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97)
무공 쓰는 외과 의사-497화(497/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97화
제97장 야무진 꿈(3)
‘역시 과장님! 미쳤네!’
예나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준후가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길래 처음에는 왜 그러나 싶었다.
그런데 시선을 돌려보니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준후의 팔에 안겨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주변까지 살피는 드넓은 시야.
아이의 머리가 깨지지 않게 움직이는 속도와 순발력.
준후와 함께할 때마다.
입을 떡 벌리며 감탄한 일만 생기는 예나였다.
꽈당!
준후가 먼저 아이에게 도착한 후에야 의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요란한 소리에 카페 손님들 시선이 준후에게 몰려갔다.
손님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다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술렁거렸고 일부는 준후 쪽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예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준후는 두 팔로 받치고 있던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는 중이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온통 흰자 투성이였다. 벌어진 입술에서 게거품이 보글보글 일어났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사지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보호자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 자리를 비운 걸까.
“과장님. 아이를 응급실로 옮길까요?”
“아니. 괜찮아. 좀 더 지켜보자.”
준후가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벌써 아이가 쓰러진 이유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이 잔잔한 호수의 표면이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예나가 노파심에 속삭였다.
준후의 눈에는 아이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예나의 눈에는 아이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발작과 경기가 심해지면 대형 사고로 번질 듯했다.
“안 괜찮으면 이렇게 두 손 놓고 있겠니?”
“아이가 뭐 때문에 이러는 거죠?”
“네가 직접 맞춰봐.”
“히잉. 알려주세요. 저 답답한 거 못 참아요.”
예나가 앙탈을 부렸지만 1도 통하지 않았다.
준후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CPR이 없으니까 심장마비는 무조건 아니고.
천명음.
그러니까 비정상적으로 쌕쌕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천식도 아닐 테고.
테이블에 먹다 남은 케이크가 있는데 혹시 아나필락시스인가.
근데 이상하네.
아나필락시스라면 아이를 응급실로 보내는 게 맞을 텐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예나는 미궁에 빠진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그 어떤 진단도 속 시원하게 들어맞는 것이 없었다.
“저기요. 아이를 한시라도 빨리 응급실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남성이 따지듯 물었다.
준후를 향한 눈빛에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그는 아이를 수수방관하는 준후의 태도가 영 못마땅했다.
한달음에 달려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의 대처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지금처럼 구경만 할 거면 왜 그렇게 요란하게 달려왔단 말인가.
“가만히 지켜본다고 아이가 좋아지겠어요?”
“네. 좋아집니다.”
“뭐라고요? 진심이에요?”
“네. 진심으로 좋아진다고요.”
준후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철철 흘러 넘쳤다.
사내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얼굴까지 벙 쪄버렸다. 그 태도는 비상식의 끝판왕이었다.
아이는 누가 봐도 위독했다.
앉아서 보나, 누워서 보나, 엎드려서 보나 위독했다.
“이러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면 당신이 책임이라도 질 겁니까?”
“당연히 책임져야죠. 책임 못 질 일이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어요.”
“웃긴 사람이네. 빨리 나와 봐요.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아이를 걱정하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의사 면허 없으면 가만히 계시죠?”
준후가 도발하듯 물었다.
“아…….”
사내가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의사 면허라는 단어가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민망한 나머지 두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주변의 날카로웠던 눈초리도 한결 너그러워졌다.
“…….”
“…….”
한 차례 말다툼이 끝났다.
카페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손님들은 하나 같이 쓰러진 아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잡담은 어느새 곶감을 만난 갓난아이처럼 뚝 멎어버렸다.
큰 발작을 일으키며 카페를 뒤흔들었던 아이는 놀랍게도 차차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거칠었던 호흡이 온화해졌다.
격렬했던 사지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새하얗게 질렸던 피부는 불그스름해졌다.
그동안 준후가 한 일이라고는…….
천장을 보며 똑바로 누워 있던 아이를 옆으로 눕도록 자세를 바꿔준 것뿐이었다.
숨넘어가는 아이에게 해준 처치치고는 초라하게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그 효과는 놀라웠다.
“하림아! 정하림!”
때마침 들려오는 한 여성의 외침.
아이의 보호자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이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 * *
카페를 떠난 준후는 또 다른 카페를 찾았다.
준후 곁에는 예나가 앉았고.
맞은편에는 모자가 앉아 있었다.
보호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아이를 돌봐줘서 고마웠다고.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에 아이가 쓰러졌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준후가 멋쩍게 웃었다.
준후가 한 일 중 가장 중요했던 일.
그것은 혼절한 아이가 바닥에 머리를 찧지 않도록 달려가서 아이를 품에 안은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딱히 손을 쓴 것도 없었다.
아이를 옆으로 눕히는 회복 자세.
그러니까 침, 가래, 토사물이 기도를 막는 일을 예방하는 자세를 취해준 것뿐이었다.
남들 몰래 내공을 써서.
경천동지할 만한 검사나 치료를 한 것도 아니었다.
“형, 먹을래요?”
하림이가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던 마카롱을 준후에게 내밀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행동도 티 없이 맑았다.
방금까지 본인이 주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잘 먹을게.”
“히히. 네.”
하람이가 건네 마카롱을 준후가 먹었다.
보호자는 그런 하림이를 지켜보며 눈가를 적셨다.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저보다야 하람이가 고생이죠.”
보호자의 목소리에 한숨이 섞였다.
“발작이 자주 있는 편인가요?”
