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1)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1화(451/540)
제88장 끝나지 않은 혹한(2)
‘하필이면…….’
준후는 미동 없는 뱀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뱀을 준후는 잘 알았다.
까치 살모사라고 하는 녀석으로 몸이 다른 뱀들에 비해 짧고 굵었으며 맹독을 보유하고 있었다.
무림에 독으로 유명한 사천 당가가 있다.
사천당가는 까치 살모사의 독을 추출해 독약을 만들기도 했다.
독은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과 동시에 출혈까지 일으켰다.
생각이 그쯤 미치자 찬물을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준후가 독에 물린, 엉덩방아를 찧은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입을 벌린 채 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어르신!”
“응? 어. 넘어지면서 허리를 살짝 삐끗한 것 같은데…….”
노인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자네, 아까 저 뱀이 독사라고 했나?”
“네. 독사 맞습니다.”
“이런 염병할! 재수도 없지. 하필이면 독사에 물려서…….”
“어르신, 진정하세요.”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느긋하게 산보나 하려고 나왔다가 죽을지도 모르게 생겼는데.”
노인이 울상을 지었다.
“흥분하면 독이 빨리 퍼집니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
“그리고 저는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산에서 당장 해드릴 건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를 해보겠습니다.”
“자네 의사였어? 하늘이 병도 주고 약도 주는군.”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감이 스쳤다.
“어쨌거나 괜히 역정을 내서 미안해. 독사에 물렸다니까 겁도 나고 화가 나서 그만…….”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다른 노인에게 119에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이 알겠다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사이 준후는 노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지춤을 걷어 올리자 앙상한 다리가 드러났다.
살모사에게 물린 부분은 불행하게도 허벅지 쪽이었다.
다리에서 가장 굵은 혈관인 대퇴 동맥이 지나가는 위치였다. 해당 부위에 살모사의 선명한 잇자국이 있었다.
잇자국 주변으로 새파란 멍도 들었다.
독이 퍼지는 것은 삽시간이리라.
칼에 허벅지를 찔려 과다출혈로 죽는 것도 다 대퇴 동맥에 손상을 받았기 때문이니까.
“으으으…… 갑자기 너무 추운데?”
노인이 두 팔로 본인의 몸을 감쌌다. 입술이 차츰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준후는 일단 걸치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었다.
찌이이익.
바람막이 소매 부분이 순수하게 완력만으로 찢겨나갔다.
놀라운 활약이었지만 중독된 노인은 그걸 알아볼 상태가 아니었다.
준후는 길게 찢어진 외투 소매로 독사가 문 자리 위쪽을 꽁꽁 동여맸다.
독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압박을 너무 강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에 괴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에.
‘결국 여기까지인가?’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신경외과 서전이라고 해도.
이곳은 산속이었다.
준후가 이 이상의 처치는 해줄 수 없었다.
독에 물린 환자는 외과가 아니라 내과의 영역이기도 했고.
“어르신. 119는 어떻게 됐나요?”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데? 하필이면 헬기가 다른 곳으로 출동했대. 3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안경 쓴 노인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큰일이네요.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그러게 말이야.”
“일단 환자분은 편하게 누우시죠.”
준후는 환자를 바닥에 눕혔다.
중독도 된 상태고 허리도 다쳤으니 억지로 앉아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준후는 환자의 허리를 한손으로 받혀가며 환자를 바닥에 천천히 눕혔다.
독사에 물린지 얼마 안 됐건만 환자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속이 안 좋은지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다.
낯빛은 하얗게 질려갔고.
팔다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나서야겠구먼.”
“무슨 말씀이세요?”
안경 노인의 말에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처를 입으로 빨아주면 독이 덜 퍼지지 않나? 내가 독을 빨아주겠다는 거지.”
“그거 도움 안 됩니다.”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다던데?”
안경 노인이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 입안에 상처만 없으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내가 이래 봐도 이 나이 먹는 동안 임플란트도 하나 안 했어. 어디 때운 곳도 없고 말이야.”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반대로 어르신 입에 있는 세균이 상처에 감염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준후가 딱 잘라 말했다.
독에 물렸을 때 상처에 남은 독을 입으로 빨아주면 상태가 호전된다는 민간요법이 있었다.
지금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그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안경 노인처럼 말이다.
무림에 있던 당시의 준후처럼 말이다.
“내 입에 있는 세균?”
“네. 침이나 입 안에도 당연히 세균이 있기 마련이죠. 상처에 입을 대는 순간 그것들이 환자의 상처로 옮겨가는 겁니다.”
“허…… 그런 생각은 못 했어.”
안경 노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 우린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노인의 말에 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택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환자를 들쳐 엎고 산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보법을 익힌 준후는 번개처럼 하산할 수 있었다.
일단 산을 내려가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구급차에 신세를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준후는 생각대로 쉽게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하필이면 환자가 허리를 다쳤다.
준후가 보법을 밟으며 최대한 충격을 흡수한다고 해도 허리에 전해지는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중독을 치료할 만한 병원이 이곳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데.
