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15)
무공 쓰는 외과 의사-515화(515/540)
제101장 계획대로(1)
“네. 부교수님. 저 천 교수입니다.”
천석영이 휴대폰을 뺨에 착 붙이고 말을 계속했다.
“혹시 통화 괜찮으십니까?”
-왜? 무슨 일 있어? 어째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데?
“저희 계획이 완전 나가리가 됐습니다. 이제 어쩌죠?”
-구체적으로 말해봐.
천석영은 방금 준후와 나눴던 이야기를 김한상에게 고스란히 일러바쳤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그러니까 자네랑 정 교수를 경쟁 붙였단 말이지? 못하는 쪽을 전근 보내겠다고 협박을 했고?
“네. 서 과장,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는 재주가 있더군요. 아까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수술방에 있던 순간이 악몽으로 떠올랐다.
천석영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천석영이 태업을 한다.
집도의가 모자란 뇌전증 클리닉이 위태로워진다.
준후의 입지가 좁아진다.
김한상이 다시 실권을 잡는다.
두 사람이 세운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준후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첫 단추부터 꿰지 못할 위험에 처했다.
-쳇! 냄새 한 번 기가 막히게 맡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 이대로 태업했다간 전근 가게 생겼는데 어떻게 합니까?”
-서 과장이 그냥 겁만 주려고 한 거 아닐까? 둘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뇌전증 클리닉 운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뱀 눈깔을 뜨면서 말했는데 독기가 바짝 올라 보였어요.”
천석영은 불안함에 몸서리를 쳤다.
준후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과장으로 부임한 이후 준후가 밀어붙인 일 중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부이사장이 반대했다는.
이번 뇌전증 클리닉 프로젝트이 성사된 것만 해도 그랬다.
어디 그뿐인가.
서전으로서의 실력도 범접 불가능했다.
다른 서전들이 5-6시간 걸리는 수술을 준후는 2-3시간 만에 뚝딱 해치웠다.
그것도 신경외과와 관련된 수술이라면 그 어떤 분야라도.
완성도나 정확도가 떨어지면 꼬투리라도 잡을 텐데…….
이마저 불가능했다.
적어도 수술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 누구도 준후를 건드릴 수 없었다.
“서 과장은요.”
천석영이 한 번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제가 태업하다가 전근 가도 본인 수술을 더 빨리 끝내서 뇌전증 수술을 맡을 위인입니다.”
-일단 며칠만 더 버텨 봐. 내가 정보를 좀 알아볼 테니까.
“그럼 부교수님만 믿겠습니다.”
통화를 끊고서 천석영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사이에.
복도 통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몇 년은 더 늙어보였다.
이게 다 준후 때문이었다.
* * *
이튿날 오전.
준후는 의국 컨퍼런스에 불참했다. 그 시간에 VIP 병동에 있는 이사장의 병실을 찾았다.
병실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부이사장과 병원장과 진료부원장.
이렇게 세 명이었다.
병원을 쥐락펴락 하는 이른바 최고 실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병동 간호사도 한 명 있었는데.
간호사는 침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군대로 치면.
별들이 모인 자리에 이등병이 껴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간호사에게는 지금 이 자리가 숨 막히리라.
“선생님은 스테이션으로 가보셔도 돼요.”
“그래도 제가 있어야…….”
“선생님이 필요하면 따로 호출할게요.”
준후가 간호사를 내보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준후에게 쏠렸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났구만.”
병원장이 잔뜩 과장한 목소리와 잔뜩 과장한 제스쳐로 준후를 반겼다.
하여간 저놈의 쇼맨십은…….
준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침상으로 다가간 준후가 일행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퇴원이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병원에서 좀 더 상태를 지켜보는 게 낫지 않나요?”
부이사장 정현정이 대뜸 물었다.
“이사장님은 충분히 회복되었습니다. 병동에 계시면 오히려 병이 악화가 될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어요?”
“네. 좀이 쑤시는 병이라고. 병원을 나가야만 완치되는 병입니다.”
“하하하. 자네만 내 속을 알아주는구만.”
이사장이 껄껄 웃었다.
정현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병원장과 진료부원장은 이사장을 따라 웃었다.
웃음에도 계급이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다들 자꾸 병원에 있으라고 하지 뭔가.”
“이사장님께서 워낙 위독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걱정이 돼서 그런 겁니다.”
“하지만 서 과장이 오케이 했으면 된 거지?”
“물론이죠. 이사장님을 치료한 서 과장이 이사장님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알 테니까요.”
잠자코 있던 진료부원장이 한마디 했다.
준후를 이용해서 본인의 존재감을 한 번이라도 더 각인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정파 무림맹에서 벌어졌던 일이.
현대 대학병원에서도 지겹게 반복되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었다.
물론 준후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서 과장. 이리 가까이 와봐.”
이사장이 손짓으로 준후를 불렀다.
준후가 좀 더 침상에 붙었다.
이사장은 뜬금없이 서랍장을 열더니 지갑을 꺼냈다.
뭐지?
설마 용돈이라도 주려는 건가?
다들 의아해하는 가운데 또 한 번의 반전이 펼쳐졌다.
이사장이 내민 것은 한 장의 명함이었다. 준후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명함을 받았다.
명함은 특이하게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투명한 바탕에 이사장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명함 좌측 상단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단순히 명함을 건넸을 뿐이거늘.
준후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특히 병원장과 진료부원장이 그랬다.
