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65)
무공 쓰는 외과 의사-465화(465/540)
제91장 신경외과 과장(1)
“응급 환자를 진료하고 싶어서입니다.”
“응급 환자라면 다른 대학병원에도 넘쳐날 텐데?”
병원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준후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준후의 설명은 궁핍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대학 병원 응급실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24시간 내내.
환자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대학병원이라고 해도 권역 외상 센터로 지정된 곳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으음……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게 자네한테 큰 의미가 있나?”
“의미가 있습니다.”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메이유에서 부스트 업 프로그램 수련을 받았는데 배운 걸 안 써먹으면 아쉬우니까요.”
“메이유에서 외상 외과 교육도 받았다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준후의 고개가 힘차게 위 아래로 움직였다.
뇌혈관 파트.
뇌종양 파트.
경추·요추 파트.
정위신경 파트.
수부외과(절단 수술).
외상외과 파트.
소아 신경외과 파트.
메이유에서 준후는 무려 7개의 세부 전공을 마스터하고 돌아왔다.
배운 모든 지식을 써먹기에 부산 신원대는 적합한 장소였다.
하지만 사실…….
준후의 대답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준후가 부산을 찾은 진짜 이유.
그것은 표성덕을 박살 내기 위해서였다.
표성덕은 본인 실적에 목을 매고 주변 의료진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인간이었다.
표성덕이 병원장이라면…….
부산 신원대가 어떻게 운용될지 예상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당신 레지던트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승진을 미끼 삼아 교수들 싸움이나 붙이고 말이야.
경력이 쌓이고.
경험이 쌓였기 때문일까.
이제 준후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병원 내의 적폐 세력을 하나하나 쳐부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첫 단추가 부산이자 표성덕이었다.
“신경외과 관리만으로도 벅찰 텐데 외상 수술도 가능하겠어?”
“가능합니다. 저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군.”
“이 정도 자신감이 없었으면 부산에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준후의 말에 병원장이 피식 웃었다. 다리를 꼰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 백 년 먹은 구렁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병원장님도 용케 저를 부르셨네요? 저를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준후가 반격하는 질문을 던졌다.
준후도 병원장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맞아. 난 자네가 싫어. 자네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정의롭고 고결한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법이거든.”
“그럼 저를 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실력이 좋으니까. 병원에 간판 서전이 있으면 이미지 메이킹도 쉽고.”
“…….”
“주아대 병원 이종국 교수처럼.”
역시 병원장이 준후를 호출한 이유는 순수하지 않았다.
이종국 교수 헌신적인 진료와 사고방식으로 오히려 주아대 병원이 유명해지지 않았던가.
병원장은 비슷한 효과를 원하고 있었다.
“그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닙니까?”
“이유는?”
“이종국 교수 때문에 주아대가 유명해진 건 맞지만 그 유명세는 악명이었죠.”
외상 센터와 이종국 교수를 배척하면서 주아대 병원은 대중으로부터 개 욕을 처먹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고.
병원이 이렇게 돈미새(돈에 미친 새끼)인 줄은 몰랐다고.
“서 과장.”
병원장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준후가 익히 경험한 그 미소.
한 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준후는 순간 속이 메스꺼워졌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병원장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제 이종국 교수는 현장을 떠났고 주아대는 여전히 남아 있지. 주아대에 대한 악명도 사람들은 벌써 다 잊었어.”
“…….”
“그럼 승자가 누구지?”
“…….”
준후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장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은 결국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서 과장은 이종국 교수와 다른 길을 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어. 자네는 정의롭지만 적당히 굽힐 줄도 아는 사람이니까. 자네의 활약 기대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대화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준후는 병원장실을 나온 후에도 병원장실 문을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눈빛에 살기가 등등했다.
그래. 어디 실컷 까불어 봐.
머지않아 당신 콧대를 찍어 눌러줄 테니까.
바보 같은 사람.
당신은 저승사자를 집에 들인 거야.
준후의 각오가 뜨거웠다.
* * *
병원장실.
준후가 떠난 후 병원장은 신원 그룹 재단의 이사와 곧바로 미팅을 가졌다.
준후가 앉았던 자리에 재단의 부 이사 한정현이 앉아 있었다.
한정현은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40대 여성이었다.
“요즘 부쩍 일 처리가 터프하시네요.”
정현이 빈정거리며 안경테를 매만졌다.
“재단에 보고도 없이 과장급을 멋대로 교체하시고. 병원장님 본인의 입지는 확실 이해하고 있는 거 맞죠?”
정현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말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었다.
그 얘기에 병원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표정이 드러난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부 이사님. 보고 체계를 일일이 따질 여유가 없었어요. 워낙 좋은 매물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서준후 과장 말하는 거죠?”
“네.”
“뭐 확실히 실력은 있어 보이지만…….”
정현이 말끝을 흐렸다.
“보이지만?”
“부산에 어울리는 인재는 절대 아니에요. 본원에서 근무했으면 모를까.”
“서울하고 부산하고 무슨 차이가 있어요? 서울에서 잘 드는 칼은 부산에서도 잘 드는 법입니다.”
병원장이 은근히 정현의 논리를 꼬집었다.
“서울하고 부산의 차이. 정말 모르세요?”
정현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속사포로 쏟아지는 말들에 뼈가 있었다.
서울 본원과 달리 부산 신원대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부산 제원대 병원에서 환자를 다 빼앗기고 있다.
서비스 평가도 늘 꼴찌다 등등.
고양이가 쥐를 잡듯.
정현이 병원장을 휘어잡고 있었다. 덕분에 응접실의 온도가 2도는 내려갔다.
“병원장님을 섭외한 것도 부산에 발전을 위해서인데 그동안 별 성과가 없네요.”
