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91)
무공 쓰는 외과 의사-491화(491/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91화
제96장 천고만난(2)
간호사 강유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헬기에 탑승한 이후.
보여준 준후의 활약은 찬란했다.
외상 치료 경험도, 헬기에서의 치료 경험도 준후는 풍부해 보였다.
소위 말해 얼 타는 모습은 손톱만큼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일단 교통정리와 오더가 쾌속이었다.
“윤 교수님은 복부 초음파, 흉부 초음파부터 진행해 주세요. 환자의 내상 정도부터 살핍시다.”
“…….”
“강 선생님은 저를 도와주세요. 일단 중심 정맥관부터 잡을 겁니다. 수액 세트 세팅하고 핫솔(하트만 용액)하고 승압제 준비해 주세요.”
속사포 지시를 내리면서도.
준후는 쉬지 않았다.
환자가 입고 있는 셔츠를 양손으로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투두두둑.
단추가 옥수수 알갱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셔츠 앞섶이 벌어지면서 환자의 복부와 가슴이 훤히 노출되었다.
힘이 얼마나 좋으면.
맨손으로 단추를 뜯어버리지?
그사이 준후는 벌써 수술용 장갑까지 착용했다.
“조종사님.”
“네. 말씀하세요.”
“헬기 속도를 더 올릴 수 있습니까?”
“그게…… 가능은 한데요. 그러면 기내 진동이 심해서 선생님들 치료가 힘들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헬기 속도를 지금보다 조금 더 올려주세요.”
“휴우. 저는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네. 책임은 제가 져요.”
준후의 지시를 받은 조종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속도 조종 칸을 한 단계 올렸다.
두두두두!
프로펠러 소리가 한층 사나워졌다.
발밑에 펼쳐진 도심의 풍경이 눈에 담기도 힘들 만큼 빠르게 멀어져갔다.
조종사가 예고한 대로 헬기 내의 진동이 한층 강렬해졌다.
“준비 끝났습니까?”
“네. 과장님.”
준후가 한 손에 카테터를 쥐었다.
다른 한손에는 알콜솜을 쥐었다.
알콜솜으로 환자의 목 주변을 문질렀다. 화한 알콜 향이 헬기 안에 퍼졌다.
푸우우욱!
준후가 카테터를 냅다 환자의 경정맥(목정맥)에 꼽았다.
‘저런!’
강유정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준후의 행동이 지극히 무모하고 투박해 보였다.
왜냐하면…….
헬기의 진동이 심해지면서 헬기 내의 모든 것들이 떨리고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사람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라면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도 모자랄 것인데 준후는 자포자기한 것처럼 환자의 목에 카테터를 쑤셔 넣은 것이다.
카테터가 빗나가면 뒷수습은?
“강 선생님. 지금 뭐합니까? 정신 똑바로 안 차려요!”
준후의 불호령이 터졌다.
잠깐이지만 프로펠러 소리보다 준후의 호령이 더 크게 들렸다.
크게 놀란 강유정이 몸을 들썩거렸다.
아찔하다고 생각했던 건.
강유정만의 착각이었을까.
카테터는 정확히 환자의 목정맥에 꽂혀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강유정이 다급하게 사과했다.
카테터와 하트만 용액이 연결된 수액 세트를 연결했다.
똑. 똑. 똑.
수액통에서 수액이 이슬처럼 떨어져 내렸다.
수액의 점적을 확인하고 강유정은 준후가 말한 승압제를 수액에 믹스했다.
그다음 과정도 일사천리였다.
준후와 함께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준후는 이른 바.
의료 내비게이션이었다.
“산소 포화도가 92퍼센트까지 떨어졌습니다. 기도 확보 하고 인공호흡기 달게요. 산소 치료 합시다.”
“기본적인 혈액 검사는 가능하죠? 혈액 검사 바로 진행하세요.”
“환자 머리 높여주세요. 뇌압을 조금이라도 낮춥시다.”
