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07)
무공 쓰는 외과 의사-507화(507/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07화
제99장 도전(3)
“슬슬 준비하시죠? 오고 계시는 것 같으니까.”
준후가 목을 360도로 돌리며 말했다.
“온다고? 누가 와?”
“누구기는 누구입니까? VIP죠.”
“아직 약속 시간 안 됐어. 원래 시간 딱 맞춰서 오는 분이야.”
“오늘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준후.
10초쯤 지났을까, 과연 준후가 말하는 대로 되었다.
드르르륵.
룸의 문이 열리고 VIP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의 무당 같은 예언에 병원장은 적잖이 놀랐다.
이 녀석은 레지던트 때부터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단 말이지.
VIP의 입장에 병원장이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비굴한 미소를 띠었다.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오셨습니까. 부이사님.”
“반가워요. 병원장님. 오랜만이네요.”
말은 살가웠지만 말투와 표정은 냉기가 철철 흐르는 부이사장이었다.
부이사장 정현정.
40대 초반에 여성인 그녀는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짙은 쌍꺼풀과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신원 그룹의 후계자 중 한 명이었지만 승계권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그쪽이 서준후 과장님이죠?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부이사장님.”
준후도 정현정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세 사람은 자리에 착석했다.
때마침 종업원이 룸으로 들어와 한우를 내오고 한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고기가 익어갔다.
갈색으로 변한 고기가 야들야들해 보였다. 군침 도는 육향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대화는 고기만큼 무르익지 않았다.
공기는 어색하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종업원이 고기를 다 굽고 떠난 후에야 본격적인 이야기의 물꼬가 텄다.
“피차 바쁜 분들인데 말꼬리 돌릴 필요 없겠죠?”
“역시 부이사장님. 시원시원하십니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 중이시라고요?”
“네. 여기 서 과장이 책임지고 맡아 보겠다고 합니다. 한번 들어나 보시죠.”
정현정과 병원장의 시선이 준후에게 쏠렸다.
준후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사실 이런 그림이 달갑지는 않았다.
뇌전증 프로젝트와 관련된 업무는 본디 병원장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웬 걸?
병원장은 무책임하게 본인 업무를 준후에게 떠넘겼다.
-이건 한 두푼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야. 부이사장님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설득은 자네에게 맡기지.
정현정이 도착하기 전.
병원장이 준후에게 한 말이었다.
그 속내야 안 봐도 비디오였다.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가 실패하면 그 뒷감당은 무시무시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병원장은 책임을 지기 싫었던 것이다.
준후와 정현정을 직접 연결하고 본인은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사업이 성공하면.
또 슬쩍 제 발을 얹어 놓겠지.
준후의 이야기를 듣고도 한 계절이나 시간을 끈 것도 다 이 때문이리라.
능구렁이 같은 영감.
얄미운 걸로 따지면 병원장은 벌써 현경의 경지에 올랐다.
“신경외과에 뇌전증 클리닉을 신설하고 뇌전증 수술 전용 로봇을 들여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수익성은 어떤가요?”
“최소 10년 안에 원금 회수 가능합니다.”
“10년이라…… 너무 긴데요?”
정현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마에 지렁이 주름도 잡혔다.
“부산 신원대 병원 재정이 형편없다는 건 알고 있죠?”
“그래서 진행하자는 겁니다. 수익이 없으면 투자를 해서라도 수익원을 만들어야죠.”
“저는 헛돈 쓰는 걸 싫어합니다.”
정현정이 까칠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병원이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곳이지만 돈 없이 굴러가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요.”
“…….”
“사람 목숨도 돈으로 살립니다. 돈이 사람 목숨보다도 위일 수 있다는 말이에요.”
정현정의 목소리가 한겨울 칼바람처럼 차갑고 혹독했다.
신원 재단 부이사라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현정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분위기였다.
“오는 길에 서 과장님에 대해 알아 봤는데요. 환자라면 물불을 안 가리시더군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애초에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신경외과를 택했으니까요.”
“그런 분이 사업이니 투자니, 수익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니까 영 믿음이 안 가네요.”
정현정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준후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정현정과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철벽을 느꼈다.
저 철벽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어떻게 파괴해야 할까.
이대로 주저앉으면 준후의 야심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뇌전증 환자는 끊임없이 고통 받을 테고, 의국을 장악하는 일은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러니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부이사장님 말씀을 바꿔 말해볼까요?”
“무슨 뜻이죠?”
“돈이 사람 목숨보다 더 위일 수도 있다고 하셨죠?”
“네. 분명히 그리고 똑똑히 그렇게 말했죠.”
“그 논리대로라면 돈만 있으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네요?”
준후가 반전 화법에 정현정의 눈동자가 커졌다.
잠자코 있던 병원장은 오히려 실눈을 뜨며 준후를 응시했다.
준후가 무슨 말을 할지 눈치를 챈 것이다.
하여간 약아 빠졌단 말이지.
“돈으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저는 스크루지가 되어도 좋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라면 생각이 좀 달라지시겠어요?”
“흐음…… 이건 생각을 못 했는데 허를 찌르시네요.”
“저도 부이사장님만큼 돈에 진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식이면 안 통해요. 사람 한참 잘못 보셨어요.”
“…….”
“저를 설득하려면 구체적인 수익 모델을 제시해야 해요.”
이에 준후가 자신만만하게 되물었다.
“왜 못 합니까?”
* * *
준후의 일방적인 설명은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외과의라서 재정이나 사업 측면에는 까막눈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각종 자료를 들이밀며 수익성을 따지는 모습이 꽤 전문적이었다.
