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14)
무공 쓰는 외과 의사-514화(514/540)
제100장 합심(5)
‘이크, 너무 과했나?’
준후는 천석영에게 쏘아냈던 투기를 부리나케 거두어들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천석영이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투기(鬪氣).
전투 의지를 내공으로 발산하는 무공.
무림에서 삼류 잡배들이 시비를 걸 때 준후가 종종 즐겨 쓰는 수법이었다.
사실 현대에서는.
투기만 사용해도 거의 모든 사람이 준후에게 껌뻑 죽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무공으로 누군가를 제압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타락할까 두려워서였다.
모든 마(魔)는 힘‘만’을 추구하는데서 힘‘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데서 비롯되기 마련이었다.
“천 교수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셨는데.”
“이…… 이제 좀 괜찮아요.”
순댕이 정민재가 천석영을 걱정했다.
천석영이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하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 눈동자가 몽롱했다.
“흠흠. 지금부터 두 분께 로봇 수술 사용법을 간단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나 하고 잘 봐두세요.”
준후가 조종간에 앉았다.
수술 로봇의 조종간은 로봇 만화에 나오는 조종석과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우선 등받이 좌석이 있었다.
그 앞으로 수술 시야를 책임지는 모니터가 있었다.
준후는 모니터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 형태의 모니터 구멍에 준후의 머리가 딱 들어맞았다.
“모니터 홈에 머리를 넣으면 좌우 시야가 차단됩니다. 수술 시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죠.”
“네. 과장님.”
“그 상태에서 여기 있는 마스터 조정 장치를 사용해 주는 겁니다.”
준후가 마스터 조정 장치에 손을 얹었다.
마스터 조정 장치는 스틱 형태였는데 그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센서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포착해 로봇팔을 섬세하게 움직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준후가 마스터 장치를 움직였다.
잠자코 있던 수술용 로봇이 기계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와. 신기하네요.”
정민재가 조종간을 한 번 쳐다보고 수술대를 한 번 쳐다본 후 감탄을 터뜨렸다.
“로봇 수술의 장점 중 하나는 관절 가동 범위가 사람보다 넓다는데 있어요.”
준후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로봇 수술의 손목이 360도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두 분 다 손목 돌려보세요.”
“네. 과장님.”
“네. 과장님.”
준후의 지시를 따르던 두 사람이 이내 끙끙 거렸다. 당연하게도 로봇처럼 손목이 유연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270도까지는 얼추 돌아갔지만.
나머지 각도인 90도는 끝내 소화할 수 없었다.
“360도가 다 돌아가지는 않네요.”
“네. 바로 그겁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걸 로봇은 할 수 있죠. 관절 가동 범위가 넓으니까 내시경 수술로 할 수 없는 깊숙한 부위로 접근할 수도 있고 처치도 정교하게 할 수 있어요.”
“장점이 그렇게 크면 무조건 로봇 수술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천석영이 툴툴 거리며 물었다.
말투는 시비조였지만 충분히 의심을 품을 만한 질문이었다.
“로봇 수술은 일단 절개창을 작게 내다보니 수술 시야가 비좁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아직 수술 도구가 많이 개발된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단점은요?”
“서전이 촉각을 느낄 수가 없어요.”
준후가 쓰게 웃었다.
많은 서전이 로봇 수술에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촉각 문제에 있었다.
맨손으로 절제를 한다고 치자.
서전은 메스에 닿는 손의 촉감을 통해서.
메스가 깊게 들어갔는지.
또는 얕게 들어갔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봇 수술은 그게 불가능했다.
촉각을 눈으로 느껴야 했다.
조종간을 쥐고 있는 손이 로봇팔의 촉각을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준후도 이점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무공으로 발전시킨 예리한 촉감을 로봇 수술에서는 손톱만큼도 발휘할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죠. 세상에 장점만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
“설명 계속하겠습니다.”
조종간을 움직이면서 준후는 조종간 하단부에 있는 페달을 차례대로 밟았다.
페달은 총 4개가 있었다.
수술 시야를 상하좌우로 조절하는 페달이 3개.
로봇팔에 전기 소작 기능을 부여하는 페달이 1개였다.
로봇 수술에 능했으므로.
준후는 자유자재로 수술 로봇을 다루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준후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로봇팔의 움직임이 마치 한 편의 쇼와 같았다.
‘오랜만에 하니까 나름 재밌네.’
준후는 모처럼 신났다.
* * *
30분 가까운 시연이 끝났다.
시연을 하면서 준후는 다시 한번 로봇 수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개론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준후가 조종간에서 일어나 천석영과 정민재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다 표정이 떨떠름했다.
과연 내가 수술 로봇을 다룰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눈동자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곤란하면 준후도 곤란했다.
진짜 시련은 지금부터였다.
“두 분께 두 달을 드리겠습니다. 두 달 안에 로봇 조종을 마스터 하세요.”
“두…… 두 달이요?”
놀란 정민재가 말을 더듬었다. 바보처럼 입을 떡 벌렸다.
“과장님. 아직 연습은 안 했지만 최소 6개월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아니요. 타협은 없습니다. 무조건 두 달 안에 숙달하세요. 그래야 뇌전증 클리닉이 완공됐을 때 바로 수술에 들어가죠.”
준후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참고로 지금부터 천 교수님과 정 교수님은 경쟁자입니다. 로봇을 먼저 또 정확하게 다루는 분은 부산에 남을 거고요.”
“…….”
“아닌 분은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갈 겁니다.”
“그…… 그럴 수가.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과장님.”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잠자코 있던 천석영도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사람이 준후가 매몰차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정작 준후는 눈썹 한 번 까닥거리지 않았다.
“제가 지금 농담하는 얼굴로 보입니까?”
