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79)
무공 쓰는 외과 의사-479화(479/540)
제93장 장악(5)
“하…… 씨X.”
최진구는 모처럼 입 밖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금 막 안병태 환자의 병상을 찾아 오진과 잘못된 수술에 대해 사과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선생님.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수술 끝나고 분명 제가 허리가 더 아프다고 했잖아요. 근데 다 괜찮을 거라면서요!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이게 어디 몇 마디 사과로 될 일입니까? 남의 허리를 작살 내놓고?
-…….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괜찮으시다면 책임지고 재수술을 해드리겠습니다.
-재수술?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게 낫겠네. 그쪽이 내 입장이면 재수술 받고 싶겠어요?
환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최진구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안병태가 얌전한 환자인 줄 알았건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착각이었다.
일단 화가 폭발하니 호랑이가 따로 없었다.
환자 곁에 있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보호자의 딸은 아까부터 쌀쌀맞은 표정을 한 채 입에 지퍼를 채우고 있었다.
딸도 다른 의미로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을 커뮤니티나 SNS에 퍼서 나른다고 생각해 보자.
사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여론이 형성되어 최진구는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컸다.
보호자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어쩐지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좀처럼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없었다.
꼬투리 잡히면 큰일이니까.
-죄송합니다.
-당신이 의사예요? 앵무새예요?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 해요?
-제가 어떻게 하면 환자분의 노여움이 풀리겠습니까?
-일 없습니다. 썩 꺼져요.
환자가 병실 문을 삿대질로 가리키며 최진구를 쫓아냈다. 최진구는 쓸쓸하게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병동 복도를 가로지르면서 최진구는 걷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바닥에 돌멩이라도 있으면 힘껏 걷어차고 싶은데……
병원 바닥에 돌멩이가 있을 리 없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의국 물을 죄다 흙탕물로 만드는군.’
최진구는 준후를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미움이었다.
준후만 없었으면 자신의 오진과 잘못된 수술이 들키지 않았을 테고 오늘처럼 망신살이 뻗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게 다 준후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준후의 행보가 궁금하기도 했다.
결자해지라고…….
준후는 재수술을 통해 환자에게 신뢰를 되찾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최진구가 환자 입장이라도 절대 우리 과에서 수술을 받지 않았을 테니까.
이미 오진이라는 전과(?)가 있는 병원에서 재수술 받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이 깊어질수록 시름도 깊어졌다.
최진구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교수들이 티타임을 가지고 있을 제2회의실로 이동했다.
“부교수님. 혼자 계십니까?”
회의실에 들어간 최진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일찍 보냈지. 자네랑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역시 제 마음 알아주는 건 부교수님뿐입니다.”
최진구가 아부 멘트로 딸랑거리며 김한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한상은 의국에 2명밖에 없는 부교수였다.
하지만 다른 부교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고 인맥도 넓었다.
사실상 부산 의국을 한 손에 꽉 붙잡고 있는 실세였다.
비록 준후가 과장이긴 했지만.
이는 표면상의 리더일 뿐이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준후를 따르지 않았다.
의국의 보스는 누워서 보나, 거꾸로 보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김한상이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허리 수술 환자 있지 않습니까? 따로 병실에 찾아가서 사과하고 왔습니다.”
“잘됐네.”
“네? 잘됐다고요? 욕을 한 바가지로 먹었는데요?”
“욕을 많이 먹었으니까 오래 살 거 아닌가?”
김한상이 껄껄껄 웃었다.
당연히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농담이겠지만 최진구의 마음은 편치 못 했다.
“일이 커질까 봐 불안해 죽겠습니다. 부교수님 농담에 웃을 수가 없어요.”
“과장은 뭐래?”
“환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수술을 하자고 하더군요.”
“그럼 자네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번 일에서 손 떼.”
“제가 당사자인데요?”
최진구는 어깨를 들썩거려가며 크게 놀랐다.
김한상의 발언은 파격적이어도 너무 파격적이었다.
“과장이 할 짓이 뻔히 눈에 보여서 그래.”
“과장의 의도가 뭡니까?”
“재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사실 자네에게 재수술을 하라고 한 건 아닐 거야. 결국 본인이 직접 재수술을 하겠지.”
“제가 안병태 환자의 담당 교수인데 왜 과장이 수술합니까?”
“과장은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 본인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
“과장에 대한 기사들, 검색해 봤나?”
“아…… 아뇨. 안 해봤습니다.”
“쯧쯧쯧.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불패인데 말이야.”
김한상이 최진구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이미 준후에 관련된 기사가 수두룩하게 깔려 있었다.
메이유에서 수련한 일.
노상에서 응급 처치를 한 일.
산에서 뱀에 물린 환자를 응급처치한 일.
미국에서 총기 사건에 휘말린 일 등등.
이쯤 되면 사건이 있는 곳에 준후가 있는 게 아니라 준후가 사건을 만드는 것도 같았다.
준후는 그만큼 격동의 인생을 살았다.
“환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안 끼는 곳이 없군요. 거의 불나방 수준입니다.”
“그렇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김한상이 유쾌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자네가 개망신을 당한 건 유감이야. 하지만 어차피 이번 일도 과장이 자기 성질대로 처리할 거란 말이지.”
“…….”
“그리고 과장이 무슨 짓을 하던 우린 이득이고.”
“왜 우리가 이득입니까?”
최진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김한상의 생각이 너무 빨라서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허리 재수술이 어디 보통 어려워? 본인이 직접 재수술을 하다가 낭패를 볼 확률이 크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최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답답했던 이유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재수술을 감당하기에 벅찼기 때문이었다.
