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82)
무공 쓰는 외과 의사-482화(482/540)
제94장 텃세(3)
참관용 수술실.
의국의 실세 부교수 김한상.
그의 충실한 오른팔 최진구.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수술방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관찰하고 있었다.
함께하면 닮는다고 했는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유지한 두 사람의 폼이 제법 닮아 있었다.
“저 눈빛. 우리를 노려보는 거 아닌가?”
김한상이 먼저 한마디 했다.
집도의 자리에 선 준후가 수술방 전경을 비추는 카메라를 뜨겁게 쏘아보았다.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무협 소설에서 부모의 원수를 만난 캐릭터의 눈빛이랄까.
거리가 한참 떨어졌는 데도 그 강렬한 감정으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게…… 말입니다.”
“자세히 말해봐.”
“제가 과장 수술에 심술을 부렸거든요…….”
“심술?”
“본래 과장 수술에 레지던트 3년 차와 2년 차가 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인턴하고 레지던트1년 차로 바꿔치기 했죠.”
“무슨 수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한상.
“별거 있습니까? 수술 스케줄이 급하게 변경되었다고 둘러댔습니다. 레지던트가 뭘 알겠어요.”
최진구가 희죽거리며 대답했다.
최진구는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준후에게 당했다.
오전 회진 중에.
오진과 잘못된 수술이 동료 교수, 환자 및 보호자, 간호사들에게 까발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그때 깎인 체면이 낭떠러지 수준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복수했다.
뒷감당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명 거리는 벌써 장전해 두었다.
최진구에게 남은 일은 준후가 꼴사납게 수술에 실패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일뿐이었다.
“자네 말이야.”
김한상이 가느다란 눈매로 최진구를 쳐다보았다.
혹시 도가 지나쳤다고 꾸중을 듣는 걸까.
굽었던 최진구의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네. 부교수님.”
“잔머리 굴리는 솜씨 하나만큼은 여전하군. 최 교수 아직 안 죽었어?”
팡! 팡!
김한상이 느닷없이 최진구의 허리를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목젖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휴. 혼나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습니다.”
“내가 자네를? 그럴 리 없지. 칭찬은 못 할망정. 자네는 이번 수술을 어떻게 보나?”
김한상이 화제를 돌렸다.
“부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일단 척추 재수술은 무척 어렵고요. 내시경 수술이면 더 어렵습니다.”
“…….”
“거기에 어시스트가 풋내기라면 뭐.”
최진구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피어났다.
“슬슬 한마디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그거 좋지.”
“우리 젊고 잘난 과장님 말입니다. X됐다는 뜻입니다.”
* * *
준후는 수술방을 비추는 카메라를 노려보다가 수술대로 눈길을 돌렸다.
수술 스태프가 바뀌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설령 바뀐다고 한들 보통 응급 환자 때문에 변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응급 환자와 상관없이 정규 수술 스케줄의 스태프가 바뀐다?
이건 누군가의 농간이자 수작이자 계략이자 함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것을 준후는 억눌렀다.
일단 수술이 우선이었다.
“너희들 내시경 척추 수술 어시스트 해본 적 있어?”
“아뇨. 없습니다.”
“저도…….”
윤찬과 인턴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죄인 같은 태도였다.
“고개 들고 날 똑바로 쳐다봐. 처음이라 낯설겠지만 요령만 터득하면 일반 수술보다 내시경 수술이 더 쉽다.”
“…….”
“나만 믿고 따르면 문제될 것 없어.”
준후가 호언장담하며 정안을 사용했다.
호수처럼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전신에서 은은하게 물결치며 뻗어나가는 내공.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강렬한 격려의 사념.
윤찬과 인턴이 자신감을 되찾았다.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활짝 폈다.
왜인지는 몰라도.
준후의 말이 신의 계시처럼 거룩하게 들렸다.
말하는 대로 이뤄질 것 같았다.
과장이 되고서는 정안을 쓸 일이 많네.
앞으로도 신세를 많이 지겠어.
두 사람의 달라진 눈동자를 읽고.
준후가 피식 웃었다.
상황은 다 수습했다.
