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67)
무공 쓰는 외과 의사-467화(467/540)
제91장 신경외과 과장(3)
‘앙숙 정도가 아니려나…… 최소 원수쯤은 되겠지?’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김한상과의 갈등이 예상되는 이유는 단순했다.
김한상의 입장에서 보면 준후가 김한상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한상은 전임 신경외과 과장을 제외하면 부산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다.
그래서 순서상으로로 보나 직업윤리(?)적으로 보나.
차기 과장은 김한상이 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어떤가.
신경외과 과장을 차지한 이는 준후가 되었다.
그것도 해석에 따라서는 병원장 라인에 낙하산을 탄 채로 말이다.
준후가 김한상이라고 해도 자신이 싫을 듯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인식은 바꾸면 된다.
능력은 증명하면 된다.
……라고 준후는 믿었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기 전 준후가 의사 가운 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수첩을 펼치고 메모를 준비했다.
사각사각 무언가를 미리 적어두었다.
곧 수술이 시작되었다.
김한상이 집도하는 환자는 뇌종양 환자였다.
발병 장소는 후두엽(뒤통수엽).
종양의 형태는 악성으로 분류되는 선상세포종.
수술 난이도는 중상이었다.
준후는 집중한 채로 김한상의 수술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수술 부위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수술 속도는 어떤지.
손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등.
중간에 인상 깊은 부분이 있으면 수첩에 내용을 적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준후가 볼일을 마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이 자리에 누군가 있었다면.
준후의 의도를 알았다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과장님. 수술 참관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벌써 일어나세요? 종양 절제술은 아직 멀었는데요?
그 질문에 준후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이미 볼 건 다 봤다고.
준후는 무림 출신으로 무려 조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
경지가 이쯤 되면 상대의 무공을 몇 수만 봐도 상대의 경지와 솜씨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집도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준후는 김한상의 실력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
김한상은 이번 수술에 성공할 것이다.
그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네. 실력 없이 나이만 먹었으면 상대하기 곤란 했을…….’
속으로 혼잣말을 하던 준후가 미간을 찡그렸다. 참관용 수술방으로 향했던 몸을 다시 수술방 모니터로 돌렸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상영되고 있었다.
김한상이 잠깐 수술을 중단시켰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인턴을 호출했다.
인턴이 후다닥 김한상 곁으로 다가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준후가 휴대폰을 들었다.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퍽!
김한상이 느닷없이 인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인턴은 얼굴만 찡그릴 뿐 저항을 못 했다. 잘 익은 벼도 아니거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준후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분노의 떨림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스태프들의 인격이 존중되고 있었지만 아직 한계는 명확했다.
직급 높은 사람이 직급 낮은 사람을 폭행하는 악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김한상은 허공에 몇 번 삿대질을 하고서야 지랄 발광을 멈췄다.
인턴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술이 재개되었다.
준후는 김한상을 분석한 수첩 페이지에 문장을 2개 추가했다.
이 새끼는 구제 불능.
반드시 손본다.
* * *
김한상의 폭행을 보고 난 후.
준후는 잠시 고민했다.
수술방에 남아서 김한상의 수술을 더 봐야 하나.
어디까지 악한 놈인지 좀 더 확인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 다른 수술방으로 향했다.
일단 김한상의 성향을 파악한 것으로 만족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김한상이 갑자기 착해질 리는 없었다.
그동안 쌓은 사악한 업보.
앞으로도 쌓아갈 사악한 업보는 언제든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더 많은 교수들의 집도 솜씨를 파악하고.
의국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 둘 필요가 있었다.
지이이잉.
수술방 문이 열리고 준후가 다음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의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상대도 준후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눈이처럼 큰 눈이 눈 밖으로 데구르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서…… 서 과장님?”
“반가워요. 예나 씨.”
준후가 먼저 상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대가 황송하다는 듯 두 손으로 준후의 손을 잡았다.
선객(先客)의 이름은 신예나.
의사 가운 가슴 부위에 신경외과 ‘신예나’라는 오버로크가 쳐져 있었다.
“날 금방 알아보네요?”
“신경외과 전공인데 선생님 이름과 얼굴을 모르면 간첩이죠. 부산에 오신다는 이야기는 진작 들었습니다.”
“뭘, 그 정도까지.”
“저 과장님 SNS도 자주 들어가고 뉴튜브 영상도 잘 챙겨봤어요. 과장님 팬이에요.”
준후는 쑥스럽게 웃고 말았다.
“혹시 예나 씨는 직급이 어떻게 되죠?”
“펠로우입니다. 2년 차예요.”
“둘이 있을 때는 말 편하게 해도 되겠죠?”
“네. 물론입니다!”
예나의 대답이 씩씩했다.
준후는 예나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예나와의 대화가 꽤 신기했던 준후였다.
신경외과 서전은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외과 수술 자체가 고된 육체노동이고 육체노동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잘 버티는 경향이 있었다.
준후는 예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일단 신경외과 전공을 왜 선택했는지 물었다.
예나는 대답했다.
