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6)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6화(456/540)
제89장 최종결전(2)
“하아아암…….”
양진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점심 식사 후 진료를 봐서 그럴까. 졸리고 나른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선생님. 다음에 그 환자입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던 레지던트가 한마디 했다. 외래 진료를 볼 때 차트 입력을 하거나 가벼운 처치를 돕는 레지던트였다.
“그 환자가 어디 한두 명이야?”
“저번에 진료 봤던 동상 환자 있지 않습니까?”
“아…… 그 환자?”
양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새까맣게 타버린 것처럼 보였던 환자의 발가락이 떠올랐다.
진료 당시.
양진수는 환자에게 절단 수술을 권했다.
환자는 야속하다고 느낀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어떤 병원에서 그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 테니까.
“그동안 진료를 안 받은 걸 보면 바깥 병원을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그랬겠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돌아왔겠지.”
“생각하면 불쌍하긴 하네요. 그 어린 나이에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니.”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나도 그 방법을 택했어.”
똑. 똑. 똑.
때마침 들리는 노크 소리.
들어오라고 말하자 환자와 준후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착각인지 몰라도 환자의 발걸음이 자연스러워보였다.
저번에 왔을 땐 발을 살짝 절었던 것 같은데…….
양진수는 환자와 준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이 인사를 받고 의자에 앉았다.
“인호야. 너도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다시 왔지?”
양진수가 타이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기 싸움하지 말고 편하게 가자꾸나. 발가락 절단 수술, 최대한 빨리 해야 해.”
“…….”
“처음 진료를 받고서 무려 한 달이 지났어. 이젠 다른 부위로 괴사가 퍼질지도 몰라.”
“선생님. 절단 수술 이야기는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준후가 불쑥 대화에 껴들었다.
“우리 서 선생님은 또 왜 그러실까요? 저번에 이야기 잘하고 갔던 것 같은데.”
“상황이 달라졌거든요.”
“달라질 게 있습니까?”
양진수가 코웃음을 쳤다.
엄지발가락의 남은 부위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절단 수술밖에 없었다.
아…….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환자의 발가락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적이 깃드는 것 정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기적이란 일어날 수 없었다.
현대 사회의 기적은 사기의 다른 말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이상한 민간요법을 받겠다고 하실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겠어요.”
“으음…… 그럼 뭐가 달라졌다는 겁니까?”
“인호야. 선생님께 발가락을 보여드려.”
“네. 중대장님.”
환자가 전투화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양진수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지난 한 달간 발가락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니?”
“말도 안 돼!”
양진수가 놀라고 레지던트는 경악했다.
상상을 초월한, 진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근 한 달 만에 환자의 발가락은 새 발가락이 되어버렸다. 피부 표면을 뒤덮고 있던 숯덩이 같던 각질층이 완전히 벗겨졌다.
발가락 피부는 매끈했으며 혈색이 좋은 선홍빛이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완벽히 정상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고작 한 달 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양진수는 차마 말도 못 꺼냈다.
“발가락 움직여 봐.”
“네.”
준후의 지시에 인호가 발가락을 움직였다. 위아래로 꼼지락거리는 폼이 꼭 인사를 하는 듯했다.
“외견상으로만 멀쩡한 게 아니라 기능도 정상이군요.”
“네. 그래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 겁니다.”
준후가 씽긋 웃었다.
“대체 발가락은 어떻게 치료한 겁니까? 이전에 선생님도 동의하셨잖아요. 절단 수술밖에 답이 없다고요.”
양진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한의학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침술이 결정적이었죠.”
“침술이요?”
한의학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양진수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한의학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냐.
……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옥신각신했다.
누군가는 효과가 분명히 있으며 그 혜택을 봤다고 주장하는 반면, 누군가는 한의학은 그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양진수의 의견은 후자였다.
한의학은 과학이나 계산과는 거리가 멀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의학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양진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환자의 발가락을 구한 게 침술이라니…….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일단 결과가 눈앞에 있으니까 뭐라고 반박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잘 믿기지 않는군요.”
“이해합니다. 저도 이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완치를 확신한 건 아닌가 봅니다?”
양진수가 정곡을 찔렀다.
치료에 자신이 있었으면 굳이 병원에 찾아올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역시 선생님 눈은 못 속이겠네요. 맞습니다. 검사를 다시 한번 받고 싶어서요. 그래야 완치가 됐다고 마음을 놓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검사 오더 내리죠. 이따가 뵙겠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준후와 환자가 진료실을 떠났다.
양진수를 턱을 쓸어내리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과연 검사 결과까지 정상일까.
인호가 신경 쓰여서 좀처럼 다음 환자들에게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 * *
“녀석, 고생 많았다.”
준후가 인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방금 막 두 번째 외래 진료를 보고 진료실을 나오는 중이었다.
발가락 CT와 엑스레이, 피 검사. 초음파 검사 등등.
다양한 검사를 한 결과 인호의 발가락은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절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밖에 없었는데 상황이 급반전한 것이다.
“고생이야 중대장이 다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인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호의 발가락이 무사한 데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준후 덕분이었다.
