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80)
무공 쓰는 외과 의사-480화(480/540)
제94장 텃세(1)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신경외과 외래 진료실이 늘어서 있는 복도에 진입한 준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른 교수들의 환자 대기석은 북적거렸다.
앉을 자리가 모자라서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실 근처를 서성거렸다.
하지만 준후의 진료실 앞은?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허리가 불편해 보이는 노인 환자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다만 그들마저도 준후 환자라고는 볼 수 없었다.
다른 교수들 환자인데 준후 대기실 앞 의자에 앉은 환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으음…….
어쩌면 얼굴이 문제일 수도 있겠어.
준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의사가 왜 외모를 따지냐.
실력만 좋으면 됐지.
……라고 물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의사에겐 외모도 중요했다!
특히 신뢰감을 주는 용모가 중요했다.
준후의 경우 너무 동안이고 미남이었다. 그리고 어려 보인다는 것은 의사 세계에서 한없이 단점으로 작용했다.
어려 보이면 경력이 없어 보이고.
경력이 없어 보이면 실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경력 = 실력
이 선입견은 좀처럼 깨뜨리기 힘들었다.
“과장님. 오늘은 느긋하게 진료보시겠습니다?”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부교수 김한상과 최진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서 작당모의를 했을까.
아까부터 귓불이 간질간질하긴 했다.
“절 놀리시는 건가요?”
준후는 후진 없이 김한상을 바로 들이받았다.
“아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감히 어떻게 과장님을 놀리겠어요.”
“…….”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앞으로 차차 환자가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실망하지 말라고 드린 이야기였어요.”
김한상이 미꾸라지처럼 얄밉게 공격을 피해냈다.
과연 2인자다운 화술이랄까.
하지만 김한상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인물일 확률이 컸다.
김한상 입장에서 준후는…….
철천지원수였다.
준후가 본인의 과장 자리를 가로챘다며 빠드득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좋은 뜻으로 말씀하셨다니 좋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아휴. 그럼요. 고생하십쇼.”
“그리고 최 교수님은 점심시간에 잠깐 저 좀 보죠.”
“……네.”
준후와 약속이 잡힌 최진구가 똥 씹은 표정을 했다.
두 사람이 외래진료실로 먼저 들어갔다.
준후도 자신의 외래 진료실을 향했다.
막 출근한 외래 간호사가 스테이션에서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다.
“반가워요. 혜진 씨.”
“안녕하세요. 과장님. 실물이 더 미남이시네요.”
혜진이 준후를 향해 방긋 웃었다.
목소리에 깨발랄한 성격이 묻어났다.
파트너는 제대로 만난 듯했다.
진료 안내 및 접수를 책임지는 외래 간호사는 성격이 밝은 게 좋았다.
“혹시 오늘 예약 환자가 얼마나 있나요?”
“잠시만요. 방금 막 컴퓨터를 켜서요.”
30분 같은 3분이 흘렀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혜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과장님. 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괜찮아요. 실망 안 할 테니까 솔직히 말해줘요.”
“실망이요?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왜 실망을 하세요?”
“환자가 없는 거…… 아니었나요?”
“네? 벌써 1달 치 예약이 꽉 찼는데요?”
혜진의 말을 믿기 힘들어서 준후는 혜진 곁으로 다가갔다.
정말이었다!
오늘 진료도, 내일 진료도, 모레 진료도 빈틈없이 꽉꽉 차 있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준후는 고개를 돌려서 다시 대기석 쪽을 바라보았다.
대기석은 여전히 빈자리가 남아돌고 있었다.
모니터와 현실의 모순.
이 닿을 수 없는 간격은 대체 어떻게 해석하지?
* * *
준후는 외래 진료실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책들은 제가 레지던트 때부터 봤던 손때 묻은 책들입니다. 신경외과 전공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으세요.
-이건 인터넷에서 구입한 그림입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아시죠? 항상 환자분들께 허리를 굽히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싶어서 걸어 놨어요.
준후는 혼잣말을 하며 진료실 구석구석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촬영은 7분 만에 끝났다.
뉴튜브에 올릴 동영상이었다.
작은 임무를 완료하고 준후는 책상에 앉았다.
아직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몸이 붕 뜬 기분이었다.
개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을 줄 알았던 진료실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니…….
나중에 알아보니.
사건의 진실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신경외과 외래 진료실의 대기석과 복도가 만두피를 찢고 나온 만두소처럼 미어터졌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준후를 찾아온 외래 환자와 보호자 때문에!
너무 혼잡한 나머지.
가드들이 출동해서 준후의 진료를 예약한 환자만 로비 서쪽으로 따로 빼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자들이 폭풍처럼 밀려온 이유는 뭘까.
현수막 덕분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뉴튜브와 SNS에서 날리고 있는 유명세 덕분일 것이다.
최소한 환자가 없어서 기죽을 필요는 없겠네.
아까 자신을 비웃고 갔던 김한상을 떠올리며 준후는 깨소금을 맛을 느꼈다.
진료 시작 15분 전.
준후는 머릿속으로 외래 스케줄을 정리했다.
진료일은 월, 수, 금.
그중에서 수요일은 오전 진료 오후 수술이었다.
화, 수는 온전히 오전부터 오후까지 전부 다 수술 스케줄로 잡았다.
진료 과목은 크게 5가지였다.
뇌혈관 파트.
뇌종양 파트.
정위신경 파트.
경추·요추 파트.
소아 신경외과 파트.
보통은 다른 교수는 펠로우를 마친 전공과목 하나만 진료하는 데 비해 준후는 무려 5개를 소화했다.
