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499)
무공 쓰는 외과 의사-499화(499/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99화
제97장 야무진 꿈(5)
“과장님. 누구에게 연락을 받으셨습니까?”
정지훈이 준후에게 깍뜻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 사람은 잰걸음으로 수술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수술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준후도 이번만큼은 보법을 밟을 이유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받았는데?”
“그렇습니까? 저는 연락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그랬겠지. 내가 심어놓은 사람이 전화했으니까. 수부외과 쪽에 문제가 생기면 전화 달라고 했거든.”
“심…… 심어놓은 사람이요?”
놀란 정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상력이 풍부한 걸까.
첩자나 스파이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준후는 그저 웃고 말았다.
“응급의학과 교수 중에 있어. 의대 동기지.”
“설마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병원을 장악하겠다는 그런 야망이 있으신 건 아니죠?”
“드라마나 영화 좀 작작 봐라.”
정지훈이 펼친 상상의 나래가 더 커지기 전에 준후는 주먹으로 정지훈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준후가 알기로.
부산 신원대 병원은 외과 계열이 약했다.
정확히 말하면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면…….
병원장 때문이었다.
외과가 상대적으로 돈이 안 되니 외과 계열의 규모를 전반적으로 확 축소해 버린 것이다.
수부외과도 그 피해자 중 하나였다.
다른 외과 계통이야 준후 전공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도울 수 없었지만 수부외과라면 달랐다.
신경외과에서 뻗어 나가는 세부 전공인 만큼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었다.
신경외과·정형외과 전문의 면허를 획득하면 수부외과 세부 전공에 지원이 가능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과장님이 와주셔서 너무 든든합니다.”
“오, 립 서비스도 할 줄 알아?”
“립 서비스라니요. 진심입니다!”
정지훈이 펄쩍 뛰며 말했다.
준후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분명 그 등 뒤로 휘황찬란한 광채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빛을 정지훈은 똑똑히 보았다.
그에게 준후는 구세주였다.
“사실 과장님 생각을 못 한 건 아닌데요…… 요즘 워낙 바쁘시잖아요. 연락을 드리기 껄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연락은 해봐. 오늘 같은 날도 있을 수 있으니까.”
“네. 과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지훈이 허리까지 숙여가며 감사를 표시했다.
‘나도 이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나? 지금 같은 방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는지…….’
준후의 눈가에 시름이 깊어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게 다른 의사들이나 다른 과를 돕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제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 한들 준후의 몸뚱이는 하나뿐이었다.
양자역학의 양자도 아니고, 3번 수술방에 존재하면서 4번 수술방에도 존재하는 신기를 펼칠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만 해도 그랬다.
제원대 병원 탐방으로 시간을 빼놓지 않았다면 이 환자는 수술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병원 뺑뺑이만 신나게 돌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허망하게 발가락을 잃었을 것이다.
의료 시스템은 스승님이 개혁하기로 했고 나는 최소한 병원 시스템이라도 개혁해 봐야겠어.
그러려면 병원장까지는 올라가야겠지.
내가 병원장이 되면.
일단 외과부터 싹 갈아엎는다.
남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비밀 같은 포부를 가슴에 품고서 준후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술실이 코앞이었다.
* * *
지이이잉.
9번 수술방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천장에서 하얀 소독액 연기가 쏴아아 쏟아졌다.
꼭 소화기 연기 같았다.
언제나처럼 수술방 공기는 서늘했다. 스태프들을 긴장하게 하고 섬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숨을 들이 마실 때.
알싸한 알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삼십여 발자국 앞에 수술대가 놓여 있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등 불빛이 수술대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그저 짧은 연극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준후는 그 연극에 극작가인지도 모르겠다고.
환자의 연극이 희극으로 끝날지.
비극으로 끝날지는 오로지 준후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바이탈은 이상 없죠?”
“네. 전부 정상입니다. 심전도와 산소 포화도도 정상이에요.”
소독 간호사가 대답했다.
“안 그랬으면 저 울었을 겁니다.”
준후가 너스레를 떨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평소와 달리 침상의 아래쪽에 위치했다.
