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83)
무공 쓰는 외과 의사-483화(483/540)
제94장 텃세(4)
“혹시 제가 사고를 친 걸까요?”
윤찬이 스태프들을 눈치를 보며 물었다.
질문이 끝났을 때 윤찬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목소리도 모기 소리처럼 기어들어갔다.
인턴은 사실 처치를 거들었다.
소독 간호사도 준후에게 기구를 건넸을 뿐이었다.
윤찬의 생각에…….
이 자리에서 말썽을 피울 사람이 있다면 자신밖에 없는 듯했다.
과장님이 도와주셨다고 해도 난 아직 사고뭉치 1년 차인데…….
어째 일이 잘 풀린다 싶었지.
“네 잘못 아니다. 기죽을 필요 없어.”
준후의 목소리가 대쪽처럼 단호했다.
단호함으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은 윤찬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았다.
“그럼 갑자기 척수 내압이 올라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널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어. 네 처치에 문제가 있다는 건 나한테 문제가 있었다는 소리밖에 안 돼.”
준후가 턱짓으로 내시경 모니터를 가리켰다.
“내시경을 L4로 옮기고 L6까지 쭉 훑어봐. 허리 구조물 다치지 않게.”
“네. 과장님.”
윤찬이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손목이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게 조심하면서 척추를 훑었다.
“잠깐 스톱!”
“무슨 문제라도…….”
“렌즈를 척추 쪽으로 바짝 붙여봐.”
준후의 지시를 따르자 렌즈의 시야가 더 좁아졌다. 동시에 해당 부위가 더욱 크게 보였다.
줌인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이건…….”
윤찬이 말을 더듬었다.
놀란 인턴과 소독 간호사의 눈도 덩달아 동그래졌다.
L4-L5 사이에 위치한 척추 경막이 찢어져 있었다. 파열된 길이는 눈대중으로 2-3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척수 내압 상승의 범인.
녀석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었다.
아무도 못 본 걸 과장님은 보셨구나. 시야가 거의 몽골인 수준이신가?
윤찬이 속으로 감탄했다.
“수술을 연달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환자 허리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
“내시경 수술이라고 해서 부담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으니까.”
“그럼 척추 경막 파열은 정말 제 탓이 아닙니까?”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해서 꼭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인간의 몸은 신비로운 구석이 있거든. 패치 주세요.”
준후가 내시경 기구로 검지 한마디 길이의 패치를 쥐었다.
패치는 지혈 부위에 붙이는 지혈거즈의 일종이었다.
쑤우우욱!
패치가 깔대기 모양의 포트를 통과했다.
복잡한 척추 뼈 사이를 묘기 하듯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그 모습을 스태프들은 입을 벌린 채 지켜보았다.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그냥 해도 어려운 처치인데.
하물며 준후는 내시경 도구로 처치를 진행 중이었다.
비유하자면…….
긴 젓가락으로 콩을 쥐는 것처럼 말이다.
패치가 파열된 경막에 착 붙었다.
5분 정도 지났을 때, 마취의의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척수 내압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이탈 문제없고 심전도와 산소 포화도 전부 정상입니다.”
준후의 관찰력.
문제해결 능력.
그걸 뒷받침하는 경이로운 손놀림까지.
스태프들은 준후의 차원이 다른 실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 정도로 놀라긴 이른데.”
준후가 스태프들의 반응하고 피식 웃었다.
“진짜는 지금부터야. 다들 안전벨트 꽉 매. 앞으로 더 짜릿해질 테니까.”
뿌득. 뿌득.
준후가 목 관절을 좌우로 움직였다.
양손에 내시경 도구를 들었다.
레지던트 교육은 여기까지였다.
지금부터는 메이유 부스트업 프로그램 수석 졸업자의 진면모를 보여줄 시간이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의 인사가 빗발쳤다.
준후도 스태프들에게 고생했다고 알리고 수술방을 벗어났다.
지이이잉.