예전에 준후와 인연이 있었다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신원대 서울 본원에 입원했는데 당시 준후는 레지던트였고 예나 아버지의 당직의였다고.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요. 선생님이 자주 병실에 찾아와서 아버지께 친절하게 대하시는 걸 보고 나도 저렇게 다정하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예나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준후도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준후도 예나와 다를 바 없었다.
스승 박재현 때문에 신경외과 서전이 되지 않았던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받으면 그 사람을 동경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외상의학과 이종국 교수가 환자를 진심으로 진료하면서 일부 레지던트가 외상의학과 전공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스승 박재현이 ‘스타 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의미를 찾지 못한 의사는 돈을 쫓지만 의미를 찾은 의사는 의미를 쫓는 법이었다.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수술 참관은 왜 하고 있는 거니?”
“교수님 수술을 배우고 싶어서요. 저도 요즘은 단독 수술을 하다 보니 막상 교수님들 수술을 견식할 기회가 많이 없더라고요.”
“열심히 하네. 예나, 넌 분명 성공할 거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아직 멀었는걸요.”
대화가 끝날 때쯤.
집도의가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집도의는 뇌혈관 파트 전공 최진구 조교수.
수술 환자는 30대의 뇌동정맥 기형 환자였다.
수술을 참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대화를 중단했다.
‘뭐 하시는 거지?’
예나는 준후 쪽으로 힐끔 고개를 돌렸다. 준후가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훔쳐보면 안 되는 건 알았지만 마음과 달리 눈은 벌써 수첩에 닿아 있었다.
수술 이해도 : B
수술 도구 사용: B
수술 속도: C
수술 정확도: B
스태프 관리: C.
…….
총 평가: B-
준후의 메모를 확인한 예나는 당황한 나머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최진구 교수가 누구인가.
부산 신원대 병원 뇌혈관 클리닉의 대부 아닌가.
최진구 교수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 환자는 최소 2개월의 대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서전이 고작 B- 평가를 받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준후의 평가 기준은 얼마나 높단 말인가.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준후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볼 일 끝났는데. 넌 어떻게 할래?”
“수술…… 아직 안 끝났는데요?”
“이만하면 실력 파악하는 데 지장 없어.”
준후의 대답이 자신만만했다.
수술을 시작한지 30분밖에 안 된 시점이라 예나는 당황스러웠다.
수술이 5시간짜리 영화라고 치면 그 영화를 고작 30분만 보고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다 파악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역시 메이유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걸까.
“난 먼저 간다. 고생해.”
예나가 넋이 나간 사이 준후가 먼저 참관용 수술방을 떠났다.
뒤늦게 영혼이 돌아온 예나가 준후를 향해 달려갔다.
“과장님. 저도 같이 가요!”
* * *
그날 오후.
준후는 예나와 병원 지하 1층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지이이잉.
테이블에 놓인 진동벨이 떨었다.
예나가 진동벨을 들고 계산대 쪽으로 이동했다.
그사이 준후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수첩을 꺼내 빠르게 훑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오늘 집도 스케줄이 있던 서전들의 수술을 전부 참관한 것이다.
총평을 하자면.
부산 신원대 교수들의 수술 솜씨는 괜찮은 편이었다.
메이유와 비교하기에는 턱도 없었지만 서울 본원과는 어느 정도 견주어 볼 만했다.
서울대 본원의 총점이 8점이라면 부산은 7점 정도는 되었다.
교수들의 실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
이는 앞으로 준후 행보에 달린 문제였다.
잠시 후 예나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준후는 주로 묻는 쪽이었고.
예나는 주로 대답하는 쪽이었다.
“제가 감히 과장님께 이런 말씀 드릴 처지는 아니지만…….”
예나가 문득 심각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무언가를 고백하려는 목소리였다.
준후는 허리를 펴며 자세를 잡았다.
“괜찮아. 편하게 말해봐.”
“앞으로 과장님이 고생하실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뭐야? 난 또 뭐 대단한 거라고.”
준후가 피식 웃었다.
“의국 교수님들 다 기가 센 분들이에요. 제아무리 과장님이라도 통제하기 힘드실 거예요.”
“실력이 있고 리더십까지 갖추면 결국 사람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
준후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 났다.
준후는 말고삐 쥐는 시늉을 했다.
“아무리 길어도 6개월 안에 다른 교수들은 고분고분해질 거란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럼…… 저는 과장님만 믿겠습니다.”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원무과장도 그렇고 예나도 그렇고 다들 준후 걱정을 못 해서 안달이었다.
하지만 다들 준후의 진면모를 몰라서 하는 걱정이었다.
오소리는 귀엽게 생겼지만 독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는다.
준후가 오소리였고.
의국 교사들은 뱀이었다.
상성의 우위는 분명 준후에게 있었다.
“잠시만요.”
예나가 양해를 구하며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연결했다.
준후는 예나의 목소리도 들었고.
스피커폰으로 변경한 것이 아닌데도 전화를 건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었다.
내공으로 청력을 증폭하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하…….”
통화를 끊자마자 예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응급 환자 들어왔지? 지금 수술 하러 가봐야 하고.”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쯤 되면 척하면 척이지.”
준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수술 스케줄이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슬슬 실력 발휘를 해볼까.
“수술실로 가자. 집도는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