“근 1년 사이에 심해졌어요. 주기도 점점 빨라지고.”
“교수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약물 치료를 조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하자고…….”
“수술은 꺼려지시겠군요.”
“네. 아무래도 하림이가 워낙 어리다 보니까요.”
“과장님. 저 계속 이렇게 따돌리실 거예요?”
잠자코 있던 예나가 귓속말로 물었다. 예나는 아직도 하림이가 쓰러진 이유를 몰랐다.
정위신경외과 파트 전공이 아닌 만큼 이쪽으로는 이해가 둔한 게 당연했다.
“뇌전증.”
준후가 작게 속삭였다.
예나가 그제야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뇌전증.
과거에는 간질이라고 불렸던 질환이다.
최근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면제에 악용되어 언론에 주목을 받았던 질환이기도 했다.
뇌전증의 원인은 다양했다.
보통은 뇌손상 병력이 있는 환자들이 앓았으며 주 증상은 발작(Seizure)이었다.
뇌전증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면 주변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보통은 회복 자세를 취해주고.
차분히 지켜보면 본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준후가 하림이를 방치하듯 내버려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림이 학교생활에 지장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있죠.”
보호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친구들이 하림이를 좀 꺼려한다고 하더라고요. 발작으로 쓰러진 건 딱 한 번뿐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강렬하게 보였을 테죠.”
“저런…….”
준후가 혀를 찼다.
딱한 사정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림에서도 뇌전증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비록 그때는 뇌전증을 까맣게 몰랐지만.
무림맹 학관에서 교육받던 시절.
진주 언가의 언사성이 뇌전증을 앓았다.
아무런 까닭 없이 게거품을 물고 혼절하는 언사성을 학도들을 따돌렸다.
귀신이 들려서 저런다고.
성인들도 뇌전증 환자를 곱게 못 보는 마당인데 하림이 처지는 오죽할까 싶었다.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하림이는 마카롱을 가지고 놀기에 바빴지만.
“하림이가 수술을 받았으면 좋기는 한데요.”
보호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계속했다.
“영 내키지가 않네요. 이 어린아이의 머리를 열어야 한다는 게.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부르르 몸서리치는 보호자.
대화는 그렇게 10분 만에 종료되었다.
모자가 떠나고 준후와 예나도 제원대 탐색을 마쳤다.
“뭔가 이런 저런 일이 많고 바빴던 것 같은데. 의외로 소득은 별로 없었네요.”
보조석에 앉은 예나가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준후의 차를 타고 신원대로 복귀 중이었다.
“제원대 병원이 토박이 병원이라서 잘 되고 있다면 저희가 손 쓸 게 없잖아요?”
예나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최소한 신경외과만큼은 우리가 제원대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몰라. 원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법 아니겠어요?”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세요?”
“있지.”
“그게 뭔데요?”
“비밀.”
준후가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반면 예나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투덜거리기 바빴다.
“칫! 과장님은 비밀이 너무 많아요.”
* * *
그날 오후.
준후는 모처럼 병원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병원장은 준후를 대 환영했다.
준후를 맞이할 때 입꼬리를 귀에 걸고 있었으며 준후를 두 팔로 안아주었다.
특별한 손님에게만 내준다는.
스페셜 티를 대접하기도 했다.
꽃향기가 섞인 고소한 커피향이 집무실을 가득 메웠다.
병원장의 환대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준후가 고현철을 살렸으니까.
8층에서 투신한 탓에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던 고현철을 두 다리 멀쩡하게 퇴원시켰으니까.
병원장의 정계 진출에 다시 파란불이 들어왔으니까.
준후의 부임 이래로.
신경외과의 각종 병원 통계 수치가 급상승했던 것도 환대의 이유 중 하나였다.
병원 안에서도. 또 바깥에서도.
준후는 누구나 인정하는 ‘핫’한 서전이었다.
병원장은 준후의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한참 동안 준후의 활약상을 입에 담았다.
다른 교수들이라면.
콧대를 높이고.
어깨를 치켜세웠을 테지만.
준후는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병원장의 칭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결과의, 결과에 의한, 결과를 위한 것만 따지는 병원장이었다.
준후의 활약이 뜸해지는 순간.
병원장은 승냥이처럼 준후를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병원장이 비행기를 태워준다고 해서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니었다.
“병원장님.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좋아. 허심탄회하게 말해봐.”
병원장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제원대 병원이 저희 병원보다 수익률이 좋다는 건 알고 계시죠?”
“모를 리가 있나? 그것 때문에 탈모도 왔었는데. 근데 그건 어쩔 수가 없어.”
“…….”
“제원대 병원은 터줏대감 같은 곳이야. 우리가 아무리 용을 써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준후가 오늘 첩보(?) 활동으로 깨달은 바를 병원장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확실히 무서운 인간이긴 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능력만큼은 넘버원이었다.
“그래도 병원장님이 계시는 동안 최소한 한 분야에서라도 제원대를 뛰어 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가 그걸 하겠다고?”
병원장이 준후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자세를 바꿨다. 소파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다리를 꼬았다.
팔짱도 꼈다.
“네. 해보고 싶습니다.”
“흐음…… 눈빛을 보아하니 거하게 판을 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어째 느낌이 좋지 않군.”
“…….”
“당연히 생각해 둔 바는 있겠지?”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준후는 바로 돌직구를 던졌다.
이 공을 병원장이 잡는다면 스트라이크가 될 것이고 못 잡는다면 에러가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