두 사람은 부럽다는 눈빛으로 준후와 명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치 빠른 준후는 이 명함이 특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달랑 명함 한 장 주니까 섭섭한가? 인센티브를 받는 게 더 좋겠어?”
“아닙니다. 너무 과분한 선물을 주셔서 당황했을 뿐입니다.”
“응? 그냥 명함 한 장 줬을 뿐인데?”
질문하는 이사장의 눈빛에 악동 같은 기색이 스쳤다.
이사장은 명백히 준후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사장님의 명함이라면 무게가 다르겠죠.”
“어떤 점에서?”
“명함 좌·상단에 10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준후가 해당 숫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 명함을 받은 건 제가 10번째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사장님이 아무에게나 주는 명함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눈썰미가 끝내주는 군. 절간에서 새우젓도 얻어먹겠어.”
이사장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목젖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이번에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또 달랐다.
정현정의 입가에는 제법이라는 미소가 걸려 있었고.
병원장과 진료부원장은 똥 씹은 표정을 했다.
준후가 이사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보상까지 받자 배가 아픈 듯한 표정이기도 했다.
“기회는 단 한 번 일세. 시덥지 않은 일로 연락했다간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
“명심하겠습니다.”
준후는 조심스럽게 명함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소원권을 얻었기 때문일까.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듯 든든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확 질러 버릴까, 뇌전증 기계를 정식으로 구입해 달라고?
순간 그런 욕망이 치밀어 올랐지만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뇌전증 클리닉은 부이사장과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사장을 끌어들일 순 없었다.
이사장과의 대화는 10분 뒤에 끝났다.
“서 과장,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하지.”
그렇게 외래 진료실로 내려가려는데 병원장이 준후를 불렀다.
* * *
VIP병동 응접실.
준후는 병원장·진료부원장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네 말이야. 이사장님 마음에 쏙 든 것 같군. 설마 전설의 그 명함을 받을 줄이야.”
병원장이 운을 뗐다.
“저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단 한 장씩만 주셨다는 명함 아닙니까? 가족을 제외하면 3명이나 받았을까요?”
진료부원장이 준후의 가운을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가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을 명함을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부러움과 시기로 번들거렸다.
“그나저나 기껏 받은 명함 조만간 사용해야 되는 거 아닌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뇌전증 클리닉 때문에 그러지. 내 눈에는 성공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이던데?”
병원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물론 그는 준후가 사비로 기계를 들여왔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네 평판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랐잖아. 가만히만 있어도 모두가 떠받들어줄 텐데.”
“…….”
“왜 부이사장님하고 싸워 가면서 제 살을 깎아 먹느냐는 거지.”
병원장이 보기에 준후는 한심했다.
젊은 나이에 과장 달았지.
주변에서 인정받지.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
심지어 최근 출판한 에세이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가리지 않고 1등을 차치했지.
오늘은 이사장의 명함까지 받았지 등등.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본인 커리어를 박살 낼 도전을 한단 말인가.
병원장은 가능하다면 준후의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저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요. 기왕이면 환자들도, 외과 동료들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포부는 멋있지만 이상론에 불과해.”
병원장이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그럼 한계까지 할 겁니다. 그게 제 깜냥이겠죠.”
“근데 방금 한 말, 뭔가 모순되는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진료부원장이 모처럼 대화에 껴들었다.
“무슨 모순 말입니까?”
“동료들을 위한다면서 교수들 경쟁은 왜 붙인 건가? 로봇 수술 숙련도가 낮은 교수는 전근 보내겠다고 엄포를 놨다면서?”
옳거니, 걸렸구나!
준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천석영이 김한상에게.
김한상은 다시 진료부원장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마 전 나눈 대화가 이렇게 빨리 진료부원장의 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런 전개라면.
천석영과 김한상을 절벽까지 몰아붙일 수 있으리라.
준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돌적인 공세로 전환했다.
“저는 환자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동료입니다. 환자를 치료할 능력이 안 되면 나가야죠.”
“그러니까 전근을 끝까지 밀어 붙이겠다?”
“네.”
“그럼 인력이 많이 부족할 텐데? 새로 온 교수가 로봇 수술에 익숙해진다는 보장도 없고.”
“제대로 된 사람이 올 때까지 제가 버텨야죠. 저 아직 젊습니다.”
준후가 자신감을 내비쳤다.
“병원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서 과장이 너무 무모해 보이지 않습니까?”
준후가 물러서지 않자 진료부원장이 병원장을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진료부원장은 모르고.
준후만 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병원장이라는 인물의 본질이었다.
준후는 확신했다.
병원장이 진료부원장의 편을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클리닉 운용이야 둘째 치고 교수를 싸움 붙여서 한쪽을 쫓아낸다니요. 발상이 너무 잔혹하지 않습니까?”
“잔혹하다라…….”
병원장이 턱을 쓸어내리면서 준후를 응시했다.
“서 과장.”
“네. 병원장님.”
“이번 뇌전증 클리닉 프로젝트 성공할 자신 있어?”
“자신 없었으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부이사장님께 대들지도 않았고요.”
“그럼 됐어. 서 과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하지만 병원장님, 이건 병원 차원에서…….”
“내 기분 잡치게 할 거 아니면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병원장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진료부원장을 제압했다.
진료부원장은 입도 뻥긋 못 했다.
“과정 같은 건 아무런 의미 없어.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클리닉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난 둘 다 잘라도 괜찮다는 입장이야.”
역시 준후의 예상대로였다.
병원장은 경쟁이나 전근 따위는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