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76)
무공 쓰는 외과 의사-476화(476/540)
제93장 장악(2)
오전 컨퍼런스가 살벌하게 끝났다.
스태프들은 복도로 나와 군대처럼 열을 맞춰 섰다.
‘우리 과장. 아주 간덩이가 부었군요. 최 교수님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다니.’
‘권력이란 게 무섭지 않습니까? 메이유에서 수련하고 과장을 달았다고 안하무인이에요.’
‘가만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수를 써야 해요.’
준후는 일부러 교수들과 떨어진 자리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내공으로 청력을 증폭해 다른 교수들이 자신을 험담하는 것을 생생하게 들었다.
자신들이 준후 앞에서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교수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으리라.
‘고맙네. 알아서 살생부를 만들어주고.’
준후는 도리어 웃었다.
방금 자신을 깎아내렸던 교수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다.
그래도 모든 교수가 준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교수들은 준후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환자 이야기를 하거나 최근 의료 이슈로 대화에 꽃을 피웠다.
비율을 따지자면 7:3.
전자를 반 준후 세력, 후자를 중립 세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후자를 흡수해도 다수가 될 수 없으니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반 준후 세력을 파괴한다.
시간이 지나 대열이 완성되었다.
준후가 선두에 섰고 그 뒤에 교수들, 그 뒤에 펠로우들, 그 뒤로 레지던트들이 줄 맞춰 도열했다.
사실 의사도 군인만큼이나 수직적이고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직업 중 하나였다.
저벅. 저벅.
준후가 걷자 스태프들이 그 뒤를 따랐다.
준후 앞에서 걷는 이는 인턴뿐이었다.
“됐어. 김 선생은 뒤로 들어가.”
“제가 병실 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나도 손 있거든?”
준후가 검지로 등 뒤를 가리켰다.
준후가 거듭 재촉하자 인턴이 준후 뒤로 이동했다.
속이 후련해지는 순간이었다.
[인턴이 앞장서서 걷다가 라운딩 할 병실 문을 미리 연다.]준후는 예전부터 내려온 이 뿌리 깊은 회진 문화가 역겨웠다. 왕이 행차하는 것도 아니고 과장이 병실 문 좀 열면 어떻단 말인가.
쓸데없는 권위 의식은 개나 줘버리는 게 옳았다.
드르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준후와 스태프들이 병실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꽤 각 잡힌 모습으로 대기 중이었다. 수간호사도 대기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과장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실물이 훨씬 동안이시네요?”
수간호사가 씽긋 웃었다.
준후가 의국의 책임자라면 수간호사는 병동 간호사들의 책임자였다.
첫인상만으로 판단하기는 섣부르지만 사람은 괜찮아 보였다.
“아무렴 수간호사님만 하겠어요. 수간호사님 따라가려면 한세월은 걸릴 것 같은데요?”
“말을 기분 좋게 잘하시네요.”
대화가 끝난 후.
본격적인 라운딩이 시작되었다.
오전 회진.
오전 라운딩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은 주로 과장이 직접 병실을 돌며 환자와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프린트물로 봤던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환자·보호자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귀중한 시간이었다.
준후의 라운딩에는 아주 단순한 규칙이 있었다.
본인이 말을 많이 하기보다 환자 보호자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주자, 였다.
아프면 서럽고.
서러우면 말이 많아지는 게 사람 아닌가.
첫 번째 병실 라운딩을 순조롭게 끝내고 들어선 두 번째 병실.
준후는 한 침상 앞에 섰다.
침상 등받이에 등을 기대로 앉아 있는 환자의 이름은 안병태였다.
나이는 55세.
외상성 허리 디스크로 입원해 며칠 전 수술을 받았다.
환자 곁에는 딸로 보이는 보호자가 앉아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훑는 준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오전 컨퍼런스 때.
최진구와 다툰 것은 소꿉장난에 불과할 만큼 큰 싸움이 준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강 한 번 빡세게 잡아볼까?
* * *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준후가 친절하게 물었다.
“허리가 좀 많이 아픕니다. 수술이 끝나면 곧바로 좋아질 줄 알았는데.”
환자가 주먹으로 연신 허리를 두들겼다. 얼굴에 짜증과 불만이 역력했다.
“진통제라도 늘려주면 안 됩니까?”
“환자분, 약은 어떻게 복용하고 있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근육 이완제 복용 중입니다. 하루 한 번씩 고주파 열 치료 받고 있고요.”
인턴이 전광석화로 노티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있다라…….”
준후가 턱을 쓸어내리다가 말을 이었다.
“안병태 환자분 집도의가 누구입니까?”
준후는 그 주인공의 정체를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입원 환자 브리핑을 할 때.
안병태 환자에 관한 모든 정보를 미리 파악해 두었던 것이다.
“저입니다.”
아까 준후와 다퉜던 최진구가 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술하고도 환자의 경과가 오히려 악화되었다면 수술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과장님이 척추 수술을 제대로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최진구의 도발에 준후가 코웃음을 쳤다.
준후가 누구인가.
메이유에서 신경외과 세부 전공, 그러니까…….
뇌혈관 파트.
뇌종양 파트.
정위신경 파트.
척추 및 경추 파트.
소아 신경외과 파트.
외상 외과 파트.
수부외과 파트.
무려 7개의 파트를 수석으로 정복한 대한민국 신경 외과계의 최고 인풋이 아닌가.
그런 준후에게 감히 척추 수술을 논하다니…….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었다.
“기억력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예나 환자 척추 수술한 사람이 접니다만?”
“……그랬군요. 어쨌거나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괜히 트집 잡지 마세요.”
준후와 최진구의 2번째 격돌.
주먹만 휘두르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서전으로서 자존심을 건 싸움 말이다.
