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11)
무공 쓰는 외과 의사-511화(511/540)
제100장 합심(2)
‘저…… 저 미친 놈!’
김한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뒤늦게 병원에 도착한 김한상은 진료부원장과 불편한 동행을 해야 했다.
참관용 수술방에서 함께 준후의 수술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얼굴을 보면 한 됫박 욕과 비난이 쏟아질 줄 알았건만 진료부원장은 침묵을 지켰다.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김한상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재해 등급으로 치면 1등급이었지만 별수 있겠는가.
진료부원장의 심기는 이미 꼬일 때로 꼬였거늘.
현 상황이라면 ‘1+1은 2’라고 해도 안 먹힐 것이다.
그래서 김한상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한의원에서 챙겨 온 진료 확인서도 내밀지 않았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덮는 법.
준후가 수술에 실패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리리라.
그런데 웬걸?
잔뜩 기대하며 참관 중인 수술의 전개가 불길했다.
요약하자면.
수술이 너무 순조로웠다.
그가 레지던트에게 받은 CT 영상에 따르면.
이사장은 두개골을 열기도 전에 저승행에 가 있어야 마땅했다.
다발성 출혈이 머리에 강을 이루고 있었고 따라서 뇌압도 어마무시 할 테니까.
신경외과의라면 누구나 절망할 상황이거늘.
준후는 침착하기만 했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양손 집도가 불을 뿜었다.
오른손이 왼손이고 왼손이 오른손이라서 손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었다.
양손은 똑같이 빠르고 정확했다.
양손잡이라고 해도.
보통 주력으로 쓰는 손과.
보조로 쓰는 손이 나뉘기 마련인데 준후의 양손은 차이가 없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의료용 드릴을 양손에 쥐고.
동시에 두개골에 2개의 구멍을 뚫어댔다.
심지어 메스도 양손에 쥔 채.
두개골을 절개했다.
메스가 남긴 궤적이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반듯했다.
심지어 수술은 정교한 와중에 빨랐다.
두개골을 절개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25분이었다.
김한상보다 3배 가까이 빨랐다.
‘저 녀석은 또 왜 그러는 건데?’
김한상의 심기를 건드리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레지던트 2년 차 우현이었다.
2년 차 주제에 건방지게 제1어시스트를 맡고 있었는데 준후를 보조하는 솜씨가 야무졌다.
치프 레지던트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색안경을 벗고 나니까 서 과장의 진면모가 보이는군.”
진료부원장이 모처럼 한마디 했다.
당연히 김한상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신경외과 전공이 아니더라도 서 과장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알겠어. 누구랑은 다르게.”
“면목이 없습니다.”
김한상은 미안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김 교수.”
“네. 진료부원장님.”
“정작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없는 도구가 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질문 속에 숨은 의미가 무시무시했다.
김한상을 노골적으로 저격하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마른침에 목젖이 출렁거렸다.
“그래도 아껴서 잘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쓸모가 없는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을까?”
“무엇이 언제 어떻게 필요할지는 모르는 법이죠. 저라면 일단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흥.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진료부원장이 코웃음을 쳤다.
말을 하는 내내 그는 김한상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둘 사이에 철벽이 쳐져 있었다.
시간은 거센 물살처럼 빨랐다.
수술은 어느새 종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발성 출혈 부위가 세 곳이었는데, 준후는 전광석화로 두 부위에 출혈을 막아냈다.
지혈하고 혈종을 제거했다.
비록 심전도는 불안했으나.
환자의 바이탈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뇌압은 20mmHg까지 떨어졌다.
최초 뇌압이 40mmHg였고 정상 뇌압이 15mmHg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성과였다.
눈부신 성과였고 기가 막힌 성과였다.
“서 과장님. 소뇌 수술은 안 합니까? 소뇌 출혈도 심했던 걸로 아는데요.”
김한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면 테이블로 이동했다.
