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26)
무공 쓰는 외과 의사-526화(526/540)
제103장 거두절미(2)
“과장님이라도 그건 무리입니다.”
황정훈이 단호하게 반대했다.
준후가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의라는 사실도 인정했고.
동자승을 살려서 현종을 데리고 오고 싶어 하는 갸륵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은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종양의 완전 적출은 지나치게 무모했다.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 아이가 뇌 장애를 알거나,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했다.
“청신경을 건드렸다가 환자 청력에 영구 손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황정훈의 반박이 기관총탄처럼 쏟아졌다.
“종양 표층 아래로 지나가는 혈관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종양과 혈관이 거의 맞닿아 있습니다.”
“…….”
“그동안 출혈도 많아서 더 이상 출혈이 발생한다면 뇌에 부담이 갈 거예요.”
“과장님. 저도 이번에는 황 교수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예나마저 황정훈의 편으로 돌아섰다. 예나는 차마 준후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준후가 과장으로 부임한 이래.
처음으로 대반란이 벌어진 것이다.
거센 저항에 부딪쳤음에도 준후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스태프들과 차례대로 눈을 마주칠 뿐이었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군.’
준후는 스태프들이 밉지 않았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무공으로 무장한 준후라고 해도 침윤된 종양을 완벽하게 적출할 확률은 4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태프들은 충언을 한 셈이다.
만약 스태프들이 준후를 아끼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과장님이라면 당연히 해낼 수 있다고.
꼭 환자를 살려달라고.
그렇게 바람을 잡다가 준후가 적출에 실패하기 무섭게 등 뒤에서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고 말이다.
“태현아.”
“네. 과장님.”
“수술 도구를 보관하는 찬장 2층에 반창고가 붙은 밧드가 있어. 그걸 가져와주렴.”
“알겠습니다.”
제2어시스트이자 레지던트 3년 차 태현이 쏜살같이 도구함을 다녀왔다.
준후가 고개를 움직였다.
눈치 빠른 태현이 밧드 뚜껑을 열었다.
밧드 안에는 달랑 메스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특이하게도 메스는 스칼펠(칼대)과 블레이드(칼날)가 이미 결합된 상태였다.
더 눈여겨볼 점은 블레이드가 새까맣다는 점이었다. 무영등 불빛 아래 칼날의 표면이 조약돌처럼 매끈하게 반짝거렸다.
“이…… 이게 뭡니까?”
황정훈이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다.
“보시다시피 메스죠.”
“평범한 메스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흑요석으로 만든 메스입니다.”
“흑요석이요?”
흑요석은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화성암이었다. 연마를 하면 할수록 얇고 날카로워진다는 특성이 있었다.
그 특성은 경이로운 수준인데.
수술용 칼날보다 흑요석으로 만든 칼날이 몇 배는 더 예리했다.
“확실히 과장님 솜씨에 흑요석 메스를 사용한다면 종양만 정확하게 베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황정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흑요석은 워낙 약해서 부서지기 쉽습니다. 동물 실험에 한해서 사용되고 또 FDA 승인도 나지 않았고요.”
“…….”
“과장님의 행동이 무모한 건 변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제가 저 좋자고 이러는 것 같습니까?”
준후는 시종일관 침착했다.
가슴은 뜨거웠지만 머리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적일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무림의 준후는 이제 없었다.
외과의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또 과장으로서 여러 가지 책임을 떠맡으면 내적으로도 성장했던 것이다.
“종양? 그 까짓 거 제거 안 하면 그만이에요. 이만큼 침윤됐으면 누구도 제게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
“이렇게 난리를 쳐봐야 피곤한 건 저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그만두시라는 거죠.”
“그런데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준후의 시선이 소명에게 머물렀다.
스태프들도 소명을 내려다보았다.
“악성 종양은 다시 자랄 겁니다. 아마 아이가 성장하는 것보다 더 빠르겠죠.”
“…….”
“지금 완전 적출을 하지 않으면 아이에겐 미래가 없어요.”
준후의 말이 메아리처럼 수술방에 퍼졌다. 스태프들은 차마 소명을 계속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다들 알고 있었다.
여기서 수술을 마치면 아이는 언젠가 다시 입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심지어 그때는 손쓸 방법조차 없다는 것을.
다만 스태프들은 그 점을 애써 잊으려 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줄곧 무모하다고 하셨죠?”
“……네.”
“상황이 급박할수록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환자를 살릴 수 없어요. 아시잖아요.”
“휴우…… 과장님 뜻대로 하십시오.”
황정훈이 두 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항복 신호였다.
준후는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스.”
“네. 과장님.”
태현이 내민 흑요석 메스를 준후가 손에 쥐었다.
칼대도 흑요석 칼날에 맞춰서 제작한 만큼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깃털을 손에 쥔 듯했다.
준후는 자신의 모자란 한 끗을 수술 도구에서 찾았다.
현경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
준후가 앞으로 더 성장할 수단이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수술 도구를 바꿔보는 게 어떨까.
그쯤에서 떠올린 게 바로 흑요석 메스였다.
검객에게는 무공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명검이었다.
종양 완전 적출을 앞두고 스태프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준후를 지켜보았다.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다.
마른침이 넘어가며 목젖이 요동쳤다.
그러나 스태프들의 걱정과 달리 준후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며칠 간 해온 상상 훈련 결과.
흑요석 메스로 펼친 종양 적출술의 성공률은 100퍼센트였다.
묵빛 메스가 시시각각으로 수술 부위에 접근했다.
