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85)
무공 쓰는 외과 의사-485화(485/540)
제95장 딜레마(1)
새벽 3시.
준후는 서재로 쓰는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심결을 되뇌며 운기조식을 펼치고 있었다.
단전이 넘치도록 내공을 쌓고.
마나 하트까지 보유한 덕분일까.
피곤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24시간 중에 잠을 잔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쉽지 않네.’
준후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마에 자글자글 주름이 잡혔다.
조화경에서 현경으로 발돋움하는 길이 녹록치 않았다.
근 10년 동안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무림에서 사는 것도 아니지 않나.
현대 의술과 과학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지금 실력으로도 충분히 대활약 중인데.
굳이 무공 경지를 올릴 필요가 있나.
만약 준후의 처지를 아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물을지도 몰랐다.
준후의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아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후 생각은 달랐다.
신경외과 서전으로 준후의 최종 목적지는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3년 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그 방법을 찾았지만.
전부 헛수고였다.
말짱 꽝이었다.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를 연구하는 의사가 손에 꼽혔다.
그들의 연구 결과 또한 신통치 않았다.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기존 자료를 분석한다든가.
최악의 경우 유사과학을 섞은 엉터리 치료법을 내놓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준후가 내놓은 답은…….
결국 무공이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깨달음에 눈을 뜨면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우우우욱!”
준후가 급하게 눈을 뜨고 복부에 손을 얹었다.
속이 뒤집어졌다.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답답하고 거북했다.
잡념에 빠진 탓에 기혈이 역류했다.
자칫 주화입마가 들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
준후는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통제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흘린 땀이 식으면서 피부가 서늘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포기하는 순간 내 꿈은 거기서 끝난다.
준후의 집념과 열정이 끓어올랐다.
무릎 꿇거나 주저앉는 일은 역시 성미와 맞지 않았다.
* * *
그날 오전 신경외과 과장 집무실.
김한상과 휘하의 교수들을 휘어잡기 위해서 준후는 필살의 무기를 준비 중이었다.
지이이잉.
때마침 떨리는 휴대폰.
아영이 연락했나 싶어서 확인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을 확인한 순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한 달 뒤에 자체 Q.A 평가. 미리 준비할 것.]Q.A는 Quality Assurance의 약자였다.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한다는 뜻이었다.
Q.I(Quality Improvement)라는 개념을 요즘은 쓰기도 했다.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것을 뛰어넘어 이를 개선하겠다는 의미였다.
‘조만간 Q.A가 있는데 입을 싹 다물고 계셨다?’
준후는 김한상과 그 일당의 행동이 괘씸했다.
Q.A 시행 공고는 분명 준후가 과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과장 자리가 공석이었으니 과장 대리로 김한상이 간부 회의에 참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한상은 준후가 부임하고 나서 자체 Q.A 평가가 있었음을 알려야 했다.
준후가 미리 알아야 대비를 할 테니까.
그런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는 준후를 엿 먹이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거하게 뒤통수나 맞아 보라는 뜻이었다.
그때 가서 준후가 몰랐다고 변명한들 통할까.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오히려 그 중요한 걸 왜 몰랐냐며 궁지에 몰렸을 확률이 컸다.
과장으로서의 리더십이 휘청거렸을 것이다.
‘첩자를 심은 보람이 있군.’
준후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의 무기를 챙겨 컨퍼런스 룸으로 향했다.
오전 컨퍼런스와 오전 회진은 평화롭게 끝났다.
하지만 이는 폭풍전야에 잠깐 누리는 평화에 불과했다.
“교수님들은 전부 컨퍼런스 룸으로 모이세요. 예외는 없습니다.”
준후가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티타임을 가지려던 교수들 다수가 구시렁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과장님은 무슨 생각일까요? 교수들을 전원 소집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글쎄요.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분이라…….”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요? 그냥 과장 놀이하고 싶은 거지.”
김한상 패거리의 교수들이 준후를 물고 뜯고 씹고 맛보았다.
그들은 준후를 진짜 과장으로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에게 진짜 과장이란 성골 김한상뿐이었다.
“부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교수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김한상에게 몰렸다.
김한상은 그저 헛헛하게 웃어버렸다.
교수들이 컨퍼런스 룸으로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두툼한 인쇄물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처음 보는 인쇄물을 들춰보았다.
각종 그래프와 수치가 지끈한 두통을 유발했다.
“지금 보고 계신 게 뭔지 압니까?”
먼저 와 있던 준후가 착석을 끝낸 교수들을 눈으로 훑었다.
시선이 독수리처럼 매서웠다.
교수들은 감히 대답을 못 했다.
준후가 내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뭔지 몰라도 그들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교수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요동쳤다.
“원무과에 통계 자료를 부탁했습니다. 우리 신경외과 데이터만 골라서.”
“그래서 우리 보고 뭘 어쩌라는 겁니까?”
조승현이 따지듯이 물었다.
김한상의 오른팔이 최진구라면 왼팔은 조승현이었다.
최진구가 지략가 스타일이라면 조승현은 장수 스타일이었다.
상대를 적으로 인식했다면 일단 들이받고 봤다.
“자료를 보고 모자란 게 있으면 고쳐야죠. 마침 잘 나서셨네요. 조교수님.”
준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조승현을 제대로 손봐줄 작정이었다.
조승현은 무례한 말투로 준후의 신경을 긁어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승현을 꺾는다면 김한상의 날개를 꺾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도 있었다.
“조교수님.”
“왜요?”