비보험이라 수술 단가가 높다.
타 병원은 이미 수술 예약이 만석이다.
수술 시간이 짧아서 수술 회전율도 끝내준다 등등.
다만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그것은 바로 뇌전증 전용 로봇 수술을 도입하는 비용이었다.
로봇 가격 한 대가 무려 30억이었다.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준후는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를 도입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서 과장. 너무 세게 나가지 말고 일단 시범적으로 한 대만 들여놓는 건 어때?”
병원장이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후의 말빨이 정현정에게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본인도 이번 일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남겨야 했다.
“한 대로는 환자들 커버 못 합니다. 타 병원도 한 대로 진행 중인데 수술이 7개월이나 밀렸다니까요?”
준후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사람들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뇌전증 환자도 계속 늘어나겠죠.”
“…….”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원금 회수 시점이 멀어서 그렇지 수익은 반드시 납니다.”
준후는 뇌전증 로봇 수술로 얻을 수 있는 부가적인 이익도 덧붙였다.
1) 뇌전증 로봇 수술을 두 대나 운영하는 최초의 병원이라는 타이틀이 병원 이름값을 올릴 것이다.
2) 그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병원에 몰려들 것이다. 신경외과뿐만 아니라 다른 진료과도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다.
준후는 모처럼 열변을 토했다.
환자를 치료가 아니라 사업 이야기로 영혼이 뜨거워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씀은 잘 들었지만 아직 긴가민가하네요.”
정현정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외과 수술로 병원 수익률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처음 들어서.”
“그 어려운 걸 해낸다면 부이사장님의 입지도 올라가겠죠.”
“괜히 저를 들먹거리지 마세요. 어차피 본인을 위해 하는 일이면서.”
“기왕이면 둘 다 잘 되는 게 좋겠다는 의미에서 드린 말입니다.”
“로봇은 어디서 들여올 생각인데요?”
“메이유를 통해서입니다. 두 대를 한꺼번에 들이면 7억 정도를 깎아준다고 합니다.”
“정말인가? 7억씩이나?”
잠자코 있던 병원장이 입을 쩍 벌렸다.
벌어진 턱이 좀처럼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정현정이 가자미눈으로 물었다.
“제가 메이유에 벌어다 준 돈이 1, 2달러인 줄 아십니까? 거기는 수술이 기본 몇 천 만 원 대예요.”
“…….”
“그럼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따는 7년 동안 제가 안긴 수익을 계산해 보세요.”
준후는 마침내 필살기를 꺼냈다.
메이유와의 연계.
거기에 로봇 수술 비용 할인까지!
원래 협상에서는 자기가 가진 패를 처음부터 다 내놓으면 안 됐다.
남녀가 밀당을 하듯.
중요한 정보를 조금씩 풀며 상대를 매혹해야 했다.
“더 말해봐야 부이사장님 귀만 아플 것 같습니다. 슬슬 속 시원하게 결정해 주시죠.”
준후가 정현정을 쳐다보았다.
병원장의 시선도 정현정에게 머물렀다.
누가 뭐래도 최종 결정권자는 정현정이었다.
부산 신원대 병원은 그녀의 손아귀에 있었다.
“좋아요. 제 결정은…….”
* * *
준후와의 미팅이 끝난 후.
정현정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식사 자리에 1시간 정도 앉아 있었을 뿐인데 어쩐지 기진맥진했다.
흡혈귀에게 피를 몽땅 빨린 기분이었다.
서준후라는 흡혈귀에게.
“오셨어요. 아가씨.”
“네. 오늘은 피곤하니까 바로 들어갈게요.”
현관에서 가정부가 정현정을 맞아주었다.
정현정은 가정부에게 백을 맡겼다.
으리으리하게 넓은 거실을 지나치는데 모처럼 거실 소파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정현우.
신원 식품의 대표이자 부산 신원대 병원 이사장.
아버지는 독서광이었다.
쓰고 있는 돋보기 안경의 테가 조명에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왔습니다. 아버지.”
“그래. 미팅은 잘 끝냈고?”
“네. 별일 없었어요.”
정현정이 아버지 옆에 있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읽고 있는 책이 눈에 익었다.
“서준후 선생 책을 읽고 계시네요? 안 그래도 오늘 서 선생 만나고 왔는데.”
“병원장하고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니?”
아버지가 책에서 눈을 떼고 정현정을 쳐다보았다.
“동석했어요.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고.”
“그거 의외구나.”
“네. 뇌전증 전용 로봇 수술을 도입해서 뇌전증 클리닉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고 싶대요. 택도 없는 소리죠.”
정현정의 목소리에 콧방귀가 섞였다.
방금 끝난 약속 자리에서.
정현정은 일주일 정도 판단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사업을 하지 않는 쪽으로.
원래 거절이라는 건 만난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럼 상대가 반감을 가지니까.
“사업성은 있었니?”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요, 오히려 좋았어요. 근데 그래서 더 의심스럽더라고요. 원래 사기꾼이 더 치밀한 법이잖아요.”
정현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책을 읽어보니까 사기 칠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일반적인 사기는 아니겠죠. 환자를 위해 병원을 등쳐먹겠다는 사기랄까요.”
“그래?”
“서 선생 책을 읽고 계신다고 사업을 통과시키란 말씀은 하지 마세요. 병원 일은 저한테 완전히 맡기기로 하셨잖아요.”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단다.”
아버지의 미소가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 아비가 궁금한 게 하나 있구나.”
“뭔데요?”
정현정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질문은 늘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읽고 있는 책이 서준후의 책이라는 것도 뭔가 심상치 않았다.
“서준후 선생 말이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