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00)
무공 쓰는 외과 의사-500화(500/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00화
제98장 도전자(1)
참관용 수술방.
중년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수술방을 비추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최용진.
수부외과 조교수였다.
본래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했어야 했지만 강한 비바람 때문에 항공편이 결항되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내 곁에는 의대 후배이자 제원대 병원에서 수부외과 교수를 맡고 있는 정현교가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최용진과 마찬가지 이유로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도 병원으로 복귀한 보람이 있네요.”
정현교가 말을 이었다.
“세상 잘났다는 서준후 과장의 집도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직접 본 소감은 어떤데?”
“솔직히 100퍼센트 사이비라고 믿었거든요? 반반한 외모에 뉴튜브 빨로 뜬 반짝 서전이라고요.”
“…….”
“아무래도 오해가 좀 있었네요.”
정현교의 목소리에 감탄이 섞였다.
그는 아까부터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준후의 수술 과정이 비단결보다 매끄럽고,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고, 장미처럼 화려해서.
메이유에서 고작 1년을 수련하고 어떻게 접합 수술을 저만한 경지로 승화시켰을까.
정현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손가락도 아니고 발가락 접합이잖아요? 웬만한 접합 수술은 다 할 수 있다고 봐야죠.”
“확실히 발가락 접합이 훨씬 어렵긴 해. 수술 자세를 잡기도 힘들고 혈관과 신경 구조가 복잡하기도 하니까.”
최용진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 과장, 단순히 정의로운 척 흉내를 내는 건 아닌가 봅니다?”
“무슨 뜻이지?”
“신경외과 수술만 해도 되는데 구태여 수부외과 수술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으음…… 솔직히 환자를 모른 척해도 할 말은 없었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러다가 오늘부터 서 과장 팬이 되겠어요.”
“팬이라면 당장 열심히 응원해야 할걸?”
최용진의 목소리가 의미심장했다.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 중임에도 표정이 여전히 딱딱했다.
“설마 서 과장의 수술이 실패하길 바라시는 건 아니겠죠?”
“혓바닥으로 선 넘는 건 여전하군.”
“죄송합니다. 근데 뭐랄까, 선배님에게서 수술이 실패하길 바라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말입니다.”
“천만의 말씀. 수술은 성공해야지. 날 대신해서 수술을 해준 고마운 은인인데.”
“그럼 아까 응원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정현교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최용진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CT로 촬영한 환자의 발가락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정현교는 영상을 줌인해서 꼼꼼하게 살폈다.
들떴던 마음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평화로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근심과 걱정으로 혼탁해졌다.
최용진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는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하……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이야. 하필이면…….”
“이제 알겠어? 난 수술이 실패하길 바라던 게 아니라 성공하길 바라서 걱정하고 있었다고.”
최용진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서 과장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모르겠군.”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수술 전에 CT 영상을 보긴 봤을 텐데요.”
“나도 그러길 빌어.”
잡담은 그렇게 끝났다.
두 사람은 침묵을 지킨 채 모니터를 통해 수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고.
최후의 결전은 가까워졌다.
* * *
파죽지세!
준후의 수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단어였다.
만화공을 통해 증폭한 피지컬로.
준후는 접합 수술을 차례차례 격파하고 있었다.
1) 와이어를 이용한 결초술로 발가락뼈를 정복하고 고정한다.
2) 발가락의 중심 건(tendon, 힘줄) 4개를 봉합하고 건외막까지 봉합한다.
1-2번의 단계가 게눈 감추듯이 진행되었다. 마치 차로 고속도로를 지날 때 주변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건 봉합을 할 때는 너덜너덜해진 조직을 미리 잘라내고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야 재활 운동의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힘줄이 지그재그로 어지럽게 절단이 되었지만 준후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청풍 검범의 초식 중.
백석창파라는 초식이 있었다.
물결치듯 상대를 위 아래로 흔드는 초식이었다.
