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59)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9화(459/540)
제89장 최종결전(5)
그 흉측한 물건은 ‘뾱뾱이’라고 불리는 포장재로 감싸져 있었다.
하지만 불투명한 포장재 너머로도 그 물건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넌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뾱뾱이’를 제거한 준후의 표정이 짐승처럼 사나워졌다.
시호가 아영에게 보낸 물건은 살점 같은 것이었다.
관찰한 결과.
사람 살점은 아니었다.
살점이 너무 두꺼웠으며 겉에 짧고 억센 털이 무수하게 나 있었다. 아마도 짐승의 배 부분을 잘라낸 듯 했다.
무림에서 수없이 끔찍한 장면을 봤기에.
준후는 살점을 덤덤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안 아영은 어땠을까.
혼자서 이 택배를 처음 열어봤을 때 얼마나 큰 충격과 공포에 빠졌을까.
준후는 아영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동시에 시호에게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단언컨대.
근 몇 년 내에 이렇게 참기 힘든 분노와 증오를 표출한 건 처음이었다.
“준후야. 괜찮아?”
등 뒤에서 겁먹은 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대답해 주었다.
“일단 이 끔찍한 것부터 치워야겠다. 아영이 넌 거기 가만히 있어.”
“응.”
준후는 싱크대로 이동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챙겨서 화장실로 돌아갔다. 짐승 살점을 쓰레기봉투에 넣는 것으로 수습은 마무리되었다.
“택배 보낸 사람, 시호 선배 맞지?”
“맞아.”
“준후 네 말이 맞았구나. 그냥 우리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어.”
오한을 느꼈는지 아영이 본인의 팔을 끌어안았다.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시호와 통화를 나눴지만 준후는 그 사실을 아영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영이 더 불안할까 봐.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영을 더 위로해야 할까.
준비한 다음 스텝으로 바로 넘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준후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영을 위로하는 일은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위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었다.
정말 아영을 위한다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시호를 처리해야 했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아영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대략 2-3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경찰서에 가게?”
“아니, 경찰은 우리 문제를 해결 못해. 이 택배를 시호가 보냈다는 증거도 없고.”
“박스에 지문 같은 게 묻어 있지 않을까?”
“지문은 묻었을 수도 있지만 시호 지문은 없을 거야. 레지던트 때도 얼마나 치밀하게 살인을 했던 놈인데.”
준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누구한테도 문 열어주지 마. 그리고…….”
“그리고?”
“내가 외출하고 복귀하면 아영이 넌 앞으로 누구한테 위협받을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위험한 행동하려는 거 아니야? 혹시 네가 다치면?”
“이 세상에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너도 알잖아. 내가 무림 출신이라는 거.”
준후가 웃으며 아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겸사겸사 아영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영의 손바닥을 점혈했다.
돌처럼 굳었던 아영의 표정이 다소나마 풀렸다.
“외출은 해도 되는데 조심해.”
“알았어.”
준후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챙겨 오피스텔 바깥으로 나왔다.
야외 수거장에 봉투를 버리고 손을 탁탁 털었다.
이 택배를 통해 시호는 준후에게 일종의 경고장을 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집 주소를 알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해코지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끝까지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준후나 아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과연 악마다운 선택이었다.
하긴 내가 흥신소를 통해 시호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으면 시호 놈도 똑같이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얼핏 생각했을 때.
준후의 처지는 시호보다 불리해 보였다.
준후는 시호의 진짜 거주지를 모르고 시호는 아영과 준후 본가의 거주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준후는 상황을 뒤집을 열쇠를 알고 있었다.
팟! 팟! 팟!
역용술로 외모를 바꾼 준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까 봐두었던 검은 승용차 앞에 서서 차 문을 노크하듯 두들겼다.
똑. 똑. 똑.
응답이 없었다.
똑. 똑. 똑.
계속해서 두드리자 차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낀 중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씨바, 너 뭔데?”
문답무용.
준후는 차 안쪽으로 손을 넣은 후 중년인의 옷 뒷덜미를 금나수로 낚아챘다.
순수하게 완력으로 사내를 차량 바깥으로 끌어냈다.
쿵!
사내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의 흰지가 우지끈 부러졌다. 중년인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인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준후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어지간히 당황한 눈치였다. 준후는 차문을 열고 사내까지 바깥으로 끌어냈다.
사내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준후의 손아귀는 집요하고 강력했다.
쿵!
준후에게 제압당한 사내 둘이 지렁이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준후는 주변에 사람과 CCTV, 주차된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팔짱을 끼었다.
널브러진 사내들을 차갑게 응시했다.
이들은 분명 시호의 끄나풀일 것이다.
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시호에게 보고 하는 임무를 맡았을 것이다.
택배를 받아 본 아영이 오피스텔을 떠나 다른 곳으로 잠적한다고 하면 쫓아가서 위치를 알아둬야 할 테니까 말이다.
지극히 시호다운 판단이었지만.
이는 반대로 준후에게 반격의 실마리를 내주는 행동이기도 했다.
“조용한 곳에서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이 새끼가 이 지랄을 떨어놓고 맘 편하게 노가리나 까자고? 너 돌았냐?”
“넌 오늘 뒈졌어.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쳐 맞듯이 맞아보자.”
두 중년인이 동시에 준후에게 덤벼들었다.
준후는 그저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다.
* * *
그날 저녁, 인근 야산.
어둠이 내려앉은 산은 적막하다 못해 음산했다. 산바람 소리가 귀곡성처럼 으스스하게 들렸다.
