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98)
무공 쓰는 외과 의사-498화(498/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98화
제97장 야무진 꿈(4)
“그러니까 뇌전증 클리닉을 따로 만들고 싶다.”
“…….”
“그것도 모자라서 뇌전증 수술 전용 로봇 수술을 들여놓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역시 병원장님이십니다. 두 말 할 필요가 없군요.”
병원장이 들은 바를 요약하자 준후가 생글생글 웃었다.
하지만 병원장은 준후를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준후의 야심만만한 프로젝트.
그것이 실패한다면 그 후폭풍을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지?
이 기회에 나를 날려 버리겠다는 건가?
아니면 정말 성공시킬 자신이 있는 건가?
병원장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병원 정치 9단인 그조차도 준후의 이번 수만큼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한 번에 다 들어주기는 그렇고. 일단 뇌전증 클리닉을 세우는 일이라면 빠르게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원장이 우선 준후의 간부터 보았다.
“기왕 할 거면 한꺼번에 추진해야죠. 그래야 탄력을 받습니다.”
“서 과장. 뇌전증 전용 로봇을 들여오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알고 있나?”
“40억 정도 하지 않습니까?”
“40억이 어디 애들 코 묻은 돈인 줄 알아?”
준후가 발언이 너무 가벼웠기에.
병원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 2대 정도 들여놨으면 하는데요. 2대 정도는 있어야 수술방을 돌리기도 좋을 겁니다.”
병원장은 차마 할 말을 잊었다.
한 대를 도입하는 일도 백번 양보해서 들어줄까 말까였다.
그런데 뭐라고?
두 대를 도입하고 싶다고?
이쯤 되면 막 나가가자는 건가 싶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돈 개념이 빵점이군. 병원 재정을 거덜 내고 싶은 건가?”
“…….”
“신경외과에 90억을 투자하라니.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전 본전 뽑을 자신 있습니다.”
“어떻게?”
“로봇 수술은 비보험이라 수술비가 세고 일반 수술보다 수술 시간이 4배 정도 짧습니다. 길게 보면 로봇 수술을 도입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죠.”
준후가 강경하게 나갔다.
부리부리한 눈동자는 물러설 의지가 없음을 단호하게 내비쳤다.
준후가 알기로 뇌전증 전용 로봇을 보유한 병원은 빅 5 병원 중에 딱 한 곳이었다.
서울 세진 병원.
의학 전문 신문에서 읽은 기사에 따르면.
서울 세진 병원의 뇌전증 로봇 수술은 5개월이나 수술 예약이 밀려 있다고 들었다.
오늘 하림이를 만나면서.
준후는 그 기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자네 입에서 본전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의외군.”
병원장이 씨익 웃었다.
꼬고 있던 다리가 풀리고 팔짱도 풀렸다.
준후가 만약 환자를 위해.
뇌전증 클리닉을 설립하고 로봇을 도입하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병원장은 100퍼센트 거절하지 않았을까.
병원장이 머리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준후는 선명하게 들리는 듯 했다.
하여간 약삭빠른 건 알아줘야 했다.
“뇌전증 클리닉을 운용하고 로봇 수술을 운용하는 게 돈이 된다고?”
“네. 물론입니다.”
“내 마음이 동하게 좀 더 설득해 봐.”
“뇌전증은 뇌줄중, 치매에 이어 세 번째로 흔한 신경 질환입니다. 전 세계의 환자를 합치면 5천만 명 정도나 되죠.”
“…….”
“고령화와도 밀접하게 관련 있는 질병인 만큼 앞으로 그 수요는 넘쳐나면 넘쳐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 더 해봐.”
병원장의 목소리에서 어느새 흥이 묻어났다.
“물론 뇌전증은 약물로 치료가 가능한 케이스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더 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서울도 아니고 부산에서 그 수요를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병원장이 모처럼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충분히 해볼 만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일단 입소문만 나면 전국에서 환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겁니다.”
“…….”
“어디 국내뿐이겠습니까? 의료 관광으로 연계한다면 외국 환자 유치도 기대해 볼만 합니다.”
준후는 병원장에게 드리운 낚시대에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왕창 달았다.
이래도 네가 안 물고 버텨?
……하는 심정으로.
“너무 달콤한 음식은 이가 썩기 마련인데.”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크게 먹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병원장님의 목표가 단순히 현상 유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준후가 낚시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거의 다 넘어온 것 같은데.
아직 멀었나?
병원장이 준후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 제안은 폐기처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병원장 한 사람뿐이었다.
“후우. 뜬금없이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뭐지?”
“저를 위해서입니다.”
“서 과장, 자네를 위해서?”
“네. 저를 위해서.”
준후가 뇌전증 클리닉을 설립하고 뇌전증 수술 전용 로봇을 도입하려는 데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라면 당연히 환자를 위해서였다.
오늘 오전 하림이의 발작을 보고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동안 뇌혈관·뇌종양 파트에 몰두한 나머지.
정위신경 파트에 무심했다는 걸.
차마 헤아리지 못했다는 환자가 있다는 걸.
둘째는 과장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좀 더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서였다.
준후가 대활약을 하고 또 이름값을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편에 있는 김한상 교수 패거리는 준후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았다.
준후의 인기를 거품 취급했다.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그들의 콧대를 찍어 누른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준후는 2가지의 이유 중.
후자의 것만 병원장에게 전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지이이잉.
