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39)
무공 쓰는 외과 의사-439화(439/540)
제85장 진실(5)
한국 도수 병원 1층 카페.
“저야 모르죠.”
준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주세요. 분명 비법이 있을 것 같은데. 서 선생님이 매일 지극정성으로 중환자실 찾아온 거 하늘이 알고 땅이 다 알아요.”
“…….”
“그때 남몰래 치료하신 거 아니에요?”
민석이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요. 환자 손잡고 기도했을 뿐이에요. 간호사들한테 물어보세요.”
“으음…… 아무래도 이상한데?”
민석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목소리에는 미심쩍다는 기운이 깃들었다.
민석이 지켜본 바에 따르면.
준후는 말도 안 되는 실력에 신경외과 서전이었다.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온 당시.
응급실과 민석을 포함해서 환자가 살아날 거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고난이도 총상을 준후는 성공시켰다.
그런 준후가.
심지어 의무대에서 퇴근하고 매일 같이 환자를 보러 왔다?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민석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준후는 분명 환자에게 모종의 치료를 했고 그 결과로 환자가 회복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않은가.
환자의 EEG(뇌전도)가 좋아졌던 시기가 준후의 방문 시기와 정확하게 겹치니까.
“원래 세상에는 이상한 일도 많이 일어나요. 이것도 그중에 하나예요.”
“으음…….”
“그놈의 으음 타령 좀 안 하면 안 돼요?”
“으음…….”
민석이 계속 눈치를 바람에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보통 이 정도 해명했으면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민석은 끈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진실은 말해줄 수 없지.’
준후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렸다.
저녁 7시.
외래 진료 시간이 지났음에도 병원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카페도 절반 넘게 자리가 차 있었다. 입원환자와 면회객이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자신에게만 사용하던 ‘두뇌 점혈법’을 환자에게 응용하는 수법은 대성공이었다.
일주일 정도 치료를 해보니.
어디를 점혈해야 하는지, 점혈할 때 내공은 얼마나 흘려보내야 하는지 등등.
두뇌 점혈법을 최적화 할 수 있었다.
최적화의 성과 덕분일까.
환자의 뇌전도는 눈부시게 정상을 되찾아갔다.
지금 추세라면 하루 이틀 내에 의식을 되찾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산감을 얻은 준후는 새로운 도전도 준비 중이었다.
‘두뇌 점혈법’을 식물인간 환자에게 펼쳐보는 것이었다.
두뇌 점혈법으로 식물인간 환자의 뇌 가소성(뇌가 훈련하면 변화하는 성질)을 자극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신경망이 만들어지면 환자가 의식을 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꿈같은 이야기이기는 했다.
내공이 제아무리 사기 같은 능력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은 준후였다.
게다가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의 치료.
이는 준후가 신경외과의로서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목표였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건강 팔찌의 주인공 성호.
성호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조만간 진실이 밝혀지겠구나.’
준후는 환자의 회복만큼이나 진실에도 목말랐다.
조만간 소위의 머리에 방아쇠를 담긴 범인이 잡힐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에 대한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소위에게 식물인간 판정을 내리자는 이야기는 이제 쏙 들어갔죠?”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당연하죠. 뇌전도가 그렇게 좋아졌는데.”
“환자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건 우리만 알고 있나요?”
“뭐, 그런 셈이죠. 스태프들 빼고는 보호자분 정도가 있겠네요.”
“진상 규명 위원회도 모르죠?”
“네. 몰라요. 얼마 전에 환자 경과를 알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제가 일부러 말 안 했어요.”
“왜요?”
준후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조금 의외다 싶었다.
민석은 거짓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번 엿 먹어보라고요. 환자가 자살한 거라면서 언론 플레이를 했잖아요.”
“선생님은 환자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요. 보호자분하고 대화를 몇 번 나눠보니까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민석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환자분이 독실한 종교인이래요. 종교를 가진 분들은 내세를 믿잖아요.”
“아…… 그것도 그렇죠.”
준후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는 환자에게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아 자살을 의심했다.
반면 민석은 종교를 근거로 삼고 있었다.
과정이 많이 다르긴 했지만.
어쨌거나 도달한 결론은 같았다.
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고.
“선생님. 혹시 신경외과 병동에서요.”
“네.”
“식물인간 환자나 뇌사 환자가 있나요?”
“아뇨. 없는데 왜 그러세요?”
“그냥 궁금해서요.”
준후는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식물인간이나 뇌사 환자가 있으면 ‘두뇌 점혈법’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기회가 없었다.
사실 대학병원에서도 식물인간 환자나 뇌사 환자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 정도 부상을 당한 환자라면.
보통 병원에 이송되기 전에 사망하거나 수술 중에 사망했다.
설령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그 기간이 길지 않았다.
식물인간 환자는 치료비 때문에 집에서 간호를 하는 경우도 꽤 많았고.
뇌사 환자는 보통.
연명 치료를 중단하거나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슬슬 일어날까요?”
“좋습니다.”
당직 근무자인 민석은 신경외과 병동으로 향했고 준후는 한 번 더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두뇌 점혈법은 자주 해주는 게 좋았다.
‘저 사람은?’
중환자실 앞에 펼쳐져 있는 복도.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벤치들 틈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 주인공은 유경욱 소위의 보호자가 아니었고 혼자 눈에 띄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 제발 저희 소대장님을 살려주세요!
그 사람은 바로 부소대장이었다.
수술 당일 보호자 느낌으로 환자와 함께 헬기를 타고 왔으며 준후에게 소위의 치료를 애원하던 사람이었다.
부소대장의 이름은 문상범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상범도 준후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요?”
