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25)
무공 쓰는 외과 의사-525화(525/540)
제103장 거두절미(1)
황정훈이 8번 수술방으로 입장했다.
쏴아아아.
천장에서 하얗고 뭉실뭉실한 소독 가스가 살포되었다.
황정훈은 이 순간을 좋아했다. 목욕재계를 하는 듯한, 순백의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터벅. 터벅.
비장한 걸음으로 수술대를 향해 걸었다.
스태프들은 이미 수술 준비를 끝낸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교수님?”
“오셨습니까.”
황정훈은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집도의 자리에 서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전신 마취를 한 환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환자 감시 장치의 전선과 수액줄이 덕지덕지 연결되어 있었다.
완전 삭발을 한 동자승의 머리가 무영등 불빛 아래 푸릇푸릇 빛났다.
소아 뇌종양 절제술.
하루 이틀 하는 수술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긴장되고 부담스러웠다.
종양이 수술로 접근하기 힘든 소뇌와 제4실 부근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황정훈이 문득 고개를 들어 2층을 올려다보았다.
참관용 수술방에 현종이 있었다.
보호자 격인 현종이 참관용 수술방에 입장하는 건 본래 원칙에 어긋났다.
하지만 황정훈은 특별히 허락했다.
현종이 한솥밥을 먹던 식구고.
이번 수술을 통해 소아 신경외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
“감마 나이프 치료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제1보조이자 펠로우 2년차인 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술 부위 접근이 너무 어려워 보입니다.”
“힘들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수술이 있단다. 환자의 나이가 많았다면 나도 감마 나이프로 종양의 크기만 줄였을 거란다.”
“그럼 어째서…….”
“환자가 너무 어리잖니. 기대 수명을 생각하면 길게 보고 종양을 적출하는 게 맞아.”
황정훈을 말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스스로를 합리화하듯.
“지금부터 소뇌에 발행한 신경 교종 절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황정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수술의 막이 올랐다.
스태프들이 환자의 목을 옆으로 돌린 후 귀에서 옆으로 4센티미터 떨어진 곳을 소독했다.
그 위에 파란 수술포를 덮었다.
“10번.”
소독 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황정훈은 ‘C’자 모양의 절개창을 만들었다.
‘경미로 접근법’이었다.
사실 황정훈이 즐겨 쓰는 절개법은 아니었다.
경미로 접근법은 일반 개두술보다 수술 부위에 접근하는 방법이 까다롭고 과정도 복잡했다.
까닥 잘못했다간 청각에 관련된 신경이나 구조물을 손상 시킬 위험도 존재했다.
하지만 황정훈은 경미로 접근법이 꼭 필요하다는 준후의 뜻을 따랐다.
적어도 수술에 관해서라면.
준후의 말을 들어서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도 지난 열흘간의 수련은 헛되지 않았다.
섬세한 손길로 연조직이 다치지 않게 박리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드릴 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수술방은 순식간에 목공소가 되었다. 슬러시처럼 고운 골편 입자가 톱밥처럼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썩션, 이리게이션.”
“네. 교수님.”
예나의 어시스트는 빈틈이 없었다.
굳이 입 아프게 지시를 구체적으로 떠들 필요가 없었다.
쎄에에엑!
예나는 야무지게 골편을 흡인했다. 뼛조각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잔존물은 생리 식염수로 말끔하게 씻어냈다.
어시스트가 좋고.
바이탈이 좋고.
무엇보다 손의 감각이 좋았다.
손목에 날개가 달린 듯했다.
컨퍼런스가 끝난 후 준후가 마사지를 해준 덕분일까, 몸도 머리도 개운했다.
황정훈은 후두골에 4개의 구멍을 뚫고서 그 구멍을 메스로 연결했다.
후두골을 어렵지 않게 들어냈다.
우유막처럼 희뿌연 뇌막의 최전선 경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기기긱.
끼기기긱.
예나가 리트랙터(견인기)로 절개창을 벌리고 상하좌우로 벌리자 수술 시야가 한결 더 넓어졌다.
광야가 펼쳐진 듯 했다.
“교수님, 소뇌 수술을 할 때 이런 접근법이 있었나요? 저는 오늘 처음 봅니다.”
예나가 감탄하며 말했다.
“있기는 한데 어려워서 잘 안 쓰는 접근법이지. 나도 과장님께 안 배웠으면 안 썼을 거야. 아니, 못 썼다고 해야 할까.”
“역시 과장님은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 아. 죄송합니다. 괜한 이야기를…….”
황정훈 앞에서 준후를 대놓고 칭찬하다가 머쓱해졌는지 예나의 눈이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아. 그거야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니까. 청신경과 구조물에 손상이 있는지 살펴볼까?”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했다.
안면신경, 내이도, 미로, S상 정맥동, 유양돌기 등등.
청각과 관련된 구조물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출혈량도 최소 범위였다.
준후가 시킨 대로 고스란히 수술을 소화한 덕분이었다.
지금까지 수술은 비단길이었다.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는 소뇌는 대뇌보다 주름이 현저하게 적었다.
대뇌가 호두 같다면 소뇌는 아몬드 같았다.
“소뇌 경막부터 절개하자꾸나. 보비(전기 소작기).”
치이이익.
황정훈은 경막부터 과감하게 절개해 나갔다.
보비의 열기에 경막이 좌우로 갈라졌다. 하얀 연기가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조직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출혈이 꽤 심했다.
예나가 썩션을 하는 빈도와 횟수가 많아서 중간중간 절개를 쉬어야 했다.
“교수님. 무슨 문제라도…….”
“출혈이 심상치 않구나.”
“원래 경막에도 미세 혈관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절개할 때 출혈이 생기지 않나요?”