백석창파의 이치를 사용해서 봉합하자 준후의 손과 손목도 절단면과 같이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은 마치 신명나는 장단에 들썩들썩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3) 동맥혈관을 문합한다.
건 봉합이 끝나고 첫 번째 고비인 동맥혈관 문합이 찾아왔다.
문합을 하기에 양쪽 혈관은 너무 짧았다.
최대한 길게 늘어뜨려도 2센티미터나 부족했다.
그래서 준후는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쇄골동맥을 채취해서 양쪽 혈관을 이어 붙였다.
손이 한 번 더 가는 작업이었으나 문제될 건 없었다.
준후의 문합술은…….
이미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준후가 쇄골 동맥을 채취하고 혈관을 문합하는 시간은 다른 교수들이 혈관만 문합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빨랐다.
‘와, 미쳤네!’
준후를 돕는 내내 정지훈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준후가 대단한 서전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다.
펠로우 2년 차로 수부외과 교수들 곁에서 수없이 어시스트를 도맡았건만.
그 어떤 교수도 준후만큼 고차원의 집도력을 선보인 적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발가락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샘솟았다.
나머지 수술 과정도 정지훈의 기대 이상이었다.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신경 다발의 봉합 또한 순조롭게 이어졌다.
준후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문제가 터진 것은 정맥혈관을 봉합할 때였다.
가는 길이 있으면.
오는 길도 있어야 하는 법.
동맥이 가는 길이라면 정맥은 오는 길이었다.
같은 혈관이라도 동맥보다 정맥 혈관 문합이 몇 배는 더 어려웠다.
정맥 혈관에 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가락을 접합할 경우 정맥 혈관이 발바닥과 연결되어 문합이 어렵다는 난관이 존재했다.
이번 적수는 만만치 않았을까.
호랑이 같던 준후의 기세도 정맥 문합에서는 한풀 꺾였다.
봉합사가 끊어지고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봉합사 2세트가 순식간에 곡반에 버려졌다.
“이러면 곤란한데.”
준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스태프들의 낯이 흙빛을 띠었다.
“과장님. 무슨 문제라도…….”
“정맥의 탄력도가 예상보다 훨씬 나쁘다. 환자가 어린 데다가 에스컬레이커 홈 때문에 상처가 너무 깊게 났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봐야지.”
준후는 봉합사를 8-0 Prolene에서 11-0 Prolene으로 바꾸었다.
더 얇은 봉합사를.
사실상 봉합사 중에 가장 얇고 가는 봉합사를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툭. 툭. 툭.
봉합사는 속절없이 끊어졌다.
봉합사를 견디지 못할 만큼 정맥은 가냘팠다.
심지어 봉합침이 통과한 자리는 희미하게 찢긴 상처까지 남았다.
정맥이 망가졌다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정말 다 왔는데.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여기서 무너진다고?
신경은 의외로 멀쩡해서 금방 봉합할 수 있단 말이야.
준후는 속으로 통곡했다.
문합할 정맥 중에 한 두 개만 약한 거라면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모든 정맥이 다 그 모양, 그 지경이라는데 있었다.
동맥 혈관을 문합했다고 해도.
정맥 문합을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과장님. 동맥에 울혈(congestion, 피가 고이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발가락이 붓고 있습니다. 파랗게 붓고 있고요!”
정지훈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노티했다.
준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지며 비릿한 피 맛이 번졌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시간이 준후의 목을 바짝 조여오고 있었다.
문합한 동맥으로 피가 들어오는데 그 피가 나갈 장소가 없으니 울혈이 생긴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피가 빠져나가도록 정맥을 확보해야 하거늘.
무공으로 무장한.
준후의 신통방통한 솜씨로도 정맥을 재건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 경험이 언제였더라.
메이유에서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수련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처음 아닐까.