“소대장님이 잘 회복되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소대원들이 소대장님의 회복을 기원하는 롤링 페이퍼를 적었는데 그것도 챙겨왔습니다.”
상범이 전투복 하의에 있는 건빵 주머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어떻게 할까?
유경욱 소위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해줄까?
이성은 차갑게 안 된다고 대답했다.
아까 민석이 말한 것처럼.
진상 규명위원회에 시원하게 한 방 먹여주려면 정보는 숨기는 편이 좋았다.
상범이 소위의 회복 소식을 동네방네 떠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선생님. 왜 말씀이 없으신지…….”
“실례했습니다. 잠깐 업무가 떠올라서.”
준후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환자분은 건강하게 회복 중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사나흘 안에는 의식을 되찾을 것 같아요.”
준후는 의외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상범이 진상 규명 의원회의 첩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롤링 페이퍼를 보고 나서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저…… 정말인가요?”
상범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어쩐지 표정이 기묘했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한 것 같기도 한 느낌이랄까.
“하늘이 도운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고는 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아…… 그렇군요.”
상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어쩐지 미지근한 대답이었다.
“기쁘지 않으신가요?”
“기쁘기야 엄청 기쁘죠. 원래 너무 기쁘면 현실감이 안 느껴진다고도 하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롤링 페이퍼는…….”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상범이 쏜살같이 자리를 벗어났고 준후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실눈을 치켜떴다.
* * *
3층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
상범은 빤히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막 세수를 해서 그런지 얼굴에 물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다.
상범이 인상을 쓰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준후 앞에서 지었던 불쌍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상범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머리에 구멍 뚫린 유경욱이 나타나서 상범을 저주했던 것이다.
상범은 평소 미신이나 점괘를 믿는 편이라 불길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병원을 찾았다.
소위의 보호자가 자리를 비워서 소위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때마침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에게 소위의 경과를 물어본 결과.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유경욱이 조만간 의식을 차린다는 것이었다.
유경욱은 결코 깨어나선 안 됐다.
왜냐하면…….
유경욱의 총구에 방아쇠를 당긴 범인이 상범이었기 때문이다.
유경욱이 의식을 차린 순간.
상범은 군 재판에 회부되어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중사로 진급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도 놓쳐 버리고 말 것이다.
상범의 인생은 그 길로 지옥행 확정이었다.
‘무슨 수를 써야 해…… 이대로는 안 돼.’
상범의 눈동자가 살기와 독기로 번뜩였다.
그는 다시 한번 세수를 하고 핸드 타월로 얼굴을 닦았다. 비장한 표정으로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 입구를 풍채 좋은 가드 한 명이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가드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제가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중환자실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병원장님의 승인이 없으면 일반인은 못 들어갑니다.”
가드의 말에 상범은 크게 좌절했다.
예전과 달리 중환자실 출입이 엄격해졌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상범의 인생은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테니까.
“그럼 혹시 간호사 선생님하고 통화라도 할 수 있을까요? 그 정도는 괜찮겠죠?”
“그쪽이 대체 누구신데요?”
“뉴스 보셔서 아시죠? 총상 입은 군인 환자분 있잖아요. 그 환자분과 같은 소대에 있는 부소대장입니다.”
“아…….”
가드가 짧게 탄식을 흘렸다.
본인이 아는 사건과 환자가 나오니 마음이 살짝 풀어진 듯 보였다.
상범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발 통화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무슨 용건 때문이신데요?”
가드의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졌다.
“소대원들과 환자분의 회복을 비는 롤링 페이퍼를 적어왔습니다. 전달을 하고 싶어서요.”
상범은 치트키인 롤링 페이퍼를 다시 꺼내 들었다.
1분대장의 제안으로 우연히 진행했는데 의외로 써먹을 곳이 많았다.
“그런 거라면 제가 해드릴게요.”
아오! 눈치 없는 새끼!
상범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켰다.
“제가 직접 전해드려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쓰읍. 일단 연락은 해볼게요.”
가드가 인터폰으로 중환자실 안쪽과 통화를 시도했다.
그 짧은 순간이 상범에게는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잠시 후 드르륵 하고 중환자실 문이 반쯤 열렸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간호사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목에는 십자가를 걸고 있었다.
“환자 분과 같은 부대에 있으시다고요?”
간호사가 물었다.
“네. 선생님. 이거 전달을 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상범은 중환자실 문틈에 슬쩍 발을 끼워 넣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롤링 페이퍼 전달하면서 소대장님을 단 1분 만이라도 보고 갈 수 있을까요? 기도라도 해드리고 싶어서요…….”
“안 돼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분만 부탁드립니다. 롤링 페이퍼를 전해주러 온 사람이 설마 난동을 피우겠습니까?”
“그래도…….”
“이상한 사람이 출입하는 걸 막으려고 다들 이렇게 고생하시는 거잖아요.”
“…….”
“제가 이상한 사람입니까? 저는 그저 소대원들의 염원을 대표로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을 뿐입니다.”
상범은 급기야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돌발 행동에 간호사와 가드가 화들짝 놀랐다.
“뭐 하세요? 빨리 일어나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간절한 호소가 먹혔는지 간호사는 진짜 1분만 환자를 보고 가라고 했다.
상범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을 손에 쥔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크크크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환자를 보러 가는 거라도 소독은 해야 해요.”
“물론이죠.”
“죄송하지만 가드님도 이번 일은 모른 척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마침내 중환자실에 들어선 상범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소독하고 마스크를 쓰고 가운을 챙겨 입었다.
터벅. 터벅.
상범은 위풍당당하게 좌측 통로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