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74)
무공 쓰는 외과 의사-474화(474/540)
제92장 신의 한 수(5)
신경외과 당직실.
우현은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은 깊었고 하늘은 까맸다. 병원의 불빛이 어둠과 싸우고 있었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당직 근무 중인데 자정 이후로 응급 콜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우현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상성 기흉으로 쓰러졌던 게 벌써 3일 전이었다.
흉막강에 있던 삼출액을 전부 배출하고 절개창을 봉합하면서 치료는 끝났다.
그동안 누워서 잠만 잤더니 컨디션은 오히려 좋아졌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피부가 꿀 피부가 되었다.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바로 그때였다.
드르르륵.
당직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고개를 돌렸다.
1년 차 윤찬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안 자고 뭐 해?”
“선배가 걱정돼서요. 쓰러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당직 근무를 서겠다고 하세요.”
윤찬이 우현 곁에 서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사람도 부족한데.”
“제가 하루 더 서도 되는데요.”
“그럼 네가 쓰러질걸?”
“에이~ 예전에는 100일 당직도 섰다는데 어떻게든 버틸 수 있어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버티면 쓰나. 하여간 걱정해 줘서 고맙다.”
우현이 윤찬의 어깨를 토닥였다.
후배의 따뜻한 마음씨에 가슴이 따듯해졌다.
부산 신원대 신경외과는 레지던트가 정원보다 2명 모자랐다. 그래서 치프까지 번갈아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문제는 이마저도 감사해야 할 만큼 상황이 시궁창이라는 점이었다.
외과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과연 내년에 신입 레지던트가 들어올까.
우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윤찬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넌 왜 그렇게 걱정이 많아?”
“그렇지만 사실이 그렇잖아요. 세상이 걱정투성이인 걸.”
“이번에는 또 뭐가 걱정인데?”
“오늘이 과장님 첫 출근이잖아요.”
“과장님 출근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윤찬과 우현의 반응이 대조적이었다. 우현은 준후의 취임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준후는 명성과 실력과 인품.
이 세 가지를 전부 갖춘 명의였다.
심지어 며칠 전 자신의 외상성 기흉을 직접 치료해 주지 않았던가.
“좋은 분이라는 건 알죠. 근데 의국이 시끄러워질 것 같아요.”
“다른 교수님들 때문에?”
“네. 아무래도 과장님이 어리잖아요…….”
윤찬의 지적은 옳았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이 갑자기 과장으로 온다?
이를 터줏대감 교수들이 달가워 할 리 없었다.
준후를 괴롭히거나, 물어뜯거나, 끌어 내리지 못해서 안달일 것이다. 당분간 신경외과 의국은 전쟁터가 되리라.
“내가 알아봤는데 과장님도 보통 이 아니더라. 다른 교수님들이 텃세 부려도 잘 이겨내실걸?”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윤찬은 컨퍼런스 발표 자료를 준비했고 우현은 숙직실이 아닌 당직실에서 잠을 청했다.
윤찬을 혼자 두는 게 꺼림칙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이 물러나고 푸르스름한 동녘이 오렌지빛으로 변했다.
새 아침이 밝고 있었다.
똑. 똑. 똑.
때마침 들리는 노크 소리.
“들어오세요.”
덤덤하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던 우현은 화들짝 놀랐다.
꿈에서도 예상치 못한 인물.
과장 준후가 등장했던 것이다.
아니, 이 시간에 출근을 한다고?
“야 빨리 일어나 봐. 과장님 오셨어.”
우현이 곁에서 자던 윤찬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윤찬이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눈을 떴다.
“과장님이요? 이 시간에 왜요? 선배 혹시 양치기 소년이에요?”
게슴츠레하게 떴던 윤찬의 눈이 곧 왕방울만 해졌다.
“씨X. 깜짝이야!”
* * *
레지던트들의 격렬한 반응에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당직실을 찾을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그냥 교수도 아니고 이제 과장이 된 준후였다. 자신이 나타나면 스태프들이 바짝 긴장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리라.
“과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나 원래 이 시간에 출근한다. 그래서 우현이 너한테 응급처치 했잖아.”
“아……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짧은 문답 이후 길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우현과 윤찬이 준후를 거북해하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과장님 며칠 전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려서요.”
“감사할 것까지야.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당직 근무도 서고 있습니다.”
“일단 우현이 먼저 내 쪽으로 와. 내가 가볍게 몸 좀 풀어줄게.”
준후가 우현에게 손짓을 했다.
우현이 순순히 준후 앞으로 다가왔다.
준후는 무림 특제 마사지, 추궁과혈을 펼쳤다.
우현의 목과 어깨와 허리를 현란하게(?) 꺾고 돌렸다.
왼쪽, 오른쪽. 상하좌우.
준후의 손속은 거침이 없었다.
뿌드드득. 뿌드드득.
관절 꺾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당직실에 퍼졌다.
그 모습을 윤찬이 질겁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으로 저 참사를 당할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끝!”
팡!
준후는 등을 보인 우현의 등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쳤다.
추궁과혈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마지막에 등을 두드린 것도 치료의 일종이었다.
내공수액술을 펼친 것이다.
내공 수액술이란 내공을 심장으로 보내 내공의 치유력을 급속도로 상승시키는 수법이었다.
“이제 좀 어때?”
“…….”
