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0)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0화(450/540)
제88장 끝나지 않은 혹한(1)
3번 수술방.
준후는 스태프들과 함께 집도 중이었다.
무영등이 뿜어내는 불빛이 환하다 못해 휘황찬란했다. 수술대에는 80세에 환자가 누워 있었다.
수술포가 머리를 덮고 있어서 당연하게도 환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쪼글쪼글한 손과 손등에 피어난 검버섯에서 환자의 나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살갗과 얼굴에 스치는 공기가 서늘했다.
수술방은 늘 그랬다.
감염과 염증을 예방하고 수술하는 스태프들의 체온이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삐이이. 삐이이.
환자 감시 장치가 규칙적으로 기계음을 흘렸다.
준후가 힐끔 모니터를 응시했다.
체온, 혈압, 맥박, 호흡.
아직까지는 모든 게 정상 범위였다.
심전도와 뇌전도 리듬도 평탄한 곡선을 그렸다.
준후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하고 측두엽에 위치한 뇌동맥류에 시선을 집중했다.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뇌혈관.
그 크기가 무려 40mm에 달했다.
흔히 뇌동맥류를 머릿속 시한폭탄이라고 부르는데 이만하면 핵탄두 수준이었다.
“4번 클립.”
“네. 선생님.”
딸칵!
준후는 소독 간호사가 건넨 클립으로 뇌동맥류를 집었다. 클립이 뇌동맥류의 목 부분을 고정했다.
처치는 순조로운 듯 했으나.
준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딸칵!
준후는 4번 클립을 풀고 제거했다. 이에 소독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나요?”
“공간이 조금 떠요. 그 공간으로 혈액이 뇌동맥류로 흐르고 있어요. 혈류를 완전히 차단 못하면 클립 결찰술을 하는 의미가 없죠.”
“…….”
“2번하고 7번 클립 주세요.”
“클립 2개를 동시에 쓰시게요? 그럼 서로 꼬이면서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걸 해내는 게 제 일이죠.”
준후의 눈이 무지개 모양으로 웃었다.
호월십이수로 단련된 손놀림을 통해 준후는 야무진 솜씨를 선보였다.
2개의 클립 각도와 위치.
이를 수 없이 바꿔가며 뇌동맥류를 고정시킬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시험했다.
그럴 때마다 준후의 손목과 손가락이 마술사의 손처럼 현란하게 움직였다.
스태프들은 준후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양손이 화려한 춤을 추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자칫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뇌동맥류에 지나친 자극을 주면 뇌동맥류가 팍 하고 터져 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후의 손동작은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추는 춤 같았다.
‘괜찮아. 나라면 할 수 있어.’
스태프들의 걱정과 달리 준후의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거친 숱한 수술 경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무공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준비가 철저한 사람.
능력이 충분한 사람은 역경과 위기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을 빛낼 기회나 다름없었다.
딸칵!
딸칵!
준후는 2번 클립을 좌측에서 평행으로 삽입하고 7번 클립을 우측 대각선에서 삽입했다.
뇌동맥류에 혈류 테스트를 하자 혈류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머릿속 시한폭탄은 제거되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수술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레싱 카트가 흔들리고 그 위에 놓인 수술 도구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쨍그랑!
수술등 역시 불길하게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선생님. 갑자기 왜 이러죠?”
“말도 안 돼. 어떻게 병원 건물이 흔들리지?”
당황한 동료 스태프들이 답을 구하듯 준후를 쳐다보았다. 준후는 느닷없이 수술 마스크를 내리며 중얼거렸다.
“다들 고생했어요.”
* * *
준후가 눈을 떴다.
수술방에 있던 준후는 순식간에 자신의 방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많이 좋아졌네.”
준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준후는 수술을 했지만 동시에 수술을 하지 않았다. 궤변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실이었다.
왜냐면…….
수술을 머릿속으로 집도했기 때문이다.
방금까지 준후는 시각을 관장하는 후두엽을 점혈법으로 자극해 상상 집도를 했다.
상상 집도는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어시스트에 들어가거나 직접 집도한 수술만 재현이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은 원하는 수술을 직접 창조해 낼 수 있었다.
방금 끝낸 수술도 마찬가지였다.
80대 이상 노령 환자에게는 뇌동맥류 수술을 해본 적이 없어서 케이스를 스스로 만들어봤다.
꽤 실감났다.
수술 중반부터는 이게 상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스태프들의 반응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 듯했다.
‘상상 집도도 사기 수준까지 올라왔네.’
준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상상 집도가 현실과 분간이 안 가는 수준까지 왔다는 것.
그게 무얼 의미할까.
바로 상상 집도가 현실 집도를 펼친 것과 똑같은 훈련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준후는 날개가 아니라 로켓을 달고 하늘을 날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첫째로 상상 집도를 통해 다양하고 희귀한 케이스를 직접 만들어 해당 수술의 경험치를 쌓을 수 있었다.
샴쌍둥이 수술을 예로 들어보자.
외과의 평생 한 번 ‘할까 말까’한 분리 수술을 준후는 수십 번 반복할 수 있었다.
환자가 수술 중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쏙 제거한 채.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상 집도는 현실 집도보다 시간 소모가 적었다.
수련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수술방을 구현하면 바로 수술이 시작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두개골 절제술을 생략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상상 집도는 실제 집도보다 2배 가까이 빨리 끝났다.
상상 집도는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었다.
‘그래도 허전하긴 하네.’
준후가 가만히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상상 집도에 단점은 없지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환자를 살린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회복한 환자와 보호자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준후를 이끄는 원동력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상상 집도는 팥 없는 단팥빵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준후가 침대를 벗어났다. 편한 옷차림 그대로 집을 나왔다.