환자의 허리를 회복하고 최진구에게 통쾌한 반격을 먹이는 일만 남았다.
“지금부터 L4-L6에 경추 유합술을 시작한다.”
준후의 목소리가 그윽하게 수술방에 퍼져 나갔다.
인턴이 복와위(Prone Position, 엎드린 자세)로 누운 환자의 허리를 소독했다.
그 위에 파란 방포를 덮었다.
피부에 발린 빨간 소독액과 파란 방포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10번.”
“네. 과장님.”
딸칵!
소독 간호사게 Scalpel(칼대)에 10번 블레이드를 껴서 건넸다.
준후는 환자의 L-5(요추 5번)을 기준으로.
양옆에 2센티미터 길이의 가로 절개창을 각각 2개 만들었다.
오늘 따라 손이 가벼웠다.
손에 쥔 메스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스으으윽.
준후가 다시 절개창을 메스로 그었다. 메스의 칼날 표면이 은빛으로 번뜩였다.
누런 지방층이 갈라지고.
허연 근막층이 갈라지고.
단단한 근육이 갈라졌다.
준후의 손놀림은 매번 섬세하고 정교했다.
환자는 고작 열흘 전 이미 디스크 감압술을 받았다.
허리 구조가 약해져 있으니.
근막과 근육층 절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회복이 빨라질 것이다.
“윤찬이는 리트랙터(견인기)로 절개창 견인하고 인턴은 이름이 어떻게 되지?”
“태성입니다.”
“태성이는 거즈로 피 좀 닦아줄래?”
“네. 과장님.”
윤찬과 태성이 동시에 대답했다.
명백히 정안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적극적이었고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었다.
최진구는 어리바리한 스태프들이 어시스트하면 수술이 망가질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착각이었다.
준후는 스태프를 부리는 데도 도가 텄다.
“윤찬이가 절개창에 포트(내시경 도구를 집어넣는 입구, 깔대기처럼 생김) 삽입해 봐.”
“제가 말입니까?”
“어렵지 않아. 포트 입구가 넓어지는 부분까지만 밀어 넣으면 돼.”
“네. 과장님.”
윤찬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내시경 수술을 어시스트 한 적도, 하물며 참관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포트 삽입 같은 중요한 처치를 하라니…….
윤찬은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딱 감고 포트를 손에 쥐었다.
과감하게 포트를 삽입했다.
“옳지. 잘했어. 딱 그 깊이로 하면 되는 거야. 옆에 절개창에도 해봐.”
“알겠습니다.”
준후의 칭찬으로 자신감이 불어났다. 윤찬은 우측 절개창에도 포트를 삽입했다.
어려운 처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성공이었다.
윤찬의 가슴에서 뿌듯함이 번져 나갔다.
“봐. 잘하잖아. 할 수 있다고 했지?”
준후의 눈썹이 무지개처럼 휘어졌다.
준후는 무림 출신이었다.
무림에서는 초식을 통해 무공을 가르쳤다.
초식이란 일종의 태권도 품세와 비슷했다.
틀에 잡힌 동작이 있었다.
방금 준후는 수술 전 내시경 처치를 초식화하여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그대로만 잘 따라 하면.
수술 전 처치에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수술에 앞서 준후는 수술대 옆에 놓인 모니터를 응시했다.
모니터에 환자의 요추 MRI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다들 모니터에 주목.”
준후가 스태프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MRI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척추체가 환자의 L-5 신경을 짓누르고 있다.”
“…….”
“그런데 우리 최 교수님은 후궁하고 황색인대만 제거했지.”
“…….”
“이게 무슨 뜻인지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윤찬과 성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환자를 건성건성 습관대로 진료하고 수술했다는 뜻이다. 보통 신경이 압박되면 후궁과 황색인대를 제거해서 감압을 해주기 때문이지.”
“…….”
“환자를 쉽게 보면 안 돼. 항상 위기는 방심할 때 오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준후는 내시경 수술의 개요를 전했다.
그리고 윤찬에게 눈짓을 했다.
“내시경 카메라, 네가 잡아봐.”
