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22)
무공 쓰는 외과 의사-522화(522/540)
제102장 뉴페이스(3)
“현종 스님!”
등 뒤에서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종이 고개를 돌리자 머리를 빡빡 민 동자승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동자승의 이름은 법명은 소명.
나이는 10세.
워낙 성격이 쾌활해서 절의 분위기를 담당했다.
안 그래도 동그란 머리가 달빛을 반사하며 더욱 동그랗게 빛나고 있었다.
“아코!”
다리에 힘이 풀렸을까.
소명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현종이 황급히 소명에게 다가가 소명을 일으켰다. 법복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무릎이 까졌어요.”
소명이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많이 아프겠구나. 스님이 소독하고 연고 발라줄게.”
“네. 근데요.”
소명이 고개를 들고 주지 스님과 현종을 번갈아 응시했다.
“주지 스님 화났어요? 무서운 얼굴이에요. 부처님이 화내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화를 낸 게 아니라 현종을 꾸짖고 있었단다.”
“그게 그거예요.”
소명이 현종 편을 들었다.
주지 스님은 허허 웃었고 현종은 숨 쉴 구멍이 생긴 기분이었다. 주지 스님의 계속된 질책에 현종은 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내가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그저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속세에서 절로 도망쳐 왔다고?
절대 그럴 리 없거늘…….
주지 스님은 별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현종은 소명을 데리고 절에서 하나뿐인 사무실로 이동했다.
구급함에서 꺼낸 소독약을 소명의 까진 무릎에 바르고 그 위에 연고를 발랐다.
네모난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 치료는 끝났다.
신경외과의였던 그에게 이만한 것은 치료라고 할 것도 못 되었다.
“감사합니다.”
소명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현종이 그런 소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찰에서 뛰어다니면 안 돼. 저번에도 주지 스님한테 혼났잖니.”
“그치만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시간이 되면 내가 어련히 갔지. 앞으로는 뛰면 안 돼. 약속.”
“네.”
두 사람의 새끼손가락이 단단한 매듭을 지었다가 풀어졌다.
현종은 몇 개월 전부터 저녁마다 소명에게 불교에 관련된 짧은 우화를 들려주고 있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이.
이유라면 간단했다.
소명에게 측은함을 느껴서였다.
소명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였다.
주지 스님께 들은 바로는 어느 가을날, 대웅전 앞에 포대기로 감싼 갓난아이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주지 스님은 이것도 인연이라고 하면서 아이를 절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절에서 지낸 시간은 소명이 현종보다 더 오래되었으니 해석에 따라서는 소명이 현종보다 배분이 높다고도 볼 수 있었다.
“으…….”
소명이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갑자기 왜 이리 고통스러워할까, 소독약을 바를 때도 의젓하던 녀석이.
“소명아. 왜 그러니? 어디 아파?”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걸? 부처님이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하신 거 알지?”
현종이 추궁했다.
불안을 느꼈는지 소명이 좌우로 눈알을 굴렸다. 달달달, 다리도 떨었다.
“몇 달 전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해요.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질 때가 있고요.”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스님들이 저를 걱정하는 게 싫었어요.”
소명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이 소명의 태생적인 상처였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면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소명 내면에 자리한 뿌리에는 그런 두려움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소명의 모습에 현종은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아무 죄 없는 소명이 왜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태어난 게 죄란 말인가.
부처님께서 인생은 고(苦, 괴로울 고)라고 하신 것은 참 진리였다.
세상 어디에나 괴로움이 있었다.
“아무래도 단백질이 부족해서 빈혈이 온 모양이구나.”
“단백질이 뭐예요?”
“음…… 쉽게 말하면 고기란다.”
“스님은 고기 먹으면 안 돼요!”
소명이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넌 아직 어리고 성장기야. 고기도 적당히 챙겨 먹어야 해. 그리고 저번 주에 잘 먹었으면서 안 먹은 척하기는.”
현종이 피식 웃었다.
주지 스님은 깨어 있는 분이었다.
승려라고 해서 무조건 채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불도를 닦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하고 체력을 위해서는 적당한 육식도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특히 동자승인 소명에게는 육식을 좀 더 너그럽게 허용하는 편이었다.
“방금 다 봤다. 너 목 출렁거리는 거.”
“헤헤.”
소명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치료가 끝난 후 현종은 부처님과 관련된 우화를 들려주고 숙소로 돌아갔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번뇌에 빠져 몸을 좌우로 뒤척거리기 바빴다.
주지 스님의 맹비난이 미치도록 생생하게 고막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 * *
그 후로 준후는 매일 새벽 혜금사를 찾았다. 혜금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끝낸 후에야 병원으로 출근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전환 되는 일이었다.
몇 년 전부터 잠을 안 자다시피 했으며 산을 오르는 도중 보법을 수련하고 맑은 산 경치로 힐링을 했던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새벽 같이 와서 절을 올립니까?”
“현종 스님하고 무슨 내기를 했다고 하던데요?”
“무슨 내기요?”
“현종 스님이 말을 안 하니 난들 알겠습니까. 무슨 내기가 됐든 저 사람이 질 게 뻔해요. 끽해봐야 일주일 정도 하다가 말겠죠.”
준후를 두고 스님들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준후는 절에 출석해서 절 올리는 일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심지어 폭우가 쏟아져도 뜻을 꺾지 않았다.
스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준후처럼 독한 불자는 처음이라고.
그쯤 되니 몇몇 스님과 친분이 생겨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종의 지난 사연을 캐낼 수는 없었다.
속세에 삶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승려들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른 승려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입을 조심할 수밖에…….