메이유 클리닉 부스트업 수석 졸업자의 위엄이었다.
사실 수부외과와 외상외과도 전공으로 걸 수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두 전공은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또는 고난이도 수술이 필요할 때 대타로 뛰기로 결정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기에 들어오라고 했다.
우현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과장님을 도울 외래 레지던트입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현이 멋쩍게 웃으며 준후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외래 레지던트는 외래 진료에 참여해서 환자의 증상을 받아 적고 검사 오더를 입력하는 역할을 맡았다.
잠시 후 첫 번째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보호자는 아내로 보였다.
남성이 의자에 앉자마자 말했다.
“선생님. 제 머릿속에 시한폭탄이 있다고 합니다.”
첫 환자부터 만만치 않았다.
* * *
‘돌아이인가?’
우현은 실눈으로 폭탄을 언급한 환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환자는 별종이 아니었다.
비유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일주일 전 건강검진을 받은 환자는 Brain MRI를 통해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뇌동맥류란…….
뇌혈관이 부풀어 오르거나 뒤틀린 질환으로 방치할 경우 혈관 파열이 발생할 위험이 컸다.
“불편한 증상은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두통도 없고 어지럼증도 없습니다. 근데 혈관이 언제 터질지 몰라서 불안해서요.”
환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뇌동맥류의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
“가능하면 빨리 수술로 조치하는 게 좋겠어요.”
MRI를 살피던 준후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뇌동맥류라고 다 같은 뇌동맥류가 아니었다.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존재했다.
이 환자의 경우는 악성들만 골라 놓은 뇌동맥류였다.
뇌동맥류의 형태로는 혈관 파열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방추형이었고.
뇌동맥류의 크기는 무려 27mm.
거대 뇌동맥류였다.
이 경우 혈관 파열 시 서전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혹시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일단 다음 주중에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뇌동맥류가 아니라서 자기들도 수술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고 하던데…… 믿음이 안 가서 선생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환자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라면 고칠 수 있겠죠?”
“네.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병원이 무능한 건 아니고요. 제가 비슷한 케이스를 수술해 봐서 노하우가 있는 것뿐입니다.”
“…….”
“그쪽 병원을 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준후는 알뜰하게 상대 병원도 챙겼다. 남을 깎아내려서 본인을 치켜세우는 건 삼류 잡배나 하는 짓이었다.
“아휴. 그럼요. 수술만 잘 끝난다면 제가 약소하게나마 선생님께 보답이라도 하겠습니다.”
“환자분이 건강을 찾는 게 최고의 보답이죠. 그럼 바깥에 나가서 외래 간호사와 입원 날짜 상의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떠났다.
타다다닥.
우현이 바쁘게 오더를 입력하다가 준후에게 물었다.
“과장님. 이 환자 정말 수술해도 괜찮을까요?”
“무슨 소리니? 당연히 수술을 해야 괜찮아지지.”
“케이스가 좀 특이해서요.”
우현은 왼쪽 모니터에 떠오른 환자의 MRI 영상을 보며 쯧쯧쯧 혀를 찼다.
뇌동맥류 수술법은 크게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클립 결찰술.
뇌동맥류를 클립으로 묶어주는 수술이다.
다른 하나는 코일 색전술.
뇌동맥류 안에 철사를 채워 파열을 예방하는 수술이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
두 가지 수술 다 불가능해 보였다.
뇌동맥류 형태도 까다로운 방추형이었고 심지어 크기도 27mm로 거대했으니까.
오죽하면 환자가 먼저 다녀온 병원마저 수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원을 미뤘겠는가.
그런데 웬걸?
준후의 판단은 번개처럼 신속했다.
1초도 망설임 없이 환자에게 수술을 권했다.
우현은 그 근거가 궁금했다.
“이 환자에게는 하이브리드 수술을 하면 돼.”
“클립 결찰술도 하고 코일 색전술도 같이 하는 겁니까?”
“아니. 클립 결찰술에 다른 수술 방식을 더할 거야.”
“그게 뭘까요?”
“네가 알아 맞춰봐.”
준후는 일부러 대답을 미루고 우현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궁금한 게 있어야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해야 머리에 오래 남을 테니까.
첫 번째 진료 이후로 환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준후는 차분하게 환자를 받았다.
‘희한하네. 대체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준후의 차트 입력을 돕던 우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외래 레지던트를 하면서 수많은 교수의 진료 스타일을 지켜본 우현이었다.
그런데 준후의 진료 스타일은 다른 교수들과 완전히 달랐다.
본인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주로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이따금 필요한 질문 한두 개만 던질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하나 같이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주면 진료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히려 준후는 다른 교수보다 진료 시간이 짧았다.
어디 그뿐이랴.
준후는 우현이 바쁘다 싶으면 차트 입력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근데 키보드 타자 속도가 미쳤다.
증상 입력 및 검사 오더가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뿅하고 전자의무기록에 나타났다.
천하의 속기사도 준후 앞에서는 큰절을 올리며 배움을 청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미안한데 오늘은 점심은 혼자 먹어야겠다. 난 최 교수님과 약속이 있어서.”
“네. 과장님.”
“외래 선생님하고 맛있는 거 사 먹어. 최대한 비싼 걸로.”
준후가 씽긋 웃었다.
신용 카드를 건네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우현은 준후의 뒷모습을 쫓다가 손에 쥔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꿈벅꿈벅 거렸다.
이 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 상위 0.1퍼센트만 사용한다는 퍼플 카드였다.
잘 생겼지.
실력 있지.
돈 많지.
그렇다고 인성이 빠지지도 않지.
준후는 너무 멋져서 남자가 봐도 반할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