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02)
무공 쓰는 외과 의사-502화(502/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02화
제98장 도전자(3)
주말 아침.
준후는 자동차를 몰고 광화문 구보 문고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전부터 햇살이 강렬했다.
썬팅을 꿰뚫고 준후의 눈을 바늘처럼 콕콕 찔러댔다.
준후가 부산 신원대 과장으로 부임한 계절이 봄이었는데 계절은 어느새 쏜살같이 여름으로 달려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준후는 할 말이 없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꺼낼 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우선순위를 꼽자면 병원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다.
6개월이나 밀린 외래 진료 환자를 살피고, 스케줄에 맞춰 꼬박꼬박 수술을 해왔다.
덕분에 준후의 평판과 명성은 나날이 치솟았다.
진짜 의사.
사명감을 가진 의사.
희생하는 의사.
한때 대한민국 의료계의 처참한 현실을 알리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종국 교수.
그의 인기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이종국 교수와 달리.
준후는 뉴튜브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자신을 불러주는 예능 프로그램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준후의 목적은.
환자의 치료하는 것과 더불어 반짝이는 스타 서전이 되어 예비 의사들이 신경외과 전공을 꿈꾸도록 만드는 데 있었으니까.
계절이 변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준후는 이것들이 더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하나는 신경외과 의국의 정치 싸움이었다.
정치 싸움에서 중립을 표방하던 교수들을 품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터줏대감인 김한상과 그 패거리.
의국 권력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그들까지 흡수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박힌 돌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굴러온 돌인 준후가 거칠게 밀고 흔들어보아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럴수록 김한상 일당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준후에게 반감을 드러내며.
노골적인 견제와 시기를 퍼부었다.
오전 컨퍼런스에서 따로 앉기.
외부 세미나에서 준후 험담하기.
인맥을 동원해 준후가 발표한 논문 깎아내리기 등등.
그들은 지저분한 공작을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고 준후에게 쏟아부었다.
문제는 그 공세들이 꼬투리를 잡기 힘들 만큼 은근해서 반격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잽으로 힘을 빼놓는 건 의미가 없어.
훅이나 스트레이트로 한 방에 쓰러뜨려야 하는데.
김한상 패거리를 박살 내기 위해서는 무림에서 말하는 이른 바 절초가 필요했다.
절묘한 초식 말이다.
절초로 준후가 선택한 것은 뇌전증 로봇 수술이었으나 이틀 안에 연락을 주겠다는 병원장은 그 후로 오랫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다.
함흥차사였다.
먼저 연락을 몇 번 해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필요하다는 변명과 핑계 같은 답변만 들었다.
‘조만간 얼굴을 직접 만나러 가야겠어. 슬슬 단판을 지어야지.’
준후의 얼굴에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뇌전증 클리닉의 신설.
뇌전증 로봇 수술의 개시.
이를 위해 준후도 그동안 띵까띵까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병원장의 마음을 뒤집을 묘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구보 문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안전벨트를 풀고 준후는 조수석에 놓인 책 한 권을 힐끔거렸다.
책 표지에는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칼자국과 비슷한 궤적이 마구 그어져 있었다.
책 제목은 신경외과 의사 서준후.
책을 보고 있자니 두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귓불까지 빨개졌다.
준후의 의사 생활을 인터뷰 따고 대필 작가가 대신 집필해준 준후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 출간된 것이다.
오늘은 오프라인 사인회가 있는 날이었다.
* * *
“서준후 선생님. 맞으시죠? 사인 좀 해주세요.”
“저도요.”
“야. 저기 서준후 선생님이다.”
주차장에서 서점으로 들어오는 동안 준후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있었다.
준후를 알아본 사람들이 벌떼처럼 밀려들어 사인과 악수, 사진을 요청했던 것이다.
준후의 팬 층은 각양각생이었다.
중고등학생처럼 앳된 팬.
말끔한 복장의 청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층까지.
뉴튜브와 SNS으로 젊은 세대를 끌어모으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장년층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준후는 어색하고 민망하게 웃으며 팬들을 대접했다.
연예인도 아니고 의사가 이게 뭐람?
요즘 외출하면 늘 이런 식인데.
앞으로는 바깥에 돌아다닐 때 마스크와 모자를 쓰거나 역용술을 펼쳐야 할 듯싶었다.
준후는 무공을 써가며 몰려드는 팬들을 처치(?)했다.
빠르게 사인을 하고.
악수를 나누고.
팬이 건네 휴대폰으로 자신의 얼굴이 담긴 셀카를 촬영했다.
이어지는 동작들이 초식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그 모습에 팬들은 다시 한번 준후에게 감탄했다.
“죄송합니다. 일정이 있어서.”
새로운 팬이 덤벼들기 전, 준후는 보법을 밟아가며 자리를 피했다.
규보 문고에 도착해서도 스태프 룸을 찾을 때까지는 보법을 멈추지 않았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준후가 황급히 스태프 룸으로 들어갔다.
스태프 룸에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예나체리 출판사 대표 성광현.
다른 한 명은 규보 문고의 실장 이기철이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대화 중이었다.
“오는 길에 많이 힘드셨나봅니다. 인기가 많아도 문제군요.”
성광현이 준후의 사정을 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게 됐네요. 코너에 전시된 제 책을 보고 싶었는데 이따가 봐야겠어요.”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올 겁니다. 큼지막한 매대를 노른자 자리에 두고 선생님 책으로 도배를 해놨거든요.”
잠자코 있던 이기철이 대화에 껴들었다.