“환자분. 원래 수술이 끝났다고 해서 상태가 바로 호전되는 건 아닙니다.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에요. 허리는 차차 호전될 겁니다.”
최진구가 달래듯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후의 가슴에서 용암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본인의 실수를 모른다면 그것 자체로도 큰 문제였고.
본인의 실수를 알면서도 덮으려고 하는 짓이라면 괘씸죄를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걸 이렇게 넘어가겠다고?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 현 상황은 준후에게 웃어 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최진구를 박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기에.
“환자분이 납득하셨는데 이제 만족하십니까?”
최진구가 준후를 쳐다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준후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아니요, 만족 못합니다. 하나도.”
* * *
준후의 발언에 교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손에는 식은땀이 잡혔다.
불안하고 팽팽한 공기가 병동을 휘어 감았다.
아웅다웅하던 준후와 최진구 사이에 결국 화약고가 터지고 말았다.
준후가 최진구 수술의 완성도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다른 서전의 수술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 바닥에 금기였다.
‘이제 보니 싸움닭이었군. 의외로 상대하기 쉽겠는데?’
다툼을 지켜보고 있던 부교수 김한상.
사실상 의국의 실세인 그가 피식 웃었다.
백전노장인 김한상은 준후의 의도를 잘 알았다.
낙하산으로 차지한 과장 자리.
나이 많고 경험 많은 기존 교수들에게 허리를 굽히긴 싫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부임 초반부터 기 싸움으로 확 찍어 눌러야지.
분명 이 정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준후가 보여준 행동들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행동이었다.
상대를 공격하고 싶다면.
꼬투리 잡는 정도로는 안 된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서 숨통을 끊어놓아야 했다.
준후에게 그게 가능할까?
김한상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병동에 다른 환자와 보호자분, 수간호사 선생님도 계신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최진구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잡아야죠. 주변에 누가 있던지 간에.”
“하…… 그럼 뭐가 잘못됐는지 들어나 봅시다.”
“두 분 다 진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싸울 자리가…….”
어떤 교수가 둘 사이에 껴들었다.
하지만 준후와 최진구의 서슬 퍼런 눈빛을 받고서 입을 꼭 다물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지금 상황은 멈출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환자분은 척추 수술 실패 증후군입니다. 추가 수술이 필요해요.”
준후가 선언하듯 말했다.
척추 수술 실패 증후군.
이는 수술을 통해 신경을 압박하는 근본 부위가 제거되지 않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를 일컬었다.
“척추 수술 실패 증후군? 지금 말 다했습니까?”
최진구가 언성을 높였다.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은 좁쌀처럼 가느다래졌다.
“과장님. 아무리 그래도 척추 수술 실패 증후군을 언급하는 건…….”
“이건 명백하게 과장님 쪽에서 선을 넘었습니다.”
“막 나가는 것도 정도가 있지.”
“쯧쯧쯧.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고 있어.”
누군가는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며 최진구의 손을 들어주었고.
누군가는 혼잣말로 불만과 불쾌를 드러냈다.
‘척수 수술 실패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준후가 최진구의 수술이 잘못됐다고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과 같았다.
그러니 다들 벌떼같이 일어날 수밖에…….
너 수술 잘못했어.
너 때문에 환자가 아파.
……라고 하면 어느 서전이 ‘맞아, 그래.’하고 인정하겠는가.
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선 준후는 정작 요지부동이었다. 눈썹 한 번 까닥거리지 않았다.
준후는 대체 이런 상황을 왜 만들었을까.
또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인 걸까.
김한상은 오른팔 최진구가 수세에 몰렸음에도 오히려 준후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가졌다.
준후가 바보인지 아니면 천재인지는 지금부터 결판나리라.
전자라면 준후의 평판은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이고.
후자라면…….
부임 첫날부터 본인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드러내게 될 것이다.
“다들 휴대폰으로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의료 영상저장전송시스템)에 접속해서 환자분의 척추 MRI를 확인해 주세요. 먼저 수술 전 MRI입니다.”
교수들이 준후의 지시를 따랐다.
준후가 차분하게 설명에 나섰다.
“요추 L4-5번 척추관이 협착되면서 외측 함요부가 함요부 뼈와 후관절 때문에 신경에 눌려 있죠?”
“네. 그렇습니다만.”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군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교수들.
비록 경추·요추 파트 전공은 아니더라도 교수인 만큼 허리에 대한 기본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수술 후 촬영한 MRI를 확인하세요.”
“…….”
“뭐가 다릅니까?”
“황색 인대가 제거된 것 같은데요?”
어떤 교수가 바로 대답했다.
“네. 정확합니다. 황색인대‘만’ 제거됐죠. 환자분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면 함요부 뼈와 후관절까지 제거했어야 합니다.”
“…….”
“그러니까 우리 최 교수님께서 척추관 협착증을 허리 디스크로 오인하시고 수술을 잘못한 거죠.”
“…….”
“제 말이 틀렸습니까?”
준후가 최진구를 쳐다보았지만 최진구는 준후를 쳐다보지 않았다.
입술을 깨문 채 MRI만 죽어라 보고 있었다.
준후의 지적에 가라앉은 분위기.
교수들은 준후와 최진구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 몰랐다.
본인들 전공이 아니니 함부로 껴들기 벅찬 것이다.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군.’
김한상이 헛기침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방 교수. 자네도 경추·요추 파트 전공이지 않나? 자네가 보기에 과장님과 최 교수의 판단 중 누가 맞는 것 같나?”
김한상의 말에 모두가 방 교수의 입술에 주목했다.
과연 그는 누구의 손을 번쩍 들어줄 것인가.
부담을 느낀 방 교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망설이다가 한참 만에 입을 뗐다.
“그게…… 제 생각에는 과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