“2년 안에 해결될 문제였으면 병원이 지금 이 꼴이 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좀 더 느긋하게 지켜봐주시죠.”
“윗선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정현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여우같은 것.
실권은 자기가 다 쥐고 있으면서 오리발은…….
병원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부산 신원대 병원을 경영하는데 가장 큰 입김을 가진 사람이 바로 한정현이었다.
그런데 윗선을 운운하니 어처구니없을 수밖에.
“본론으로 돌아와서 서준후 과장 말이에요.”
“네. 부 이사님.”
“부산에서는 6개월 정도만 근무시키고 서울로 올려 보내세요.”
“안 됩니다. 제가 스카우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요!”
놀란 병원장이 펄쩍 뛰었다.
찬물을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 과장이 부산에 있으면 부산의 적자 폭이 더 커질 거예요. 내과 계열이었으면 모를까 가뜩이나 돈도 안 되는 외과 계열인데.”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닙니까?”
“보고도 없이 서 과장을 데려온 건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고요?”
정현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하긴 그 바쁜 인간이 직접 찾아왔을 때부터 무언가 불안한 일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을 하긴 했다.
이제 어쩐다?
준후가 없으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데…….
긴 고민 끝에 병원장은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이쯤 되면 이판사판 아닌가.
정현의 마음을 돌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부 이사님. 그럼 6개월 말고 딱 1년만 주십시오.”
“6개월을 더 준다고 바뀔 게 있나요?”
예상대로 정현의 반응은 쌀쌀맞았다. 얼굴과 표정과 말투에서 냉기가 폴폴 흘러나왔다.
“서 과장하고 1년 안에 병원 재정을 확 바꿔보겠습니다. 1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면 저도 옷 벗고 나가죠.”
“진심이세요?”
얼음 마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 병원장이 본인 자리를 걸고 베팅할 줄은 몰랐으리라.
“제가 아는 병원장님답지 않은데요?”
“그럼 저를 잘 모르셨나 보군요. 어쨌거나 저도 제 직위를 걸었으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실 수 있겠죠?”
“으음…… 좋습니다. 대신 본인이 한 말은 확실하게 책임지세요.”
“감히 누구 앞이라고 딴소리를 하겠습니까?”
정현이 떠난 후 병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 앞에 서서 병원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1년 후.
이 풍경이 자신의 발밑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서준후를 쪽쪽 빨아먹으면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야. 난 절대 물러나지 않아.”
병원장이 음흉하게 웃었다.
* * *
병원장실을 떠난 후.
준후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경외과 외래 진료실이었다.
오전 10시.
한창 병원이 붐빌 시각이라 진료 대기실에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앉아 있었다.
외래 진료 중인 교수는 총 6명.
다들 신원대학교 의대 출신 성골들이었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네.’
신경외과 외래를 훑는 준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부산이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주변 대학 병원에 인지도가 밀려서 그런지 환자 수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서울 본원에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대기석은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대기 환자를 보여주는 전광판에도 빈자리가 보였다.
병원 건물은 최신식인데 환자 수가 이렇게 적으면 운영 적자 폭이 클 듯싶었다.
병원 재정 문제는 의사인 준후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직장인이 실적에 연연하듯 의사도 실적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준후는 현재 신경외과 과장이었다.
신경외과의 수익률은 앞으로 준후의 발목을 두고두고 붙잡을 확률이 높았다.
‘병원장이 나한테 기대하는 부분도 바로 그런 부분이겠지. 스타 서전의 파급력 같은 거.’
병원장의 속물 근성을 꼭 까기만 할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병원도 이익을 봐야 굴러갈 테니까.
중요한 건 병원 수익률을 충분히 내면서 환자에게도 만족할 만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벌컥!
준후는 빈 외래 진료실로 들어갔다.
앞으로 준후가 진료를 볼 장소였다.
책상에는 이미 ‘신경외과 과장 서준후’라고 적힌 명패가 놓여 있었다.
청소를 한 번 했는지 내부도 깔끔했다. 먼지 한 톨 없었다.
준후는 곧바로 휴대폰을 손에 들고 SNS 라이브 방송을 실시했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방송에 접속해 주었다.
“다들 반갑습니다. 군 복무를 하느라 SNS를 못 했는데 이렇게 많이 찾아와주시고. 저는 부산에 내려와서 새롭게 의사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진료실 한 번 구경시켜드릴게요.”
-와! 깔끔하고 좋네요.
-저도 부산에 사는데 부산에 오신 거 환영합니다. 이제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겠네요.
-외래 진료는 언제부터 보세요? 저희 아버님이 요즘 두통이 심하다고 하세요 ㅠㅠ
한 눈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채팅이 와르르 쏟아졌다.
하지만 무림인답게 준후는 안공(눈을 사용하는 무공)을 통해 채팅을 일일이 읽었다.
답변이 필요한 채팅이나 괜찮은 화제가 있으면 직접 읽고 대답을 해주었다.
라이브 방송은 30분 정도 진행되었고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방금 찍은 영상은 뉴튜브에도 업로드할 예정이었다.
전역하면서 겸업 규정도 사라졌으니 뉴튜브도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준후의 목표는 명확했다.
1) 병원 수익률을 올리면서 환자에게 최상의 의료 서비스 제공하기.
2) 신경외과 의국 휘어잡기.
3) 뉴튜브와 SNS로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이 세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킨다면 혼자서도 부산 신원대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맛집이 생기면 주변 상권이 덩달아 활성화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한때 박종원 열풍을 일으켰던 골막 상권이라는 프로그램처럼.
신경외과가 조명받기 시작하면 그 후광은 자연스럽게 다른 과에도 퍼질 것이다.
내가 다 바꾼다.
내겐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
할 일을 마친 준후가 외래 진료실을 빠져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의외로 ‘원무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