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37)
무공 쓰는 외과 의사-437화(437/540)
제85장 진실(3)
“요다 어디 아프냐?”
“속이 조금 쓰립니다.”
고참의 말에 성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한 손을 가슴에 얹었다.
성현은 바로 윗선임과 함께 생활관에서 저녁 식사 대신 냉동 음식을 돌려먹고 있었다.
생활관 바닥에는 슈넬 치킨, 크림 우동, 소시지가 깔려 있었다.
자극적인 음식 냄새가 생활관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속 아픈 건 포스로 해결이 안 되니?”
“전 포스 같은 거 없습니다.”
“있는데 없는 척 하는 건 아니고?”
“있으면 없는 척 안합니다.”
성현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성현은 귀가 다른 사람보다 뾰쪽하고 긴 편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귀에 관련된 별명이 많았다.
군대에서는 스타워즈의 ‘요다’라고 불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한국 도수 병원 외진 갔다 왔잖아. 거기서는 뭐래?”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만성 위염이 있답니다. 평소에 식단 관리를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습니다.”
“흐음…… 그래? 그럼 냉동을 먹어서 탈이 났나?”
“저 별로 안 먹었습니다. 보시지 않습니까?”
성현이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녁 메뉴가 조기 튀김에 똥국인데 그 끔찍한 메뉴를 어떻게 참습니까?”
저녁 메뉴를 떠올리고 성현이 진저리를 쳤다.
이등병이나 일병 짬이면 모를까.
상병이 되어서 그런 고문하는 음식을 먹을 순 없었다. 그랬다간 오히려 위염이 도졌을 것이다.
“으…….”
성현은 슈넬 치킨을 한 조각 집어 먹고 얼굴을 찌푸렸다.
빈속에 식초를 마신 것처럼.
속이 쓰라렸다.
잘게 씹은 치킨 조각이 식도와 위를 지나가는 과정이 세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평소에는 가슴에 돌이 얹힌 듯 답답하고.
이따금 흉통이 찾아왔는데.
오늘은 유독 통증이 심했다.
“우리 친형도 만성 위염 있거든? 근데 너만큼 힘들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행보관님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봅니다.”
“하긴 그 양반 요즘 사춘기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고참.
“저는 더 못 먹겠습니다. 의무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네 몫은 남겨둘 테니까 포스와 함께 하고 와.”
“누누이 말했지만 전 포스가 없습니다만…….”
“의무대 가면 젤 포스 받을 거잖아.”
고참이 농담을 하고 혼자 깔깔깔 웃었다.
스타워즈에 뇌라도 절여진 건가?
성현은 슬리퍼를 끌며 생활관을 나와 의무대로 향했다.
명치에 얹은 손을 시계방향으로 쓸어주었다.
한국 도수 병원에서 진료 받고 내시경 검사까지 한 것도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처음 만성 위염 진단을 받았을 때 큰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의외로 만성 위염은 흔한 질병이라고 했다.
무려 한국 사람의 60퍼센트가 크거나 또는 작게 만성 위염을 앓고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실제로 성현도 속이 심각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화끈거리는 정도였다.
문제는…….
일주일 사이에 벌어졌다.
최근 들어 속쓰림의 레벨이 확 치솟은 느낌이었다.
요즘 속이 안 좋을 때는 도무지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일을 하다가도 중간에 멈춰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도 성현은 잘 참아왔다.
내시경 검사에서 큰 이상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증상은 일시적인 게 분명할 터였다.
“요다 아저씨, 왔어요?”
의무대에 들어가자 의무병이 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일과가 끝난 시간이라 의무병도 활동복을 입고 있었다.
“아저씨도 요다 타령이에요?”
“왠지 입에 착착 감겨서요.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
“속이 쓰려요.”
성현이 고개를 숙여 명치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에 도수 병원에서 내시경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직도 아파요?”
“한 일주일 됐나? 괜찮다고 또 안 좋아져서.”
“그럼 중대장님 진료 보게 해드릴게요.”
“중대장님 퇴근 안하셨어요?”
“오늘은 부대에서 볼일이 있으시다고 해서요.”
“중대장님 진료까지는 필요 없고요. 그냥 젤 포스나 하나 주세요.”
“그래도 진료 보는 게 더 나을 텐데…….”
“이미 내시경까지 받았는데요. 뭐,”
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딱히 의무 중대장을 무시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중대장이 자신에게 해줄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한 소리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의무병이 약장에서 젤포스를 꺼내 성현에게 건네던 그때.
벌컥하고 중대장실 문이 열렸다.
“들어와라.”
* * *
치료실에서 흘러드는 의무병과 병사의 대화를 듣기 전.
준후는 중대장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연구였냐 하면…….
두뇌 점혈법에 관한 연구였다.
자신의 능력을 증폭하기 위한 두뇌 점혈법과 치료를 위한 두뇌 점혈법을 구분하는 연구였다.
바로 어제 한 실험에서.
준후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유경운 소위에게 펼친 두뇌 점혈법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두뇌 점혈법을 펼치기 전과 후.
양쪽 차이가 명확했다.
EEG(Electroencephalography, 뇌전도) 뇌파 리듬의 양상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그 말인즉.
두뇌 점혈법이 치료에도 사용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두뇌 점혈법으로 뇌를 자극하다 보면 두뇌의 활동성이 올라가고 소위도 차차 의식을 회복하지 않을까.
