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4)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4화(454/540)
제88장 끝나지 않은 혹한(5)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
……는 사실을 인호는 부정했다.
한국 수도 병원 의사가 돌팔이라서 헛소리를 지껄였다고 믿었다.
고작 동상에 걸렸다고 발가락을 자르라니…….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중대장님. 저 정말 발가락을 절단해야 합니까?”
진료실을 나와서 인호는 의무 중대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중대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한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당신도 똑같이 돌팔이네.
실력이 없으니까 가장 편한 길을 가려는 거잖아.
인호는 속으로 중대장을 원망했다.
중대장의 차를 타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
차 안은 고요했다.
중대장도 말이 없었고 인호도 말이 없었다. 침묵은 어느새 깨뜨리면 안 되는 금기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상황, 솔직히 실감이 안 날 거다.”
부대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운 중대장이 한 첫마디였다.
“아. 네.”
인호는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이미 중대장을 향한 신뢰도는 밑바닥을 찍은 상황이었다.
사실 중대장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걸 인호도 알았다.
동상에 걸린 건 인호였고.
너무 늦게 의무대를 찾은 것도 인호였고.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고 말한 건 엄밀히 말해서 수도 병원 피부과 의사였다.
하지만 인호는 삐뚤어진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면 이 불합리한 상황과 답답한 감정에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분노의 방향은 당장 곁에 있는 중대장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대로 된 치료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휴. 일단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이거부터 받으렴.”
중대장이 전투복 상의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인호가 크게 놀랐다.
눈이 번쩍 뜨였다.
중대장이 건넨 것이 무려 4박 5일 포상 휴가증이었던 것이다.
“이걸 왜 제게…….”
“수도 병원 진료, 별로 믿음이 안 가지?”
중대장이 정곡을 찔렀다.
인호는 괜히 가슴이 뜨끔했다.
“소대장님한테 이야기해서 바깥 병원 진료를 받아보렴. 그 편이 낫겠지?”
“가……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인호는 중대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설마 휴가증을 줘가며 병원을 가보라고 할 줄이야.
인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준후가 인호의 어깨에 양손을 척 얹었다.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단다. 노력하다 보면 또 길이 생길지도 모르지.”
준후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인호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소대에서 챙겨준 2박 3일 휴가증에 준후가 챙겨준 4박 5일 휴가증을 붙여서.
인호는 긴 휴가를 나왔다.
부모님이 미리 예약한, 동상 치료로 유명하다는 병원을 몇 군데 찾아가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대단하다는 병원들도 한국 수도 병원 의사와 똑같은 말을 했다.
발가락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발가락을 절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아직 여유는 있지만.
최소한 한 달 안에는 절단 수술을 해야 괴사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긴 휴가가 끝나고 부대에 복귀하는 날.
인호에게 절망이 엄습했다.
이젠 꼼짝없이 발가락을 잘라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세상에 완치되지 않는 불치병도 많은데 그깟 발가락 하나 절단하는 게 대수냐.
무심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호에게 발가락은 그냥 발가락이 아니었다.
인호는 전도유망한 탁구선수였다.
비록 상무단에 뽑히지는 못했지만 전국 체전에서 여러 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발가락이 없다면.
탁구 선수의 꿈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공을 제대로 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과 시간이 끝난 후.
인호는 엄지발가락을 쓰지 않고 탁구 코트 위를 움직여봤다. 확실히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스텝이 굼떴다.
털썩!
인호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좌절이 어깨를 강하게 짓눌러왔다. 그래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작 동상 따위로…….
선임들 눈치 보느라 진료가 늦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꿈이 박살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하늘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인호는 우울함에 집어 삼켜진 채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냈다.
그러다가 의무중대장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의무대로 향했다.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단다. 노력하다 보면 또 길이 생길지도 모르지.
인호는 문득 중대장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중대장이 치료법을 찾아낸 걸까.
그런 기대감이 아스팔트 사이에서 피어난 꽃처럼 고개를 들었다.
인호는 잘 움직이지 않은 엄지발가락을 끌고 의무대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어휴.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부담스럽습니다.”
의무중대장실, 준후 곁에 앉은 중년인이 손사래를 쳤다.
중년인의 이름은 문경래.
문경래는 의사가 아니라 한의사였다. 그의 발 옆에는 침구 세트가 담긴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인호의 동상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정말 절단 말고 답이 없는 걸까.
준후는 밤낮으로 씨름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비극이라고 인정하고 포기하면 편했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인호가 절망하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준후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호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은 준후의 트라우마인 무기력증을 자극했다.
아프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준후의 뿌리 깊은 상처를.
그래서 준후는 필사적으로 치료법을 찾아 헤맸다.
이런 저런 논문을 살피고 또 기사를 살피던 중.
준후는 우연히 한 기사를 찾아냈다.
어떤 한의사가 본래 절단해야 하는 발가락을 침술로 살려냈다는 기사였다.
“으음…….”
기사를 훑으며 준후는 가만히 턱을 쓸어 내렸다.
무림 출신이라서 기 치료와 한의학에 우호적인 준후였지만 그런데도 기사는 선뜻 신뢰하기 힘들었다.
