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05)
무공 쓰는 외과 의사-505화(505/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05화
제99장 도전(1)
준후가 신경외과 컨퍼런스 룸에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안녕하세요. 과장님.”
레지던트들이 전광석화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준후에게 인사를 건넸다.
“됐으니까 다들 앉아. 이럴 필요 없다니까.”
준후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아래로 내렸다. 그제야 레지던트들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본인 자리에 앉았지만 어쩐지 뒤통수가 근질근질했다. 레지던트들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여전히 느껴졌다.
레지던트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준후를 좋아했다.
이유라면 차고 넘쳤다.
매일 아침 당직실에 들러 내공 수액술을 펼쳐주고.
수술 중 친절하게 수술 요령을 알려주었으며.
만성적으로 시달리던 신경외과 레지던트 T.O를 두 명이나 보충해 주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준후는 신경외과의로서 모범이 되었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며 수술에 있어서는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준후는 몰랐지만.
레지던트들은 준후를 좋아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존경하고 있었다.
“과장님.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펠로우 2년 차 예나가 당돌하게 준후 옆에 앉았다.
“예나. 너도.”
“사인회 때 다친 상처는 어떠세요?”
“지금은 다 나았어. 끄떡도 없지.”
“과장님은 진짜 강철 체력에 강철 회복력을 가졌나 봐요. 환자 진료 보지, 집도하지. 예능 출연하고 뉴튜브 촬영하지.”
예나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그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어떻게 매일 그렇게 쌩쌩하고 건강하세요?”
“글쎄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는걸?”
준후가 피식 웃었다.
단전에 그득한 내공.
7클래스에 달하는 마나 하트.
이 두 에너지 덕분에 준후의 체력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
생각해 보면 몇 년 전부터 피곤하다는 감각을 느낀 적이 아예 없었다.
응급 환자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정신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육체적인 피로는 아니었다.
최근에는 운기조식도 피로 회복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현경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명상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혹시 저희 몰래 좋은 건강식품을 챙겨 드시는 거 아니에요? 있으면 공유해 주세요.”
“없어. 그런 거. 넌 뭐 챙겨 먹는 거 있니?”
“저야 영양제를 달고 살죠. 비타민 B군 영양제에, 비타민 C에, 마그네슘에, 오메가 쓰리에, 유산균에. 또 뭐가 있더라?”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던 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만큼 챙겨 먹는 영양제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준후가 영양제를 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한의원에서 배송 받아 먹던 환단도 중단시켰다.
“예나야. 과장님한테 너무 버릇없이 구는 거 아니냐?”
때마침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정위신경외과 파트 조교수 나경환이었다.
나경환은 준후와 동갑이었다.
졸업한 의대가 달라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예나가 친근하게 굴어주는 게 좋아요.”
“하하. 과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군요.”
“혹시 다음 주 중에 괜찮은 시간 있으신가요?”
“다음 주라…… 목, 금에 여유가 있습니다만 어쩐 일로…….”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준후의 말에 나경환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만했다.
다 함께하는 회식 자리도 아니고.
둘만 따로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의아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나경환은 까맣게 몰랐지만.
그는 준후의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퍼즐 조각 중 하나였다. 미리 친교를 다져 놓을 필요가 있었다.
“왜요? 남자 둘이 보는 건 별로입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준후의 농담에 나경환이 피식 웃었다.
“오늘 중으로 스케줄 확인해서 연락드리죠.”
“네. 부탁드립니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경환이 준후의 등 뒤에 앉았다.
컨퍼런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앉은 자리에 따라 신경외과의 권력 냉전 구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레지던트들과 중립파 교수들.
이들은 전부 창가 쪽에 앉았다.
바꿔 말하면 준후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김한상과 그 일당들은 벽 쪽에 앉았다.
레지던트까지 포함하면.
준후 쪽에 앉은 사람이 많았지만 교수의 숫자만 놓고 보면 김한상 패거리 쪽이 준후 쪽에 2배는 되었다.
