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5)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5화(455/540)
제89장 최종결전(1)
“…….”
문경래는 할 말을 잃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해줄 말도 없었다.
침술은 결코 만만한 치료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대충 쑤셔 넣으면 되는 것 같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혈자리를 파악하고.
혈자리에 맞는 침을 고르고.
침을 정확한 깊이까지 삽입해야 했다.
누가 뭐래도 침술은 한의학의 꽃이었다. 그런데 그걸 고작 한 번 보고 따라 한다고?
이는 준후가 침술을 능욕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
생각이 그쯤 미치자 문경래의 뱃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환자를 봐달라고 사정해서 왔더니 돌아오는 게 침술에 대한 멸시뿐이라…….
뉴스 기사를 통해 접한 준후는 정의롭고 출중한 솜씨의 NS 서전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다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던 모양이었다.
“서 선생님. 장난이 심하네요.”
“안 믿기시리라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시겠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망발을 했습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니까요.”
준후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저 콧대를 눌러주지 않고서는 마음 편히 복귀할 수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본인 발가락에 직접 침을 놔봐요.”
“네. 해보겠습니다.”
준후가 흔쾌히 허락했다.
준후는 중대장실에 놓인 침대에 앉아서 무릎을 ‘∧’ 모양으로 굽혔다.
문경래는 준후의 옆에 침구 세트를 놔주었다.
준후가 중간 길이의 침을 들었다.
호침(毫鍼)이었다.
호침은 한의사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침이었다.
길이는 4.2cm에서 4.8cm.
원기둥 형태에 침 끝이 둥근 게 특징이었다.
푸우우욱!
호침이 준후의 태충혈을 찔렀다.
태충혈은 엄지발톱에서 2cm 위에 위치한 혈자리였다.
침 좋고.
침 자리 좋고.
침이 혈을 파고 들어가는 깊이도 좋았다.
‘완전히 헛소리를 한 건 아니었나 보군. 옆에서 멍 때리지 않고 꼼꼼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건가.’
문경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준후를 100퍼센트 인정하지는 않았다.
암기력이 좋다면 침놓는 자리 몇 개야 충분히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상 환자를 치료하는데 문경래가 사용한 침은 무려 20개였다.
그걸 한 번 보고 다 외운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경래의 낯빛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준후는 침을 고를 때만 잠깐 고생할 뿐. 침을 찌를 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손놀림이 전광석화였다.
침술에 탄력이 붙은 후에는 오히려 문경래보다 빠르게 침을 놓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랄까.
준후의 발가락에 꽂히는 침이 늘어나면서 준후의 발가락이 마치 새끼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침술을 마친 준후가 문경래를 바라보았다.
“…….”
“선생님. 대답을 해주시죠.”
“어…… 이거 한의사로서 자괴감이 드네요.”
문경래가 허탈하게 웃었다.
문경래의 시선은 여전히 준후의 발가락에 머물러 있었다.
침술은 완벽했다.
자신이 한 침술을 준후가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것처럼 똑같았다.
만약 다른 한의사가 두 사람의 침술을 구분하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하리라.
“선생님은 암기 천재인가요?”
“하하하. 뭐, 암기를 잘하는 편이긴 하죠.”
멋쩍게 웃는 준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무인(武人)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타인의 무공을 견식하는 경우.
대련이 끝나고 복기하는 경우.
이를 세세하게 복기해서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준후는 무려 2다경(차를 두 번 마실 수 있는 시간, 대략 30분)동안 진행되는 초식을 암기한 적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침술을 암기하는 일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와 볼까요?”
준후가 침을 순식간에 빼고 말을 계속했다.
“사실 의사인 제가 침을 놓는 건 의료법 위반입니다.”
“그렇죠. 당연한 일이에요.”
문경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환자의 여생이 달린 일이니까요.”
“으음……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입 다물고 있겠어요. 침술이 어설펐으면 무조건 반대했겠지만 똑같이 따라 하는데 별수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환자도 설득해야 하지 않아요? 내 허락을 받아도 환자가 거절하면 말짱 도루묵일 텐데요?”
문경래가 걱정을 드러냈다.
문경래의 느낌으로 환자는 침술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침술을 한의사인 자신이 아니라 준후가 펼친다면 반감은 더더욱 커질 것이다.
“치료에 성공하면 별 탈 없겠지만 치료에 실패하면 반드시 말이 나올 겁니다.”
“…….”
“서 선생님의 친절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사람은 원래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마련이니까요.”
“인호는 제게 맡겨주세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인데요?”
준후가 대답했고 문경래는 허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 계략이라는 게 모래사장에 모래성처럼 위태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문경래는 더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엄밀히 말해서 문경래는 이번 치료에서 제3자였다.
“선생님.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물어보세요.”
“동상 치료는 제가 방금 외운 침술 하나만 사용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요. 상태가 호전될 때마다 침을 하나씩 제거해 주면 됩니다. 부항을 뜨면 좋지만 군부대에서 하긴 힘들 테고. 온수 족욕을 자주 시켜주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치료 중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때마침 환자가 찾아와서 문경래는 준후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중대장실을 나왔다.
쨍쨍한 햇살 아래.
군 막사 건물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보여준 능력도 그렇고, 환자를 향한 진심도 그렇고.
준후는 요즘 보기 드문 진국 서전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준후는 출근하자마자 중대장실로 인호를 불러냈다.