훼방꾼처럼 전해지는 콜폰의 진동.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병원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준후가 콜폰을 꺼냈다.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번호를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그래도 일단 받았다.
“신경외과 서준후입니다.”
-…….
“네. 네.”
노티를 듣고 대답하는 준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콜폰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지금 당장 내려가겠습니다.”
통화를 끊자마자 준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장님. 용단을 내리는 대로 연락을 주시죠. 저는 응급 환자 때문에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러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늦어도 내일 중에는 연락하지.”
“감사합니다.”
준후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바람처럼 집무실을 떠났다.
톡. 톡. 톡.
병원장이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준후가 앉았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을 위해서 뇌전증 로봇을 들여 놓겠다고? 그 말을 내가 곧이곧대로 믿겠어?”
병원장이 코웃음을 쳤다.
* * *
응급실.
수부외과 펠로우 정지훈이 한 침상 앞에 서 있었다.
침상에 5살 남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진정제를 투여한 덕분일까.
엉엉 울고불고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는 아이가 순한 양처럼 잠들어 있었다.
아이 곁에서는 보호자가 다리를 떨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분 전.
정지훈은 응급실 콜을 받고 다급하게 응급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았던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아이의 왼쪽 엄지발가락이 뭉텅 잘려 나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정지훈이 당장 튀어나올 것 같은 눈동자로 보호자에게 물었다.
절단 사고 환자 대부분은 성인이었다.
그것도 주로 공장 노동자에게 발생했다.
그런데 젖살도 안 빠진 아이의 발가락이 잘리다니…….
이런 경험은 정지훈도 처음이었다.
“그게요…….”
보호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도중에 아이 발가락이 에스컬레이터에 끼어버렸어요.”
“아…….”
안타까운 신음이 가장 먼저 터졌다.
이성은 그다음에 작동했다.
“아이 발가락은요?”
“여기 있습니다.”
보호자가 떨리는 손으로 검은 흰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비닐봉투 안을 확인한 순간, 정지훈은 버럭 짜증이 솟구쳤다.
하마터면 보호자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절단된 발가락을 이렇게 보관하면 안 됩니다!”
“왜…… 왜요? 얼음을 넣으면 좋다고 하던데요?”
“얼음이 절단된 부위에 직접 닿으면 안 돼요! 그럼 조직이 괴사해 버린다고요!”
“…….”
“선생님. 이런 기초적인 것도 확인 안 했어요?”
정지훈이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앳된 외모의 간호사 움찔 몸을 떨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무래도 신규 간호사인 모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가져가서 생리 식염수로 세척하고 이중 밀봉한 다음에 얼음을 넣으세요.”
“네. 선생님.”
간호사가 절단된 발가락이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 번개처럼 자리를 떠났다.
침상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선생님. 저희 지민이 발가락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정지훈의 벼락 호통에 겁먹은 보호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상태를 보겠습니다.”
사각 사각.
정지훈은 엄지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가위로 잘라냈다.
붕대가 스르륵 풀렸다.
꽁꽁 숨어 있던 절단면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야단났네. 야단났어.’
정지훈은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에스컬레이터에 발가락이 절단된 탓에 절단면이 고르지 못하고 제멋대로였다.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에스컬레이터 특유의 레일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얼핏 보면 쥐가 파먹은 것 같기도 했다.
과연 이걸 원상 복구할 수 있을까.
엄지발가락 보관 상태도 최악인데?
“선생님. 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 구급차를 타고 세 시간 동안 헤매다가 도착했어요. 여기서도 버림받으면 우리 지민이는 발가락 없이 살아야 해요.”
보호자가 눈물로 애원했다.
정지훈의 의사 가운을 붙잡아가며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물론 안타까운 비극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정지훈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수술을 할 교수님이 없었다.
한 분은 세미나를 갔고 한 분은 외래 진료 중이고 다른 한 분은 정규 수술 중이었다.
신원대 병원 수부외과는 무늬만 수부외과였다.
고질적인 인력부족에 허덕였고 오로지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눈 딱 감고 저질러볼까?
병원 뺑뺑이를 돌리는 건 아이한테도.
보호자한테도 못할 짓이잖아.
정지훈은 잠시나마 의사로서의 정의감을 불태워봤다.
하지만 뜨거움은 삽시간에 식었다. 애초에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주제 넘는 짓이었다.
발가락이 깔끔하게 절단되어도 수술이 가능할까 말까인데.
이렇게 지저분하게 잘린 발가락을 집도할 깜냥이 정지훈에게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무기력에 빠진 정지훈은 자신이 화려한 시궁창에 사는 생쥐처럼 느껴졌다.
겉으로 보면 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걸치고 제법 근사하게 구는 것 같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지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보호자분. 죄송…….”
정지훈이 머뭇거리며 차가운 현실을 전하려는 찰나였다.
파바바박!
누군가가 헐레벌떡 침상으로 다가왔다.
정지훈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서준후.
메이유 부스트업 과정을 수료한 최강의 신경외과 서전.
병원 안팎에서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풍운아.
대체 누가 준후에게 연락했을까.
“선생님. 절단된 발가락 처치해서 다시 가져왔습니다.”
때마침 간호사도 침상으로 복귀했다.
이에 준후가 보관된 발가락을 한 번 쓱 보고 절단된 발가락도 쓱 훑어보았다.
무심한 듯 매서운 눈빛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접합할 수 있겠습니다. 당장 수술 하시죠.”
준후가 제멋대로 미쳐 날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