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18)
무공 쓰는 외과 의사-518화(518/540)
제101장 계획대로(4)
그날 저녁, 준후의 집무실.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준후가 앉아 있었다. 그 양 옆에 위치한 소파에는 각각 천석영과 정민재가 앉았다.
준후를 중심으로 삼각형 구도가 만들어졌다.
정민재가 달달달 다리를 떨었다.
초조한 듯 손톱도 잘근잘근 씹어댔다.
천석영은 사뭇 태연해 보였으나 겉모습만 그랬다.
그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메마른 입술이 갈라졌고 찢어진 뱀눈은 준후를 곁눈질하기 바빴다.
꼭짓점에 위치한 준후의 판단에 두 사람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두 분 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이사장님과 병원장님이 참관해서 부담이 크셨을 텐데요.”
“…….”
“수술을 전부 성공적으로 끝내셨습니다. 오늘 같은 경사가 또 있을까 싶네요.”
준후는 손뼉을 쳐가며 기뻐했다.
뇌전증 클리닉의 위대한 첫 걸음은 대성공이었다.
준후에 바통을 이어받은 천석영, 정민재는 로봇 수술을 더할 나위 없이 소화해 주었다.
위기와 결말 없는 사이다 전개였다.
시야 확보.
로봇 조작의 숙련도.
수술에 대한 이해도 등등.
둘 다 수준급 능력을 뽐냈다.
이만하면 앞으로의 수술도 비단길이나 다름없었다.
“다 과장님 덕분입니다. 과장님 교육이 워낙 훌륭하지 않았습니까?”
천석영이 기다렸다는 듯 준후를 치켜세웠다.
“저도 천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특히 머리를 마사지 해주신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맞아요. 맞아. 마사지를 받고 나면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더군요. 조작법이 쏙쏙 이해가 되고요.”
“가능하면 앞으로도 자주 받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칭찬에 준후가 머쓱하게 웃었다.
고작 두 달 만에.
두 사람이 로봇 수술을 완벽하게 습득한 이유.
그 중심에는 ‘두뇌 점혈법’이 있었다.
뇌신경을 자극해 뇌의 능력을 100퍼센트 끌어내는, 현대에서 오직 준후만이 가능한 무공.
과거에는 오로지 준후 자신만을 사용했지만 과장으로 부임하고 나니 주변과도 이 능력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그건 그렇고.”
천석영이 준후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저희 둘을 부른 이유가…….”
“이미 짐작은 하셨을 겁니다. 수술 결과를 보고 두 분 중 한 분을 전근 보낸다고 했었죠.”
준후가 본론을 꺼내자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혹한 단두대 매치.
과연 누가 부산에 남고, 누가 부산에서 쫓겨날 것인가.
누가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인가.
팽팽한 긴장감이 집무실 분위기를 휘감았다.
“두 분 다 얼굴 푸세요. 제가 고심을 해봤는데요.”
“…….”
“두 분 다 부산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전근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정민재가 반색하며 준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반면 천석영의 얼굴에는 못 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천 교수님은 뭐가 그렇게 불만입니까?”
“불만이라니요. 뭔가 실감이 안 나서 그렇습니다.”
천석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정 교수님은 잠깐 자리를 비워주시겠습니까? 천 교수님과 따로 할 말이 있어서요.”
“물론입니다.”
본인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뻤을까.
정민재는 별 의심도 없이 경쾌하게 집무실을 떠났다.
정민재가 떠난 직후.
준후의 표정이 180도 변했다. 천석영을 향한 눈빛이 살벌했다.
“천 교수.”
“……네.”
천석영이 준후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준후가 전신으로 뿜어대는 위압감이 무시무시했다.
“본인이 정 교수보다 잘한 것 같은데 같이 남으니까 속이 뒤틀립니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하지만 당신은 투정 부릴 입장이 아닙니다.”
“…….”
“당신의 목적은 태업이었어요. 뇌전증 클리닉을 망치고 싶어 했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 단지 로봇 수술에 거부감이 있어서 교육을 미뤘…….”
“어허, 구차하게 핑계 대지 말고.”
준후가 반말을 섞어가며 천석영의 말을 잘라 먹었다.
