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7)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7화(457/540)
제89장 최종결전(3)
날씨가 예전만큼 쌀쌀하지는 않았다. 바람결에 어렴풋이 온화함이 깃들 때가 있었다.
한동안 거리를 점령했던 롱패딩의 폭정도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외투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환한 햇살을 맞으며 준후는 신촌 거리를 걷고 있었다.
주말이라서 거리에 생동감이 넘쳤다.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전부 젊은이(?) 천지였다.
서 있는 사람이건 걷는 사람이건 다들 떠들고 웃고 있었다.
가게 매장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나는 최신 댄스곡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준후는 천천히 10분 정도 걸었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약속 장소인 스토리 카페가 있었다.
멀리도 잡았군.
그만큼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다고 봐야하나?
딸랑!
벨소리를 앞세우며 준후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는 테이블이 5개 정도 놓인 소형 카페였다. 커피를 볶고 있는지 고소한 커피향이 후각을 사로잡았다.
가게 규모가 작아서 주변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준후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이 있었다. 남성은 곰을 연상케 할 만큼 덩치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나이는 40대쯤으로 보였다.
겨울인데도 착용하고 있는 커다란 선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준후는 남성의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몰랐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준후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사내도 인사를 건넸다.
“음료부터 고르시죠. 긴 이야기를 할 텐데.”
“저는 따뜻한 라떼 먹죠.”
“저도 같은 걸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후가 커피를 사겠다고 했지만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계산대로 이동했다.
사내는 계산을 ‘현금’으로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젊으시군요.”
“나이는 좀 있습니다. 동안이라서 그렇지.”
“하긴 요즘은 오히려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보다 어려 보이더군요. 저만 빼고 말이죠.”
사내의 말이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다만 이쪽 일의 전문가여서 그런지 준후의 신상을 깊게 파고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잡담이 끝난 후 찾아온 침묵.
위이이잉.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다.
준후가 일어나서 양손에 커피를 챙긴 후 테이블로 돌아왔다.
‘제대로 알아낸 걸까?’
현재 준후는 정확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사내는 사실…….
어렵게 찾아낸 흥신소 직원이었고 오늘은 의뢰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준후는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내도 준후를 따라 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사내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사내의 눈빛을 읽는 게 불가능했다.
“일단 의뢰하신 분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의사인 데다가 사이코패스라서 환자들을 몰래몰래 죽이고 다닌 악질이더군요.”
준후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정보는 찾아내셨나요?”
“고생 꽤나 했지만 찾았습니다.”
사내의 대답에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다.
준후는 흥신소 직원에게 시호의 연락처와 사는 곳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시호가 언제 아영이나 부모님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댈지 모르는 상황.
그렇다면…….
선수필승이 최고의 전략 아닐까.
적이 이쪽을 공격하기 전에 내가 적을 공격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흥신소의 이미지가 안 좋아서 의뢰를 망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원래 이런 제안까지는 잘 안 드립니다만…….”
사내가 준후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혹시 ‘그 녀석’을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저희 쪽에 추가 의뢰를 넣으셔도 좋습니다.”
“어떻게라면 그걸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네. 그겁니다.”
준후와 사내가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금액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해드릴 겁니다.”
“원래 안 하는 제안을 하는 의도는 뭔가요?”
준후가 질문을 던지고 커피를 한 모금을 마셨다. 사내의 목소리에서 묘한 감정을 읽어냈던 것이다.
“이 녀석. 신상을 털면서…….”
사내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 녀석을 미워하게 됐습니다. 죽어 마땅한 녀석이더군요. 의사란 놈이 어떻게 그렇게 환자들을 농락하면서 죽일 수 있었는지.”
사내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그 감정은 분노였다.
“괜히 의뢰인분 손에 피를 묻힐 필요 없습니다. 어설프게 작업을 했다간 오히려 낭패를 볼지도 모르고요.”
이제 사내는 준후의 살인을 기정사실로 말하고 있었다.
준후가 추정하건대 사내는 준후를 시호에게 목숨을 잃은 환자의 보호자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준후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 없는 착각이랄까.
“어떠세요? 저희에게 추가 의뢰를 맡기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일은 제 손으로 매듭지어야 해요.”
“쉽지 않을 텐데요?”
“원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 않습니까?”
준후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내는 한참 턱을 쓸어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래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사내가 서류 봉투를 내밀었고 준후는 가방에서 현금이 담긴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서로 원하던 물건이 교차되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별 인사가 끝나자 사내는 미련 없이 카페를 떠났다.
준후는 자리를 지키고 앉은 채 테이블에 내려놓은 갈색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바로 이 봉투 안에…….
시호의 개인 정보가 담겨 있다.
준후는 봉투 상단부를 젖혀서 안에 인쇄된 내용물을 훑었다.
인쇄물을 훑는 눈이 가늘어졌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건만 시호의 거주지가 인천이었다.
그 의미인즉슨.
따로 일정을 빼지 않고 오늘 당장 시호의 집에 쳐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준후는 서류 봉투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준후의 인사에 카페 직원이 덤덤하게 인사를 받았다.