마이크 전원을 켜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 채 말했다.
당연하게도 준후를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너 중요한 수술 하나 빼먹었잖아.
……라고 진료부원장 앞에서 핀잔을 주는 말이었다.
-일단 Portable Brain CT 촬영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준후도 방송용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CT 촬영이라면 수술을 마치고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김한상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나긋나긋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단 촬영 결과부터 지켜보시죠.
“알겠습니다. 노파심에 한 소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과장님의 깊은 뜻을 믿습니다.”
알랑방구를 끼고서.
김한상이 자리로 돌아왔다.
수술방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CT로 머리를 촬영했다.
결과가 참관용 수술방 모니터에 떠오르기 전까지.
김한상은 야비한 미소를 머금었다.
쇼는 끝났어.
하늘은 너를 버렸다고.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사장 소뇌에 발생한 출혈은 수술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호흡 및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중추였기에 미세한 충격만 가해져도 환자는 목숨을 잃었다.
준후가 제아무리 명의라도 수술할 수 없는 부위를 수술할 수는 없었다.
즉 게임은 여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곧 참관용 수술방과 연동된 모니터에 떠오른 CT 영상을 확인한 순간.
김한상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경악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졌다.
이사장의 소뇌 쪽이 깔끔했다.
애초에 출혈이 없었다는 것처럼.
눈을 비비고 보아도 영상은 정상이었다.
정녕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아주 드물게 출혈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늘이 저를 도운 모양이군요.
준후의 목소리가 참관용 수술방에 퍼졌다.
신경외과 전공이 아닌 진료부원장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한상은 그럴 수 없었다.
이건 거의 사기에 가까웠다.
자연히 흡수되는 출혈이 있고 수술을 통해서만 바로 잡을 수 있는 출혈이 있는데.
이사장의 출혈은 명백히 후자였다.
“뭐가 뜻대로 안 풀렸나 보지?”
껄껄껄 웃는 진료부원장.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김한상은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 * *
꼴좋다.
요번 건 대미지가 컸을 걸?
회복하는 데 최소 한 달은 걸리겠지.
준후는 마스크 뒤에서 음흉하게 웃었다.
김한상의 새까만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의술은 물론이요 심리전과 정치질에도 일가견이 있는 준후였기에.
평범한 의사라면 소뇌 출혈을 잡지 못해 결국 이사장을 완치하지 못했겠지만 준후는 달랐다.
준후는 ‘무공’과 ‘내공’을 갖춘.
세상에 둘도 없는 능력을 갖춘 외과의였다.
소뇌 출혈은 수술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해결한 상태였다.
제천공으로 시간을 왜곡하고.
점혈법으로 출혈을 막으며.
내공의 검으로 혈종을 갈가리 찢어놓으면서 말이다.
“정말 신기합니다, 과장님. 저도 소뇌 출혈이 계속 신경 쓰여서 집중을 못 했는데.”
“…….”
“자연 치유가 되어버리다니.”
“이런 날도 있어야 집도할 힘이 나지 않겠어?”
준후가 눈으로 찡긋 웃었다.
“그나저나 우현이 너도 고생 많았다. 네 도움이 컸어.”
“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우현이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수술의 숨은 공신이 바로 우현이었다.
레지던트 2년 차임에도.
준후의 어시스트를 빈틈없이 책임졌던 것이다.
준후가 보통이 아니었던 만큼.
준후를 보조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수술 과정을 꿰뚫는 건 기본이고.
준후의 속도와 정확도를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이 필요했다.
“사실은요.”
“사실은?”
“제가 과장님 어시스트를 몇 번 해봤잖아요. 그때마다 밤새 어시스트를 복기해 봤습니다. 다음번에 과장님께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
“과장님을 생각하면서 과장님을 조금 닮게 된 것 같습니다.”
“훌륭하네. 지금처럼만 해.”
준후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우현은 여러모로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과거의 준후도 스승 박재현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열의를 불태우곤 했다.