수술실로 나와서 준후는 허물 벗듯이 수술모와 수술 장갑, 마스크, 가운 등을 차례대로 벗었다.
놀랍게도!
수술 용품은 전부 뽀송뽀송했다.
수술실이 서늘한 탓은 아니었다.
준후가 이번 수술을 손쉽게 집도해서였다.
재수술이고, 또 수술 시야가 비좁은 내시경 수술이었지만 준후의 적수는 될 수 없었다.
손상된 디스크를 제거하고.
인공 디스크를 삽입했다.
그 과정에서 신경 손상이나 출혈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지이이잉.
L5 좌우에 각각 4개의 나사를 박았고 그 위에 철사를 연결해 고정해 주었다.
수술 직후.
수술방에서 Portable CT를 촬영해 봤다.
환자 허리의 불안정성이 예전에 비해 2배는 호전되었다.
허리 재활까지 꾸준히 받는다면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이걸로 경추·요추 파트 실력 증명은 끝났어.
못된 송아지 기강을 잡을 차례군.
준후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김한상과 최진구가 수술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준후와 정통으로 마주칠 줄은 몰랐을까.
두 사람 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흠흠, 헛기침하기 바빴다.
준후의 수술이 망하길 바랐던 사람들.
준후의 불행을 직관하고 낄낄거리려고 했던 사람들.
그들의 속이 얼마나 쓰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준후는 고소하기 짝이 없었다.
“바쁘신 와중에 제 수술까지 참관해 주시고 영광입니다.”
준후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과연 듣던 대로 실력이 출중하시군요. 재수술에 내시경 수술이라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김한상이 준후를 띄워주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눈썹 한 번 까닥거리지 않고 했다.
능구렁이 그 자체였다.
“애초에 감당할 만해서 감당했으니까요. 그나저나 최 교수님, 바쁘십니까?”
“아…… 그게 제가 곧 수술 스케줄이 있어서.”
“스케줄은 있지만 곧은 아닐 텐데요?”
준후가 세상 얄밉게 빈정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다음 수술은 2시간 뒤 아닙니까? 저와 담소를 나누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준후가 포승줄로 옭아매듯 최진구를 옭아맸다.
어딜 도망치려고!
준후는 궁지에 몰아넣은 최진구를 풀어줄 마음이 티끌도 없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른 교수들의 수술 스케줄까지 외우셨습니까?”
김한상이 본인을 챙기지 않고 준후만 띄워주자 최진구가 입술을 댓 발 내밀었다.
“기억력이 원체 좋습니다. 그럼 최 교수님 좀 빌리겠습니다.”
“어? 어?”
준후가 최진구의 팔을 붙잡고 수술방을 나왔다.
경찰이 범죄자를 연행하는 것만큼 거친 행동이었다.
최진구는 저항을 못하고 그저 준후에게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수술실이 있는 층의 의사 휴게실이었다.
준후와 최진구가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았다.
준후가 최진구를 노려보았다.
최진구는 감히 준후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탁탁탁 다리를 떨어댔다.
“아주 재밌는 짓을 하셨더군요.”
“뜬금없이 뭔 소리입니까?”
“수술 어시스트를 바꾼 사람, 최 교수님 아닙니까?”
“전…… 아닌데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시네요. 레지던트랑 황 교수님 불러서 삼자대면 해볼까요?”
“…….”
“저번에 당한 개망신으로는 모자랐나 봐요?”
준후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 차가움에 최진구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게 과장님. 바꿔치기를 했다기 보다요…… 제 말을 신중하게 들어보세요.”
최진구가 천천히 혓바닥을 예열하면서 변명을 쏟아냈다.
황 교수가 오늘 수술을 어려워하더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많아 보이더라.
블라블라, 어쩌구저쩌구.
황 교수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잔뜩 포장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준후가 아니었다.
정치질이라면 무림맹에서 신물 나게 겪었다.
저급한 핑계 따위는 쉽게 거를 수 있었다.
“더러운 말로 제 소중한 귀를 더럽히지 마시죠?”