수술 부위가 발가락이었으므로 준후의 왼쪽편에는 소독 간호사가 서 있었다.
맞은편에는 정지훈이 서 있었다.
그게 스태프의 전부였다.
접합 수술은 난이도가 높은데 반해 수술에 참여하는 스태프가 의외로 일반 수술보다 적었다.
숙련된 스태프를 찾기 힘든 이유도 있었고.
꼼꼼한 처치가 생명인 만큼 수술 템포가 느려서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준후는 물끄러미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이는 꿈나라에 푹 빠져 있었다.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이다.
보통 절단 수술은 환자의 전체적인 감각을 알아보기 위해 전신마취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
아이에게 어른의 수술을 강요하는 건 너무 가혹했다.
맨정신으로 접합 수술을 지켜본다면 아이는 평생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발가락 다시 볼까요?”
“네. 과장님.”
소독 간호사가 발가락이 담긴 비닐봉투를 준후에게 건넸다.
준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호자가 발가락을 직접 얼음에 닿도록 보관했다고 했지?”
준후가 정지훈에게 물었다.
“네. 거의 한 시간은 노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믈기 때문에 오염이 되고 또 조직이 동사했을까 봐 걱정됩니다.”
“으음…… 내 눈에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네.”
준후의 이마에 지렁이 주름이 잡혔다.
지렁이가 꿈틀거렸다.
“아까는 괜찮다고 바로 수술하자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생각은 변함없어.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술을 하기에 꽤 아슬아슬하다는 뜻이었지.”
“아…… 그렇군요.”
“발가락 접합 수술 어시스트는 해봤어?”
“딱 한 번 해봤습니다, 작년에. 발가락 절단 환자는 많이 않아서요.”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준후는 일부러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질질 끌었다.
발가락을 회복시킬 여유를 갖기 위해서였다.
준후는 스태프들이 모르게 손톱 끝으로 엄지발가락의 현지혈을 자극하고 있었다.
현지혈은 발톱 끝과 발가락 관절 사이에 위치한 혈이었다.
일단 혈이 살아야 발가락도 사는 법이었다.
혈을 자극함과 동시에.
준후는 발가락에 내공도 불어 넣었다.
얼음에 직접 닿아서 손상되었을 조직들을 은근하게 녹여주는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과장님. 제 착각인가요?”
“뭐가?”
“발가락에 갑자기 혈색이 도는 것 같은데요? 뭔가 불그스름해진 것 같습니다.”
관찰력이 좋은지.
정지훈이 발가락의 변화를 금방 눈치챘다.
“하늘이 우리 수술을 돕는 모양이다.”
준후는 얼렁뚱땅 넘어갔다.
어차피 준후가 점혈법과 내공으로 발가락을 회복시켰다는 사실까지 정지훈이 알아채는 건 불가능했기에.
“지금부터 엄지 발가락 접합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준후의 외침이 낭랑하게 퍼졌다.
순간 스태프들의 눈이 비장하게 빛났다.
살짝 굽어 있던 허리도 꼿꼿하게 퍼졌다.
본격적인 수술에 앞서.
소독간호사가 준후에게 발가락을 받았다. 발가락을 수술 보조판 위에 올려놓았다.
준후는 미세현미경에 눈을 얹었다. 보조판 위에 올라간 발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와.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거의 서울 밤하늘에서 별 찾는 꼴 아닙니까?”
맞은편에서 정지훈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정지훈도 미세 현미경으로 발가락을 살피는 중이었다.
발가락을 보면 볼수록.
한숨만 터져 나왔다.
접합수술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혈관과 신경 문합수술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었으니…….
바로 손상된 혈관과 신경을 찾는 일이었다.
외부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해 수많은 혈관과 신경이 끊어지고 숨어 있었다.
이를 일일이 다 찾아내야만.
성공적인 접합 수술이 가능했다.
비유를 하자면 퍼즐 조각을 다 모아야 퍼즐을 완성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정지훈 눈에는.
접합에 필요한 혈관과 신경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아직 어린 탓에.
혈관과 신경이 덜 발달한 탓도 있었고.