“이제 마지막 한 고비가 남았네.”
“네? 수술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소뇌 출혈도 잡혔는데요?”
준후의 충격 발언에 우현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소독 간호사와 제2어시스트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수술방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심전도를 봐봐. 파형이 불안하지?”
“네. 근데 그거야 이사장님이 과거에 심장 판막 수술을 받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래도 저건 너무 비정상적이야. 심장 수술을 따로 받아야 해.”
“그…… 그런…… 이사장님 연세가 70세인데 뇌수술과 심장 수술을 동시에 감당할 체력이 될까요?”
“그게 가능한 서전을 찾아야지.”
준후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지이이잉.
수술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의사가 수술대로 다가왔다.
한 명은 체구가 가냘픈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수수깡처럼 깡마른 남성이었다.
낯선 스태프들의 등장에.
기존 스태프들이 잔뜩 긴장했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낯선 스태프들을 훑었다.
“인턴 때 이후로 처음인가? 수술방에서 마주하는 건?”
여성 서전이 준후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근데 앞으로는 자주 보게 될걸?”
“수술방에서 보는 건 싫은데.”
“싫으면 시집가든가.”
“시집은 벌써 갔거든요?”
무척 가까운 사이인지 준후와 여성 서전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우현아, 잠깐 나와 있어.”
“아. 네. 과장님.”
준후와 우현이 떠난 자리를 여성 의사와 남성 의사가 각각 차지했다.
여성 서전이 환자의 가슴에 젤을 바르고 환자의 가슴에 Echocardiography(심초음파)를 실시했다.
‘과장님이 미리 흉부외과에도 연락을 하셨나 보구나. 어쩐지 심전도를 계속 체크하시더니. 역시 놓치는 게 없다니까.’
우현은 자신의 롤모델인 준후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준후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여성 서전에게 자꾸 눈이 갔다.
성 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외과 계통을 전공하는 여성을 마주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타고난 피지컬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남성보다 힘이 좋은 여성이 있고 여성보다 섬세한 남성도 있겠지만 평균을 무시하기란 힘들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침묵.
먼저 말문을 연 건 여성 의사였다.
“수술해야겠다. 약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뭐가 문제인데?”
“심장 판막이 많이 망가졌어. 내버려두면 심부전증이 올 수도 있어.”
“그걸 왜 지금까지 몰랐어? 매년 건강검진 받는 거 아니야?”
준후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현도 동의하는 바였다.
“환자 건강상태에 따라 판막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도 있거든.”
“이사장님이 버틸 수 있을까? 나이가 있잖아. 뇌수술로도 이미 2시간을 까먹었는데.”
아까 우현이 준후에게 했던 질문을 준후가 여성 의사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하긴 신경외과에서 독보적이라고 해도 흉부외과까지 조예가 깊을 수는 없었으니까.
“최소 침습 수술로 진행하면 괜찮을 거야.”
“내시경 수술을 하겠다는 거지?”
“맞아. 저체온 요법 병행하면서 수술 시간을 단축하면 승산은 충분해.”
“미안. 우천으로 세미나 취소됐는데 수술을 맡겨서.”
“그럼 저녁에 크룽지 사줘.”
“크룽지는 뭔데?”
“크루아상을 누룽지처럼 누른 디저트야.”
“이 와중에 디저트 타령이네.”
준후와 여성 의사의 대화가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허물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 사이로 느껴지는 대화였다.
“잘 부탁해.”
“응. 고생했어. 뒤는 나한테 맡겨.”
“우린 나가자. 방해만 될 테니까.”
“네. 과장님.”
준후와 우현이 홀가분하게 수술방을 떠났다.
수술 가운과 수술모, 수술 장갑등을 벗으며 우현이 준후에게 물었다.
“저분은 대체 누구에요? 꼭 과장님 마누라처럼 굴던데.”
준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마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