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70)
무공 쓰는 외과 의사-470화(470/540)
제92장 신의 한 수(1)
“메스 11번.”
준후가 소독 간호사를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에 전해지는 감촉은 없었다.
“뭐 해요? 딴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요. 선생님. 그게 아니라…….”
소독 간호사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레지던트와 예나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준후의 눈동자는 여전히 미세 현미경에 머물러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뇌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경막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제가 제대로 못 들었나 싶어서요. 방금 분명히 메스라고 하셨죠.”
“네. 그런데요.”
“보통 뇌막 절개는 전기 메스를 사용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 환자에게는 메스가 더 적합합니다.”
준후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딸칵!
준후의 설명을 듣고서야 소독 간호사가 칼대에 칼날을 꼽아 준후에게 건넸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환한 무영등의 불빛을 메스의 칼날이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무수혈 수술의 첫 번째 고비다. 첫 단추를 잘 꿰매야 해.’
준후의 눈빛이 메스만큼이나 번쩍거렸다.
메스가 경막을 향해 접근했다.
꿀꺽!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수술 장갑을 낀 그들의 손바닥에서 축축한 땀이 묻어났다.
준후의 손끝에 수술의 성패가 달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뇌막에는 무수히 많은 미세 혈관이 분포되어 있었다.
따라서 뇌막을 절개할 때.
출혈은 피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문제될 게 없었다.
정상적인 수술 도중에 발생하는 출혈량은 많지 않았고 수혈로 보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은 평범한 수술이 아니었다.
무려 무수혈 수술이었다.
셀세이버를 사용하더라도 자가혈액을 100퍼센트 활용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 흘리는 피 한 방울도 소중한 보물들이었다.
스으으윽.
메스가 경막을 갈랐다.
경막이 종잇장처럼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절제한 위치는 총 두 곳이었다.
정수리에서 3센티미터 아래에 위치한 전대 뇌동맥이 위치한 장소였다.
절개창의 길이는 대략 4센티미터.
보통 준후의 절개창은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반듯한데 오늘 절개창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삐뚤빼뚤했다.
그래서일까.
준후를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표정이 조마조마했다.
컨디션이 떨어져서.
혹은 무수혈 수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절개술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준후의 눈동자와 손은 여전히 차분했다.
준후는 다른 스태프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경막 상하로 견인해 봐.”
“네. 과장님.”
준후의 지시에 레지던트가 견인기를 양손에 들고 절개창을 상하로 벌렸다.
경막 안쪽에 두 번째 뇌막인 지주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 더 간다.’
준후는 메스로 지주막도 갈랐다.
이번 절개창은 더욱 엽기적이었다. 절개창이 ‘∩’ 형태의 곡선을 띠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준후가 환자의 뇌막에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준후의 자신만의 절개를 밀어붙였다.
오로지 이 절개술만이 환자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준후는 섬세하면서도 전광석화와 같은 솜씨로 절개에 마무리를 지었다.
“연막하고 지주막 같이 견인하고 fixation(고정).”
“네. 과장님.”
“지금보다 더 벌려. 수술 시야가 아직 좁다.”
준후의 독촉에 레지던트가 뇌막을 더 벌렸다.
그러자 전선줄처럼 굵직한 전대 뇌동맥에서 뻗어나가는 혈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혈관이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혈관 입구에 검붉은 혈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눈대중으로 확인한 혈종의 용량은 대략 35ml.
40ml이상인 혈종을 거대 혈종이라고 하는데 눈앞의 혈종은 거대 혈종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서걱!
메스가 허공에 번뜩이는 궤적을 남겼다.
칼날이 혈종을 갈랐다.
혈종을 감싸고 있던 굳은 핏덩이가 팍 하고 터졌다.
치이이익!
예나가 기다렸다는 듯 썩션기로 터진 혈종에서 흐르는 피를 빨아들였다.
“보비(전기 소작기).”
준후는 잠시 메스를 내려놓고 소작기로 해당 혈관을 지졌다.
치이이익.
조직이 타면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혈종을 제거하자 찔끔찔끔 새어 나오던 피가 자취를 감췄다.
준후는 그제야 오랫동안 굽히고 있었던 허리를 폈다.
수술을 통해 당장 꺼야 하는 급한 불은 2개가 있었다.
하나는 바로 눈앞에 있었던 지주막하 출혈로 발생한 혈종.
또 다른 하나는…….
뇌실질 내에서 일어난 출혈로 발생한 혈종이었다.
그중 하나가 방금 막 제거되었다.
“뇌압은 예나가 측정해 볼래?”
“알겠습니다. 과장님.”
예나가 뇌압을 측정하는 탐침을 절개창 안으로 밀어 넣었다.
0을 가리키고 있던 측정기의 눈금이 가파르게 우측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집도를 시작한 이래로.
늘 자신만만하던 준후가 처음으로 긴장했다.
신경외과 수술에 뇌압만큼 중요한 수치도 없었다.
뇌압이 출혈이나 뇌부종, 뇌척수액 순환 등등.
뇌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뇌압은 27mmHg입니다.”
노티하는 예나의 목소리가 밝았다. 잠시 구겨졌던 준후의 얼굴이 다시 펴졌다.
소독 간호사는 기뻐했고.
레지던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 뇌압은 0-15mmHg이지만 환자의 급박한 상황을 감안하면 27mmHg도 기적에 가까웠다.
두개골 절제술이 빨리 끝나고.
혈종도 적당한 타이밍에 제거된 덕분이었다.
“혈압은?”
“140mmHg/100mmHg입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 대체 혈장은 몇 개나 썼지?”
“3팩 사용했습니다.”
