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36)
무공 쓰는 외과 의사-436화(436/540)
제85장 진실(2)
유경욱 소위의 의식 불명 상태가 20일 차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사건은 초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해졌다.
뉴스와 기사, 보도가 줄을 이었고 무엇보다 미스터리 사건을 다루는 뉴튜브가 판을 키웠다.
과연 유경욱 소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당 뉴튜버들이 유경욱 소위 총상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방법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해당 소대가 GP를 철수하면서 부대원 중 일부가 뉴튜버에게 자세한 소식을 흘린 게 아니냐는 소문만이 감돌았다.
각종 의혹과 비판에도 진상규명위원회는 꿋꿋하게 입을 다물었다.
아직 사건을 조사 중이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내놓았다.
그들이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유경욱 소위는 의식불명일 뿐.
아직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본인들이 어떤 해명을 내놓았는데 의식을 회복한 유경욱 소위가 반대되는 증언을 한다면.
본인들의 체면이 엉망으로 구겨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 끌기 작전에도 한계가 있었다.
유경욱 소위의 의식불명 상태가 길어지면서.
또 사건이 눈덩이로 불어나면서.
국회의원들이 진상규명의원회 회장을 청문회로 불러들인 것이다.
“증인은 분명 유경욱 소위 총격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아니, 조사 중이라면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이라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야당 의원이 군 진상규명의원회 회장을 다그쳤다.
쾅!
손바닥으로 책상까지 두들겨가며 언성을 높였다. 청문회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음장이 되었다.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을까.
회장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는 합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
“아는 분, 반응이 왜 이렇게 미지근합니까? 보고라는 게 말입니다. 최종 보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간 보고라는 것도 있다고요.”
야당 의원이 허공에 거칠게 삿대질을 했다.
“중요한 정보는 항상 자기들끼리만 알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까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는 겁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정보를 조작한다고요.”
“그게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어허!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공론화를 해야죠.”
야당 의원을 연속된 질책에 회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때마침 등 뒤에 있던 수행원이 다가와 회장에게 뭐라뭐라 귓속말을 했다.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렇게 다그치시니 저희의 잠정적인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저희는 유경욱 소위의 총상을 자살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요.”
회장의 선언에 청문회장이 술렁술렁거렸다. 여당·야당 가릴 것 없이 동요하는 눈치였다.
입에 걸린 브레이크가 풀렸는지.
회장은 탄도학과 각종 증거들을 들먹이며 유경욱 소위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전문적인 지식이 튀어나오자.
공세를 퍼붓던 야당 의원도 순한 양이 되었다.
그렇게 진상규명의원회가 신뢰를 얻는 듯 했지만 상황은 다음 날 바로 반전되었다.
소위의 손에서 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는가.
지문은 왜 나오지 않았는가 등등.
각종 군 전문가들이 회장의 설명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이것은 해명인가? 변명인가?] [국민들은 진상이 아니라 진상을 원한다.] [진상규명위원회. 끼워 맞추기 식 수사로 논란을 빚어.]각종 언론들이 진상규명위원회를 난타했다.
하지만 진상규명의원회는 모든 수사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때리다가 지쳤던 걸까.
소위의 총상 사건은 차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사람들은 새로운 뉴스를 찾기 시작했다.
먼 나라에서 터진 전쟁 소식.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지진.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 및 은행 파산 등등.
세상은 자극적인 사건들이 넘쳐났다.
비극이 비극을 덮는 꼴이었다.
소위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묻히는 동안.
준후는 매일 같이 한국 도수 병원을 찾았다.
하루에 3시간씩.
중환자실을 지키며 유경욱 소위에게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공 특유의 회복력이라면 소위가 금방 의식을 되찾을 거라 믿었지만, 준후의 지극 정성에도 소위는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
brain CT 및 MRI.
각종 피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그랬다.
그쯤 되자 하루는 민석이 준후에게 조심스레 운을 뗐다.
“선생님. 유경욱 소위 말입니다.”
“네. 왜요?”
“윗선에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아무래도 회복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식물인간 판정을 내리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윗선이면 병원장님 지시인가요?”
“아, 네. 그렇죠.”
민석이 머쓱하게 웃었고 준후는 침묵을 지켰다.
정말 병원장의 지시인가.
진상 규명의원회의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민석이 무슨 잘못이 있고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일 텐데.
“제가 오늘 중으로 병원장님 찾아가서 말씀드려 볼게요. 식물인간 판정 유보해 달라고.”
“사실 식물인간 판정을 받는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요. 굳이 선생님이 병원장님까지 찾아갈 필요 있을까요?”
민석이 준후를 좋게 타일렀다.
“식물인간 상태라고 해도 일반 병실로 옮겨질 뿐이잖아요. 지금 상태도 계속 유지될 거고.”
“그래도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중환자실이 대처하기 좋잖아요. 기왕이면 중환자실에서 좀 더 상황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야 뭐 언제나 선생님 편이니까요.”
민석이 씽긋 웃었다.
“근데요. 선생님.”