과장 부임 이후 준후가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부산 성골 교수들은 준후를 인정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째 과장님 얼굴 뵙기가 점점 힘듭니다?”
부교수 김한상이 준후 쪽을 쳐다보며 비꼬는 투로 말했다.
“과장님 얼굴을 보려면 병원보다 TV 프로그램을 보는 게 더 낫겠어요.”
“크크크크.”
“부교수님도 참 정곡을 찌르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러다가 조만간 영양제 광고도 찍겠어요.”
김한상의 말에 김한상 패거리 교수들이 깔깔깔 웃으며 너도 나도 한 마디를 얹었다.
준후가 쇼 닥터인 것처럼 노골적으로 매도했다.
이에 레지던트들과 이제는 중립에서 준후파가 된 교수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양 쪽의 신경전이 불꽃 튀었다.
“선구안이 있으시네요. 안 그래도 영양제 광고 찍기로 했습니다. 파스 광고도 하나 있고요.”
준후의 말에 김한상 패거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놀리려고 한 말인데 진짜일 줄이야.
“그리고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 의외로 즐겁습니다. 아, 근데 부교수님은 제 기분을 모르시겠네요.”
준후가 김한상을 저격했다.
여유만만하던 김한상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주변 교수들의 표정도 험악해졌다.
“최 교수님. 뭐라고 한마디도 해주세요.”
“그래요. 말빨하면 최 교수님 아닙니까?”
주변 교수들의 재촉에도 김한상의 오른팔인 최진구는 침묵을 지켰다.
그럴 수밖에…….
최진구는 이미 준후와 손을 잡았으니까.
준후에게 차기 부교수를 약속받은 대가로 말이다.
스파이에게 기대는 그들의 모습이 한심하고 불쌍해 보일 따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실컷 즐겨둬.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가을이 찾아오면 왕좌는 내 차지니까.
피의 숙청이 뭔지 보여줄게.
준후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
언제나 그랬든 시간은 준후 편이었다.
* * *
그날 오전.
준후는 첫 수술에 들어갔다.
환자의 이름은 고윤성, 나이는 50세.
병명은 뇌종양.
종양 타입은 핍지 교종이었다.
처음 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만 해도 환자와 보호자 모두 환자가 뇌종양을 앓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환자의 사고력이 떨어지고 감정 기복이 갑자기 널뛰기 뛰듯 심해져서 정신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는 환자에게 생긴 질환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환자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보내지 않고 직접 맡았다.
그 결과 뇌종양을 확진했다.
고윤성 환자 같은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성격이 난데없이 돌변하거나, 눈이 침침해지거나 등등.
뇌종양에서 파생되는 부가적인 질환에 꽂혀서 뇌종양을 아예 의심조차 못 하는 케이스.
본질적인 치료가 늦어지는 케이스 말이다.
하지만 준후는 그런 실수를 할 줄 몰랐다.
진료하는 그 자리에서.
내공 뇌 조영술을 통해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전두엽에 발생한 핍지 교종 절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수술방에 울렸다.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준후는 시작부터 제천공을 펼쳤다.
무림 맹주의 필살 무공.
내공으로 공간을 감싸서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궁극의 무공.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솟구친 내공이 체외로 폭발하듯 분출되었다.
준후의 눈에만 보이는 내공의 자기장이 스태프와 환자들을 차례대로 먹어 치웠다.
준후의 시선이 문득 수술방 벽에 걸린 시계를 향했다.
시계를 보면서 준후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준후에게는 2초가 지났는데.
벽시계 시간은 1초가 지났다.
시간 왜곡이 제대로 일어난 것이다. 실전에서 펼쳐 본 제천공은 대성공이었다.
준후가 알기로 제천공은…….
수련을 하면 할수록 왜곡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부지런하게 수련할 필요가 있었다.
제천공에 익숙해질수록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과장님. 어디 아프세요?”