“난 당신 김한상 교수 편이고 태업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한쪽을 전근 보낸다고 으름장을 놓았죠.”
“혹시 처음부터 전근 보낼 생각이 없으셨습니까?”
준후가 사악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갑자기 뒤통수가 얼얼했다.
충격을 받은 천석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진료부원장. 김한상 부교수.
그리고 자신까지.
이 세 사람은 그동안 준후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의술밖에 모르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어찌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말인가.
“뭐, 덕분에 당신도 로봇 수술에 능숙해졌죠. 부이사장님이 프로젝트를 승인한 마당에 당신이 태업을 할 명분은 사라졌고.”
“제가 졌습니다. 다 인정하죠.”
천석영이 두 팔을 들어 항복을 표시했다.
준후가 여기까지 꿰뚫어 본 이상.
오리발은 내밀어봐야 소용없었다.
실로 완패였다.
1라운드 K.O패였다.
“하지만 부교수님과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똑. 똑. 똑.
때마침 들려오는 노크소리.
준후가 들어오라고 하자 호리호리한 체구의 안경을 낀 교수가 입장했다.
그는 정민재가 앉았던 자리에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았다.
“최…… 최 교수? 당신이 왜 여기에.”
천석영이 눈을 부릅떴다.
명실상부 김한상의 오른팔인 최진구가 이 자리에 왜 나타났단 말인가.
설마…….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요? 척 보면 착이지.”
최진구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걸렸다.
“당신, 부교수님을 배신했습니까?”
“배신? 그건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난 애초부터 부교수님을 안 믿었어요.”
“어쩐지 요즘 들어 티타임도 자주 빠지더니 이런 간사한 짓이나 꾸미고.”
배신감에 천석영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두 뺨에서 시작된 열기가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였다.
“부교수님이 당신을 가만 둘 것 같아?”
“가만 안 두면 어쩔 건데요?”
최진구가 코웃음을 쳤다.
준후는 두 사람의 말다툼을 느긋하게 지켜볼 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은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무슨 재주로 최진구를 구워삶았을까.
천석영은 문득 준후의 머릿속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이제 보니 천 교수, 은근히 아둔한 구석이 있네요.”
“뭐라고요? 아둔?! 지금 말 다했습니까?”
천석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분노와 배신감과 모멸감이 한데 뭉쳐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부교수의 시대가 저문 게 한참 전인데 언제까지 부교수 타령만 하고 있을 겁니까?”
“…….”
“바로 여기! 새로 뜨는 태양이 안 보여요?”
최진구가 익살맞게 두 팔로 준후를 가리켰다.
“천 교수가 붙잡고 있는 동아줄은 썩었어요. 곧 끊어질 겁니다. 과장님 수완이 어떤 지는 이번에 똑똑히 봤죠?”
“으으으으…….”
차마 대꾸를 못 하는 천석영.
아까부터 꽉 쥔 두 주먹이 풀릴 줄 몰랐다.
“우리 과장님은 말입니다. 자기편은 끔찍하게 아껴요. 근데 또 적이라고 생각하면 철저하게 짓밟죠. 나도 한 번 밟혔고 천 교수도 한 번 밟혔으니 더 설명은 안 하리다.”
“결론만 말해요.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답답한 양반일세. 천 교수도 과장님 라인을 타라는 거 아닙니까?”
“부교수님을 배신하라고요?”
“그게 왜 배신입니까?”
최진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천석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나한테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과장님은 정말 최 교수를 믿습니까? 이 박쥐같은 인간의 말을?”
천석영이 참다 못 해 준후에게 따져 물었다.
이쯤에서 준후의 속내도 제대로 짚어보고 싶었다.
“글쎄요. 저도 최 교수님이 틀린 말을 한 것 같지 않은데요?”
“네?”
“전 김한상 부교수를 몰아낸 뒤 그 자리를 최 교수에게 주기로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최 교수가 내 등에 비수를 꼽겠죠.”
“…….”
“세상 사는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닙니까?”
냉기가 폴폴 날리는 준후의 발언에 천석영은 경악했다.
흡사 자신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싶었다.
“난 믿음 같은 거 강요 안 합니다. 헌신과 보상. 적과 아군. 의술 바깥의 세상을 저는 오로지 흑백으로만 보니까요.”
