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75)
무공 쓰는 외과 의사-475화(475/540)
제93장 장악(1)
치프 레지던트의 진행에 따라 오전 컨퍼런스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준후의 소개가 있었다.
강당에서 취임식을 가졌지만 의국에서 정식으로 하는 소개는 처음이었다.
준후가 단상 위에 올랐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스태프들을 훑었다.
우선 빈약한 숫자의 레지던트가 준후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회진이 끝나는 대로 ‘그 사람’에게 꼭 전화를 하리라.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준후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처음에는 교수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단상에 올라오니 ‘권력의 지도’가 한눈에 보였다.
준후가 앉아 있던 자리 주변에는 교수가 한 명도 없었다. 교수들 대부분이 한 남자를 에워싼 채 앉아 있었다.
보스의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
이름은 김한상.
준후가 알기로 부산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조교수였다.
김한상은 얼굴도 둥글고 배도 둥글었다.
하지만 눈매와 입가만큼은 표독스러워보였다.
김한상이 지시를 내린 건지 아니면 다른 교수들이 알아서 김한상의 비위를 맞춘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 컨퍼런스에서 준후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준후 옆이나 주변에는 그 어떤 교수도 앉지 않았다.
“과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준후의 침묵이 길어지자 치프 레지던트가 말을 붙였다.
“흠흠. 새로 부임한 신경외과 과장 서준후입니다. 능력 있고 멋있는 스태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 이라는 하나 마나 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준후의 표정이 돌변했다.
말투도 바뀌고 분위기도 바뀌었다.
스태프들이 변화를 읽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위압감을 느낀 일부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저는 부산 신경외과 의국이 신원대 최고의 신경외과가 되기를 바랍니다.”
“…….”
“아니, 전국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신경외과가 되기를 바랍니다.”
“…….”
“그 목표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발목을 잡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겠어요.”
“…….”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보상을. 불복하고 저항하는 사람에게 처벌을. 그게 제가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다들 알아서 처신 잘하길 바랍니다.”
할 말을 마친 준후가 단상에서 내려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순간 찬물이라도 뿌린 것처럼.
회의실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준후의 소개는 엄밀히 말해서 소개라기보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말에 담긴 뉘앙스 때문일까.
특히 김한상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김한상은 팔짱을 낀 채 눈살과 콧잔등을 찡그렸다.
‘하룻강아지 주제에 감히 호랑이 굴에서 짖어대는 건가?’
김한상은 똑똑히 느꼈다.
준후가 말을 하면서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자신과 한판 붙자는 소리 아니겠는가.
실로 어처구니없는 도발이었다.
메이유 부스트 업을 프로그램을 졸업한 것도, 서전으로서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다 인정하겠지만 준후는 아직 까불 때가 아니었다.
부산은 김한상의 왕국이었고 김한상은 왕이었다.
준후는 허울 좋은 가짜 왕에 불과했다.
힘도 없는 낙하산 주제에 감히 이 몸에게 이빨을 들이대?
“확실히 젊은 게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우리 ‘신입’ 과장님 패기가 이만저만이 아닌 걸요?”
최진구가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
모두가 들으라는 듯 한마디 했다.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에 몇몇 교수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최진구는 김한상의 오른팔이었다.
잠시 분위기가 느슨해진 사이 준후와 두 칸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레지던트 우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과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처음부터 다른 교수님들을 적으로 돌리신 것 같아요.”
준후에게 외상상 기흉 응급 처치를 받아서 그런지 우현이 준후를 걱정했다. 알뜰하게 준후를 챙겼다.
“넌 뭘 모르는구나?”
“제가 뭘 모르는 겁니까?”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른다는 뜻이지.”
회의 분위기를 아작 내놓고도 준후의 표정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이에 우현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다른 교수들은 나를 인정할 마음이 없어. 회의실 자리 배치도 그렇고 방금 날 은근히 돌려 깐 것도 그렇고.”
“과장님 발언이 너무 세서 그런 것 아닐까요?”
“천만에!”
준후가 기다렸다는 듯 콧방귀를 끼었다.
“다른 교수들은 그저 내가 호랑이 굴에 던져진 토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언제 잡아먹을까 호심탐탐 기회만 보고 있지.”
“…….”
“하지만 정말 그럴까?”
준후가 분위기를 잡자 우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켜보면 곧 알 거다. 잡아먹히는 쪽이 과연 누구인지.”
준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온 준후의 소개가 끝났다.
컨퍼런스가 정상 궤도에 올랐다.
준후는 진행은 건성으로 들으며 책상에 놓인 프린트물을 유심하게 살폈다.
현재 병동 입원환자는 60퍼센트 정도 차 있었다.
수치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서울 의국은 거의 90퍼센트 대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부산의 인구가 적어서일까.
교수들의 실력이 부족해서일까.
홍보가 덜 된 탓일까.
셋 중 하나의 문제일 수도 있고 셋 다 문제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과장인 준후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의국의 실세인 김한상과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이면서…….
‘마침 잘됐네. 본보기로 한 명을 박살 내버려야지.’
준후의 검지가 입원 환자 중 한 명을 툭툭 건드렸다.
복수를 다짐하는 가운데.
수술 스케줄 정리와 환자 케이스 발표가 차례대로 끝났다.
그런데 김한상 파에서 의외의 선제공격이 들어왔다.
출전한 장수는 아까 뼈 있는 농담을 던졌던 최진구였다.