“단결.”
인호가 힘없이 경례를 붙이고 준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인호는 어제와 달리 활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의무대에 정식으로 입원했기 때문이다.
“발가락 좀 볼까?”
“네. 중대장님.”
“발 들 필요 없으니까 가만히 있어.”
준후의 눈이 인호의 발가락을 꼼꼼하게 살폈다.
어제 퇴근 전에 침을 뺐기에 발가락에 침은 꽂혀 있지 않았다.
침술 치료 첫날이라서 그럴까.
엄지발가락이 딱히 호전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발가락은 여전히 새까만 숯덩이었다.
“저녁에 온수 족욕은 했어?”
“네. 했습니다.”
대답하는 인호의 목소리에 영혼이 없었다.
“그런데 중대장님.”
“왜?”
“저를 위해서 노력해 주신다는 건 너무 감사합니다만…… 이런 치료가 정말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인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차라리 빨리 절단 수술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침술 치료를 받다가 괴사 부위가 넓어져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인호의 말에 깊은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그랬다.
인호는 이미 본인의 발가락을 포기한 눈치였다.
생기를 잃은 모습에 준후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피부과 의사도 한 달 정도는 경과를 지켜봐도 괜찮다고 했어. 그러니까 딱 한 달만 더 고생해 보자.”
“알겠습니다.”
“그래. 우리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포기하기에는 아직 일러.”
준후가 인호를 다독였다.
책상 위에 놓인 바트(의료용품을 담는 철제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바트 안에 침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제 의무병들을 시켜 소독시켜놓은 침이었다.
“오늘은 한의사 선생님 안 오십니까?”
“그분도 스케줄이 있어서 매일 방문하실 수는 없어. 앞으로 침은 내가 놓을 거란다.”
“선생님은 한의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인호의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드디어 침술 치료의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 것이다.
인호를 설득하지 않으면 침술 치료는 불가능했다.
“인호 네가 없을 때 한의사 선생님한테 인정을 받았단다. 내가 침을 놓아도 된다고.”
“그래도 그건 좀…….”
인호가 몸을 뒤로 빼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인호는 의사도 잘 모르고 한의사도 잘 몰랐다.
하지만 의사가 함부로 침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야. 인호 네가 한방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니?”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한단다.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하겠지. 하지만 날 믿어야 해. 지금은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어.”
준후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난 널 치료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게 아니야. 난 그저 네가 건강한 발가락을 되찾길 바랄 뿐이지.”
“…….”
“솔직히 말해서 인호 네가, 발가락을 절단하든 말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잖아?”
준후의 말에 인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준후는 그저 인호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4박 5일 휴가증을 줘가면서 바깥 병원 진료를 받게 해주거나 한의사 선생님을 데려와 침술을 시도해 보거나 등등.
준후는 오로지 인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잘릴 발가락이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겠지.
인호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럼…… 선생님이 해주시는 침술 받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가 침을 놓는다는 건 비밀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네. 중대장님.”
인호가 손을 입에 대고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준후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의무병들은 눈치채지 않겠습니까?”
“의무병들한테도 내가 잘 이야기 해놨으니까 그건 걱정 마.”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침술에 앞서 준후는 가볍게 목을 좌우로 꺾었다.
문경래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치료한 동상 환자보다 인호의 상태가 더 안 좋다고.
침술을 펼친다고 해서 치료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하지만 준후 생각은 달랐다.
준후는 인호의 발가락이 회복될 거라고 100퍼센트 자신했다.
근거가 있냐고?
당연히 있었다!
준후는 문경래의 침술을 재현하면서 자신의 발가락에 직접 침을 놓았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침술이 혈자리를 자극하면서 뜨거운 열이 발생하는 것을.
이는 무림에서 치유열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치유열은 상처와 장기나 조직이 재생되면서 발생하는 열이었다.
다만 문경래의 말도 완전히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침술로 발생한 치유열은 인호의 발가락 회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탈수증 환자에게 물 한 모금 먹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준후가 누구인가.
무림 출신의 외과의사 아닌가.
오직 준후만이 인호의 발가락을 재생시킬 수 있었다.
파바바밧!
침술 시작 전에 준후는 인호의 발가락 혈을 몇 군데 짚었다. 침을 찌를 때 아파하던 것이 떠올라서였다.
“시작한다.”
“네. 중대장님.”
푸우우욱!
침술의 시작은 발가락 끝에 위치한 족태음비경이었다.
첫 번째 운침을 마치기 무섭게 준후의 손이 신들린 듯 움직였다.
수십 개의 침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발가락을 파고들었다.
순서는 근육 신경 혈맥 순이었다.
침은 주로 호침과 원침을 사용했다.
‘우리 중대장님. 미쳤네. 한의사 선생님보다 침을 더 잘 놓는 것 같은데?’
준후의 침술을 지켜보며 인호는 경악했다.
침술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적어도 겉보기에 준후의 침술은 완벽해 보였다.
어제와 달리 발가락이 아프지도 않았다.
“자. 침술은 끝났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봐.”
준후는 인호의 엄지발가락 아래에 자신의 왼손 검지를 갖다 대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검지에서 인호의 엄지발가락으로 흘러들었다.
“중대장님. 갑자기 발이 엄청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인호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게 바로 준후가 바라던 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