“…….”
“로봇 수술이 가능한 뇌전증 클리닉을 운용하게 된 이상. 로봇을 못 다루는 분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요. 과장님 말대로 한 명을 전근 보낸다 칩시다.”
천석영이 팔짱을 낀 채 말대꾸를 했다. 그의 고개가 어느새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 새로 받은 정위신경외과의가 로봇을 잘 다룬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
“새로 온 사람도 로봇을 못 다룬다면 그분도 또 다른 곳으로 보내야죠.”
“계속 뺑뺑이를 돌리겠다?”
“네. 그 공백은 제가 채우면 됩니다.”
“본인 수술 스케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잖아요.”
“저라면 소화할 수 있습니다.”
준후의 대답이 자신만만했다.
문제가 될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듯 천연덕스러웠다.
“…….”
“…….”
한 차례 격렬한 토론 후.
무거운 침묵이 수술방에 내려앉았다. 누구도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세 사람 다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어림도 없어.
당신 뜻대로는 안 될 거야.
준후의 시선은 특히 천석영에게 오래 머물렀다.
[천 교수가 태업으로 뇌전증 클리닉을 망칠 예정. 대비가 필요함.]지금으로부터 40분 전.
첩자인 최진구에게 받은 메시지였다.
뇌전증 클리닉 운영에 필요한 교수는 두 명이었다.
그것도 수술용 로봇을 잘 다룰 수 있는.
만약 천석영이 태업을 한다면.
로봇 조작을 일부러 배우지 않는다면.
뇌전증 클리닉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인력 부족 문제로.
물론 준후가 몇 번 거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까 천석영이 언급한 대로.
준후의 정규 스케줄은 이미 살인적이었다.
그래서 준후는 일부러 강력한 으름장을 놓았다. 로봇 수술의 숙련도를 보고 둘 중 한 명을 전근 보내겠다고.
이러면 천석영도 감히 태업을 할 수 없었다.
수련을 소홀히 하면 본인의 터전인 부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야 하니까 말이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은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매일 저녁 제가 두 분의 조작 연습을 돕겠습니다.”
“…….”
“제가 야박해 보이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요.”
“…….”
“참고로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신 분께는 고생한 것 이상의 특별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그 점도 꼭 기억해 주세요.”
“…….”
“혹시 더 남아서 연습하실 분 있습니까?”
“제가 남겠습니다.”
정민재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준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적극적인 자세가 좋네요. 천 교수님은 그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과장님.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천석영이 경고하듯 말했다.
준후를 향한 눈빛이 매서웠다.
“이런 식의 운영은 좋지 않아요. 앞으로 큰 반발을 사게 될 겁니다.”
“왜 갑자기 제 인생을 책임지려고 하세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세요.”
“흥! 두고 봅시다.”
천석영이 찬바람을 날리며 뒤돌아섰다.
그가 떠난 후 정민재가 콘솔에 앉았다. 부담감 때문인지 정민재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준후도 정민재에게는 미안했다.
천석영 때문에 같이 피해를 보게 생겼으니까 말이다.
진실을 말해주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원래 누군가를 속이려면.
같은 편도 속여야 하는 법이었다.
“하아…… 과장님. 근데 두 달 안에 로봇 조작을 익히라니 너무 과한 요구 아닙니까?”
정민재의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경쟁까지 붙이시다니요. 평소 과장님답지 않아요. 솔직히 과장님께 실망했습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죠. 마음 푸세요.”
준후가 정민재의 등 뒤로 다가갔다.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려 손가락 끝에 담았다.
“힘 빼고 가만히 계세요. 두피 마사지 해드릴게요.”
“수술방인데요?”
“진짜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준후는 본격적으로 정민재의 머리를 마사지 해주었다.
하지만 그 마사지는 결코 평범한 마사지가 아니었다.
머리에 위치한 24개의 혈을 자극해서 뇌 혈류를 증가시키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전두엽 중에서도 전운동피질, 일차 운동 피질, 보조 운동 영역을 자극하는 ‘두뇌 점혈법’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꾸우우욱.
꾸우우욱.
내공이 담긴 준후의 손가락은 정민재의 다양한 뇌신경까지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뇌 점혈법.
이는 준후가 레지던트 시절에 특히 적극적으로 활용한 수법이었다.
점혈을 치료 말고 교육용으로 써보자.
이런 발상으로 시작했는데.
그 효과는 경이로웠다.
두뇌 점혈법 덕분에 준후는 1년 차에 신경외과 전공 서적을 전부 독파했다.
스승 박재현의 노하우가 담긴 비밀 노트까지 섭렵했다.
뇌의 영역별 기능이 증폭되니 학습 속도가 무시무시해졌던 것이다.
“마사지 효과가 되게 좋네요. 갑자기 머리가 탁 트인 느낌입니다.”
정민재가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과장님이 아까 설명해 주신 내용도 선명하게 다 기억나네요. 신기하게.”
“그래서 받으면 좋다고 했잖아요.”
“일단 기억나는 대로 해볼게요.”
정민재가 조종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더듬거렸지만 2-3번째 시도에서는 제법 그럴싸하게 준후를 따라했다.
로봇팔의 움직임이 차츰 자연스러워졌다.
당연히 두뇌 점혈법 덕분!
지금 정민재의 두뇌는 말랑말랑한 스펀지와 같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즉 2개월 안에 로봇 수술을 익히라는 준후의 말은 결코 냉혹한 게 아니었다.
두뇌 점혈법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과장님, 조작법 더 가르쳐주세요. 지금은 뭐든지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아낌없이 가르쳐드리죠.”
준후가 씨익 웃었다.
정민재는 이미 넘어왔고.
메인 디쉬인 천석영만 요리하면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