“그 점을 감안해도 심하다는 뜻이란다.”
한 번 구겨진 황정훈의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그래도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
황정훈은 꿋꿋하게 경막을 절개했다. 그제야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인 신경 교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 또 봐도 위치가 참 괴랄하단 말이지.
위아래로는 경정맥과 경동맥이 지나고 좌우로는 청신경과 시각 신경이 퍼져 있어.
과장이나 현종이 엮여 있지 않았으면 수술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야.
황정훈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저리쳤다.
“그래도 감마 나이프로 종양 크기를 줄여서 다행입니다. 원래 크기였으면 수술이 아예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마 그랬겠지. 누군가를 살리려고 각오하면 살릴 방법밖에 안 떠오르는 거야.”
“…….”
“그래서 과장님이 대단한 거고.”
오른손목으로 가볍게 원을 그리고 나서 황정훈은 근치적 절제술을 시작했다.
근치적 절제술은 뇌종양을 최대한 넓게 도려내는 수술법이었다.
치이이익.
황정훈은 종양의 중심부를 지지고 초음파 흡인기를 이용해 종양 중심부를 파냈다.
종양의 위치와 크기를 감안하면 종양을 안에서 바깥으로 적출하는 편이 더 유리했다.
황정훈은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졌다. 세상에 오직 자신과 종양만 남겨진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것도 같았다.
“교수님, 환자 바이탈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심전도 리듬도 불안해지고 있어요!”
그때 커튼 뒤에서 마취의가 소리쳤다.
황정훈의 멘탈이 갈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딱. 딱. 딱.
현종은 초조하게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고 있었다.
모니터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0분 전까지만 해도.
수술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황정훈이 수술 부위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기술, 숙련도가 전부 기대 이상이었다.
스태프들의 어시스트 또한 발군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구나.
비록 소명에게 뇌종양이라는 시련을 주었지만 그 시련은 극복 가능한 것이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수술 부위가 숨뇌와 인접했던 탓일까.
갑작스런 심정지가 찾아왔다.
숨뇌는 뇌와 척수를 이어주는 기관으로 생명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관이었다.
소뇌 수술이 남달리 복잡하고 위험한 것도 소뇌와 숨뇌가 붙어 있어서였다.
CPR은 10분 가까이 이어졌고 그동안 현종은 손에 땀을 쥐었다.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참관용 수술방을 산만하게 돌아다녔다.
가까스로 심장 리듬은 돌아왔지만 첩첩산중이었다.
뇌압이 상승하면서 소뇌 미세 혈관에 출혈이 발생했다.
뇌강에 피가 차올랐다.
핏물이 철렁철렁 파도치는 수준이었다.
썩션하고.
거즈로 지혈하고.
소작기로 지지고 등등.
별의별 쇼를 펼쳐가며 출혈은 해결했지만 그때는 황정훈이 말썽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겁먹은 눈은 쉴 새 없이 깜빡거렸다.
황정훈의 가장 안 좋은 버릇인 새가슴이 발동한 것이다.
이전까지 수술이 너무 완벽했으니 지금 황정훈이 받을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역시 내가 나서야 하나?’
현종이 고개 숙여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보호자로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할 일이 없었던 현종은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다. 당연하게도 그중에는 황정훈이 수술이 실패하는 그림도 있었다.
그래서 새벽마다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자신이 수술방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를.
황정훈만 눈감아준다면 현종은 집도가 가능했다.
애초에 현종도 의사 면허가 버젓이 있는 소아 신경외과의였으니까.
하지만 실전이 닥치자 굳은 의지와 달리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땀으로 축축해졌다.
메스를 놓은 게 무려 4년 전 일이었다.
상상 훈련만으로 지난 4년간 무뎌지고 녹슨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암만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황정훈을 내버려두자니 수술이 망할 건 불 보듯 뻔했다.
보비를 든 황정훈의 손이 희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이게 다 남 일이 아니었구나.
내 일이었구나.
현종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출가하면서 소아 신경외과의 존망 따위는 자신과 하등 상관이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소명이 뇌종양 진단을 받으면서 상황이 뒤집어졌다.
자신이 떠나왔던 곳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순 같은 일이 터진 것이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었다.
어쩌면 해석에 따라서는.
현종이 출가를 했기 때문에 소명이 이렇게 죽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연기(緣起)란 이리도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현종이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때마침 수술방 문이 열렸다.
* *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인가?’
준후가 수술대를 향해 전진했다.
다들 정신을 추스를 여유조차 없었는지 준후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수술은 잘되어 갑니까?”
“과…… 과장님?”
“과장님이 어떻게 여기 오셨습니까?”
스태프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수술마다 제천공을 써서 30분씩 시간을 벌었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수술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참관하러 왔어요.”
“그게…… 면목이 없습니다.”
황정훈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진행 사항을 노티했다.
준후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황정훈의 집도는 교과서와 같아서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변수에 휘말렸을 뿐이었다.
애초에 소뇌 종양 절제술이 워낙 고난이도이기도 했고.
“그런데 과장님. 수술을 이대로 속행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죠?”
“종양을 절제하다 보니 종양과 뇌간, 하부 신경의 유착이 생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피막도 두껍고요.”
“…….”
“종양을 절제하다가 신경과 혈관이 같이 손상될 판국입니다.”
“그래요?”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얹고 종양과 주변부를 살폈다.
황정훈의 말이 옳았다.
CT와 MRI로 확인한 것보다 종양이 정상 조직에 더 침윤되어 있었다.
때로는 수술 부위를 직접 열어봐야만 보이는 것도 있었다.
이번 수술이 딱 그랬다.
준후는 차분하게 스태프들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제가 완전 적출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