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06)
무공 쓰는 외과 의사-506화(506/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06화
제99장 도전(2)
그날 저녁,
정규 수술 스케쥴이 모두 끝났다.
“과장님이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모습, 처음 봅니다.”
수술실을 나오면서 우현이 준후에게 한 말이었다.
준후를 바라보는 우현의 눈빛에 따뜻한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오늘 준후는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바쁜 스케줄로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을까.
수술 도중 자주 쉬자는 말을 했다. 전광석화와 같았던 손놀림이 눈에 띨 정도로 둔해졌다.
가만히 준후를 쳐다보고 있자니.
새까만 다크서클이 볼까지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었다.
피부도 푸석푸석해 보였다.
표정에는 생기 대신 피곤이 찌들어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우현에게 준후는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우상이었다. 흉강 천자로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 결정적이었고.
실력으로 보나.
인성으로 보나.
준후만큼 뛰어난 신경외과의를 본 적이 없어서였다.
“교수님. 잠깐 저기 벤치에 앉아주시면 안 됩니까?”
“왜?”
“앉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준후가 의외로 고분고분 벤치에 앉았다.
“옆으로 걸터앉아주시고요.”
“…….”
“네. 그대로 가만히 계세요.”
주물주물. 탁탁탁.
우현은 준후의 어깨를 성의껏 주무르고 주먹으로 어깨를 쳐주기도 했다.
힘들어 하는 준후에게.
우현이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정도뿐이었다.
“우현아.”
“네. 과장님.”
“요즘 힘든 건 없니?”
“딱히 없습니다. 레지던트 T.O도 맞춰줬고 과장님이 오전에 마사지 해주시면 하루 종일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거 말고. 심리적으로.”
준후의 질문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예상치 못한 궤도에 우현이 뜨끔했다.
요즘 생활에 대만족이긴 했지만.
차차 선을 넘는 골칫거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가 모든 걸 다 알고 물어보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편하게 말해봐. 나한테 짐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그게…… 정말 별일 없습니다.”
“참으면 다 속병 된다.”
준후의 재촉에 우현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배꼽 밑까지 꾹꾹 눌러두었던 말들을 가까스로 퍼올렸다.
“교수님들이…… 저희 레지던트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첫째로 수술할 때 꼬투리를 잡습니다. 물론 교수님 눈에는 저희들 처치가 눈에 안 차시겠지만…….”
“…….”
“어시스트 하나하나가 다 잘못됐다면서 성을 내십니다.”
고백하는 우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괜한 갈굼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탓이다.
가장 최근에 경험한 것이 수술 시야 확보였다.
박태철 교수는 우현이 수술 시야를 너무 넓게 잡는다고 번번이 타박했다.
절개창이 너무 넓으면.
환자 회복 속도가 느려진다면서.
다만 우스운 것은 박태철이 이전까지 우현을 수술 시야로 나무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너는 도무지 중간을 모르는 구나. 이번에는 수술 시야가 너무 좁잖아. 나보고 투시 능력이라도 사용해서 수술을 하라는 거냐?
수술 시야가 너무 넓다고 해서 좁혔더니 그때는 수술 시야가 너무 좁다고 난리를 쳤다.
그럼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말인가.
우현은 고구마를 삼긴 것처럼 가슴이 퍽퍽했다.
깨달음을 얻은 것은 3번째 수술에서였다.
박태철은 우현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현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우현을 비난하고 질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준후가 수술 시야를 얼마나 잡든 어차피 욕먹을 운명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날도 우현은 질책을 한 바가지 들었다.
하루 종일 기분 나쁜 모멸감에 시달렸다.
박태철 교수를 찾아가서 제대로 따져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못했다.
그건 감정에 사로잡힌 멍청한 판단이었다.
레지던트와 교수의 권력 관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런 식으로 사람 속을 긁겠다고? 이제는 진짜 전쟁이네.”
준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차가운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준후가 뿜어내는 날카로운 아우라에 우현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뭔가 잘못했겠죠.”
“남 탓을 하거나 상황을 탓하는 건 보통 안 좋은 일이긴 해. 하지만 예외가 있지.”
“어떤 예외입니까?”
“바로 우현이 네가 겪은 경우.”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 줄 테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있어라.”
“네. 과장님. 감사합니다.”
준후가 등을 보이고 있음에도 우현은 푹 고개를 숙였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등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
우현은 알았다.
그동안 준후가 직접 나서서 해결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안마는 5분 후에 끝났다.
“어휴, 시원하네. 어깨에 날개가 달린 것 같다. 수술을 3개는 더 하겠는데?”
벤치에서 일어난 준후가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짧은 안마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겠냐만은 준후는 게임에서 치료 마법을 받은 것처럼 개운해했다.
우현에게 받은 마사지가 고마웠다는 표시를 에둘러 한 것이다.
우현은 괜히 콧잔등이 찡했다.
* * *
정규 수술 스케줄을 마친 준후는 그 길로 병동 집무실로 이동했다.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창밖은 여전히 환했다. 오렌지빛 석양이 지평선 너머로 느릿느릿 퇴근하고 있었다.
한 여름이 찾아온 탓일까.
해가 부쩍 늦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주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군. 이게 다 본인들 업보가 될 줄 모르고 말이야. 멍청하기는…….’
준후는 김한상 패거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틀 전 최진구.