한번 수술을 받고 나면 허리 구조가 약해지는 탓에 재수술은 위험부담이 컸다.
“그렇지만 부교수님. 환자가 재수술을 안 하겠다고 하면 결국 제가 덤탱이를 써야 하지 않습니까?”
“…….”
“환자는 재수술할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던데요?”
“그땐 내가 진료부원장님께 입김을 넣어보지. 재수술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과장에게 물 먹일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으니까.”
김한상의 말에 최진구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아까부터 무거웠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최진구가 김한상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부교수님. 앞으로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 *
외래 진료실에 들르기 전.
준후는 우선 신경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추락 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소현의 침상을 찾았다.
놀랍게도 소현은 벌써 의식을 되찾았다. 산소호흡기가 제거된 상태였다.
소현은 조금 멍한 얼굴로 준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틈틈이 침상을 찾아 내공 수액술을 써준 덕분일까.
소현의 회복이 예상보다 빨랐다.
“선생님. 소현이, 언제 의식을 차렸죠?”
준후가 마침 곁을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1시간 전이요. 바이탈은 정상입니다.”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현의 침상에 바짝 다가갔다.
“소현아. 몸은 좀 어떠니?”
“머리가 너무 아파요.”
“수술을 받아서 그래. 곧 괜찮아질 거란다.”
“수술 나빠요.”
“응?”
“수술도 술이잖아요. 엄마는 맨날 집에서 술 마셔요.”
소현의 대답에 준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렇게 순진무구한 아이를 학대하고 베란다에서 밀어버린 비정한 여자 보호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서였다.
“수술은 나쁜 술이 아니야. 아픈 사람한테 호~ 해주는 거야.”
“호~ 해줬는데 왜 아직도 아파요?”
“나아지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러니까 선생님이 도와줄게.”
준후는 두통약 대신 무공을 사용했다.
팟! 팟! 팟! 팟!
준후의 검지가 소현의 머리 곳곳을 전광석화로 찔렀다. 꽉 막힌 주요 혈자리를 풀어주면서 통증을 완화시킨 것이다.
“지금은 좀 어때?”
“으음…… 좋아요.”
소현의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어렸다.
“머리 말고 또 불편한 데는 없어?”
“네. 근데요.”
소현이 준후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빠는 어디 있어요? 아빠 보고 싶어요.”
소현의 말이 준후의 가슴을 찔렀다.
하긴 아이 혼자서 중환자실의 삭막하고 처참한 분위기를 견디기는 버거웠다.
“조금만 기다려줄래? 선생님이 금방 아빠 만날 수 있게 해줄게.”
“거짓말 아니죠?”
“그럼 약속하자.”
준후가 소현과 손가락을 걸었다.
소현의 손가락이 희고 가늘고 연약했다.
준후는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는 스테이션 쪽으로 이동했다.
“선생님. 소현이 일반 병실로 내려 보내죠.”
“그래도 하루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의식을 차린 지 얼마 안 됐는데…….”
“진찰해 봤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좋습니다. 혼자 두는 게 오히려 정신 건강에 안 좋아요.”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마침 병실 자리도 있네요.”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말을 마친 준후는 중환자실을 나왔다.
환자 대기실을 좌우로 살피다 보니 아까 못 봤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준후가 먼저 인사하자 광현이 살갑게 인사를 받았다.
광현은 소현의 아버지였다.
대기실 앞에서 밤을 샜는지 광현의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었다.
머리카락도 부스스했다.
“잠깐 가만히 계세요.”
레지던트들에게 그랬듯, 준후는 광현에게도 추궁과혈 마사지를 해주고 내공 수액술도 펼쳤다.
광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우와. 뭔지 모르지만 대단하군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뭐, 이 정도로. 그보다 기쁜 소식 전해드릴게요. 소현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일반 병실로 옮길 계획입니다.”
“……!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광현이 우악스럽게 준후의 손을 감싸쥐며 말했다.
광현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하마터면 준후도 울 뻔했다.
광현은 준후에게 감사 인사를 한 보따리나 한 후에야 감싸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선생님. 저번에 제가 이야기 했던 건 생각해 보셨나요?”
“책 출판 관련된 거였죠?”
“네.”
준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부끄럽긴 하지만 해보죠. 이것도 다 경험이니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제가 스케줄 따로 잡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광현과 헤어지고 준후는 곧바로 외래 진료실로 발길을 돌렸다.
소현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부모에게 학대당한 것도 끔찍한데 죽거나 몸에 장애가 남았다면 소현의 삶을 얼마나 고달팠을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 밥그릇을 신경 써야겠어.
1층 로비에 도착한 순간.
준후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오늘은 부산에서 와서.
또 신경외과 과장이 되어서 보는 첫 외래 진료가 있었다.
사실 진료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정작 준후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외래 환자 숫자에 대한 부담이었다.
병원 외부에 현수막까지 걸어 놓았는데 준후를 찾아온 외래 환자가 없다?
이는 영 체면이 안 섰다.
찾아오는 환자가 적다 = 의사의 실력이 없다.
또한 사람들은 위와 같은 착각을 자주 하지 않는가.
환자가 적으면 준후는 능력 없는 의사로 낙인찍힐지도 몰랐다.
의국에 다른 교수들이 준후를 무시할지도 몰랐다.
뉴튜브나 SNS에 진료 소식을 미리 알릴 걸 그랬나?
이런저런 잡념에 빠진 사이.
신경외과 외래 진료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