그 역시 싱글벙글이었다.
“책 판매가 괜찮게 되고 있나 보죠?”
“엥? 아직도 그걸 모르셨어요?”
놀란 이기철의 눈동자가 눈 밖으로 또르르 굴러 나올 것처럼 커졌다.
“따로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쑥스러워서요.”
준후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의술로 주목받는 건 티끌만큼도 부끄럽지 않았다. 준후의 전공이었으니까.
하지만 전공이 아닌 출판 쪽으로.
그것도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대필 작가가 써준 글로 주목받는 건 어색하고 민망했다.
“대표님도 선생님께 판매량을 안 알려주셨나요?”
“10쇄가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만 했습니다. 일일이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지금 같은 판매량이면…….”
이기철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올해의 책으로 꼽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0만 부를 찍었으니까요.”
“그 정도인가요?”
“네. 돌풍이 아니라 태풍이라는 표현을 써도 아깝지 않아요.”
“…….”
“게다가 대표님이 자체 매입을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기철의 시선이 성광현에게 머물렀다. 성광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체 매입이란 출판사가 본인들이 출간한 책을 스스로 사들이는 행위였다.
본인들 책을 팔아야지.
왜 반대로 본인들 책을 구입해?
누군가는 그렇게 의아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판매량을 뻥튀기해서 문고 측에 이벤트를 받거나 책을 광고할 거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준후의 에세이에는 속칭 ‘보이지 않는 손’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팬심으로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대표님 기획이 좋았죠. 또 작가님이 글을 맛깔나게 적어주신 덕분이고요.”
“그래도 이야기의 원천은 선생님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기철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저도 책을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삶을 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일복을 타고 났나 보죠.”
“슬슬 시간이 됐군요. 이동하시죠.”
세 사람이 함께 스태프 룸을 나왔다.
주말이라서 문고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오가는 손님들 때문에 복도와 통로의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내는 발소리와 말소리가 문고 측에서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과 한데 뒤엉켰다.
그 또한 하나의 음악이었다.
매장 안에는 규보 문고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이북이 탄생하면서.
종이책의 시대는 저물 것이라고 경고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종이책은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시대는 변해도 실물이 주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드시나요?”
“이거…… 황송할 정도인데요?”
이기철이 가리킨 곳들을 바라보며 준후가 몸을 들썩거렸다.
정말 서점 중앙에 준후 에세이만 따로 취급하는 매대가 있었다.
책은 에세이 매대에도 있었고.
베스트셀러만 취급하는 섹션에도 있었다. 책이 가장 높고 가장 왼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까지 유명하고 잘 나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준후의 입가에 오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인회는 지상과 연결된 출입구 인근에 마련되어 있었다.
배경 간판에 ‘신경외과 의사 서준후 10만부 돌파 사인회’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그 앞에 가로로 긴 테이블과 펜이 놓여 있었다.
사인회 참가자들은 벌써 직원들의 통제를 받으며 긴 줄을 서고 있었다.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밧줄 같았다.
매장 내부의 공간이 비좁아서 줄이 무려 매장 바깥까지 이어졌다.
준후가 눈을 비비고.
눈을 수차례 감았다가 떠보아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엄청 나죠?”
이기철이 본인 사인회라도 되는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청 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네요. 지금 바깥 날씨가 28도인 걸로 아는데.”
준후의 말에 이기철은 내심 감탄했다.
팬들의 숫자에 들뜨기보다 기다리는 팬들을 걱정하는 씀씀이가 고왔기 때문이다.
“실장님. 혹시 문고 내부 커피 매장을 통째로 빌릴 수 있나요?”
“설마?”
“네. 그 설마 맞습니다. 매장 빌려서 사인회 온 분들께 아이스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네요.”
“하…… 그게…….”
난감해진 이기철이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사인회에 참석한 작가가 개인 주머니를 털어 팬들에게 커피를 돌린다?
머리털 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용이 장난 아닐 텐데요.”
“제가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장난 아닙니다.”
준후가 우스갯소리로 말을 받았다.
“매장 내 입점한 카페가 두 곳인데 일단 둘 다 이야기는 해보겠습니다.”
“일단 허락이 나면 카페 직원분들도 고생할 테니까 제가 따로 보상을 하겠다고 일러주세요.”
“뭘 그렇게까지.”
“사인회 진행하는 동안 귀가 간지럽고 싶지 않거든요.”
준후가 빙긋 웃으며 사인회 테이블에 앉았다.
“우와!”
“선생님, 실물이 더 잘 생겼어요.”
“저 일본에서 비행기 타고 왔어요.”
준후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사인회 참가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과 환호성을 내질렀다.
떠들썩한 소리에 다른 손님들이 사인회장을 힐끔거렸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선생님에게 열광하는지 이젠 나도 알 것 같네.’
이기철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사인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참가자가 준후 맞은편에 앉으면 준후가 참가자의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참가자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먼 발걸음을 해주고.
또 시간을 내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고민 끝에 준후는 제천공을 펼쳤다.
팬과 자신을 내공으로 감싸서 주변과는 다른 시간선을 만들어냈다.
팬 입장에서 보면.
준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행복할 테니까.
겸사겸사 제천공의 숙련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었고 말이다.
매장에 입점한 카페 중 한 곳이 준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원한 아이스 커피가 참가자들의 손에 들렸다.
이 또한 준후의 위엄이라며 팬들이 준후를 숭배(?)했다.
그렇게 사인회는 1시간을 넘어 2시간째로 접어들었다.
사인회는 여전히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