에스컬레이터에 발가락이 절단되어서 절단면이 삐뚤빼뚤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과장님. 미세 현미경 배율을 최대로 높여도 되겠습니까?”
“그래야겠다. 천천히 올려 봐. 아마 최대 배율까지 가야할 거다.”
“네. 과장님.”
준후의 허락이 떨어졌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정지훈이 현미경에 달린 원형 다이얼을 위로 돌렸다. 15배율이던 배율이 차차 최대치인 25배율까지 올라갔다.
배율이 올라갈수록 절단 부위의 풍경이 세밀해졌다.
2D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2D 캐릭터의 모습이 점점 축소되어 나중에는 도트(점)로 보이는 느낌이랄까.
‘희한하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세포 손상이 의외로 적어.’
정지훈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분명 보호자는 환자의 발가락을 얼음에 직접 닿도록 보관했다.
절단 부위 보관의 황금률을 어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미세 현미경으로 본 조직들이 예상보다 훨씬 멀쩡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수술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성공이 아니라 ‘가능’ 말이다.
과장님은 괜찮으려나?
이번 수술에 실패하 언론에서 걸렸구나 하고 악담을 쏟아낼 텐데.
정지훈이 잠깐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준후를 힐끔 쳐다보았다.
미세 현미경으로 환자의 발가락을 살펴보고 나서 정지훈은 오히려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동맥, 정맥, 신경.
주요 접합 부위들이 ‘∧∨∧∨’ 형태로 삐뚤빼뚤했다. 봉합도 저 모양에 맞춰서 기형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반 접합 수술도 현기증과 구역질이 날만큼 어려운데.
손가락도 아닌 발가락을 불규칙적으로 봉합해야 한다는 현실은 잔혹하고 가혹하기만 했다.
“멍 때리지 말고 수술에 집중해.”
“네…… 넵!”
준후의 찬물 같은 호통에 정지훈은 바짝 정신을 차렸다.
한편 준후는 미세 현미경을 통해 접합해야 하는 동맥과 정맥과 신경의 위치를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상황이 기대보다 깜깜하긴 했다.
하지만 진짜 서전이라면 빛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빛을 만들 줄도 알아야했다.
그리고 준후에게는.
그 빛이 바로 무공이었다.
준후는 단전에 고여 있던 내공을 터뜨려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오감을 증폭시키고.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만화공을 펼쳤다.
그러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울 만큼 감각들이 예민해졌다.
양손에 든 포셉으로.
준후는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거나 축 늘어진 동맥과 혈관과 신경들을 쭉 펴주었다.
그 개수가 족히 20개는 넘었다.
고생길이 훤하다는 뜻이었다.
“지훈이는 발가락 뼈 평행으로 맞추고 선생님은 와이어 주세요.”
“네. 과장님.”
“네. 과장님.”
준후의 손에 가느다란 철사가 들렸다.
“평행이 아니야. 삐뚤잖아.”
“지금은 괜찮습니까?”
“좀 더 왼쪽으로.”
“지금은…….”
“좋았어. 손 떨지 말고 그 상태를 유지해.”
준후는 서로 딱 붙은 뼈 위에 철사로 갈지자(之)를 그렸다. 철사를 한 번 끊고서 역으로 한 번 더 갈지자를 그렸다.
올가미 매듭을 지으며 마무리.
이는 일반적인 와이어 고정술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공적들의 손을 묶을 때 사용하는 포박술인 결초술(結草術)이었다.
최소한의 밧줄 길이로.
최고의 강도를 자랑하는 매듭술이었다.
“손 떼봐.”
준후는 포셉으로 접합한 뼈를 건드렸다.
접합 부위는 흔들림 없이 또 빈틈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뭔가…… 철사를 막 감으신 것 같은데 엄청 튼튼하네요?”
“그러게요. 저는 처음에 과장님이 장난하시는 줄 오해했어요.”
정지훈과 소독 간호사가 동시에 감탄을 터뜨렸다.
환자 감시 장치가 삐이이, 삐이이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번 접합 수술은 만만치 않은 적수였고.
준후는 수술 내내 무공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험난한 고비도 산더미.
기적 같은 처치도 산더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