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90)
무공 쓰는 외과 의사-490화(490/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90화
제96장 천고만난(1)
헬기 계류장이 있는 별관 옥상에 도착할 때까지.
병원장과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준후는 마침내 VIP 환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고현철 의원.
정치 거물로 뉴스를 제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어서 이름은 물론이요 얼굴까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병원장이 발 벗고 나서는 것도.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 못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쯧쯧쯧. 아직도 열등감을 못 버렸나 보군.’
준후가 속으로 혀를 찼다.
병원장은 스승 박재현에게 열등감이 있었다.
서울 신원대 본원 신경외과 과장일 때부터 학회에서 스승을 만나면 으르렁거렸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병원장은 이번에도 한 발 늦었다.
결국 정치계 입문도 스승이 한 발 빨랐으니까.
쾅!
앞서 걷던 병원장이 옥상 문을 거칠게 밀었다.
옥상의 풍경보다 대기 중이던 헬기의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 프로펠러의 거센 바람이 준후를 맞이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무조건 살리라고. 알았지?”
“…….”
“자네도 사람 살리는 거 좋아하잖아? 그게 자네 인생에 유일한 낙이잖아?”
프로펠러 소리에 지지 않겠다는 듯 병원장이 악다구니를 썼다.
준후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장은 옥상 출입구에 그대로 멈춰 섰고 준후만 헬기를 향해 다가갔다.
의사 가운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앞머리도 정신없이 흩날렸다.
헬기 옆에서 두 명의 스태프가 대기 중이었다. 두 사람은 조끼와 헬멧을 이미 착용하고 있었다.
“외상외과 조교수 윤덕환입니다.”
“간호사 강유정이에요.”
“신경외과 과장 서준후입니다.”
인사는 짧게 끝났다.
준후눈 윤덕환이 내민 복장을 착용하고 헬기에 올랐다.
드르르륵!
헬기 문이 닫혔다.
헬기가 수직으로 솟구쳤다.
옥상이 멀어지고 병원 주변의 풍경이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파란 하늘이 머리 위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헬기의 불규칙한 진동에 준후의 몸이 덜덜덜 떨려왔다.
‘괜찮을까 모르겠네.’
준후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두 주먹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오는 길에 병원장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환자는 7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본래라면 즉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낙하 도중.
조경을 위해 심어둔 나무에 걸려 충격이 흡수되었다고 한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건 그 때문일 것 같다고 한다.
준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메이유에서 수련했던 당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를 떠올렸다.
총 4건 정도가 뇌리를 스쳤다.
그중 2명은 죽고 2명은 살았다.
무공을 익힌 서전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었다.
준후에게도 한계는 존재했다.
부디 이번 환자는 감당할 수 있는 환자였으면 좋으련만…….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습니까?”
윤덕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짜증이 많은 건지.
헬기 소리를 이기려다 보니 말투가 사나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1초가 급했는데 출동이 무려 15분이나 지연됐습니다. 그쪽을 기다리느라고요!”
“…….”
“수술 중 병원장님 호출이 있었습니다. 급한 호출을 받고 나왔죠.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수술 중이었다고요? 대체 무슨 수술이었는데요?”
“거대 뇌동맥류에 클립 결찰술과 뇌혈관 우회술입니다.”
준후의 대답에 윤덕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비록 신경외과가 아닌 소화기 외과 전공이었지만 해당 수술이 고난이도라는 건 잘 알았다.
더군다나 병원장까지 들먹이니.
더 쏘아붙일 건덕지가 없었다.
윤덕환은 콧김을 씩씩 뿜으며 분노를 삼켰다.
사실 준후의 사정 따위 알 바가 아니었다.
윤덕환에게 중요한 것.
그것은 준후 때문에 출동이 늦었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환자가 위독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기다린 보람, 충분히 느끼도록 만들어드릴게요.”
“무슨 수로요?”
“환자를 살릴 겁니다. 무조건.”
“드라마를 많이 보셨네. 사람 목숨이 어디 본인 마음대로 되는 겁니까?”
“어느 정도는요.”
대답하는 준후의 눈빛이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 저 사람은 헬기 안에서도 조근조근 말하는 것 같은데 말이 다 들리고.’
윤덕환은 준후에게 조금 놀랐다.
하지만 준후를 향한 불신은 여전히 뿌리 깊었다.
그는 이 상황이 못 견딜 만큼 불쾌했다.
외상외과 조 교수인 자신이 버젓이 있거늘 왜 병원장은 준후를 꼭 동행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을까.
자신이 그렇게 못 미덥단 말인가.
물론 준후가 메이유 클리닉에서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은 윤덕환도 알았다.
근데 그게 뭐 어쩌란 말인가.
고작 1년의 수련으로.
4년 넘게 수련한 자신을 쫓아올 수 있을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발목이나 안 잡으면 다행이었다.
윤덕환은 이번 기회에 준후에게 낀 거품을 싹 걷어줄 작정이었다.
두고 보라지.
이 몸이 진짜가 무언지 확인시켜 줄 테니까.
* * *
같은 시각.
도담 모아 아파트 옥상.
구급 대원 두 명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하아아. 하아아. 하아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스트레쳐 카에 누운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CPR을 무려 15분 동안 진행했다.
일반인도 아닌 구급 대원이 CPR을 실시하고 제세동기를 사용했으면 환자는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환자를 포기하려던 찰나.
환자의 심장 리듬이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돌아왔다.
“후. 그래도 헛고생은 아니었네.”