그 와중에 현종은 매번 준후를 모른 척했다.
소 닭 보듯이 했다.
정통으로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준후도 목례만 할 뿐 특별히 말을 걸지는 않았다.
하지만 준후는 현종이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된 이유를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손목에 차고 있는 묵주.
묵주에 새겨진 ‘진주’라는 이름이 실마리였다.
하루는 EMR 환자 검색창에 ‘권진주’라고 쳐보았다.
현종의 본명은 권태혁이었다.
“아…….”
차트를 확인하기 무섭게 묵직한 탄식이 빠져나왔다.
15세 권진주는 외상성 뇌출혈로 응급실에 찾아와 응급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가 무려 권태혁이었다.
권진주는 수술 도중 사망했다.
진료비 내역서를 확인하니 친척이라서 진료비 20퍼센트를 감면 받은 내역이 있었다.
흩어져 있던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한 번에 완성되는 순간!
그러니까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면 이랬다.
조카가 뇌출혈로 병원을 찾았고 현종은 직접 수술 중 조카를 잃게 되었다.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병원을 떠나 스님이 된 것이다.
‘비극이구나. 비극이야.’
준후는 현종의 안타까운 사연이 안타까웠다.
외과의에게도 일종의 불문율이 있는데 이는 가족이나 친척, 지인을 본인이 수술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집도하게 되면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 부담감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설령 준후라고 해도.
부모님이나 아영의 머리를 열고 수술하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현종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수술 가능한 외과의가 넉넉했다면.
현종도 직접 집도하지 않고 친한 집도의에게 조카를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경외과의도 씨가 말랐거늘 소아 신경외과의를 급하게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쯤에서는 준후도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다.
권태혁의 상처를 몰랐으면 모를까.
상처를 알게 된 지금.
그 상처를 후벼 파서 소아신경외과의로 스카우트 하는 게 맞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야속하게도.
현종에 대한 마음을 반쯤 접었을 때 응급실에 또 소아 외상환자가 찾아왔다.
음주 운전자가 인도로 돌진해 아이를 치었다.
아이는 중태에 빠졌다.
이날만큼은 준후도 아이를 수술할 수 없었다.
정규 수술 스케줄을 막 시작했을 때 아이가 응급실에 도착한 것이다.
이날은 비장의 무기, 제천공마저 빛이 누렇게 바랬다.
기혈이 뒤틀리는 고통을 참아내고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단련한 제천공으로 확보한 시간은 30분이었다.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사용하는 기적의 외과의라도 한들 맡은 수술을 30분 내에 끝낼 재주는 없었다.
아이는 결국 기본적인 응급처치만 받고 다른 병원으로 떠났다.
대학 병원 두 곳을 전전하다가 구급차에서 숨을 거두었다.
비극은 반복되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 비극을 바로 잡지 못했다.
그날 준후는 모처럼 울었다.
몸뚱이가 하나뿐이라서 서럽고 슬펐다.
아무래도 현종 스님을 쉽게 놓아줄 순 없겠어. 100일이 되는 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외과의를 권해보자.
억지로 밀어붙이지는 말고.
준후는 방향을 그렇게 잡았다.
시간이 흘러 준후가 혜금사를 찾은 지도 60일째가 되었다.
그날은 주말이었다.
108배를 마친 준후는 느긋하게 사찰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온통 가을이었다.
사찰을 둘러 싼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단풍 옷으로 갈아입었다.
곳곳에 노란 국화로 보랏빛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솔솔 불어온 산바람에 꽃들의 고개가 이리저리 파도처럼 물결쳤다.
경치는 아름다웠으나 준후의 마음은 심란하지 그지없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자연과 같지 않았다.
‘응? 뭐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는 준후.
어디에선가 웩웩하고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법당에서 꽤 떨어진 수풀 쪽이었다.
조심스레 그쪽으로 다가갔다.
낯이 익은 동자승이 입을 벌린 채 걸쭉한 액체를 토해내고 있었다.
동자승의 법명은 소명 스님.
준후도 소명과 적당한 친분이 있었다.
“괜찮니?”
“네. 근데 아저씨 방금 본 건 못 본 걸로 해주세요.”
토악질을 끝낸 소명이 두 손을 모아 부탁했다.
“왜?”
“큰 스님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아프다고 하면 다들 뒤집어질 거예요.”
“어디가 아프니?”
준후가 소명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적어도 외견상 소명은 건강해보였다.
“그냥 가끔 어지럽고 몸에 힘이 없어요. 현종 스님이 단백질이 부족해서 그럴 거래요.”
“그럴 수도 있겠지.”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
지금 소명의 증상은 그 정도로 진단하는 게 상식적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무림에서 살아남은 준후는 늘 최악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휴. 머리에 뭐가 묻었네.”
준후는 너스레를 떨며 소명의 머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려 소명의 머리를 통과시켰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내가기공을 활용한 뇌 검사.
이는 CT 및 MRI.
그리고 뇌혈관 조영술까지 겸하는 강력한 검사법이었다.
레지던트 때부터 꾸준히 펼친 지라 지금은 10초 내외로 타인의 머리 상태를 완벽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아저씨도 어디 아파요?”
소명이 준후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했다.
준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던 것이다.
준후는 억지 미소조차 지을 수 없었다.
소명을 안심시킬 수가 없었다.
야속한 비극이 소명의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합니까?”
어색한 침묵이 깊어질 무렵, 현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소명과 함께 있는 준후가 고깝다는 목소리였다.
준후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소명이, 우리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야겠습니다.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