표면상으로는 김한상의 오른팔이면서 동시에 준후의 그림자 오른팔이기도 한 최진구와 통화를 나눴다.
최진구는 넌지시 이런 정보를 흘렸다.
교수들이 레지던트를 갈구기 시작했다고.
없는 트집을 애써 만들어서 잡고 있다고.
그 의도야 유치할 정도로 뻔했다.
레지던트들이 죄다 준후 편을 드니까 아니꼬웠던 것이다.
눈꼴이 시렸던 것이다.
레지던트들을 준후에게 떼어놓으면서 준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을 테고.
그동안 준후에게 된통 당한 울분을 레지던트들에게 대신 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의미를 어떻게 읽든지 간에.
그들은 준후의 코털을 건드렸다.
당연히 준후는 잠자코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김한상 패거리가 준후의 코털을 건드렸다면 그들은 머리털을 통째로 뽑힐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복수를 마음먹은 준후의 이자는 조폭을 낀 사채업자보다 더 무시무시했으니까.
교수들의 비열한 행동으로 느낀 불쾌함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쯤.
집무실에 도착했다.
준후는 방구석에 돌돌 말려 있는 요가 매트를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가지런하게 모은 양손을 단전에 얹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들숨과 날숨이 교대했다.
들숨에 자연진기가 흡수되었고 날숨에 탁기가 빠져나갔다.
한 번의 호흡에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었다.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기경팔맥을 따라 대주천을 하는 동안.
준후는 제천공을 운영하며 꼬이고 비틀리고 망가진 혈맥들을 원상복귀시켰다.
체한 것처럼 답답했던 속이 차차 시원해졌다.
뭉쳐서 순환하지 못했던 응축된 기운들이 다시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준후는 의사 가운 소매로 얼굴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만만치 않네.’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났다.
오늘 실전에서 처음으로 제천공을 사용해 봤다.
소감을 요약하면.
갈 길이 멀고 험난하고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제천공을 통해 확보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 수술 당 10분 정도였다.
아마 제천공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한 수술당 50분은 단축했을 것이다.
집중력이 온통 제천공에 쏠린 탓에 오히려 수술 속도가 느려졌다.
거기에 심한 내상까지 겹쳤던 탓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멀리 보기로 했다.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제천공 이상의 사기 무공은 없으리라.
첫째로 남들은 24시간을 살지만 준후는 25-26시간을 살 수 있었다.
시간 법칙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당장이야 제천공과 다른 무공을 병행할 수 없다지만 둘을 병행하게 된다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터져 나올 것이다.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면서 준후는 현재의 괴로움을 씻어냈다.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준후가 가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병원장이었다.
순간 커지는 준후의 눈동자.
드디어 뇌전증 클리닉 신설과 뇌전증 전용 수술 로봇 도입에 대한 결론이 내려질 모양이었다.
“네. 병원장님. 준후입니다.”
-재깍재깍 받는 걸 보니 수술방에 있는 건 아닌가 봐?
“절묘한 타이밍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안 그래도 집무실에서 한숨 돌리는 중이었습니다.”
-8시까지 고깃배로 와. 예약은 해놨으니까 내 이름만 말하면 룸으로 안내할 거야.
병원장은 자기 할 말만 하고 통화를 끊었다.
제멋대로인 성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쓸데없는 일관성이었다.
어쨌거나 ‘고깃배’라면 병원 인근의 한우 전문점이었다. 병원장이 뭔가 꿍꿍이가 있을 때 식사를 제안하는 식당이었다.
과연 병원장의 꿍꿍이는 뭘까.
준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걸까.
아니면 거절하기로 결정한 걸까.
머리 회전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준후조차 병원장의 속은 읽기 힘들었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가보면 알겠지.
부딪쳐보면 알겠지.
준후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집무실을 떠났다.
* * *
한우 전문점 고깃배.
준후는 룸에서 병원장을 독대하고 있었다.
방문이 닫혀 있음에도 고소하고 부드러운 육향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방음이 완벽한 곳은 아니라 옆방에서 술에 취해 떠들어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고깃배는 최상급 한우만 취급하는 식당으로 고기 가격이 사악했다.
그런데도 저녁에는 항상 테이블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웨이팅이 있는 날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데.
세상은 넓었고 돈 많은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드르르륵.
“주문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종업원이 방문을 열고 물었다.
“20분 정도 있다가 알아서 주문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20분 뒤에 VIP라도 오나 보죠?”
“그걸 어떻게 알았지?”
“세팅된 자리가 3개지 않습니까? 음식을 바로 주문하지 않는 것도 병원장님답지 않고요.”
준후가 병원장 옆자리를 응시했다. 그곳에 식기와 술잔이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만남은 단둘이 갖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병원장님이나 저나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니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뇌전증 클리닉 신설과 수술 로봇 도입.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이야기는 봄에 드렸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여름이 오지 않았습니까?”
준후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병원장이 왜 시간을 끄는지.
준후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준후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안 한다고 말을 해줘야 준후가 거취를 정하지 않겠는가.
병원장의 간 보기 대상이 되는 건 이제 사양이었다.
“병원 예산 수십억이 들어가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결단을 내릴 일인가? 중요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지.”
“너무 돌아가는 것도 문제가 있죠. 부산이 목적지면 강원도나 전라도는 들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우리 서 과장, 삐져도 단단히 삐졌구만.”
준후의 속도 모르고 병원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서 같이 보자는 VIP는 누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