“그러게 말입니다. 출동한 의사들 볼 낯은 있겠어요.”
선임 민석이 한마디하고.
후임 현중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의 시선은 환자에게 떨어질 줄 몰랐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태평하게 방심할 수 없었다.
7층에서 추락했다고 하는 환자는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얼핏 단잠에 빠진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많은 두 사람은 알았다.
낙사 환자는 의외로 겉이 멀쩡하다는 것을.
중요한 건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라는 것을.
“근데 선배님.”
“왜?”
“병원에 이송한다고 해서 환자가 살아날 수 있을까요?”
현중이 환자의 활력징후를 체크하며 물었다.
“이거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수준인데…….”
현중의 목소리가 차츰 작아졌다.
체온은 정상.
호흡은 분당 10회의 희미한 저호흡.
문제는 혈압과 맥박이었다.
환자의 혈압이 60mmHg/30mmHg로 곤두박질쳤다. 그에 반해 맥박은 분당 200회를 넘어갔다.
장기 어딘가가 파열되어 무시무시한 출혈이 발생했다는 증거였다.
응급 출동을 많이 해봤지만 이 정도로 위독한 환자는 오랜만이었다.
만약 환자가 지금쯤 병원에 도착했다면 기적적인 회생을 기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진은 헬기를 타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
다시 병원까지 이동하고.
또 수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환자의 상황은 절망스럽기만 했다.
도저히 답이 없었다.
“들어오면 안 돼. 지금 구급 대원들이 치료 중이야.”
“저 가야 돼요. 저기 우리 아빠가 있어요!”
옥상 출입구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가 옥상 입구를 통제하는 가운데 한 소녀가 막무가내로 저지선을 뚫고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환자의 어린 딸 같았다.
교복을 입은 딸이 울부짖고 있었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아빠를 보면 아이는 평생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테니까.
“보호자한테는 연락했지?”
“네. 아내한테 연락했는데요. 부산 신원대 병원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마침 일하는 곳 하고도 가깝다고 하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국회의원이 왜 투신을 했을까?”
민석이 환자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 보면.
권력과 재산이 행복을 꼭 보장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이분이…….”
현중이 대답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두두두두!
저 멀리서 창공을 가르며 헬기가 접근하고 있었다.
* * *
마침내 헬기가 아파트 옥상 계류장에 착륙했다.
준후는 서둘러 착지해서 구급대원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누구보다 빠른 속도였다.
“환자분 상태 노티해 주세요.”
준후는 앞뒤를 다 자르고 질문부터 했다.
기다렸다는 듯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황과 지금까지 한 응급처치에 대해 노티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준후 이마에 잡힌 주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거 야단났다.
이대로라면 환자는 병원보다 저승에 먼저 도착할 것이다.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됐다.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상태를 보죠.”
준후는 환자의 가슴에 손부터 얹었다.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손바닥을 타고 환자의 명치 부근에 한 점으로 모였다.
파(波, 물결 파)자 결을 사용하자 내공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환자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조영제를 활용한 CT나 MRI 검사 같은 효과를 내는.
오로지 준후만이 펼칠 수 있는 ‘전신 내공 조영술’을 펼친 것이다.
거센 내공의 파도로.
준후는 환자의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으므로.
준후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심각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군.’
환자의 상태는 들은 것보다 더 심각했다. 내공이 전해주는 소식은 하나같이 비보뿐이었다.
머리는 두개골 분쇄 골절에 지주막하 출혈, 뇌실질내 출혈.
가슴은 갈비뼈 골절에 심장 눌림증.
간 열상으로 인한 간 출혈.
비장 파열.
척추 골절과 고관절 골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부위를 찾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혼자 가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무슨 짐꾼인 줄 알아요?”
양손에 구급함을 든 윤덕환이 투덜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구급 대원의 시선이 윤덕환에게 향했다.
기회는 바로 지금!
준후는 평소보다 내공을 듬뿍 담아 점혈법을 펼쳤다.
팟! 팟! 팟! 팟!
준후의 검지가 환자의 머리, 가슴, 복부를 전광석화로 찔러나갔다.
점혈 부위가 도합 30부위였는데.
점혈을 하는데 걸린 시간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양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주요 혈맥과 혈 자리를 줄줄 꿰고 있고, 또 손속이 빨라서 가능한 신기였다.
“휴우.”
준후는 참았던 한숨을 몰아쉬었다.
일단 발등에 떨어질 불은 껐다.
임시변통이지만 최소한 수술할 때까지 출혈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환자부터 헬기로 옮기죠. 노티와 오더는 헬기에서 진행하겠습니다.”
“뭔데 아까부터 리더 행세입니까?”
윤덕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준후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아까 말했죠. 환자 무조건 살린다고. 바꿔 말하면 환자가 죽으면 제가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
“환자를 책임질 사람이니 내가 리더예요. 윤 교수님은 환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게 본인이 살리고 싶다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니…….”
“그러니까 책임 질 거냐고요.”
준후가 말을 중간에 잘랐고 윤덕환은 대답을 못했다.
두 사람의 기 싸움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드르르륵.
준후는 스트레쳐 카를 끌고 헬기로 이동했다.
환자를 헬기 내 침상에 눕혔다.
환자 감시 장치가 순식간에 연결되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따라 탑승한 윤덕환과 강유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준후의 손이 번개였다.
“환자분 잘 부탁드립니다.”
“고생하십시오.”
구급대원들의 배웅과 함께 헬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두두두두!
하늘에서의 전쟁, 아니 하늘에서의 지옥도가 그때부터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