기사에서 무언가 중요한 내용을 빠뜨렸거나.
어떤 요소를 뻥튀기 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절단이 필요할 정도면 해당 조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괴사했다는 뜻이었다.
그런 악조건을 과연 침술로 극복하는 게 가능할까.
기사를 의심하는 것과 별개로.
준후는 해당 치료를 했다는 한의사를 수소문했다.
물에 빠졌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기사를 낸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연락을 돌린 결과.
간신히 문경래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준후의 삼고초려 끝에 문경래가 부대를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침술로 어떻게 환자를 치료를 했냐는 거죠?”
문경래가 선수를 쳤다.
“하하하.”
준후는 멋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긴 지금 이 상황에서 궁금할 건 그것밖에 없긴 했다.
“솔직히 저도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
“어차피 발가락 절단 수술 스케줄이 잡혔잖아요? 그럼 제가 치료에 실패한다고 해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죠.”
“…….”
“부담 없이 치료했더니 결과가 좋았나 봅니다.”
문경래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똑. 똑. 똑.
마침 대화가 끝날 때쯤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하자 인호가 중대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며칠 못 본 사이.
인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볼이 쑥 꺼지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단결.”
“그래. 거기 앉아 볼래?”
준후가 의자를 권하고 인호가 의자에 앉았다.
“이쪽은 문경래 한의사 선생님이란다. 네가 특별히 부탁해서 널 봐달라고 했어.”
“안녕하십니까.”
“그래. 반갑다…… 고 하고 싶지만 반가운 상황은 아닌 것 같구나.”
문경래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발가락부터 보여주렴.”
“네.”
인호가 전투화와 양말을 벗었다.
까맣게 타 들어간 흉측한 엄지발가락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문경래는 인호의 발가락을 한참 보더니 침구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다양한 굵기와 길이를 한 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로 침술로 들어가시나요?”
“네. 그래야죠.”
“선생님이 보시기에 치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준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호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을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치료 가능성은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나 사람들이 치료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한의학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실제로 인호도 문경래의 치료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문경래가 허허허 웃었다.
이어지는 침술.
문경래는 각종 침을 인호의 발가락에 꽂았다.
대여섯 개 정도 꽂아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문경래는 무려 20개의 침을 꽂았다.
침을 놓는 부위와 침의 종류, 침의 깊이가 제각각이었다.
인호의 발가락은 어느새 고슴도치처럼 되어버렸다.
“쓰으으읍!”
몇몇 부위에 침을 놓을 때.
인호가 고통스러운지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하지만 문경래는 오로지 침술에만 집중했다.
눈빛은 진지했으며 손에 떨림이 없었다.
침술이 진행되는 동안.
준후도 가만히 넋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무림인의 천성이랄까.
어떤 침이 어느 혈맥을 파고들며 그 깊이는 어떻게 되는지를 유심히 분석했다.
‘확실히 한의사는 다르긴 하네.’
준후는 속으로 감탄했다.
문경래는 준후가 알지 못하는 혈자리에도 침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30분 쯤 지났을까.
침술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느낌은 좀 어떠니?”
문경래가 인호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발가락이 따뜻해진다는 느낌은 없고?”
“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문경래가 뭐가 못마땅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 선생님. 단둘이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정민아. 인호 부축해서 입원실로 데려다 줘.”
“네. 중대장님.”
정민이 인호를 데리고 가면서 중대장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치료가 잘 될지 모르겠네요.”
“이유가 뭔가요?”
준후가 놀라서 물었다.
적어도 겉보기에 문경래는 치료에 확신이 있었고 침술에도 도가 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약한 소리를 하는 걸까.
“첫째로 제가 저번에 치료한 동상 환자보다 이 환자의 상태가 훨씬 심각합니다.”
“…….”
“그리고 둘째로 환자가 꾸준히 치료를 못 받을까 걱정이에요.”
문경래의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동상 치료는 한방 병원에 입원에서 한 달 넘게 꾸준히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인호는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 달 넘게 휴가를 써서 바깥에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경래가 매일 부대에 방문해서 침술을 놓아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른 바 꾸준한 관리 문제였다.
“서 선생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 번째 문제라면 선생님이나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네요. 치료가 제대로 될지, 안 될지는 하늘에 달린 거니까요.”
“이해해 주시는군요. 이거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걸요?”
문경래가 흡족하게 웃었다.
그는 준후가 자신에게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뉴스 기사를 보고 먼저 연락을 해왔겠는가.
하지만 문경래는 신의(新醫)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던 중.
운도 따라주어서 환자를 완치할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놀란 문경래가 바보처럼 되물었다.
“사실 두 번째가 제일 큰 문제 아닙니까? 환자가 꾸준히 치료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요?”
“인호만 잘 설득하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는 거죠?”
답답한 나머지 문경래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준후가 말하는 요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선생님이 부대를 오갈 수 없으니 제가 직접 침을 놓겠다는 소리입니다.”
준후가 빙긋 웃었다.
“방금 선생님이 놓은 침술, 완벽하게 암기해 두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