준후는 지시를 내리면서도 계속 본인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환자에게 꼭 필요한 처치를 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멀티태스킹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외상센터 간호사 5년 차.
강유정은 준후처럼 완벽한 의사를 본 적이 없었다.
준후는 철옹성이었다.
시시각각으로 환자에게 몰려드는 죽음의 무리들을 굳건하게 방어해 주는.
‘뭐야? 7분밖에 안 지났어?’
손목시계를 확인한 강유정이 실소를 터뜨렸다.
체감 상 30분은 지났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니었다.
30분 동안 할 일을 7분 만에 끝냈기 때문일 것이다.
준후의 오더가 그만큼 칼 같았고.
준후 본인의 처치도 눈부셨기 때문이리라.
“과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강유정의 시선이 준후를 향했다.
준후는 환자감시장치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강유정의 시선도 준후를 따랐다.
바이탈 중에서는 체온과 호흡 수치만 정상이었다.
맥박과 혈압은 평균에 못 미쳤다.
하지만 이는 눈부신 성과였다.
헬기에 탑승한 직후 환자의 바이탈은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중심 정맥관으로 각종 약물을 때려 부은 덕분에 환자는 안색도 얼마만큼은 돌아왔다.
“과장님?”
“이제 심전도가 말썽이네.”
준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 *
“이제 심전도가 말썽이네.”
준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혼잣말 같았지만 혼잣말이 아니었다. 강유정과 윤덕환이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두 사람과 달리 준후는 환자의 상태를 이미 빈틈없이 파악하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전신 내공 조영술로 환자의 몸을 훑은 바가 있어서였다.
헬기에 탑승한 후.
발 빠르게 응급 처치하면서.
급한 불은 다 껐지만 아직 가장 강력한 불이 남아 있었다.
바로 환자의 심장눌림증이었다.
심장눌림증.
심낭압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환은 심장을 감싸고 있는 막에 압력이 높아져서 발생한다.
환자의 경우.
외상으로 심장막에 강한 충격이 가해진 게 원인이었다.
“복부 손상이 말도 못해요. 비장은 이미 파열됐고 간 문맥도 손상됐어요.”
그동안 은둔자처럼 조용하던 윤덕환이 모처럼 노티를 했다.
그의 시선은 초음파 모니터에 붙박이로 붙어 있었다.
오른손에 쥔 초음파 스틱도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흉부 초음파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윤덕환의 말이 느닷없이 멎었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낭패라는 목소리로 노티를 이어갔다.
“빌어먹을! 심낭압전이에요.”
“시…… 심낭압전이요?”
강유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침착한 이는 오직 준후뿐이었다.
“급한 대로 심낭천자부터 하죠. 지금은 그게 최선이에요.”
“아뇨. 심낭천자는 최선이 아니에요.”
준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준후가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을까.
윤덕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럼 심낭천자 말고 뭘 할 수 있는지 들어나 봅시다.”
“간단해요. 개흉술을 할 겁니다.”
“개흉술? 헬기에서 환자 가슴을 열자고요?”
윤덕환이 콧방귀를 끼었다.
헬기 안에서 개흉술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첫째로 헬기 진동 때문에 실수할 확률이 높았다.
둘째로 개흉술을 했다가 실패하면 뒷수습이 불가능해서였다.
의료 헬기의 장비가 예전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했다지만 그렇다고 수술방과 비교할 만큼은 아니었다.
“과장님. 개흉술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강유정이 윤덕환보다 먼저 나섰다.
준후의 결정을 은근하게 뜯어말렸다.
“심낭천자만 해도 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위독한 환자를 살리고 싶으면.”
“…….”
“매 순간 최선의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준후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전신 내공 조영술의 결과를 확인한 순간부터 준후는 오픈 카디악(개흉술)을 고려하고 있었다.
“병원장님을 업고 있어서 되도록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
“…….”
“피차 선은 넘지 맙시다.”