8층에서 낙사한 고현철을 수술할 때도 이렇게 벼랑까지 몰린 적은 없었거늘.
오랜만에 느껴보는 초조함이 낯설었다.
내가 나를 너무 과신했구나.
준후는 뒤늦게 반성했다.
발가락 CT를 확인했을 때 이런 그림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정맥 문합이 쉽지 않겠다고.
하지만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내공과 무공으로 무장한 유일무이한 서전이 바로 준후였다.
이 정도는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과장님. 어떻게 할까요?”
정지훈이 재촉하듯 물었다.
소독 간호사도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준후는 스태프들 대신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에게 발가락 없는 삶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걷기에도 불편하고.
또래 아이들에게 심한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할 테니까.
무언가가 결핍된 인생은 고통스럽기 마련이었다.
무림의 준후도 그랬다.
적일도에게 아버지와 세가를 잃고 나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비뚤어지고 왜곡되고.
뜨겁기만 한 복수심으로만 살아갔으므로.
방법은 있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았을 뿐.
내가 지금 깜빡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
찰나의 순간이 영겁처럼 지나갔다.
준후는 가까스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동굴처럼 어두운 머릿속으로 한줄기 빛살이 새어 들어왔다.
“히루도 있지?”
“히루도요? 그게 확인은 해봐야할 것 같은데 아마 있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히루도 생각을 못했네요.”
정지훈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금 챙겨오겠습니다.”
정지훈이 부리나케 수술대를 벗어났다.
* * *
그로부터 10분 뒤.
스으으윽.
스으으윽.
메스가 번뜩이는 궤적을 그렸다.
준후가 메스로 아이의 동맥 근처에 일부러 상처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이 찢어지면서 붉은 피가 송글송글 새어나왔다.
“히루도.”
“네. 과장님.”
준후는 소독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히루도를 방금 막 상처를 낸 조직에 붙였다.
히루도는 거머리였다.
다만 보통 거머리가 아니라 치료용으로 승인받은 거미리의 종 중 하나였다.
까무잡잡한 놈이고 크기는 엄지손가락 절반만 했다.
상처에 거머리를 붙이자 거머리가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걸로 한숨 돌리려나.’
빳빳하게 경직되었던 준후의 어깨가 느슨하게 풀렸다.
동맥에 피가 고여 문제가 생겼을 때.
상처를 내서 그 부위에 거머리를 붙이면 울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도 정맥은 여전히 없잖아.
정맥로를 못 만들면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니야?
……라고 누군가 반문할지 모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인간의 신체 회복 능력은 탁월하다.
정맥이 없으면 정맥을 만들게끔 설계가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거머리가 동맥에 울혈을 흡수하며 버티는 게 이번 치료의 핵심이었다.
“히루도는 한 마리뿐이니?”
“네. 잘 쓸 일이 없다 보니까…….”
“하긴 나도 언제 썼는지 기억이 까마득했어. 접합을 안 하면 안 했지 히루도까지 쓰는 경우는 별로 없었으니까.”
준후가 히루도를 빨리 떠올리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접합 수술 케이스가 대부분 극과 극이라서 그랬다.
중간은 가뭄에 콩 나듯했다.
“근데 어째 이 녀석 힘이 없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피를 제대로 흡수 못 하는 것 같은데요?”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히루도가 영 매가리를 못 쓰고 있었다.
눈앞에 맛있는 피가 있는데도 제대로 빨지를 못했다.
오래 방치되다 보니 상태가 메롱인 모양이었다.
이러면 안 되지.
네가 유일한 희망이란다.
젖 먹던 힘을 내야 한다고.
준후는 히루도의 몸통에 검지를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히루도에게 흘려보냈다.
내공으로 거머리에게 보양(?)을 해준 것이다.
내공은 생명력이니.
살아 있는 것이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내공을 받은 히루도는 갑자기 몸을 잔뜩 부풀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울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애초에 피가 그 자리에 있었냐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