맞은편에 있던 제1어시스트.
레지던트 4년 차 치프가 준후를 걱정했다.
“왜? 어디 아파 보이니?”
“제 착각인지 몰라도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 보여서요.”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안 좋네.”
준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천공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파에서 단 한 명만 현경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그게 무림맹주였다.
그런 맹주가 창안한 무공을 소화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제천공의 범위를 자신으로 한정한다면 그나마 수월하겠지만 준후는 환자와 스태프를 감싸는 광범위 제천공을 펼치고 있었다.
무공 난이도가 수직상승했던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지.
내 시간만 확보하는 건 한계가 있어.
결국 나를 돕는 스태프들까지 내 시간 영역에 들어가 있어야 해.
“이 정도는 참을 만해. 수술 계속하지.”
준후가 일부러 경쾌한 척 말했다.
두피를 절개하고 두개골을 절개하는 일련의 과정이 이어졌다.
서걱.
메스가 서늘한 궤적을 그렸다.
두피가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견인기를 상하로 잡아당기면서 절개창이 확 트였다.
수술 시야가 확보되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수술용 드릴이 굉음을 내며 회전했다.
두개골에 4개의 구멍을 냈다.
구멍 바깥으로 갈린 뼛조각이 슬러시처럼 흘러나왔다.
수술이 이어지면서 비릿한 피비린내가 수술방을 휘어 감았다. 소독약 냄새도 고약해졌다.
단단한 두개골을 들어내자 우유막처럼 뿌옇고 끈적해 보이는 경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는 일부러 몇 박자 쉬었다.
평소라면 게 눈 감추듯 처리했을 기본 처치조차 오늘따라 유독 버거웠다.
머리도 무겁고 손도 무거웠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압력도 느꼈다.
제천공의 후유증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고난과 역경.
그것도 외부에서 찾아온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고난과 역경.
준후는 입술을 깨물어가며 버텼다.
솔직히 피지컬은 이미 최고점을 찍었다. 수술에 필요한 무공은 모조리 대성했으므로.
딱 하나 정복해야 할 게 남았다면.
시간이었다.
이른 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
다 죽어가는 환자가 수술방에 들어왔더라도 제천공이 있다면 맞서볼 만하지 않을까.
“핍지 교종은 안와전두피질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환자가 갑자기 난폭하고 절제를 못하는 성격이 된 거야.”
“네. 과장님. 근데 절제 범위는 얼마나 잡을까요?”
“최대한 넓게.”
“그러면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신경을 건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우리 일이지.”
준후는 눈대중으로 절제 범위를 확정했다.
말이 눈대중이지.
조화경의 고수의 눈대중은 눈금자만큼 정확했다.
무림에서는 검을 몇 밀리미터 단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목숨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전기 메스.”
치이이익.
준후가 종양 주변부터 지지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에서 하얀 연기가 향처럼 피어올랐다. 조직이 타면서 달큰한 냄새가 퍼졌다.
수많은 환자를 수술 하면서 준후는 경험적으로 손상됐을 때 비교적 환자에게 덜 피해가 가는 신경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 신경을 포함해서 절제하는 중이었다.
다른 외과 수술이라면 근치적 수술이라고 해서.
암이 발생한 부위를 넓게 도려내지만 신경외과는 다루는 부위가 뇌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뇌를 광범위하게 잘라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수술은 3시간 만에 끝났다.
제천공 기준으로는 2시간 50분이었다.
수술이 끝나기 무섭게 준후는 수술방을 뛰쳐나갔다.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벗어던지고 직원용 화장실로 직행했다.
“우웨에에엑!”
변기에 검붉은 혈액 덩어리를 토해냈다.
제천공을 펼치며 집도했더니 기혈이 뒤엉켜 버린 것이다.
기혈을 토했음에도 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댔다.
눈물이 핑 돌고.
헛구역질은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준후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견뎌냈다.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
시련이 곧 자신을 단련시킨다는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