“우현아?”
“아. 네.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좋아진 기분입니다. 잠을 한 열 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습니다. 온몸에 힘이 쌩쌩 돌아요.”
우현이 기적을 간증하는 것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현은 놀랐겠지만.
준후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음은 윤찬이.”
“저는 안 받으면 안 될까요?”
“잔 말 말고 이리 와.”
“히이이잉.”
갑자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며 윤찬이 준후 앞으로 다가왔다.
준후는 우현에게 해주었던 추궁과혈과 내공 수액술을 윤찬에게 반복했다.
잔뜩 겁에 질렸던 윤찬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와! 신기합니다. 힐 마법이라도 받은 것 같습니다.”
윤찬의 호들갑은 우현보다 한술 더 떴다.
윤찬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과장님. 대체 어떤 요술을 부리신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원래 예전부터 약손이었거든. 그렇게만 알고 있어.”
준후가 씽긋 웃었다.
레지던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준후도 기뻤다.
준후라고 왜 모르겠는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버거운지.
병동 관리하고 수술 어시스트 몇 번 서면 온몸이 파김치로 늘어지는 게 레지던트였다.
물론 준후는 운기조식 + 영양제 조합으로 늘 쌩쌩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다른 레지던트들은 피로에 절어 있었다.
“앞으로 매일 아침에 해줄 테니까 받고 싶으면 회진 끝나고 당직실에 있어. 다른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야.”
“네. 과장님!”
“네. 과장님!”
두 사람이 바짝 군기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불편한 건 있어?”
“아니요. 없습니다.”
“그게 사실은…….”
우현이 아니라고 한 반면.
윤찬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우현이 팔꿈치로 윤찬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눈치주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하게 내버려 둬.”
“……네.”
“윤찬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
“과장님. 사실은 저희 레지던트 정원이 2명이 부족해서 업무가 너무 힘듭니다.”
“정원이 모자라단 소리지?”
“네.”
“가만있어 보자.”
준후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예상 못한 문제는 아니었다.
외과에 레지던트 부족 현상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아마 서울 신원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신원대 신경외과 계열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손봐야 하는 문제다.’
레지던트는 환자와 교수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병동에서.
또 수술방에서 레지던트는 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가교가 무너지면 병동도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빠른 대책이 필요하단 뜻이다.
다른 과장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때는 100일 당직도 서고 더 피곤하게 지냈어.
힘들면 힘든 대로 버텨야지.
……라고 레지던트들의 희생을 강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당장은 괜찮을지언정.
나중에는 더 큰 폭탄이 되어 터지기 마련이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편 윤찬은 고민하는 준후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역시 안 되겠지?’
레지던트 정원을 맞추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이전 과장도 시도했다가 포기했다고 들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구하는 일은 조금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많이 어려웠다.
다른 사람하고 돈은 비슷하게 받으면서 고생은 더 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당장 대답해 주긴 어려운데.”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이번 주 중으로 해결해 주마.”
“이번 주 말씀이십니까?”
“왜? 너무 긴가?”
눈썹을 치켜 뜬 윤찬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너무 빨라서요.”
* * *
덜컹.
준후는 병동 복도 끝에 있는 과장실로 들어갔다. 믹스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았다.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산 신경외과 의국의 레지던트 부족 현상을 해결할 방법은 분명 있었다.
준후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뗐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상대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일렀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준후는 믹스 커피를 홀짝거렸다.
소파 앞 탁자에 놓인 프린트물을 손에 쥐고 읽었다.
프린트물에는 준후가 지난 며칠간 발품 팔며 적어놓은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 정보란 무엇인고 하니…….
부산 신경외과 교수들의 수술 솜씨를 평가해 놓은 것이었다.
등급은 A부터 C까지 다양했다.
누군가는 믿을 만했고.
누군가는 그저 그랬으며.
누군가는 쫓아내고 싶었다.
과거의 준후라면 직급이 낮아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맞춰줘야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준후는 신경외과 과장이라는 권력의 검을 얻었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괜찮은 교수를 끌어올리고 별로인 교수를 끌어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
그 목표를 위해 검을 누구에게 어떻게 휘두르느냐.
이것이 과장 생활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의 검이 자신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겠지만 준후는 걱정하지 않았다.
준후는 무기로서의 검만큼이나 정치로서의 검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다.
명분 싸움에 환장한 무림맹이 준후를 그렇게 키웠으니까.
1) 일단 의국에 지반이 되는 레지던트 환경을 개선한다.
2)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을 교수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간다.
3) 의국 운영을 기깔 나게 하면서 영향력을 키운다.
준후는 크게 세 가지의 목표를 세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방 컨퍼런스 시간이 찾아왔다.
준후는 집무실을 나와 컨퍼런스 룸으로 향했다.
지난 며칠.
바쁜 일이 있어서 컨퍼런스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늘 컨퍼런스는 준후가 과장으로 취임하고 처음 맞이하는 컨퍼런스였다.
의사 가운을 휘날리며 도착한 컨퍼런스 룸.
드르르륵.
가장 나중에 주인공처럼 준후가 등장했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준후에게 쏠렸다.
호기심, 긴장, 불안, 기대 등등.
눈동자에 담긴 감정들이 각기 다 달랐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준후가 여유롭게 웃었다.
오늘은 신경외과 과장으로서의 데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