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10)
무공 쓰는 외과 의사-510화(510/540)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10화
제100장 합심(1)
부산 동구에 위치한 새광명 한의원.
한 중년 사내가 골프 가방을 어깨에 멘 채 터덜터덜 나오고 있었다.
부산 신원대 병원 신경외과 부 교수.
김한상이었다.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한의원에서 끊어준 진료 확인서였다.
진단명에는 ‘독감’이라는 단어가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묵직한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 안에는 한 달 치 한약이 들었다.
진단서를 끊기 위해 구입한.
일종의 뇌물이었다.
“일 한 번 더럽게 꼬이는군.”
김한상은 한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하필 오래 전 잡은 골프 약속에.
이사장이 응급 환자로 실려 올 건 뭐란 말인가.
눈치 9단인 진료부원장이었다.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진료부원장 눈 밖에 나면.
진급도 막히고 고달플 텐데.
걱정이 깊어질수록 늘어가는 건 한숨뿐이었다.
김한상은 한의원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에 올라탔다. 우울해서 그런지 좀처럼 운전대에 손이 가질 않았다.
그는 시동을 켜둔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파바바박!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려 대고 있었다.
아니, 생각을 고쳐 먹자.
차라리 잘 됐어.
병원 근처에 있었으면.
전화를 받고 꼼짝없이 수술방에 끌려갔을 거 아니야?
테이블 데스를 할 게 뻔할 이사장을 수술하고 책임을 옴팡 뒤집어썼겠지?
김한상은 열심히 행복 회로를 돌렸다.
세상일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해석을 바꾸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번호를 확인하고 김한상은 다급하게 통화를 연결했다.
“어, 문 교수 병원 상황은 어때?”
-부교수님 예상하신 그대로입니다. 딱 그 그림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
김한상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참 투명해서 좋아. 우리 서 과장은.”
-그러게 말입니다. 본인이 본인 무덤을 파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니 말입니다.
문 교수도 껄껄껄 웃었다.
최진구가 김한상의 오른팔이라면 문 교수는 왼팔이었다.
-이사장님 수술하다가 실패하면 외과의 커리어는 끝난 거 아닙니까?
“적어도 신원대에서 재기하기는 힘들겠지. 이 기회에 확 메이유로 떠났으면 좋겠군.”
-근데 이사장님 상태가 그 정도로 나쁜 겁니까?
신경외과 전문의지만 세부 전공으로 경추·요추 파트를 맡은 문 교수였다.
아무래도 뇌 파트 임상과 지식은 퇴화될 수밖에 없었다.
“자네, 스포츠에서 트라플 크라운이라는 용어를 쓰는 거 알고 있지?”
-대충 삼관왕 같은 뜻 아닙니까?
“맞아. 근데 그게 나쁜 쪽이라고 보면 돼.”
김한상이 야비하게 웃었다.
뇌출혈 중에서도.
다발성 뇌출혈은 드물다.
그런데 중뇌 – 소뇌 – 뇌엽 부위의 다발성 출혈은 더더욱 드물었다.
안타깝지만 어쩌랴.
이사장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령 준후가 날고 긴다고 해도.
손 쓸 도리는 없었다.
“진료부원장님께 찍힌 건 아쉽지만 그 원망은 금방 서 과장에게 넘어가겠지.”
-…….
“나는 적당히 반성하는 척하다가 진료부원장님 좋아하는 그림 한 점 사서 갖다 바치고 골프 좀 치면 될 거고.”
-하늘이 돕는군요. 손 안 대고 코를 풀게 됐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옛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새옹지마라고 하잖아? 일이 또 이렇게 될 줄 누군들 알았겠어.”
문 교수와 통화를 마치기 무섭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들썩 들썩 어깨춤도 터졌다.
김한상은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서준후의 몰락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 * *
그 시각 응급실.
준후는 입술을 꼭 깨문 채 이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5분 여간의 CPR을 통해.
이사장의 심장 리듬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일자로 누워 있던 리듬이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파동을 보였다.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었다.
이사장은 심장 판막 수술력이 있었다.
뇌수술을 하는 도중.
심정지는 거듭될 가능성이 높았다.
70대의 고령이라 수술을 감당할 체력도 턱 없이 부족할 테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사장의 목숨이 아직 붙어 있다는 것.
“자네는 체력도 좋군. 혼자서 흉부 압박을 소화하다니.”
진료부원장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우현은 수술 준비를 위해 먼저 떠났다.
그래서 준후의 보조는 진료부원장과 응급실 간호사가 맡았다.
진료부원장이 끈질기게 이 자리에 붙어 있는 이유야 뻔했다.
이사장이 회복한다면.
본인의 공이 있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잠깐 다들 침상에서 떨어져 주세요.”
“왜?”
“자세히 살펴볼 게 있습니다.”
준후의 지시에 스태프들과 비서가 침상과 거리를 뒀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었다.
비장의 무기 제천공을 펼칠 시간이었다.
준후는 모처럼 단전을 완전히 개방했다.
둑이 터진 것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이 한꺼번에 전신으로 밀려 들어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준후는 심장을 나이테 마냥 감싸고 있는 6서클의 내공까지 한꺼번에 개방했다.
그 많은 내공을 육신과 혈맥이 다 감당할 수 없는 일!
내공은 자연스럽게 체외로 분출되었다.