준후의 손목에 떨림이 없었다.
따라서 칼날도 미동이 없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준후는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흑요석 메스로 흘려보냈다.
경질화(硬質化) 작업이었다.
흑요석 메스는 얇은 만큼 깨지기 쉬웠으므로 내공으로 강도를 높인 것이다.
흑요석 메스의 단점을 보완하는 이 작업은 지구상에서 오로지 준후만 가능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메스가 마침내 전광석화로 날았다.
풍마우세(風磨雨洗)!
청풍검법 제10초식이 흑요석 메스를 통해 재현되고 있었다.
메스가 종양 주변에 위치한 청신경 다발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U’자 모양을 그리며 종양의 경계면을 동그랗게 퍼냈다.
* * *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군요…… 미치광이예요.”
준후와 마주 앉은 현종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내공을 불어 넣은 흑요석 메스로 준후는 모처럼 자신의 솜씨를 100퍼센트 발휘했다.
신경과 혈관의 손상 없이 신경 교종만 말끔하게 도려냈다.
흑요석 메스는 앞으로도 준후의 든든한 보물이 되어주리라.
“원래 미친놈이 세상을 바꾸는 겁니다. 역사를 떠올려 보세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했던 사람들도,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했던 사람들도 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 취급받았죠.”
준후가 웃으며 대꾸했다.
현종은 묵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소명을 살려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는데 때마침 준후가 나타났다.
준후는 종양을 완전 적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꿈을 꾸는 듯 몽롱해졌다.
준후의 솜씨는 그만큼 경이로웠다. 준후를 향한 세간의 평가는 오히려 과소평가 되어 있었다.
“뭐 하나만 묻죠.”
“얼마든지요.”
“당신이 살리지 못하는 환자도 있습니까?”
현종이 순수한 호기심에 물었다.
“당연히 있죠.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는 아직 저도 손을 못 댑니다.”
“그리고 또요?”
“제가 한참 수술 중일 때 들어온 응급 환자도 못 살리죠. 제 몸이 두 개는 아니니까요.”
“EMR에 권진주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세요. 그 아이는 살릴 수 있었나요?”
“조카분 말씀하는 거죠?”
“그걸 어떻게……?”
“염주에 한자를 새겨놓았잖아요.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차트랑 수술 기록지도 확인했고요.”
“콜록. 콜록.”
준후의 무시무시한 눈치에 사레가 들렸다. 현종의 기침은 한참 후에야 멈췄다.
어쩐지 준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럼 대답이 오래 걸리지 않겠군요. 차라리 잘됐습니다.”
현종이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과연 준후의 대답은 무엇일까.
준후라면 진주를 살렸을까.
아니면 준후조차 진주는 살릴 수 없었을까.
애초에 진실을 말해줄까.
오히려 질문을 던진 현종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대답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겠다는 겁니까?”
“아뇨. 스님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진실이 2개일 때도 있거든요.”
준후의 말이 주지 스님의 말처럼 애매모호했다.
왜 저렇게 밑밥을 깔아두는 거람.
하지만 이어지는 준후의 말에 현종은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이가 수술실에 실려 왔을 당시의 저라면 아이를 못 살렸을 겁니다. 그때 저는 소아신경외과 전공을 못 배웠거든요.”
“…….”
“지금의 저라면 충분히 살렸을 겁니다.”
준후는 지혜롭게도 본인의 시절과 실력을 나누어 보고 있었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지만 나중에는 그 일을 어쩔 수 있는 일로 바꿀 수 있다는 뜻 깊은 깨달음도 전해주었다.
“저도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이 팔찌는 그 사람이 제게 준 유품 같은 거예요.”
준후가 쓰게 웃으며 손목을 들어보였다.
한때 유행했던 게르마늄 팔찌였다.
게르마늄이 방출하는 음이온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유사과학을 등에 업은 덕분이었다.
“압니다. 기사를 봤어요.”
“은근히 저한테 관심이 많았나 보죠?”
“60일 동안 절에 찾아와서 108배를 하는 독종인데 관심이 안 갈 수가 있습니까?”
현종이 새침하게 대답했다.
“어쨌거나 제가 그때 의학도의 길을 포기했다면 오늘 소명이도 살릴 수 없었겠죠.”
“그래서 결론은 나보고 소아 신경외과로 복귀하라는 거 아닙니까?”
“제 욕심이야 그런데 스님이 말을 들어 먹어야죠.”
준후도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현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회색지대에도 좋은 회색지대가 있고 나쁜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스님은 나쁜 회색지대에 있어요.”
“…….”
“소아신경외과로 복귀하세요. 아니면 용맹정진해서 해탈하시든가요. 중간은 없는 겁니다.”
준후의 말은 꼭 설법 같았다.
이어서 준후는 본인이 소명의 입원비를 모두 부담한다고 했다.
사찰에서 비용 부담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자기 할 말만 다 쏟아놓고 준후는 떠났다.
현종 혼자 자리에 남았다.
현종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두운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던 본질이 무엇인지 파헤치고자 했다.
줄곧 외면하고 있던 작은 알갱이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작지만 소중한 것.
작아도 소중한 것.
그것이 주는 울림이 전신으로 뜨겁게 퍼져 나갔다.
현종은 뜨겁게 울었다.
법복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고서 카페를 떠났다.
중환자실 대기실에 도착하자 초췌해 보이는 주지 스님이 보였다.
현종이 대뜸 말했다.
“주지 스님. 저 이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