“네.”
“수술이 잘 끝났고 검사 결과도 좋은데 환자가 왜 이렇게 의식을 못 차리나요?”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습니다.”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유경욱 소위는 총상 환자 중에서도 부상이 극심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뇌엽 절제술까지 펼쳤을까.
수술이 성공했다고 한들.
이송하는 도중 뇌가 받은 대미지가 크다면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준후는 설명했다.
민석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이 떠난 후에도 준후는 환자의 침상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새싹처럼 파릇파릇한 청년이.
총상을 입고 3주 가까이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들은 소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며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있었다.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면 본인들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한없이 가벼워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준후는 소위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소위의 건강함을 염원하는 보호자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다.
애초에 그런 사명감을 이뤄내기 위해서 외과의를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소위를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소위의 얼굴에 의대 동기였던 성호 형의 얼굴이 겹쳐졌다.
성호 형은 T.A(Traffic Accident, 교통사고)를 당한 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장기 기증을 하고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소위의 경우.
식물인간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장기 기증은 불가능했다.
식물인간은 자가 호흡이 가능하므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안 돼.
식물인간 상태도 받아들일 수 없어. 환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보호자와 가족들의 삶이 피폐해질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회복시켜야 해.
준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문제는 그 방법인데…….
준후는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미국에서 집도한 머리 총상 환자만 해도 100명이 넘었다.
그중에서 소위만큼 상태가 위독했던 환자는 5명 정도.
5명 중에서도 식물인간이 되었던 환자는 단 1명뿐이었다.
그 1명과 비교했을 때.
소위의 총상은 다소 양호한 편이었다. 수술도 그때보다 훨씬 잘 됐고 말이다.
내가 너무 조급한 걸까.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회복이 될 건데?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걸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중.
준후는 새로운 치료법을 추가하기로 했다.
내공은 지금처럼 계속 불어넣기로 하되 점혈법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이름 하여 두뇌 점혈법.
이는 준후가 의대 시절부터 최근까지 유용하게 써먹는 수법이었다.
뇌는 각 부위에 따라 특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전두엽의 경우 사고, 말하기, 운동능력 등등을 관장하고.
측두엽은 촉각, 후각, 청각을 관장하고 등등 말이다.
준후는 공부할 때는 주로 전두엽과 해마를 점혈했다. 내공으로 해당 부위를 활성화 시켜서 공부 효율을 극대화했다.
심상 훈련.
그러니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때는 후두엽을 점혈했다.
후두엽의 시신경을 자극해서 실제와 똑같은 훈련 환경을 그려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말이다.
자신의 능력을 증폭하기 위해서만 사용했던 두뇌 점혈법을 치료용으로 사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해석에 따라서.
소위의 뇌는 현재 잠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 해석이 맞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두뇌 점혈법으로 뇌에 자극을 줬을 때.
소위가 잠에서 깨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사람이 잠들었을 때.
누군가가 흔들어서 깨우면 잠에서 깨어나곤 하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도 좀 허무맹랑한 발상이네…….’
준후는 피식 웃다가 돌연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당장 해봐야지!’
본격적인 두뇌 점혈법에 앞서서 준후는 잠시 중환자실을 떠났다.
그렇게 10분이 지난 후.
준후는 무언가를 끌고 병실로 돌아왔다.
바로 Portable EEG.
이동 가능한 뇌전도 검사 기기였다.
심장을 살피기 위해 심전도를 촬영하는 것처럼.
뇌를 살피기 위해서.
신경과와 신경외과 의사는 뇌전도를 사용한다.
검사 카트 위에는 뇌전도 모니터, 포트와 단자들을 연결하는 메인 장치, 각종 선들이 실려 있었다.
준후는 곧바로 환자의 머리에 전극을 연결했다.
전원을 켜자 모니터에 뇌파 리듬이 나타났다.
확실히 총상으로 뇌에 입은 대미지가 컸던 모양이다.
뇌파 리듬이 정상인에 비해 불규칙적이었으며 서파의 형태를 띠었다.
양상도 국소적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뇌엽 절제술을 펼쳤던 전두엽과 두정엽 인근 부위의 리듬 반응이 약했다.
준후는 환자의 뇌전도를 꼼꼼하게 기억했다.
파형.
진동수와 진폭.
분포와 리듬성.
위상 관계와 발생시간.
마지막으로 지속성과 반응성까지.
준후가 뇌전도 기계를 챙겨온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두뇌 점혈법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두뇌 점혈법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말이다.
두뇌 점혈법을 펼치기 전과 펼치고 난 후 뇌파에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효과부터 확인해 보자.
어떤 부위를, 어떤 강도로 자극할지는 연습하면서 차근차근 맞춰보는 거야.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서.
준후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환자의 뇌가 정상이 아닌 만큼.
두뇌 점혈법이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환자를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변화는 행동에서 촉발된다.
대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각오를 굳힌 준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망설임과 머뭇거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파바바밧!
내공이 담긴 준후의 검지가 환자의 머리를 잇달아 찔러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