이자가 김한상의 오른팔인가?
생긴 건 꼭 해골 같군.
“과장님. 뭐 하나만 묻죠.”
“네. 얼~ 마든지 물어보세요.”
“중환자실에 있는 신예나 환자 말입니다. 아직 의식을 회복 못 하고 있는데 수술이 제대로 된 건가 싶어서요.”
최진구의 지적에 준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호라!
그쪽도 이쪽을 노골적으로 저격하시겠다?
“환자 진단명을 보면 알겠지만 이송 당시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 사흘은 더 지나야 의식을 차릴 겁니다.”
“아, 그런가요? 날짜까지 말씀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최진구가 빈정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저야 당연히 과장님을 믿지만 그래도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요.”
“어디가 그렇게 못마땅합니까?”
“일단 수술 시간이 너무 짧아요. 고작 4시간 만에 끝났더군요. 여기 적힌 심각한 ‘진단명들’을 감안했을 때 믿기 힘든 속도죠.”
최진구가 준후가 사용한 단어를 재활용하며 공격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
“심지어 이 시간 안에 뇌수술은 물론이고 척추 유합술까지 했네요?”
“…….”
“이런 표현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수술을 국수 먹듯이 후루룩 끝낸 건 아닐까. 그래서 환자가 아직 의식을 못 차린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물어봤습니다.”
“저도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장님. 너무 성급하셨던 건 아닙니까?”
최진구가 물꼬를 트자 다른 교수들도 하나둘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느새 준후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회의.
그때 준후는 최진구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최 교수님.”
“네. 과장님.”
“가장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계시네요.”
“제가요?”
“이 환자, 처음에는 무수혈 수술로 진행했습니다. 수술 막바지에 수혈 수술로 바뀌었고요.”
준후가 새로운 정보를 공개하자 교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수술 도중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초응급 환자를 무수혈로 수술을 했었다고?
“허…… 그런 말도 안 되는……. 근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처음부터 수혈 수술로 진행했으면 3시간 만에 끝났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준후가 교수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수술? 그거 오래 한다고 잘하는 거 아닙니다. 실력이 되면 빨리 끝내고 다음 환자를 수술하는 게 맞겠죠.”
“…….”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환자를 4시간 만에 수술할 자신이 없습니까?”
“…….”
“…….”
준후의 질문에 그 어떤 교수도 대답을 못 했다.
입술조차 들썩거리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수술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수술 계획을 미리 잡은 정규 수술 스케줄도 4-6시간 정도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 신경외과 수술은 말이다.
그런데 예나 같은 환자를 4시간 안에 수술하라고?
손에 모터를 달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최 교수님.”
준후가 최진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제 실력에 질투를 느낍니까?”
“아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습니까! 질투라니요.”
차분하게 깐죽거리던 최진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쾅!
주먹으로 테이블을 거칠게 치기까지 했다.
준후의 계획대로였다.
무림맹에서 배운 격장지계(激將之計)!
때로는 상대를 논리로 찍어 누르는 것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됐다.
사람들은 아직 몰랐다.
심지어 아영조차 몰랐다.
준후의 혓바닥이 수술 솜씨만큼이나 매섭다는 것을.
그동안은 직위가 낮아서 혓바닥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환자 의식 회복이 늦는다고 꼬투리 잡는 건, 망발 아닙니까? 환자 바이탈이 안정된 건 쏙 빼 먹고요?”
“그…… 그건…….”
“이번 기회에 다른 교수님들도 잘 들으세요.”
“…….”
“시비를 걸고 싶으면 제대로 거세요. 최 교수님처럼 어설프게 걸었다간 박살 나는 수가 있습니다.”
준후의 발언은 꽤 강경했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교수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과장님. 저 살 떨려서 못 듣겠어요.”
“방금은 선 넘으신 것 같은데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의국에서 유일하게 준후 편이나 다름없는 예나와 우현이 한마디씩 했다.
실제로 최진구를 비롯한 다른 교수들은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준후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으며 또 일부는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준후는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지 않았다.
뒤로 무를 생각도 없었다.
의국 교수 중에 준후 편이 있을까.
단 한 명도 없었다.
준후는 시작부터 외톨이었다.
그렇다면 허리를 굽히고 기존 교수들 세력에 들어가거나.
그들을 무릎 꿇고 굴복시키는 방법.
딱 두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준후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의국을 개혁하려면 터줏대감 같은 기존 교수들을 무찌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과장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진구가 준후를 불렀다.
“더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저 지금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과 펠로우, 레지던트 앞에서 박살 냈다는 표현을 쓰시다니요.”
“…….”
“저를 능멸하려는 걸로 밖에 안 느껴집니다만…….”
“정확히 알아보셨네요. 최 교수님이 저를 능멸하려고 하시길래 똑같이 되갚아 드린 것뿐입니다.”
준후의 얄미운 대답에 최진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부교수 생활을 한 지도 어언 15년.
준후처럼 당돌한 녀석은 본 적이 없었다.
건방진 놈.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최진구를 이를 빠득빠득 갈며 준후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웠다.
비록 오늘은 방심해서 한 방 먹었지만 조만간 지옥불맛을 보여주리라.
하지만 최진구의 각오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진 오전 라운딩(회진)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다 불쌍할 정도로 최진구는 준후에게 다시 한 번 탈탈 털리고 말았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