평범한 일처럼 보였지만 이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준후의 외모는 어디서나 주목받았다.
특히 여성에게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준후를 카페 직원은 돌부처 보듯이 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통유리로 만들어진 카페 출입구에 해답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준후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던 것이다.
코는 낮아지고 눈은 작아지고.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 있었다.
무림에서 역용술이라고 불리는, 얼굴의 골격을 바꿔서 외모를 바꾸는 무공을 썼기 때문이다.
시호와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아무래도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준후는 200만 뉴튜브 채널의 주인이자 명망 높은 신경외과 서전이었다.
용모를 바꾸지 않는다면.
준후를 알아보는 사람 때문에 곤혹을 치를 확률이 극히 높았다.
카페를 떠난 후.
준후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시호와의 악연을 되짚고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하느라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 * *
진갑산 중턱.
두 명의 사내가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한 명은 피부가 비단결처럼 고운 청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턱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중년인이었다.
두 사람의 손에는 길고 묵직한 산탄총이 들려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산탄총의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서 대형견이 걷고 있었다.
대형견은 피부가 새까맸는데 사냥에 특화된 품종 하운드였다. 녀석은 연신 주변을 살피며 코를 킁킁 거렸다.
“이거 어째 오늘은 허탕 칠 팔자인데?”
중년인 중석이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징크스 같은 건데 말이야. 무릎이 쑤시는 날은 꼭 사냥감이 없더라고.”
“선생님도 참.”
청년이 해맑게 웃었다.
“생긴 건 곱상한 집 도련님 같이 생겼는데 왜 이런 거친 일을 시작했어?”
중석이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중석은 엽사(사냥꾼) 생활만 20년째였다.
그런데 곁에 있는 신입 엽사만큼 엽사라는 직업에 이질적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끝이 없는데요. 그냥 세상살이에 지쳤다고 할까요?”
“…….”
“산속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 뭐시기야. 자연인 같이 살고 싶다는 거야?”
“그런 셈이죠.”
청년의 대답이 짧았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청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예의 바르고 싹싹했지만 본인을 제대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왈! 왈! 왈! 왈!”
앞서 걷던 사냥개가 산이 떠내려가라 짖어대기 시작했다.
사냥감을 찾은 모양이었다.
다만 중석은 별 기대감이 없었다. 잡아봐야 토끼 정도를 사냥하지 않을까 싶었다.
파바바밧!
사냥개가 비탈길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고 중석은 느긋하게 뒤를 쫓았다.
그런데 웬걸?
뜻밖에 대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냥개가 발견한 것은 토끼나 다람쥐 따위가 아니라 멧돼지였던 것이다.
그것도 새끼가 아니라 성체였다.
송곳니가 튀어나온 걸 보면 수컷이었다.
사냥개가 짖어대는 게 짜증났을까.
멧돼지가 사냥개에게 달려들었다.
사냥개가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돌진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멧돼지가 중석 쪽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빌어먹을!”
중석이 서둘러 산탄총을 장전해서 멧돼지에게 겨눴다.
탕!
격발음이 공터를 뒤흔들었다.
총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급하게 발사한 탓일까 조준이 빗나가고 말았다. 분사되는 납탄 중 일부만 멧돼지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멧돼지는 여전히 사납게 이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던 게 패착이었다.
멧돼지에게 치이기 직전.
중석은 옆으로 몸을 굴렀다. 가까스로 교통사고를 면했다. 정면으로 충돌했으면 아마 그 충격이 말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송곳니에 복부를 찔렸다고 하면…….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보게. 조심해!”
다음 탄환을 장전하며 중석은 청년에게 소리쳤다.
멧돼지가 청년을 노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신입이라서 당황할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야생 동물과의 정면 승부는 처음일 텐데도 청년은 경이로운 활약을 선보였다.
탕!
산탄총이 멧돼지의 다리를 노렸다.
저런…….
긴장해서 총구가 내려갔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다리에 총을 맞고서 멧돼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멧돼지는 가죽이 워낙 두꺼워서 산탄총을 쏜다고 해서 한 번에 죽지 않았다.
그래서 멧돼지를 제대로 사격하고도 멧돼지에게 치여 죽는 엽사들이 간혹 있었다.
그런데 청년은 그 점을 이미 간파하고 멧돼지의 다리를 쏴버렸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다리를 봉쇄함으로써 엽사에게 위험이 될 만한 요소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탕! 탕!
총구가 잇달아 불을 뿜었다.
수십 개의 납탄이 멧돼지의 머리를 꿰뚫었다.
멧돼지는 꾸에에엑 하고 멱따는 소리를 내고 또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축 늘어져 버렸다.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 되었다.
“이야. 자네 대단하구만. 신입 같지 않은데?”
중석이 청년에게 다가가 청년의 등을 팡팡 두들겨주었다.
“감사합니다.”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제가 예전부터 사냥 하나는 일품이었거든요. 인간까지도.”
“응? 방금 뭐라고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시호가 시치미를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