“허허…… 더럽다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최 교수님과 저. 둘 중에 누가 심한 짓을 누가 더 많이 했을까요?”
준후가 내공을 담아 최진구를 노려보았다.
최진구는 입도 뻥긋 못 했다.
한마디라도 대꾸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 같았다.
지금의 준후는 그만큼 무서웠다.
“빙빙 돌리지 말고 가장 본질적인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죠.”
준후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최진구를 김한상과 억지로 떼어낸 목적.
조용한 곳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한 목적.
그 목적을 지금부터 달성할 작정이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부교수 김한상을 견제하고 준후 자신의 세력을 키울 발판이 만들어질 것이다.
슬슬 가볼까?
준후는 심호흡을 하고 본론을 꺼냈다.
“최 교수님. 솔직히 저 마음에 안 들죠?”
“왜 그런 걸 묻습니까?”
“사람 사이란 게 원래 솔직해야 대화가 제대로 통화거든요.”
“뭐,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당한 게 있어서 그럴까.
최진구의 목소리가 뾰로통했다.
누구의 연줄인지 몰라도 낙하산으로 과장이 된 준후.
고분고분한 맛이 없는 준후.
의국을 자기 손안에 넣고 휘두르려고 하는 준후.
그 와중에 의술은 기가 막혀서 까기도 힘든 준후.
자신에게 굴욕을 안긴 준후.
그런 준후를 최진구는 예쁘게 보려야 예쁘게 볼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이제 이야기가 좀 통하겠군요.”
“이야기가 통해요? 평행선을 그은 건 아니고요?”
최진구가 코웃음을 쳤다.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최 교수님은 김 교수님께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습니까?”
“하…… 돌겠네. 나 지금 미치게 하려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겁니까?”
벌떡!
최진구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후를 지나쳐서 휴게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준후가 최진구의 손목을 번개처럼 낚아챘다.
“가실 거면 대답하고 가세요.”
“이거 안 놔요?”
“대답하기 전에는 안 놓습니다.”
“씨X. 진짜 돌겠네. 이거 놔요. 다시 앉을 테니까.”
최진구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벅벅 하고서는 준후의 맞은편으로 돌아갔다.
준후의 속내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왜 아까부터 황당무계한 질문만 퍼붓는단 말인가.
“과장님. 멀쩡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똘끼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살짝 맛이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그래서 답변은요?”
준후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도망칠 방법이 없기에 최진구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충성? 군대에도 없는 충성이 병원 바닥에 있겠습니까? 김 교수님 옆에 찰싹 붙어 있다가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거지.”
“…….”
“김 교수님이 과장이 되면 내가 부교수가 되지 않겠어요?”
할 말을 다하니 오히려 속이 뻥 뚫린 최진구였다.
에라, 모르겠다.
기왕 엎어진 물, 될 대로 되라지.
“그거 반가운 말씀이군요. 사실 그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준후의 입가에 광기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과장에게 이런 면모도 있었나?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최 교수님은 진급이 중요하다. 김 교수님에게 바짝 엎드린 것도 그 때문이다. 맞습니까?”
“그래요. 왜요? 속물이라고 욕이라도 하고 싶습니까?”
최진구가 따지듯이 물었다.
“아뇨. 그럼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친구?”
“네. 친구요.”
준후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걸어와 최진구 앞에 섰다.
그러더니 하는 행동은…….
점잖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와 달리 준후의 손바닥은 크고 넓었다.
“저도 충성 같은 고리타분한 거 안 믿습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고. 사람이란 동물이 원래 계산적이거든요.
“속 터져 죽겠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는 겁니까?”
되묻는 최진구의 목에 핏줄이 섰다.
“제가 의국을 장악하면 최 교수님을 부교수로 승진시켜드리죠. 대신 지금 이 순간부터 최 교수님은 제 그림자 오른팔이 되는 겁니다.”
준후의 깜짝 발언에 최진구는 귀를 의심했다.
김 교수의 오른팔이 나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포섭하겠다고?
서준후.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