준후는 모처럼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주변 사람들은 준후가 마냥 정의밖에 모르는 순진무구한 사람으로 착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준후의 뿌리는 무림에 있었고 무림의 뿌리는 약육강식이었다.
사파는 대놓고 불한당이며.
정파는 착한 척하는 불한당에 불과하다.
그게 준후의 지론이었다.
지난 행보를 돌이켜 봤을 때 환자를 치료할 때를 제외하면.
준후는 매번 적을 냉혹하고 잔인하게 물리쳐 왔다.
환자를 살릴 때의 면만 강조가 되어서 적을 처치하는 모습이 희석되었을 뿐이었다.
“로봇 수술법도 익혔겠다. 뇌전증 클리닉도 인기 폭발이겠다. 이제 과장님 손만 잡으면 천 교수님도 탄탄대로 아닙니까?”
잠자코 있던 최진구가 희죽 웃었다.
얄미워서 안면에 주먹을 처박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그 표정에서 나오는 말만큼은 진실이었다.
뇌전증 클리닉으로.
준후의 주가는 몇 십 배 껑충 뛰어올랐다.
그 격차를 지금의 부교수가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과장님. 딱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다 물어봐도 됩니다.”
“최 교수도 일부러 이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한 겁니까? 저를 포섭하기 위해서.”
최진구가 이를 드러내며 또 웃었다.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하…… 과장님은 정말 못 당하겠군요.”
질렸다는 듯.
천석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 *
다음 날 오전.
김한상은 구둣발을 쿵쾅거리며 신경외과 병동을 걷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부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를 알아본 간호사 몇몇이 아는 체를 했지만 모조리 씹었다.
지금 김한상의 귀에는 들어오는 게 없었다.
빌어먹을!
왜 일이 또 이렇게 풀리는 거야?
하늘은 오로지 서준후의 편이란 말인가.
김한상이 성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폭삭 망할 줄 알았던 뇌전증 클리닉이 의외로 대박을 거두었다.
준후야 두 말할 필요가 없고.
천석영, 정민재까지 고작 두 달 만에 로봇수술을 습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부이사장과 병원장 앞에서 쇼 케이스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던 것이다.
이로써 김한상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준후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반면 김한상은 여태껏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의 휘하에 있는 교수들까지 준후에게 홀딱 빼앗길지 몰랐다.
“……!”
컨퍼런스 룸 문을 연 순간.
김한상은 근래 들어 가장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준후가 먼저 컨퍼런스 룸에 도착해 있었는데 양옆에 최진구와 천석영을 끼고 있었다.
마치 좌청룡 우백호처럼.
그 그림이 말하는 바는 명백했다.
혈압이 오른 나머지 김한상은 한 손으로 뒷목을 받쳤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휘청거려서 쓰러질 뻔했다.
“부교수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천 교수랑 최 교수가 과장 옆에 있습니다.”
“뭐라도 알고 계시는 게 있습니까?”
“이거 초비상이에요. 이러다가 의국이 서 과장 왕국이 될 판국입니다.”
평소 앉던 자리에 앉자 그를 따르는 교수들이 애새끼처럼 떽떽거렸다.
이른바 김한상의 원투 펀치가 전부 준후에게 넘어간 꼴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진정해.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니까.”
김한상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컨퍼런스와 오전 회진이 끝난 직후였다.
김한상이 두 사람을 따로 불렀다.
“카페에서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지금 상황이 퍽 당황스럽군.”
“절간에서 새우젓을 얻어 드실 분이 왜 그러십니까?”
최진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최진구는 이미 김한상이 아는 최진구가 아니었다.
반면 천석영은 죄스럽다는 듯 차마 김한상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삐이이이.”
최진구가 김한상에게 팔을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기계음을 냈다.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지?
“방금 들으셨죠?”
“무슨 소리?”
“저희 둘이 서 과장님한테 환승한 소리요. 크크크.”
최진구가 특유의 깐족거림을 폭발시키며 천석영을 끌고 자리를 떠났다.
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같은 편이었을 때는 마냥 시원시원하기만 했던 입담이 적으로 변했을 때는 무시무시한 가시가 되었다.
최진구, 시X놈. 넌 내가 가만 안 둔다.
김한상이 모멸감에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