“셀세이버로 보관 중인 혈액은?”
“수혈팩으로 따지면 한 팩 정도입니다.”
노티를 다 듣고서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잘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사망하는 말도 안 되는 케이스를 준후는 많이 경험해 봤다.
혈역학이 불안해지면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부위에서 출혈이 발생한다거나.
정말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정지가 발생한다거나 등등.
“그런데 과장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해봐.”
“사실 처음부터 궁금했는데요. 왜 전기 메스를 안 쓰고 일반 메스로 뇌막 절개술을 펼치셨나요?”
“…….”
“그리고 절개창은 왜 초등학생이 도형 그리기를 한 것처럼 이 모양 저 모양인가요?”
“아 그거?”
준후가 피식 웃었다.
마스크를 써서 그 웃음을 다른 스태프들은 볼 수 없었다.
“시간 없으니 집도하는 중에 설명해 주마.”
* * *
‘미쳤네. 미쳤어.’
준후를 만난 후, 예나는 끊임없이 충격만 받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상황만 해도 그랬다.
준후는 어려운 수술을 하면서도 방금 전 끝낸 지주막하 출혈에 관련된 진실을 들려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말을 하다 보면.
수술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준후는 그런 약점을 노출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준후가 밝힌 진실은 다음과 같았다.
전기 메스가 아니라 메스를 사용한 이유에 관해서라면…….
뇌막 조직의 탈수를 막고.
조직의 수축을 예방하고.
조직의 괴사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일반 수술이라면 준후라도 당연히 전기 메스를 사용했겠지만 무수혈 수술이라서 특히 더 차후 야기될 문제를 신경 썼다고 한다.
“하지만 과장님. 그러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나가 반론에 나섰다.
“무수혈 수술이라면 오히려 전기 메스를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기 메스는 절개하면서 동시에 지혈하는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보통 99.9퍼센트가 그렇겠지.”
준후가 미세 현미경에서 잠시 눈을 떼고 예나를 바라보았다.
씽긋 미소를 날렸다.
“바로 그 부분이 독특한 절개법과 연관이 된단다.”
“어떻게 연관이 됩니까?”
“일부러 뇌막에 분포한 미세 혈관을 피해서 절개한 거야. 혈관을 피하다 보니 절개창 모양이 괴상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지.”
“와! 그게 가능한가요?”
“나는 가능해.”
준후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당연하게도 메이유에서 수련 도중 준후는 무수혈 수술을 여러 차례 집도해봤다.
수술을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밤낮을 고민하다가.
기절초풍할 해결책을 떠올렸다.
‘그래. 이거면 되겠어!’
뇌막에 분포한 미세 혈관의 분포를 통째로 외워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미세 혈관의 분포를 다 외우고 이를 교묘하게 피해서 메스를 사용한다면 어떨까.
출혈을 최소화하면서 정확도와 속도까지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후로 준후는 성인 및 소아 환자들의 MRI를 비교 대조해가며 뇌막의 혈관 분포도를 암기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뇌막의 혈관 분포도를 외우는 작업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미세 혈관의 분포가 어느 정도는 일치할 수 있겠지만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준후는 꾀를 냈다.
새로운 방식을 추가했다.
메스에 내공을 실어 환자의 뇌막으로 보냈던 것이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미세 혈관이 위치한 뇌막에서는 공명음이 전해졌다.
준후가 메스로 내보냈던 내공이 메스로 돌아오면서 발생하는 공명음이었다.
이에 준후는 공명음이 느껴지는 장소만 피해서 뇌막을 절개했다.
새로운 뇌막 절개술.
오직 무수혈 환자를 위한 뇌막 절개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준후는 혈관 분포도를 외웠다는 부분까지만 이야기했다.
“저 지금 팔뚝에 닭살 돋았습니다. 어떻게 뇌막에 위치한 혈관 분포도를 전부 암기할 생각을 하셨어요?”
“절실하면 그렇게 돼.”
“그러고 보니 과장님이 뇌막 절개술을 할 때 저는 썩션을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왜 절개를 저 지경으로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저도요.”
예나의 말에 소독 간호사와 레지던트도 한마디씩 보탰다.
수술방 분위기는 어느새 화기애애해졌다.
준후의 신들린 집도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뇌 실질내 혈종까지 제거하면서.
환자의 뇌압은 10mmHg로 정상 수치를 회복했다.
퉁퉁 부어 있던 뇌가 본래 크기로 돌아갔다.
대뇌낫 밑 탈출.
높은 뇌압으로 자기 자리를 탈출했던 뇌는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누구도 환자의 회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수술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환자가 죽기 직전에 병원에 이송되었으며.
지금 진행하는 수술이 소아 무수혈 수술이라는 고난이도 수술이라는 자각마저 잊어버렸다.
뇌수술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와중에 사용한 대체 혈장은 총 4개 밖에 되지 않았다.
셀세이버에는 혈액팩으로 반개 분량의 혈액이 저장되었다.
출혈을 최소화했다고 해도 자가 혈액을 안 쓸 수는 없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1시간 30분 만에 뇌수술은 종료되었다.
그 완성도와 속도가 경이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술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환자는 추락하면서 요추 골절을 당했다.
허리 수술이라는 마지막 장벽이 남았던 것이다.
요추 정복술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태프의 교체 없이 그 자리에서 이어졌다.
준후는 신경외과에서 파생되는 세부 전공 7개를 마스터한 최강의 신경외과 서전이었다.
도무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요추 수술을 시작한 지 40분이 지났을 때.
수술방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
“…….”
준후를 포함한 모두가 초상집에 방문한 것처럼 시무룩한 얼굴로 환자 감시 장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이탈이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