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86)
무공 쓰는 외과 의사-486화(486/540)
제95장 딜레마(2)
쾅!
준후가 컨퍼런스 룸의 문을 닫고 나갔다. 그 소리가 꼭 폭탄 터지는 소리 같았다.
“…….”
“…….”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을 휘어 감았다.
특히 김한상 파 교수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들이 준후의 집중 포격 대상이어서 그랬다.
누구라도 나서서 준후를 손가락질하고 불만을 한 바가지 토해낼 법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준후에게 너무 세게.
또 너무 많이 맞은 탓이었다.
마음에 상해를 따질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전치 12주 짜리의 부상을 입었다.
괴로운 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읽고 중립파 교수들이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김한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누구지?”
살기등등한 눈빛이 남은 교수들을 훑었다.
우연치 않게 눈이 맞은 이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안에 배신자가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두들겨 맞았는데 배신자요?”
오른팔 최진구가 힘없이 대답했다.
“과장이 Q.A를 따졌잖아.”
김한상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는 준후를 점잖게 골탕 먹일 계획이었다.
한 달 뒤에 있는 병원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Q.A 평가에 대해 입을 다문다.
들은 정보가 없으므로 준후는 Q.A에서 박살 난다.
준후의 리더십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이게 김한상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준후는 이미 Q.A에 대해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귀띔을 한 게 분명했다.
“저희 중에 감히 그런 간 큰 짓을 할 사람이 있을까요?”
최진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중립인 교수들이 지나가다가 한마디 흘린 것 아닙니까?”
“물론 그랬을 수도 있어. 하지만…….”
“하지만?”
“중립 교수들도 과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수술이야 야무지게 한다지만…….”
“…….”
“나이도 어리고 폭군 같은 구석이 있으니까.”
김한상이 고개를 저었다.
속을 알기 쉬운 쪽을 고르라면.
그는 자신을 따르는 교수들보다 중립파 교수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중립파 교수들은 투명 유리였다.
겉과 속이 일치했다.
그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 이외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의국 운영에도.
승진에도.
방관자처럼 몇 걸음 물러서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신들만큼이나 중립파 교수들도 준후를 미워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준후가 부임한 이후.
신경외과 의국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흙탕물처럼 지저분해졌다.
중립파 교수들은 ‘다툼’을 싫어한다.
“저야 잘 모르겠지만 부교수님께서 배신자가 있다고 하면 배신자가 있는 거겠죠.”
최진구가 실실 쪼개며 말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큰 실수했어요. 부교수님 코털 건드렸다가 무사한 사람 없는 거 알죠? 정신 단디 차립시다.”
최진구가 노골적으로 협박성,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그 말을 들은 김한상이 빙그레 웃었다.
분위기 잡는 일만큼은 최진구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자신이 손을 더럽히지 않도록 궂은일을 도맡는 기술도 최진구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최진구가 곁에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오늘도 고생하세요.”
김한상이 가장 먼저 회의실을 떠났다.
그 뒤를 최진구가 따랐다.
“부교수님.”
“응?”
“건방진 과장을 이대로 내버려 두실 겁니까? 이대로라면 콧대가 하늘까지 올라갑니다.”
최진구가 씩씩 거리며 말했다.
“저도 크게 한 번 당했고. 오늘은 다른 교수들까지 무차별 난타를 당했습니다.”
“…….”
“반격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죠. 그래야 부교수님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나도 다 알아.”
김한상의 한쪽 입꼬리가 삐뚤어졌다. 비열한 계략을 짤 때만 짓는 표정이었다.
사실 오늘 회의에서…….
김한상은 크나큰 모욕을 느꼈다.
준후가 자신을 따르는 교수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일.
이 일의 참 의미가 뭐겠는가.
김한상의 권위에 도전장을 던진 것 아니겠는가.
의국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김한상은 준후의 도전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오늘 괜찮은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야.”
“무슨 작업입니까? 궁금합니다.”
호기심에 눈을 빛내는 최진구.
김한상은 잠시 망설였다.
이걸 솔직하게 말해줘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고민은 짧지 않았다.
오른팔을 믿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믿을까.
“그게 말이야. 오늘 저녁에…….”
* * *
‘역시 보통이 아니란 말이지.’
외래 진료실로 향하던 준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 달 뒤에 병원 자체 O.A가 있습니다. 근데 왜 제게 말씀 안 하셨죠?
준후는 모처럼 김한상을 직접적으로 겨눴다.
O.A는 그냥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스파이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제 아무리 준후라도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O.A 평가에서 바닥을 친다면.
준후의 권위는 날개 없이 추락할 테니까.
-제가 그 말씀을 안 드렸습니까? 전에 한 줄 알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 자꾸 깜빡깜빡하는 군요.
-…….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김한상이 고개까지 숙이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쯤 되자 준후도 반격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내가 실수했다. 미안하다.
상대가 먼저 납작 엎드리는데 더 무슨 공격을 하랴.
사과하는 사람을 짓밟았다간 오히려 준후의 평판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준후는 눈물을 머금고 물러섰다.
주의를 주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다.
역시 늙은 여우.
만만치 않아.
