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69)
무공 쓰는 외과 의사-469화(469/540)
제91장 신경외과 과장(5)
수술실이 위치한 3층.
난데없이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다. 환자와 보호자, 스태프들이 좌우 벽 쪽으로 물러서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몰랐다.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또 몰랐다.
자신과 같은 행동을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왜 따라하고 있는지를.
드르르륵!
갈라진 사람들 사이로 침상이 미친 듯이 질주했다.
한 남자가 봅슬레이를 밀듯이 침상을 밀며 달리고 있었다.
남자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가운이 펄럭거리고 앞머리가 펄럭거렸다.
침상이 복도를 통과할 때.
사람들은 강렬한 바람을 느꼈다.
“뭐…… 뭐야?”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너무 위험한데?”
“급한 일이 있나 보지.”
남자가 통과한 후에야 사람들은 잠에서 깬 것처럼 너도나도 한마디 했다.
그사이 수술실 앞까지 도착한 남자와 침상.
출입문에서 대기 중이던 스태프가 남자 대신 침상을 끌기 시작했다.
“와! 과장님,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하셨네요.”
“상황이 워낙 긴박해서요. ‘그것’도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네. 안 그래도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이야기해 뒀습니다.”
스태프가 떠난 후에도 준후는 수술실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몇 분이 지난 후에야 예나가 합류했다.
예나가 준후 옆에 섰다.
허리를 굽힌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와도 된다고 했잖아. 어차피 이송은 내가 한다고.”
“하아…… 과장님이 뛰시는데 하아……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하아…….”
“숨부터 돌려.”
준후가 예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수술 동의서를 받은 후, 준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환자를 수술실로 보내고 싶은 마음에 무공을 사용했다.
가장 먼저 사용한 무공은 전음이었다.
전음이란 내공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소리가 나지 않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일종의 텔레파시랄까.
단전에도 내공이 가득하고 심장에는 7서클의 마나 서클이 있었다.
준후는 부담 없이 전음을 발사했다.
-다들 벽 쪽으로 물러나!
3층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광범위 전음을 보냈던 것이다.
갑작스레 머릿속으로 들려온 외침에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갈라졌다.
준후는 그 틈으로 보법을 밟아가며, 침상을 밀어가며 돌진했다.
이것이 방금 일어난 사건의 진실이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송 시간을 단축하면서 5분 넘는 시간을 벌었다.
골든타임일지도 모르는 시간을 지켜낸 것이다.
“과장님은 못 하시는 게 없네요. 응급기록지를 보지도 않고 아이가 추락했던 걸 맞추고. 침상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끌고 가시고.”
“다 하다 보면 늘어.”
“정말인가요?”
어느새 숨이 차분해진 예나가 허리를 폈다. 준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다 이해하겠는데 무수혈 수술은 좀 아니지 않나요? 아이 상태도 워낙 심각해서 수혈이 꼭 필요할 텐데…….”
예나가 걱정하며 말했다.
수술을 펼치기도 전에 수술이 실패한 것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는 표정이었다.
“과장님. 부임하고 처음 하시는 수술이잖아요. 이번 수술이 잘못되면 여기저기서 말이 나올 겁니다.”
“평판 따위에 목매면 제대로 수술 못해.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을 하는 거지. 살릴 만한 환자만 골라서 수술 하는 게 아니잖아?”
준후가 꾸짖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무슨 종교를 믿든 아이는 죄가 없어.”
준후는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아이를 떠올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준후는 성스러운 영혼의 신도를 딱히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본인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권리가 있었다.
단, 조건이 존재하긴 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이라는.
이번 경우는 상황이 복잡했다.
부모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자녀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보호자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준후는 수술을 포기할까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참았다.
저 가엾은 아이는 부산 신원대 병원을 떠나면 받아줄 곳이 없었다.
소아 환자인 데다가 머리 상태는 끔찍할 정도로 처참하다.
심지어 무수혈 수술을 해달란다.
이런 환자를 과연 어느 병원에서 좋다고 받아주겠는가.
“저도 알지만 너무 화가 나요. 부모라고 해도 자식을 자기 멋대로 할 권리는 없는데 말이죠.”
“세상에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많아.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
준후는 시호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동의서 사인할 때 보호자 도끼 눈 뜬 거 보셨어요? 수술 중에 몰래 수혈하면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예나가 보호자를 성대모사 하더니 빠드득 이를 깨물었다.
“만약 수술에 성공해도 그 사람, 고마운 줄 모를 것 같아요. 다 신의 은총이라고 할 사람 같아요.”
“아마 그렇겠지. 슬슬 들어가자.”
“네. 과장님.”
준후와 예나가 나란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들이 전산 업무를 보는 근무실을 통과해서 계수대 앞에 섰다.
벅. 벅. 벅.
희석된 포비돈 용액을 솔에 문지르자 솔이 보글보글 주홍빛 거품을 토해냈다.
준후는 솔로 팔뚝, 손등, 손가락을 문질렀다.
오늘따라 유독.
솔에서 피부로 전해지는 감촉이 빳빳하고 거칠었다.
메이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런 케이스는 또 처음이었다.
소아 외상 응급환자에게 무수혈 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세상은 늘 사나우면서도 참혹한 상황으로 준후를 끌고 갔다.
하지만 준후 역시 늘 이를 버티고 이겨냈다. 그 과정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도 포기할 수 없어.
다시 한번.
내 손으로 기적을 일구어낸다.
방법은 반드시 존재해.