오늘 인근 공연장에 축제가 있어서 교통이 마비되었다.
물론 구급차라면 좀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헬기 이송 속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
빨리 출발하지만 교통 체증을 뚫어야 하는 구급차.
늦게 도착하지만 이송 시간이 빠른 헬기.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누군가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관자놀이가 쑤셔왔다.
“으으으으…….”
환자가 몸을 뒤척이며 신음 소리를 냈다.
상처 압박을 비교적 빨리 해냈음에도 환자의 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역시 대퇴동맥을 물린 게 컸다.
“힘내라고. 다음 주에 손주들이 놀러 오기로 했잖아. 여기서 이렇게 쓰러지면 되겠어?”
안경 노인이 환자에게 다가가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모습에 준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애초에 준후를 외과의사의 길로 이끈 것은 무기력감이었다.
곁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 준후를 의사의 길로 내몰지 않았던가.
그런데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려 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의사를 택한 의미가 없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일단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어.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드는 거야.
각오를 굳힌 준후의 눈동자가 빛났다.
“어르신. 잠깐 비켜보시겠어요?”
“응? 왜?”
“환자 분, 제가 치료해 보겠습니다.”
준후의 선언이 공터에 울려 퍼졌다.
* * *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프로펠러에서 만들어진 바람이 주변 나뭇가지와 수풀들을 뒤흔들었다.
야산 헬기 선착장에 헬기가 내려앉았다. 헬기 문이 열리고 두 명의 구급대원이 들것을 챙겨 착지했다.
“너무 많이 늦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필이면 출동 명령이 겹치는 바람에.”
“빨리 가보자고.”
구급대원들은 황급하게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야산에서 독사에 물린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은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구급차로 산을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헬기가 떠야 했는데 하필이면 헬기가 이미 다른 환자를 구출하기 위해 떠난 상태였다.
달려가는 두 사람은 환자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또 환자가 사실은 독사가 아니라 독 없는 뱀에 물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파른 고개를 서너 개쯤 넘었을 때였다.
한 청년이 대원들을 발견하고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저곳이 사건 현장인 듯 했다.
“하아…… 하아…… 하아…….”
“화…… 환자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구급대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게 하늘이 도왔는지 별 이상 없습니다.”
청년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근처에 있던 나무를 가리켰다.
나무 아래 노인이 누워 있었다.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이는 안경 쓴 노인이 누운 노인 곁에 있었다.
“이상이 없다니 무슨 뜻인가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적이랄까요? 환자가 저절로 나았습니다.”
“저절로 나았다고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어디 있습니까?”
“일단 가보시죠.”
구급대원들이 청년을 따라 나무 밑으로 이동했다.
“어르신, 독사에 물리셨다고 하셨죠?”
구급대원 철민이 환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청년의 말대로 환자는 멀쩡해보였다.
독사에 물렸다면.
물린 지 40분이나 됐다면.
혼수상태에 빠져서 생사가 위태로워야 정상일 텐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람?
“물리긴 물렸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독사에 물렸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아무렇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데 뭐 어떻게 하나?”
“상처부터 보겠습니다.”
철민이 한쪽 무릎을 꿇고 환자의 다리를 살폈다.
과연 허벅지 쪽에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5센티미터 위에 빨간 띠 자국도 남아 있었다.
근처에 천이 버려진 걸 보니 누군가가 상처 위를 압박했던 모양이었다.
직접 압박법은 사실상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법이었다.
상처와 압박 부위의 거리도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게 적합했다.
“직접 압박법은 누가 했습니까?”
“제가 했어요. 신경외과 의사거든요.”
“아…… 의사 선생님이 계셨군요.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런데 천은 왜 중간에 푸셨죠?”
“환자분 상태가 호전되어서 그랬습니다.”
“아까부터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는데 독사에 물린 상처가 어떻게 갑자기 호전됩니까? 야산에 해독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철민이 혀를 차며 물었다.
뭔가 상황이 우습게 돌아가고 있었다.
독사에게 물렸는데 자연 치료라도 됐다는 말인가.
그건 해가 서쪽에 떠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이제 감이 잡히네요.”
한참 고민하던 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분은 독사에 물린 게 아니군요. 독 없는 뱀에 물린 겁니다. 그렇죠? 선배님?”
철민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선임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런데 선임은 대답이 없었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저거 보이지?”
선임의 손가락이 환자와 조금 떨어진 수풀을 가리켰다. 그곳에 짧고 굵은 밧줄 같은 뱀이 뻗어 있었다.
미동이 없는 걸 보니 죽었다.
“네. 뱀이네요. 짜리몽땅한 게 독은 없어 보이는데요?”
“아니, 저거 까치 살모사야. 예전에 등산객 구출하다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럼 환자 분이 진짜 독사에 물렸다고요?”
“그래.”
그제서야 철민도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상식이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세상에 맙소사!
독사에 물리고도 환자가 멀쩡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구급대원들이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동안.
준후는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기적의 비밀은 준후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