아직 날씨가 추운 탓일까.
산에 마련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하…… 씨. 무슨 일이 이렇게 꼬이냐?”
윤성이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갑자기 자신과 성철을 습격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어쩔 수 없이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습격자는 격투기 선수처럼 움직임이 잽싸고 단단했다.
윤성과 성철이 쌩 쇼를 해도 상대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었다. 싸움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빠아아악!
빠아아악!
두 사람은 사이좋게 상대의 주먹에 안면을 얻어맞았다.
주르르륵 흘러내리는 쌍코피를 확인한 순간.
항복의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사내가 따라오라는 대로 야산까지 끌려가는 중이었다.
“지금이 기회다. 저 새끼, 존나 방심하고 있잖아.”
성철이 윤성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등 뒤가 훤하다 훤해. 내가 먼저 칠 테니까 저 새끼 쓰러지면 네가 밟아.”
“야,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지 마. 화만 돋우었다가 폭발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여간 쫄보 새끼.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잘 봐라.”
윤성이 씨익 웃더니 살금살금 청년에게 다가갔다. 양손을 단단하게 깍지 낀 후 이를 망치처럼 청년의 뒤통수를 향해 내리쳤다.
진짜 통할까?
그럴 리 없었다.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뒷발차기로 성철의 복부를 걷어찼다.
성철이 홈런성 타구처럼 쭉쭉 뻗어나가 땅에 떨어졌다.
“아흐흐흑!”
성철이 허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너희들이나 그 녀석이나 학습을 못 하는 건 똑같네.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청년이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뒤는 돌아보지 않은 상태였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걸까.
하여간 성철을 따르지 않은 게 신의 한 수라고 여긴 윤성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세 사람이 야산에 마련된 놀이터에 자리를 잡았다.
성철과 윤성은 나란히 그네에 앉았다.
청년은 팔짱을 낀 채 서슬 퍼런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형님은 대체 누구십니까?”
“그건 알 바 아니고. 너희들 시호가 부린 용역 업체 직원들이지?”
“시호는 대체 누구입니까?”
윤성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곁에 있던 성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가 봤을 때…….
두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여간 시호는 나쁜 쪽으로 짱구를 쓰는 데 일인자였다.
그래서일까.
만약 시호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면.
성격이 온순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그랬다면 시호는 준후의 절친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희들에게 감시를 맡긴 사람의 이름이다.”
“아. 그렇습니까? 저희한테는 자기 이름이 준오라고 했거든요.”
윤성이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휴대폰 통화 목록에 ‘준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아까 준후가 통화한 시호의 전화번호와 일치했다.
확실한 단서를 잡은 것이다.
“너희들 나랑 일 좀 같이 해야겠다.”
“그게 무슨 일입니까?”
“아주 재밌고 보수도 짭짭한 일. 들어보면 후회 안 할 거다.”
준후가 차갑게 웃었다.
* * *
시호는 모처럼 경찰서를 방문했다.
총기 불출 신고서를 작성하고 총기함에서 산탄총을 꺼내 어깨에 멨다.
묵직한 무게감이 좋았다.
“어디 사냥 가시나 봐요?”
“네. 멧돼지 잡으러 갑니다. 신입 엽사라 불러주는 곳이 별로 없는데 마침 괜찮은 건수가 생겨서요.”
“조심해서 사냥하시고 사냥 끝나면 꼭 총기 반납하세요.”
“네. 물론입니다.”
시호는 경관에게 씽긋 웃어 보이고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차 앞에 잠시 세워두었던 차량에 올라탔다.
운전하는 내내 콧노래가 그치지 않았다.
콧노래는 이윽고 휘파람으로 바뀌었다.
파란 하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햇살도 완벽했다.
반쯤 열어둔 차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훑어주었다.
세수라도 시켜주듯.
자동차가 신호에 걸렸을 때.
시호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상품명 도서, 위탁 장소 문 앞. 운송장 번호: 15471xx, 대현 통운]당연하게도 시호는 택배가 도착해서 기쁜 것이 아니었다.
이 문자는 은밀한 신호였다.
‘그 녀석’들이 아영을 납치해서 아지트에 숨겨놓았다는 뜻이었다.
저녁쯤이면 준후의 부모님도 다른 아지트에 배송될 것이다.
그 즉시 시호의 아름다운 계획은 실행될 것이다.
준후에게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을 살릴 것인지, 아영을 살릴 것인지 물어보기만 하면 됐다.
시호는 상상만으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자신이 준후에게 받은 고통을 돌려줄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던가.
구치소에서는 막연한 희망사항이었던 것이 이제 현실로 이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호가 차를 30분쯤 몰아 도착한 곳은 인천 외곽의 폐가 지역이었다.
재개발을 한다고 떠들썩했던 곳인데 계획이 어그러졌는지 흉물스러운 동네가 되어버렸다.
집들마다 외벽에 지저분한, 빨간 락카칠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람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흔한 길고양이조차 보이지 않는 삭막한 곳이었다.
시호에게는 축복의 장소가.
준후에게는 저주의 장소가 될 곳이었다.
폐가를 훑으며 걷던 중.
시호는 락카로 별 표시가 된 집을 향해 들어섰다.
집 외벽이 허물어져 있어서 출입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아영이 뭐 하…….”
심술궂게 중얼거리던 시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끔찍한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이는 아영이 아니었다.
바로 준후였다.
“왜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군.”
준후의 목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