“최근 3년 동안 외래 진료 만족도 평가가 꼴찌네요? 나눠드린 인쇄물 4페이지를 확인해 보세요.”
준후의 말에 교수들이 일제히 인쇄물을 살폈다.
그곳에 외래 진료 만족도가 오름차순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본인의 순위를 확인하고서 일부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일부 교수는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인 건 조승현이었다.
조승현의 피부가 붉게 익었다.
어떤 수치가 됐든 본인이 꼴찌라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적당한다면.
그 수치심은 증폭되기 마련이었다.
“이것도 대단한 업적이네요. 안 그렇습니까?”
“빈정거리지 마십시오.”
“문제를 지적했으면 고칠 생각을 해야죠. 본인 자존심을 세울 게 아니라.”
준후가 내공을 뿜어내며 컨퍼런스 룸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압박감을 느꼈을까.
교수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말은 못 했지만 다들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지옥이 될 거란 걸.
“자료가 잘못 됐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원무과에서 가서 따지세요. 원무과장님 연락처 드릴까요?”
“으으으…….”
“그동안 외래 진료 만족도 평가는 상반기·하반기로 나눠서 진행했죠?”
“네.”
“우리 과는 앞으로는 매월 합니다. 인사고과에 반영할 테니 주의하세요.”
“다른 과는 안 그런데 왜 우리 과만 그럽니까?”
조승현이 건수를 잡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다른 과에서 죽으라면 죽을 겁니까? 그리고 고객 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죠? 신경외과의 외래 진료 만족도가 4등입니다. 뒤에서 4등이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준후가 따끔하게 꾸중했다.
두루뭉술한 이야기 아니라 데이터를 근거로 한 이야기였다.
수치와 그래프와 순위가 떡하니 있으니.
교수들은 감히 준후에게 반박할 엄두를 못 냈다.
“그리고 조교수님은 입원 환자들은 유독 병상 회전율이 낮네요? 다들 인쇄물 10페이지 주목해 주세요.”
인쇄물을 확인하고 조승현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입가에 애매한 웃음이 걸렸다.
꼴찌가 아니 건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 자료에서도 순위가 밑바닥이었다.
“뇌종양 환자라서 수술 후 회복시간이 길 수밖에 없어요.”
“천 교수님은 아니던데요?”
“천 교수님과 제가 보는 환자가 똑같지 않으니까요.”
조승현은 발바닥까지 내려간 자존심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기 싸움에서 지면 끝장이다.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인쇄물 12페이지 확인해 주세요. 뇌종양을 악성도와 스테이지로 분류했습니다.”
“…….”
“난이도 높은 수술을 한 것도 천 교수님이고요. 병상 회전율이 더 좋은 것도 천 교수님입니다.”
준후가 데이터로 조승현에게 폭력을 가했다.
조승현의 가슴에 새파란 멍이 들었다.
마음에 어퍼컷을 얻어맞은 것처럼 마음이 휘청거렸다.
“조교수님. 천 교수님을 질투하시는 거 아닙니까?”
“…….”
“환자를 늦게 퇴원시키면 본인 환자가 많아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 자신이 천 교수님보다 낫다고 자위하는 거 아닙니까?“
준후의 지적에 조승현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온몸이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을 느꼈다.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다.
소리 높여 반박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목이 잠겨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준후의 지적이 사실이었으니까.
조승현은 천건우 교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준후가 언급한 이유로 일부러 환자를 늦게 퇴원시키고는 했다.
그런데 과장으로 부임한 지 1달도 안 된 새파란 애송이가 어떻게 자신이 가슴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둔 진실을 꿰뚫어 봤을까.
조승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심술이라도 읽혔단 말인가.
어쨌거나 속마음이 들킨 탓에 조승현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조승현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조승현은 컨퍼런스 룸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 *
준후는 김한상과 가까이 앉은 교수들을 하나하나 격파했다.
딱히 표적 수사를 한 건 아니었다.
통계 자료에서 수치가 낮은 이들이 공교롭게 김한상의 잔당이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김한상을 믿고 까불어댔다는 증거였다.
중립파 교수들.
그러니까 김한상에게 속하지 않은 교수들.
그들은 전반적으로 평가가 좋아서 잔소리할 필요가 없었다.
“성 교수님은…….”
“강 교구님은…….”
“표 교수님은…….”
준후에게 호명된 교수들은 하나 같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팩트 폭행을 당하고 똥 씹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준후는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당근 없이 채찍만 휘둘렀다.
아무리 반대 세력이라도 너무 공격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반감을 사면 반격을 당하거나.
도리어 증오심을 키우는 것이 아니냐.
누군가는 준후의 화법이 거칠다고 지적할 수도 있었다.
준후의 생각은 달랐다.
준후의 목적도 달랐다.
일단 의국을 완벽하게 ‘지배’한다.
교수들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때가 되면 그 때부터 서로를 배려하고 챙겨주는 분위기를 만들어도 늦지 않다고 준후는 확신했다.
그렇게 30분 가까운 교수 사냥(?)이 끝났다.
피만 흐르지 않았을 뿐.
다들 준후가 물어뜯은 상처로 너덜너덜했다.
소리 없는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회의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준후의 시선이 부교수 김한상에게 머물렀다.
“김 교수님.”
“네 말씀하시죠. 과장님.”
김한상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본인 세력이 맹공에 당했음에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고요했다.
“한 달 뒤에 병원 자체 O.A가 있습니다. 근데 왜 제게 말씀 안 하셨죠?”
준후의 질문이 칼날이 되었다.
칼날이 번뜩이며 김한상의 목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