수술 난이도 등등에 따라서 환자의 의식 회복 속도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래도 보통은 사나흘이면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니까.
총상이 극심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욱이 20대에 젊은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식 회복은 더딘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러다가 환자가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로 악화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선생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준후가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간호사를 호출했다.
“네. 말씀하세요.”
“유경욱 환자, 상태 좀 노티해 주시겠어요?”
“유경욱 환자요? 특이사항은 없어요. 바이탈도 안정적이고 I&O(Intake Output, 섭취 배설량)도 정상이고요.”
“…….”
“피 검사랑 ABGA(동맥혈 가스 분석)에서도 별문제 없었어요.”
간호사의 노티가 빠르고 정확했다.
아무래도 환자가 총상을 입은 환자다 보니 간호 기록이 기억에 더 잘 남은 모양이었다.
“폐렴 소견은요?”
“어제 Chest PA(흉부 엑스레이) 촬영했는데 이상 없었어요.”
“수술 후에 찍은 CT와 MRI 영상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네.”
준후는 간호사와 함께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간호사가 책상에 앉아 환자의 CT와 MRI 영상을 차례대로 띄웠다.
“직접 보셔야 성에 차시겠죠? 비켜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주세요. 저는 다른 업무 보고 있을게요.”
간호사가 떠난 자리에 준후가 앉았다.
딸칵! 딸칵!
준후는 영상 이곳저곳을 줌인으로 당겨서 살폈다. 10분 가까이 씨름하다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침음성을 흘렸다.
수술은 대성공이었고 brain MRI를 확인한 결과 수술 후 경과도 훌륭했다.
출혈, 부종, 염증 소견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환자는 여전히 혼수상태일까.
수술 중에 미세하게 놓친 부분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지만 뇌세포와 시냅스를 뒤지고 또 뒤져봐도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럴 듯한 답변이라면…….
뇌가 워낙 큰 손상을 입어서, 뇌엽 절제술까지 했으니까,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원론적인 대답뿐이었다.
‘왜’에 답할 수 없다면.
‘어떻게’로 넘어가는 수밖에.
준후가 의자 하나를 챙겨 다시 환자의 침상 곁으로 갔다.
의자를 침상 옆에 두고.
의자에 앉았다.
준후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진 환자의 손을 감쌌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준후의 손에서 환자의 손으로 전해졌다. 내공이 다시 환자의 손에서 환자의 전신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회복이 느리다면 회복을 빠르게 만들면 된다.
어떻게?
내공을 사용해서!
내공은 자연진기의 일종으로.
생물의 치유와 활동을 돕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무림의 경우.
고수일수록 더 많은 내공을 보유했고, 더 많은 내공을 보유한 덕분에 큰 부상을 입고도 빠르게 회복되곤 했다.
‘조급하면 안 돼. 느긋한 마음을 갖자.’
준후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공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해도 환자에게 막무가내로 쏟아부어서는 안 됐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는가.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었다.
환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공을 체내에 불어넣으면 물컵에 물을 쏟아지듯 내공이 쏟아진다.
갈 곳을 잃은 내공들은 오히려 환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당신의 가족과 친척과 지인들.
부대원들.
그리고 병원 스태프들과 저까지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무사 귀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기운을 차리세요.
준후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내공 치료를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진 덕분에.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서 선생님.”
“…….”
“서 선생님? 지금 뭐 하고 계세요?”
낯익은 목소리에 준후가 고개를 돌렸다.
* * *
스테이션에 딸린 창고 안에서 준후와 민석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간호사 말로는 두 시간 가까이 환자 곁에 앉아서 환자 손을 잡고 있었다는데 왜 그러셨어요?”
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으음…… 글쎄요?”
“이게 바로 요즘 유행한다는 유체이탈화법인가요?”
민석이 피식 웃었다.
내공으로 치료를 시도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기에 준후는 즉흥적으로 둘러댔다.
“제가 종교가 있거든요. 신께 환자분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와! 지극 정성이시네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요.”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왜요?”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번 사건…… 엄청 이슈가 된 건 알고 계시죠?”
“그럼요.”
군에서 총기 사고가 터지고 환자가 중태에 빠졌다.
매스컴이 물고 뜯기 좋은 소식이었다.
정치계에서는 벌써 청문회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었다.
“지인들하고 다른 병원 신경외과 선생님들이 저한테 막 전화를 거는 거 아니겠어요? 그 환자 어떻게 수술했냐고요.”
“…….”
“계속 거짓말을 하려니까 코가 100미터는 커질 것 같더라고요.”
민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총상 환자 집도는 엄연히 준후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준후는 그림자 서전이었다.
그 정체를 아는 이는 병원장을 비롯한 극소수로 5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부에서는 이번 수술을 민석이 한 일로 착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쭐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민석은 가면 갈수록 관심이 무서워졌다.
-앞으로 총상 환자가 발생하면 한국 도수 병원으로 이송해도 됩니까?
심지어 이런 문의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당장이야 준후가 있으니 문제가 안 되겠지만 준후가 전역하는 순간 민석의 실력은 뽀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민석은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잘됐네요.”
“네? 뭐가 잘됐나요? 이러다가 평생 거짓말만 하게 생겼는데.”
“겸사겸사 실력을 키우면 되잖아요.”
준후가 씽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제 수술 어시스트 들어왔을 때, 마음가짐을 고쳐먹으세요. 제가 수술하는 모습에 마냥 감탄하지 말고 수술법을 기억하고 따라 하려고 노력하세요.”
“…….”
“그러다 보면 실력이 늘지 않겠어요?”
“좋은 말씀이긴 한데…… 제가 감히 선생님을 쫓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부담 갖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됩니다.”
준후가 한 손으로 가볍게 민석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응원의 의미였다.
“그건 그렇고 사건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이게 바로 준후가 일주일 내내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였다.
그동안 유심히 뉴스를 살폈는데.
군 당국은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환자가 자살했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니겠지?
손에 탄약흔이 없었다는 것만 검사해 봐도 자살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하지만 준후는 불안했다.
선입견 탓인지 몰라도 군대는 사건만 터졌다 하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떠오르는 의문.
그것은 환자가 자살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환자에게 방아쇠를 당겼냐는 것이었다.
“수사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진상 규명 위원회 사람들이 와서 환자와 보호자를 조사하고 갔습니다.”
“들은 내용은 있어요?”
“아뇨.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거리더니 그냥 가버리던데요?”
민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민석이 질문을 했다고 하더라도 의원회 측이 제대로 된 답변을 했을 리 만무했다.
기밀 사항이라며 무겁게 입을 닫았으리라.
“보호자분은 어때요?”
“처음에는 엄청 괴로워하시다가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지셨어요. 식사도 조금씩 하시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준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 나온 김에 보호자분 잠깐 뵙고 가실래요?”
“아까 대기석 봤는데 안 계시던데요?”
“그때는 잠깐 자리를 비우셨나 봐요. 제가 중환자실 들어올 때는 대기실에 계셨거든요.”
“좋습니다.”
준후는 민석과 함께 중환자실을 나왔다.
중환자실 통로 양옆으로 늘어선 벤치에 보호자들이 지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저 답답한 기분을 준후도 잘 알았다.
어머님이 뇌출혈 수술을 받았을 때 저렇게 앉아 있었으니까.
“저분이에요. 근데 저 사람들은…….”
민석이 유경욱 소위의 보호자를 가리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저희 아들이 자살을 했다고요?”
귀가 밝은 덕분에 준후는 멀리 떨어진 보호자의 목소리도 들었다.
보호자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까지 보였다.
하…….
슬픔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준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