바깥으로 발산되는 내공으로.
준후는 자신과 이사장을 둥글게 감쌌다.
내공의 중력장을 가다듬어.
하늘로 쏘아 보낼 듯이 운용했다.
물리학에 따르면.
높은 곳에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고 낮은 곳에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한다.
제천공의 이치는 어느 정도는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무림맹주야 하늘을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제천공을 창안했겠지만 말이다.
제천공을 펼친 상태에서.
준후는 스태프들과 비서를 살폈다. 준후의 눈에 그들은 움직임 멈춘 듯 보였다.
제천공으로 시간 선이 갈렸기 때문이다.
‘소뇌 출혈부터 처리하는 게 최우선이야. 이 부위 출혈은 개두술로 접근할 수 없어.’
준후는 이사장의 목 뒤로 오른손을 넣어 뒤통수를 받쳤다.
팟! 팟! 팟!
왼손으로 출혈이 발생한 혈관 주변에 점혈법을 펼쳤다.
검지가 전광석화로 움직였다.
이는 내공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터진 혈관을 막아주려는 의도였다.
출혈은 멎은 듯했으나.
치료는 아직 절반이 남아 있었다.
내공을 초음파처럼 쏘아보니 소뇌가 뒤로 밀려 탈출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혈종(hematoma).
출혈로 생긴 피딱지가 크고 단단하게 굳으면서 뇌압을 높인 탓이었다.
혈종 역시 준후가 해결해야 했다.
아니, 준후밖에 해결할 수 없었다.
이제 양손으로 이사장의 뒤통수를 받쳤다.
“휴우.”
본격적인 처치에 앞서 심호흡을 했다.
솔직히 떨렸다.
긴장도 됐다.
아까부터 입안이 바짝 말랐고.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제천공도 아직 다 무르익지 않은 상태.
그런데 내공으로 혈종까지 분쇄해야 한다니…….
첩첩산중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사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외길이라면 꿋꿋하게 걸어가는 수밖에.
‘가자!’
각오를 굳힌 준후의 눈빛이 용맹하게 빛났다.
우선 내가기공의 이치를 펼쳐 내공을 소뇌쪽으로 접근시켰다.
혈종의 위치를 파악한 뒤 내공을 검처럼 날카롭게 벼렸다.
소뇌나 주요 혈관을 베면 안 돼.
무조건 혈종만 벤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준후는 모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을 들었다.
이사장의 뒤통수를 받치고 있던 손에 떨림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불안에 요동치던 마음은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주변의 소음도 어느새 들려오지 않았다.
온 신경이 검과 혈종에만 집중되었다.
지금은 그저 할 수 있다, 해낸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검아일체(劍我一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경이 준후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처치가 실패할 거라는 걱정은 먼지 한 톨만큼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이 느낌이.
현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출입구가 아닐까 하는 예감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준후는 내공의 검을, 아니 자기 자신을 과감하게 휘둘렀다.
망나니가 참수를 하듯.
혈종의 목 부분을 과감하게 쳐냈다.
서걱!
톡!
혈종의 목이 잘려 나간 게 느껴졌다.
오그라들었던 혈관이 느슨하게 이완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이랄까.
다만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저만한 크기의 혈종을 내버려둔다면.
혈종이 뇌혈관을 돌아다니다가 어딘가를 콱 막아버릴 위험이 있었다.
준후는 다시 내공의 검을 들었다.
제거한 혈종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혈종은 속절없이 잘게 잘게 쪼개졌다.
혈종의 목을 칠 때보다 2배는 더 어려운 처치였지만 준후는 어쩐지 두려움이 없었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하아…… 끝났다.’
준후가 이사장의 뒤통수를 받치고 있던 손을 빼냈다.
수술로 접근 못하는 소뇌 부분.
소뇌에 발생한 출혈을 개두술 없이 지혈하고.
혈종까지 제거하는 눈부신 활약을 해낸 것이다.
가장 어려운 처치를 마무리하고.
준후는 다른 두 부위의 출혈을 점혈법으로 지혈했다.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지만.
이걸로 당장 급한 불은 껐다.
“으으으으.”
준후가 한 손으로 앞머리를 움켜쥐고 휘청거렸다.
제천공을 거두자마자 후유증이 덮쳐왔다.
위이이잉.
고막에서 시끄런 이명이 들렸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머리 전체가 쿵쿵 울렸다.
단기간에 내공 소모가 컸던 탓일까.
하단전과 심장에서도 욱씬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서 과장. 괜찮아?”
진료부원장이 급하게 달려와 준후를 부축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건가? 이사장님을 살핀다면서.”
“피로가 쌓였나 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후는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았다. 몰려오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이사장님의 뭐를 살핀다는 건가?”
“그게……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수술을 빨리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뭐, 자네 말이 맞겠지.”
진료부원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기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몰랐다.
까맣게 몰랐다.
준후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한 가지 수술을 이미 끝냈다는 것을.
그래도 상관없긴 했다.
준후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의술에 몸을 담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침상부터 수술실로 이동시키죠.”
준후는 침상을 끌면서 응급실을 벗어났다.
복도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후의 예상이 맞다면.
이번 수술은 무공으로.
또 준후의 수술 능력만으로도 헤쳐 나갈 수 없었다.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어. 혹시 지금 통화 괜찮아? 곧장 병원에 와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