준후는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수술 가운과 수술모, 마스크, 루뻬(광학 안경), 수술 장갑 등을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차례대로 착용했다.
지이이잉.
4번 수술방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천장에서 하얀 소독액 연기가 쏟아져 내렸다.
비장한 얼굴로 준후는 수술방으로 들어섰다.
수술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수술대 양옆으로 소독 간호사와 레지던트가 대기 중이었다.
두 사람 좌우에 드레싱 카트가 각각 2대씩 붙어 있었다.
파란 커튼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취의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환자에게 인공호흡기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전신 마취도 끝난 모양이었다.
수술방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서늘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는 규칙적으로 기계음을 토해냈다.
집도의 자리에 서서 준후는 환자 감시 장치의 모니터를 살폈다.
예나도 준후 맞은편에 서서 준후를 따라했다.
“CPR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상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았네요. 혈압도, 맥박도, 체온도, 호흡도.”
“그러게.”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실에서 점혈법을 통해 사전에 출혈을 통제한 덕분이었지만 따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 이래서 무수혈 수술을 진행하겠다고 하셨군요.”
예나가 수술대 옆에 위치한 낯선 기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셀세이버 없으면 의학의 신이 와도 무수혈 수술은 못 해.”
“수술실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무수혈 수술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스태프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셀세이버에 고정되었다.
셀세이버.
직역하면 세포를 구하는 장치라는 뜻이다.
그 용도는 환자가 수술 중에 흘린 피를 여과해서 본인 피를 다시 수혈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였다.
“대체 혈장은 충분히 준비했니?”
준후가 레지던트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넉넉하게 7팩 정도 준비했습니다.”
“가능하면 그 안에서 끝내보자. 예나, 넌 셀세이버 잘 사용하고.”
“네. 과장님.”
“지금부터 두개골 분쇄골절, 뇌 지주막하 출혈, 뇌실질 내 출혈. 뇌부종과 뇌탈출증에 대한 무수혈 수술을 시작한다.”
준후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 * *
‘와! 과장님. 폼 미쳤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예나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기 바빴다.
마스크를 안 썼다면 바보 취급을 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국내 최초 메이유 병원 부스트업 프로그램 졸업자.
게다가 모든 과목을 수석으로 통과해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받은 서전.
준후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모든 처치가 정확하면서 신속했다.
정확하면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가 빠르면 정확함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두 가지 모순된 덕목을 준후는 싱거울 정도로 쉽게 해내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 사기꾼 느낌이었다.
예나가 봤을 때 준후의 처치가 탁월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준후가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양손잡이라고 해도 주로 사용하는 손과 보조하는 손이 있기 마련인데, 준후의 양손은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왼손과 오른손의 움직임이 판박이처럼 정교했다.
준후의 처치가 탁월한 두 번째 이유.
그것은 손목과 손가락의 움직임이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준후의 손을 보고 있으면 마치 로봇 수술의 로봇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정밀하면서도 자유로웠다.
예나도 전문의를 달기 전까지 날고 긴다는 교수들의 수술 어시스트를 많이 해봤거늘.
준후만큼 손을 유연하게 쓰는 서전은 없었다.
그 덕분일까.
오염을 막기 위해 환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삭두.
두피 절개.
두개골 절제술이 순식간에 격파되었다.
보통 1시간은 걸리는 과정이 고작 10분 만에 끝났다.
실로 압도적인 집도 솜씨였다.
상황이 그렇게 절망적인 건 아닐지도 몰라.
과장님이라면…….
정말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헛소리나 잠꼬대가 아니라.
예나의 가슴에서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예나는 어쩌다 맞은편에 있는, 준후를 돕는 소독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소독 간호사의 눈이 애매하게 웃고 있었다.
준후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준후의 집도 속도에 맞춰주는 것이 버겁다는 눈빛이었다.
예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준후에게 탄복하는 것과 별개로 예나도 최선을 다해 준후를 도왔다.
예나가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썩션이었다.
무수혈 수술이 진행 중이지 않은가.
환자가 수술 중에 흘린 피를 셀세이버로 빨아들여 다시 사용하는 게 핵심 포인트였다.
예나는 환자가 흘린 피를 한 방울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상황에 따라서.
출혈 부위에 따라서.
썩션을 하는 것보다 지혈 거즈로 피를 빨아들이는 게 더 유용한 케이스가 있지만 예나는 꿋꿋하게 썩션으로 출혈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예나야.”
“네. 과장님.”
“기대했던 것보다 실력이 훨씬 좋구나. 집중력도 흐트러지지 않고 네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어.”
준후가 예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예나를 칭찬했다.
말을 하면서도 준후의 손짓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조선시대 고고한 선비처럼.
“감사합니다. 과장님.”
“빈말 아니니까 앞으로도 수련 게을리하지 말고.”
준후가 모처럼 당부의 말을 건넸다.
대단한 과장님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예나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황홀했다.
짧고 험난했던 과정이 끝나고.
마침내 환자의 절개창에 리트랙터(견인기)가 설치되었다.
좌우로 벌어진 절개창 안쪽으로 우유막처럼 불투명한 뇌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진짜 수술은 지금부터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관문은 뇌막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괜찮으려나?’
예나는 자신도 모르게 초조함을 느끼며 이를 딱딱딱 부딪쳤다.
뇌막에는 광범위하게 미세 혈관이 분포되어 있었다.
뇌막 절제술을 하면서 흘릴 피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셀세이버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셀세이버가 만능은 아니었다.
환자가 흘린 피를 100퍼센트 재활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예나의 걱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준후가 다시 한번 기적을 써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