오늘은 주말이었고.
부모님은 지인들과 약속이 있다고 아침 일찍 외출했다.
저녁에는 아영이와 만나기로 했는데 그전까지 자유 시간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준후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야산이었다.
야산은 의외로 낮지 않았으며 올레길로 연결된 곳이라 이리저리 걷는 맛이 있었다.
날씨가 쌀쌀한 탓일까.
산 오르는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시간 참 빨리도 흐르네.’
산길을 걸으면서 준후는 며칠 전 끝난 혹한기 훈련을 떠올렸다.
3박 4일의 훈련 일정은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다른 부대에서 저체온증으로 병사 한 명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지만 준후의 부대는 사망자나 부상자가 없었다.
준후의 부대에서도.
저체온증 환자가 3명 정도 나왔지만 ‘온열 내공법’으로 준후는 순식간에 환자들의 체온을 올려 버렸다.
저체온증 환자들은 금방 따뜻해졌다.
혹한기 훈련은 유격 훈련처럼 격하게 몸을 쓰는 훈련이 아니었다.
그래서 심각한 외상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군 병원에 후송하지 않고 대부분 준후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훈련하는 기간 내내.
준후는 병사들의 일정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지치거나 힘들어 보이는 병사를 발견하면 ‘내공 수액술’을 사용해 주었다.
내공 수액술을 받은 병사들은 날아다녔다.
“중대장님. 갑자기 힘이 펄펄 납니다!”
“이상하게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격려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중에는 병사들이 내공 수액술을 받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내공 수액술을 너무 공개적으로 사용했나?
더 퍼지면 의심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준후는 잠시 걱정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준후는 내공 수액술을 아끼지 않았다.
남김없이, 아낌없이 펼쳤다.
내공 수액술의 작동 방식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내공 수액술로 기력이 충만했기에 병사들은 부상을 잘 당하지 않았다.
그 점도 혹한기 훈련에 환자가 적었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훈련에 이어 복귀 행군도 별 탈이 없었다.
“우리 중대장이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훈련이 끝난 다음날 연대장이 준후를 따로 불러 준후에게 특급 칭찬을 퍼부었다.
포상휴가증도 3개나 챙겨주었다.
파브리병 진단을 받았던 성태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배꼽 주변에 있던 혈관 각화종도 서서히 사라졌다.
병을 초기에 진단한 덕분이었다.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요즘 준후는 군부대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요즘 골칫거리라면…….
단연 ‘시호’였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에선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사이코패스 살인마 말이다.
오늘 저녁에는 사소하게나마 시호와 관련된 일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뜻대로 잘 풀릴지는 의문이지만.
“아아아악!”
난데없이 터지는 굵은 비명에 준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명의 근원지는 저 멀리 산 중턱이었다.
파바바밧!
준후는 청풍보를 밟으며 냅다 달려 나갔다.
환자가 있는 곳에 우연치 않게 자신이 있는 건지.
자신이 환자를 만들어내는 건지.
이제는 진심으로 헷갈릴 지경이었다.
* * *
“치…… 칠삼아!”
놀란 강명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진이 일어난 그의 눈동자가 풀썩 쓰러진 친구와 친구 앞에서 위협적으로 꿈틀거리는 ‘그것’에 고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강명구는 막역지우인 서칠삼과 등산을 나왔다.
자식들 이야기, 정치 이야기, 야속하게 흘러 버린 세월에 대한 한탄 등등.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길옆에 있는 수풀에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칠삼의 발목을 덥석 물어버렸다.
쿵!
놀란 칠삼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럼에도 명구는 칠삼에게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칠삼을 습격한 표독한 뱀 한 마리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혀를 낼름낼름 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간사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명구는 얼어붙었던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바싹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일단 저 녀석을 쫓아내고 볼 일이었다.
그래야 치료를 하던가.
119를 부르던가 하지 않겠는가.
“어르신. 뱀을 자극하지 마세요.”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명구가 고개를 들렸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잘생긴 청년이 어느 틈에 근처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독사입니다. 잘못하면 어르신까지 물릴 수 있어요.”
“저…… 저놈이 독사라고?”
되묻는 명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저 뱀이 독사라면 칠삼은 독사에 물린 것이 아닌가.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졌다.
깜깜해졌다.
“그래도 저놈을 쫓아내지 않으면 친구 놈이 또 물릴지도 모르잖아.”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위험한데 자네라고 위험하지 않을 것 같나?”
“저는 괜찮습니다.”
청년이 명구를 지나쳐 반원을 그리며 독사 쪽으로 이동했다.
허리를 세우고 있던 독사의 몸도 청년 쪽으로 돌아갔다.
맨 몸으로 뱀에게 다가가는 청년의 모습이 위태롭고 무모해 보였다.
청년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걸까.
뱀이 독사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명구의 걱정과 잡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쎄에에엑!
뱀이 청년에게 접근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웬걸?
청년은 날렵한 발동작으로 뱀의 입질을 피하더니 한 손으로 뱀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청년의 손아귀에 잡힌 뱀은 꼼짝도 못했다.
고통스럽다는 듯 허리를 바둥거렸다.
잠시 후.
툭!
청년이 아무렇지 않게 뱀을 땅바닥에 버렸다.
뱀은 움직임이 없었다.
어이가 없게도 청년이 맨손으로 뱀을 가뿐하게 죽여 버린 것이다.
그저 손아귀 힘만으로…….
뭐야?
우리 동네에 뱀 사냥꾼이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