“제가 무슨 선을 넘었죠?”
두 사람이 뜨거운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파바박, 사방으로 불똥이 튀는 듯했다.
중간에 낀 강유정만 노심초사였다.
“하찮은 영웅 심리 같은 거 버리라고요. 사람이란 게 항상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단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선을 추구하는 게 독이 될 수도 있어요.”
“…….”
“과유불급 몰라요?”
“제가 보기에…… 윤 교수님은 오픈 카디악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무서워요. 당신이 애먼 환자를 잡을까봐.”
준후는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윤덕환을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다. 윤덕환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출세한 게 꼴 보기 싫었을 수도 있고.
병원장이 본인보다 준후를 더 신뢰하니 속이 배배 꼬였을 수도 있고.
근본적으로 준후의 실력 자체를 믿지 않아서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준후는 언제나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준후가 볼 때 심낭천자는 반쪽짜리 치료였다.
환자를 위해선 개흉술만이 정답이었다.
주관식이 아니라 객관식인 것이다.
“외상으로 인해 심낭압전이 발생했을 때는 개흉술이 필수입니다. 심장에 손상이 있을 수 있거든요. 알고 계세요?”
“개흉술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봐요? 이제 없는 말도 막 지어내고.”
비웃음을 날리는 윤덕환.
“논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제 아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참 나. 미치고 팔짝 뛰겠네. 과장님 아내분이 흉부외과 서전이라도 됩니까?”
“네. 흉부외과 서전입니다.”
준후의 태연한 대답에 윤덕환은 할 말을 잊었다.
준후의 입을 봉쇄하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본인의 입이 봉쇄되어버렸다.
남편은 신경외과 의사.
아내는 흉부외과 의사.
뭐 이런 조합이 다 있담?
설마 개흉술을 하고 싶어서 아내를 팔지는 않았을 테고.
인맥(?)에서 밀려버린 윤덕환은 반격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쩝쩝, 입맛만 다셨다.
“강 선생님. 오픈 카디악 준비해 주세요.”
“네. 과장님.”
준후의 지시에 강유정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이제 주절거리는 건 관두겠어요. 말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데 입만 아프지, 뭐.”
“…….”
“앞으로 과장님의 지시만 따를게요.”
“…….”
“단 문제가 생기면 난 1도 책임 없는 겁니다? 아까 과장님이 약속한대로.”
“진작 이러시지 그러셨어요?”
“그건 그렇고. 헬기 속도라도 좀 늦춰야 하지 않겠어요?”
윤덕환이 화제를 돌리며 조종석을 힐끔 거렸다.
중심 정맥관까지는 어떻게 소화했다고 쳐도 오픈 카디악마저 요동치는 헬기 안에서 펼치는 건 불가능했다.
“아까 말했죠. 최선의 최선이 중첩되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그럼 설마…….”
“이 속도, 그대로 갑니다.”
“……알아서 하세요.”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윤덕환이 쿨하게 넘어갔다.
이젠 준후를 완전히 포기한 듯했다.
준후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영겁과 같았던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개흉술 세팅이 완료되었다.
본격적인 개흉술에 앞서.
준후는 환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오히려 남의 부러움만 사는 거물 정치인이 왜 투신을 했을까.
무엇이 그를 가파른 낭떠러지로 몰아붙였을까.
그 이유를 준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환자를 살린다면 그 이유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준후는 그 이야기가 몹시 듣고 싶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포기하지 마세요.
적어도 나는 아직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환자에게 느끼는 애잔함을.
준후는 의술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우우우웅.
단전에서 솟구친 내공이 정수리에 모였다. 정수리에 모인 내공은 이내 준후의 전신을 묵직하게 내려 눌렀다.
무게 중심을 잡는 천근추.
이를 전신에 펼친 것이다.
준후의 몸을 뒤흔들던 헬기의 진동은 어느새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쉴 새 없이 덜덜 거리는 윤덕환·강유정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