“시…… 시야 확보까지 감히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윤찬의 눈동자가 도로록 눈 밖으로 굴러 떨어질 것처럼 커졌다.
인턴도, 소독 간호사도 경악했다.
이 수술은 내시경으로 진행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시경 카메라는 준후의 눈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준후의 눈을 레지던트 1년 차에게 맡긴다니 다들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 널 못 믿겠으면 널 믿는 나를 믿어라. 알겠니?”
준후의 목소리가 푸근했다.
도무지 겁이 없는 목소리였다.
* * *
“하…… 여러모로 미쳤군요.”
수술을 참관하던 최진구가 혀를 내둘렀다.
레지던트 1년 차에게 내시경을 맡긴 것도 충격적이거늘.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1년 차의 시야 확보가 나름 수준급이었던 것이다.
1년 차라면 분명 내시경 수술 어시스트 경험이 없을 텐데도 그랬다.
보통 내시경 어시스트를 처음 하면 허리 구조물에 우당탕탕 렌즈를 부딪치기 일쑤였다.
카메라로 어디를 비춰야 할지 몰라 손이 방황하곤 했다.
그런데 웬걸?
저 1년 차는 마땅히 해야 할 실수를 미꾸라지처럼 피하고 있었다.
이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비상식의 결정체였다.
“설마 내가 어시스트를 바꿀 줄 알고 미리 교육을 시켰나?”
“그건 아닐 거야.”
최진구의 혼잣말을 듣던 김한상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지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첫 시야 확보를 저런 수준으로 소화하다니 말입니다.”
“이것도 과장 작품이군.”
“과장이요?”
“과장의 입을 잘 봐.”
최진구는 뒤늦게 준후의 입을 관찰했다. 마스크를 써서 당연히 입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꼼꼼하게 살피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준후의 마스크가 쉴 틈 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설마 그런 뜻입니까?”
“그래. 과장이 디렉팅을 하고 1년 차는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거야.”
“분명 그렇게 보이긴 합니다만…….”
최진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한 번 들었다고 복사하듯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시야 확보가요.”
“과장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모양이지.”
김한상이 쓰게 웃었다.
“이러면 자네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거 아닌가?”
“좀 더 두고 보시죠. 하늘이 언제나 과장 편은 아닐 테니까.”
최진구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한편 준후는 윤찬과 함께 순조롭게 내시경 수술을 진행 중이었다.
“그렇지. 그대로 쭉 직진.”
“렌즈를 왼쪽으로 돌려봐. 거기 있는 뼈가 후궁이다. 그 옆에 빈 공간이 최 교수가 제거한 후궁이고.”
준후는 혀로 윤찬을 조종하고 있었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준후였다. 사실 내시경을 윤찬에게 맡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 얄팍한 덫을 놓은 최진구를 골려 주기 위해서 일부러 윤찬에게 수술 시야를 맡겼다.
“그래. 거기서 멈춰. 거기가 오늘 수술할 부위다.”
“휴우. 온몸이 땀으로 축축합니다.”
“잘해놓고 뭘.”
“이게 다 과장님 덕분입니다.”
윤찬이 활짝 웃었다.
윤찬이 한 일이라고는 준후의 지시를 따른 것뿐이었다.
“그런데 과장님. 저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과장님은 내시경으로 수술 부위에 접근하기도 전에 주변 구조를 훤히 꿰뚫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실수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외웠어.”
“암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암기.”
준후가 검지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과거 메이유에서 내시경 척추 수술을 하던 중.
홍수처럼 출혈이 터진 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수술 시야가 좁은데 출혈까지 발생하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날 이후로 준후는 내시경 수술 전 MRI를 뜯어보며 환자의 허리 구조를 통째로 암기하는 버릇을 들였다.
이러면 내시경의 좁은 시야도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했다.
“와!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과장님.”
“낯 뜨거운 소리 그만하고 정신 바짝 차려. 진짜 수술은 지금부터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본격적인 척추 유합술에 막이 오르던 찰나.
마취의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교수님. 척수 내압이 많이 올라갔는데요? 뇌척수액 누수가 있는지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