준후는 그런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소위만 의식을 되찾는다면 주먹구구식으로 수사했던 진상규명위원회에 반격의 펀치를 날릴 수 있을 테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소위에게 방아쇠를 당긴 파렴치한 범인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준후가 이번 연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선을 어디까지 정해야 할까?’
준후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자신의 능력을 증폭하기 위한 두뇌 점혈법.
이건 점혈하는 부위와 불어넣는 내공에 제한이 없었다.
목적이 강해지는 것이기에.
다만 치료를 위한 두뇌 점혈법은 불어 넣는 내공에 상한선을 정하고.
점혈 부위도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준후의 뇌는 건강하지만 환자의 뇌는 건강하지 않았다.
똑같은 취급을 해서는 곤란했다.
의식을 활성화 시키려면 일단 시각을 자극할 필요가 있겠어. 시각 정보를 다루는데 뇌의 70퍼센트가 사용되니까.
그러면 점혈 부위는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 쪽이 좋겠네.
다음으로.
점혈할 때 불어넣는 내공의 양을 정해야 하는데…….
파바바밧! 파바바밧!
준후는 검지로 본인 뒤통수를 수차례 점혈했다.
불어 넣는 내공의 양에 따라 시야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폈다.
능력 증폭용 두뇌 점혈법에 사용하는 내공이 10이라면, 환자에게는 2정도만 사용하면 될 듯 했다.
그럼 환자의 뇌에도 부담이 덜할 듯 했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면.
불어넣는 내공의 양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면 될 테고.
이제 남은 건 실전이구나.
빨리 시험해 보고 싶어.
준후가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치료실에서 의무병과 병사의 대화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준후가 의무중대장실 문을 열며 말했다.
잠시 후 병사가 우물쭈물 거리며 중대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등받이가 없는 진료 의자에 앉았다.
“성현이구나. 한 달 전에 속쓰림으로 도수 병원에서 내시경 받았던 친구지?”
“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성현의 눈썹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눈동자는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졌다.
“얼마 되지도 않는 환자 외우는 건 일도 아니지. 더군다나 도수 병원까지 다녀왔으면 더더욱 말이야.”
준후가 씽긋 웃었다.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버릇은 무림에서 생겼다. 한때 무림맹 감찰단 소속으로 현상금 수배범을 포획하러 다녔기 때문이다.
“속이 쓰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맞니?”
“네. 일주일 전부터 일에 집중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자주 아파?”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성현이 검지로 볼을 긁적거리다가 말을 계속했다.
“10번은 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언제 아픈데?”
“제멋대로라서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식사 전에 아플 때도 있고 식사 후에 아플 때도 있습니다.”
준후는 성현과 문진을 이어 나가며 정보를 캐냈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까.
준후의 이마에 지렁이 주름이 생겨났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닙니다. 젤 포스만 받아 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글쎄다.”
준후가 못 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른 군의관이라면 식습관 및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라며 성현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고작 한 달 전에 내시경을 하고 만성 위염 진단까지 받지 않았던가.
사실상 군의관 신분으로 성현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준후는 평범한 군의관이 아니었다.
무공과 내공이라는 세상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무기를 가진 ‘특별한’ 군의관이었다.
또 준후는 다른 군의관처럼 군 복무 기간을 휴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준후에게 군 복무란 대학병원 근무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길바닥이든, 시장이든, 사막이든지 간에 환자를 치료하는 장소가 바로 병원 아니겠는가.
근본적으로 의사의 본분이란 눈앞의 환자를 진심으로 진료하고 치료하는 것이었다.
느낌이 안 좋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돼.
문진이 끝나고서 뇌가 경고를 보냈다.
준후는 그 경고를 무시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침상에 누워볼래?”
“네?”
뜻밖에 제안이었는지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하게 누워봐.”
“네.”
준후의 지시에 성현이 침상에 바르게 누웠다. 긴장이 된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속이 안 좋을 때는 누가 가슴을 쓸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
준후는 침상 옆으로 다가가 대충 둘러댔다.
성현의 명치에 손바닥을 얹었다.
손바닥으로 원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성현에게 쏘아냈다.
내공으로 위내시경을 대체하는 작업이었다.
무형의 내공이 피부와 근막과 위장막을 통과해 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화경의 고수답게 준후는 내공을 자신의 몸처럼 다루며 성현의 위를 섬세하게 더듬었다.
위는 식도와 연결된 통로 본문이 있고 십이지장과 연결된 통로 유문이 있었다.
위의 상단 부분은 위저부.
위의 중간 부분은 위체부.
위의 하단 부분은 진정부라고 불렀다.
준후는 내공으로 위저부부터 살피면서 내려왔다.
성현은 내시경 검사에서 만성 위염 판정을 받았다고 했는데.
준후는 위에서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공으로는 염증을 반응을 감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내공 검사가 꼭 만능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내공 검사의 가장 큰 장점은 장기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질병’을 비교적 빠르고 쉽게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위저부는 이상 없고.’
준후가 통제하는 내공이 위체부를 살피고 위체부에 소만(작은 굴곡)부를 더듬기 시작했다.
‘……!’
소만부를 살피던 준후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눈이 가늘어지고 입술은 일자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최악의 최악을 가정한 게 딱 들어맞았다.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성현의 위체부 소만의 중간 지점에 이상 징후가 있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게걸스럽게 내공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