한국 도수 병원을 비롯해서 유명한 바깥 사제 병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발가락의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준후만은 인호를 포기하지 않았다.
인호의 발가락을 지키기 위해 늘 필사적이었다.
한의사를 연결해 준 것도 모자라.
한방 병원에 입원할 처지가 안 되자 직접 침을 놔주기도 했다.
사실 한의사가 아닌 준후가 직접 침을 놓는 사실이 무섭긴 했지만 의외로 준후는 침을 잘 놨다.
단순히 착각이 아닌 게…….
실제로 침술 덕분에 인호의 발가락이 완치되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참 신기했다.
일주일 차까지만 해도 침술에 효과는 전혀 없었다.
발가락이 따뜻하다는 느낌만 들 뿐 상태가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경이로운 변화는 2주차부터 시작되었다.
발가락을 감싸고 있던 새까만 각질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발가락에 감각이 돌아왔다.
새살이 돋을 때 나는 특유의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4주차에 접어들었을 때.
인호의 발가락은 거의 정상이 되었다. 평상시처럼 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게 다 준후 덕분이었다.
준후는 생명의 은인, 아니, 발가락의 은인이었다.
준후가 선물해 준 발가락 때문에 인호는 탁구 선수의 꿈을 접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 어디 뉴스에 제보하면 어떻겠습니까?”
“너 회복된 걸?”
“네. 그러면 중대장님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중대장님은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인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준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딱 이 정도밖에 없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그러면 오히려 내가 곤란해져.”
“왜입니까?”
“난 의사야. 원칙적으로 침을 놓으면 안 돼. 냉정하게 말하면 인호 너에게 침술을 펼친 건 불법이야.”
“아…….”
인호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깜빡하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답답한 것 같습니다. 엄청 대단한 일을 하셨는데 그걸 아무도 몰라야 한다니.”
인호는 괜히 자신이 억울해졌다.
“괜찮아. 네가 알아준 걸로 충분하단다.”
“중대장님…….”
준후의 대인배 다운 면모에 인호는 감동했다.
세상에 준후 같은 의사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아직 부대 복귀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부대원하고 시간 보내렴.”
“네. 중대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탁구 대회에서 우승하면 꼭 중대장님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기대하마.”
인호가 고개를 숙이고 준후와 멀어졌다.
오늘 인호는 준후와 단둘이 수도 병원에 온 것이 아니었다.
정기 외진 차에 온 것이었다.
그래서 편하게 다른 부대원들과 쉴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었다.
준후는 수도 병원 로비를 거닐다가 빈자리에 앉았다.
전투복 상의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서 선생님. 그 동상 환자는 어떻게 됐어요?
“문 선생님 덕분에 잘 치료했습니다. 피부과에서 검사받았는데 아무 문제없답니다.”
준후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통화 상대는 한의사 문경래였다.
-근래 들은 소식 중에 가장 반가운 소식이군요. 저도 참 걱정이 많았습니다.
문경래가 뜸을 들이며 말을 계속했다.
-솔직히 전 치료에 실패할 줄 알았습니다. 환자 상태가 워낙 심각했어야죠.
문경래의 말에 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술에 의존했다면 치료는 실패했을 것이다.
혈맥을 자극해서 발생시키는 치유열에 한계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준후는 묘수를 더했다.
침술을 펼치고 난 직후.
인호의 발가락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이전과 달리 독특했다.
원래라면…….
발가락에 내공을 불어넣었을 때 내공이 발가락을 순환하다가 전신으로 퍼져야 마땅했다.
혈액이 순환하듯.
내공도 순환하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치료 효과가 일시적이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준후는 인호의 발가락에 단전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내공의 흐름을 만들었다.
한 번 흐름이 생기면 내공은 그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지속적으로 발가락을 치유하는 효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침술로 발생하는 치유열.
거기에 내공 본연이 가진 회복력.
이 두 가지가 더해졌기에 인호의 발가락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오늘의 기적은 불가능했다.
“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조만간 찾아뵐게요.”
문경래와 통화를 마친 후.
준후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병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침술로 인호의 발가락을 되살린 후 생각이 많아졌다.
무림 출신인데도 한의학을 너무 무시했나 싶었던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침술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침술 공부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준후가 워낙 혈자리에 능통하고.
손지컬도 뛰어나니까.
다만 어려운 것은…….
침술을 합법적으로 놓기 위해서 한의대 공부를 하고 한의사 면허증을 따야 한다는 점이 될 것이다.
골치 아프네.
서전 생활을 하면서 한의대를 다닐 여유는 없을 텐데.
준후는 의사·한의사 복수 면허에 대해 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서 그럴까.
복수 면허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뇌사 및 식물인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숨겨진 열쇠가 침술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들었다.
준후가 괴로워하는 가운데.
지이이잉.
때마침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일 오후 2시. 신촌역 스토리 카페.]알 수 없는 번호로 짧은 문자가 왔다. 문자를 확인하는 준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준후는 일정을 암기하고서 문자를 당장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