즉답을 한 걸 보면 빠져나갈 구멍도 미리 만들어놓은 게 분명해.
그러나 준후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계획은 차근차근 완성 중이었다.
의국을 ‘지배’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부산 신경외과 의국은 완전히 준후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 * *
일주일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그동안 준후는 서전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다졌다.
준후가 ‘명의’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래로 환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기석 자리가 부족한 탓에 병원 측에서 준후의 진료를 보는 환자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할 지경이었다.
본래 외래를 관리하는 간호사는 한 명인데 한 명을 추가로 고용하기도 했다.
외래 환자가 많았으므로 수술 환자도 많았다.
텅텅 비어 있던 준후의 스케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 치나 밀려 버렸다.
“쯧쯧쯧. 무리하네. 본인 몸 생각도 해야지.”
“저러다가 의료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준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교수가 있었고.
걱정하면서도 그 걱정이 현실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교수도 있었다.
그러나 둘 다 의미가 없었다.
준후는 보란 듯이 철인처럼 스케줄을 소화했다.
운기조식 + 영양제 조합.
단전에 내공과 마나 서클의 내공.
이 두 가지는 준후를 살아 있는 자양강장제로 만들어주었다.
준후는 도무지 피로를 몰랐다.
이쯤에서는 딱히 본인의 실력을 숨길 이유가 없었으므로 하루에 수술을 5-6개까지 집도하곤 했다.
전력을 다하는 준후만큼 또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부교수 일당과의 냉전은 계속되었다.
준후가 통계로 팩트 폭행을 한 이후로 직접적인 다툼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휴전에 불과했다.
양쪽 다 알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전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남은 시간에 준후는 틈틈이 뉴튜브를 촬영해 편집자에게 보냈다.
물론 동영상의 화력과 화제성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업로드만 했다 하면 인급동에 올라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주말에는 광현의 출판사를 찾았다.
자서전 작업에 돌입했다.
광현이 준후와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녹음하면 대필 작가가 글을 쓰는 형태였다.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선 글을 쓰는 사람이 준후가 아니었고 대필 작가는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모든 것이 적어도 표면적으로 순조롭던 나날들.
그 속에 어느 날.
준후는 진료부원장의 부름을 받았다.
병원의 1인자가 병원장이라면 진료부원장은 2인자였다.
그런 거물이 준후를 직접 찾은 것이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예전이라면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고, 긴장도 하고, 의심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준후는 이미 ‘스파이’를 통해 사전 정보를 얻었기에.
진료부원장의 이름은 서성원.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60대 남성이었다.
뾰족한 삼각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1더하기 1은 2인 것처럼 뻔한 대화가 초반에 오갔다.
부산 생활은 어떠냐.
신혼 생활은 어떠냐.
과장으로 부임한 소감은 어떠냐 등등.
본론은 그다음에 나왔다.
진료부원장이 대뜸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불편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준후도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래. 들어올 테면 얼마든지 들어와 봐.
준비는 끝났어.
“자네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더군. 근데 말이야. 좋은 소리가 별로 없어.”
진료부원장이 실눈으로 말을 이었다.
“다른 교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분란만 일으킨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분란이라…… 방금 사용하신 단어가 많이 편향되어 있네요.”
“응? 뭐라고?”
진료부원장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준후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세를 펼칠 줄 몰랐던 것이다.
“진료부원장님께서 한쪽 말만 들으신 건 아닐까 싶습니다.”
“…….”
“분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병폐를 고치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까지 신경외과 ‘개판’이었거든요.”
탁!
준후는 의사 가운 품에서 의료 통계 자료를 꺼내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진료부원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이게 뭐지?”
“신경외과 통계 자료를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한 겁니다. 잠깐만 봐주시죠.”
“그러지.”
진료부원장이 인쇄물을 손에 들었다.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수술 성공률.
병상 회전율.
외래 환자 만족도 평가 등등.
각 항목별로 교수들의 점수가 보기 좋게 정렬되어 있었다.
원무과 자료를 준후가 2차적으로 가공한 듯 보였다.
뭐지?
의욕만 넘치는 풋내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치밀하고 계산적인 구석이 있군.
과연 김 교수가 고전하는 이유가 있었어.
“자료에서 성적이 심하게 뒤떨어지는 교수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꾸짖었습니다.”
“…….”
“그걸 분란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좋게 달랠 수도 있었잖아.”
“3년 넘게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X으로 보지 않을까요?”
준후는 상스러운 말을 하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마치 이 자리를 위해 이를 칼을 갈고 있었던 것처럼.
그 기세에 진료부원장은 살짝 주춤했다.
이러면 곤란했다.
김한상과 단단히 약속하지 않았던가.
준후를 따로 불러서 찍 소리도 못하게 기를 눌러주겠다고.
이대로라면…….
먹히는 쪽은 진료부원장이었다.
척!
진료부원장은 보고 있던 인쇄물을 테이블에 성의 없이 던졌다. 준후에게 유리한 전쟁터에서 싸워줄 이유가 없었다.
“자네 뜻은 알겠어. 그럼 이번에 다른 이야기를 나눠볼까?”
진료부원장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