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30)
무공 쓰는 외과 의사-530화(530/540)
제104장 부모 마음(1)
오전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동안.
준후의 몸은 컨퍼런스 룸에 있었지만 머리는 다른 나라에 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태아의 뇌수술을 할 것인가.
관심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었다.
처음에는 마냥 불가능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소아면 모를까, 태아에게 뇌수술이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하지만 웬걸?
생각의 줄기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간 자리에 의외로 건질 만한 열매들이 있었다.
실효성은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쏜살같이 종료된 오전 컨퍼런스.
“회진은 최 교수님께 맡기겠습니다.”
“아휴. 맡겨만 주세요.”
준후의 부탁에 최진구가 씽긋 웃었다.
“근데 아침부터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습니까? 응급 콜이 온 것 같지는 않던데요?”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지금 말하면 최 교수님한테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요.”
신경외과 병동을 벗어난 준후가 잰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산부인과 병동이었다.
산부인과는 벌써 회진까지 끝난 모양이었다.
교수와 레지던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준후가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상대도 준후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대스타께서 누추한 산부인과에 무슨 볼 일이야?”
신현정이 농담조로 물었다.
신현정은 준후의 의대 동기이자 산부인과 조교수였다. 가끔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적당히 친한 사이였다.
“사실 카페트가 안 깔려 있어서 조금 섭섭하긴 했다.”
“넉살은 여전하네. 그나저나 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얼굴이 거의 안 변했다?”
“환자 보고 수술하느라 늙을 틈도 없었거든. 잠깐 시간 괜찮지?”
“좋아.”
두 사람이 지하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본론을 꺼내기 전.
준후는 신현정의 이야기부터 들었다.
신현정은 쌓인 게 한 보따리였다.
혼자서 20분을 내리 떠들었다.
주된 내용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산부인과의 처지였다.
산부인과의 고충은 신경외과의 고충과 성격이 조금 달랐다.
신경외과는 환자에 비해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반면.
산부인과는 환자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의사의 숫자까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잖아. 그 여파가 이제 확 체감이 돼.”
“…….”
“당장 우리만 해도 입원 환자가 팍팍 깎이고 있어. 개원한 산부인과가 망한 경우도 부지기수고.”
“그러게. 산부인과가 직격탄을 맞았네.”
준후도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과 중에 흥하고 있는 곳이라면 성형외과와 정형외과밖에 없었다.
나머지 전공들은 각자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다른 전공도 돕고 싶었지만 무공을 익힌 준후조차 신경외과 하나를 감당 못 하고 있었다.
확실히 혼자 힘으로는 세상을 개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웬일로 보자고 했어?”
“이제 슬슬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생겼나 봐?”
“응. 간신히.”
신현정이 빨대로 커피를 쪽 빨아먹었다.
“일단 이거부터 봐줘.”
준후는 휴대폰에 깔린 PACS 앱에 접속해서 서보영의 태아 사진을 액정에 띄웠다.
휴대폰을 건네자 신현정이 영상을 살폈다.
그녀의 미간이 좁아지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초였다.
“와…… 이거 갈렌정맥기형이네. 중증도도 보통이 아닌걸?”
신현정이 진저리를 쳤다.
“태아가 뇌혈관 기형일 때 산부인과에서는 어떻게 치료해?”
“치료법이 딱 하나 있긴 하지.”
“정말? 뭔데?”
준후가 언성을 높였다.
실마리를 이렇게 빨리 찾게 될 줄이야.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열심히 기도하는 거야.”
“기도? 설마 두 손 모아서 하는 그 기도?”
“맞아. 그 기도.”
순간 준후는 맥이 빠졌다.
치료법이 없으면 없다고 할 것이지 사람을 괜히 잔뜩 기대하게 만들고 말이야.
준후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신현정이 설명을 시작했다.
태아의 심장 혈관에 문제가 생겼다면 흉부외과와 공동으로 태아 심혈관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뇌혈관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태아 심혈관 수술은 되는데 뇌혈관 수술은 왜 안 돼?”
“조금만 더 생각해 봐. 너라면 금방 알 수 있어.”
준후는 한손으로 턱을 쓸어내리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짚이는 바가 없지 않았다.
“뇌혈관은 심장 혈관에 비해 벽이 얇고 구조가 복잡해서 그런 거구나.”
“정확해. 심혈관이 고속도로라면 뇌혈관은 산을 끼고 도는 국도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니까 기도를 하라는 뜻은 치료법이 없다는 소리잖아.”
“맞아. 가뭄에 콩이 나는 확률이긴 하지만 기형이 자연 치료되는 케이스가 있긴 하거든. 그걸 기대하는 방법에 없는 거야.”
신현정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준후는 깨달았다.
그동안 왜 서보영과 같은 케이스를 접한 적이 없었는지를.
산부인과 쪽에서 벌써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기에 신경외과 쪽에 협진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해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메이유에서도 준후는 태아 뇌수술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아이가 자연 치유될 확률은 얼마나 될 것 같아?”
“냉정하게 말해서 없어. 벌써 32주차인 데다가 뇌동정맥이 벌써 많이 부풀고 꼬였어. 치료는커녕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야지.”
말을 마친 신현정이 준후를 위아래로 훑었다. 눈꼬리가 어느새 실처럼 가늘어졌다.
준후의 태도에서 석연치 않은 기색을 읽었던 것이다.
“너…… 설마 이 아이 수술하게?”
“어. 할 거야.”
“관둬. 태아도 위험하고 산모까지 위험해져. 한참 잘나가는데 네 이름에 먹칠할 생각이야?”
신현정이 자기 일처럼 흥분해서 준후를 뜯어말렸다.
준후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하는 존경할 만한 서전이라는 건 알았다. 집도 솜씨가 괴물 같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은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동기가 제 몸에 기름을 끼얹고 화염에 뛰어드는 꼴을 차마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이게 수술로 커버가 될 것 같았으면 말이야. 진작에 산부인과에서 신경외과 쪽으로 컨설턴트를 넣었어. 안 그래?”
“안 되는 이유 말고 되는 이유를 찾아보는 건 어때?”
“아니, 글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니까!”
말귀가 통하지 않아 속에서 열불이 솟구쳤다. 신현정은 단번에 아이스 커피를 절반이나 들이켰다.
“서준후, 정신 똑바로 차려.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 줄 알아?”
“…….”
“지금이야 네가 잘나가서 떠받들지만 실수 한 번만 해도 승냥이처럼 달려들어서 물어뜯을 사람들이 사방에 천지라고.”
“그런 거 걱정하면 수술 못 한다.”
준후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 이제 애 아빠야.”
“아빠?”
“아영이 임신했어. 7주차래. 우리 아이가 갈렌정맥기형이면 난 우리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나는 걸 지켜만 봐야겠니?”
“어쩔 수 없어. 네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이어도 소용없다고.”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지.”
준후의 목소리가 결의로 가득 찼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준후는 무림에서 깨달았다.
무기력은 무기력을 부를 뿐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마땅히 발버둥 치고 발악을 해야 했다.
“태아 심혈관 시술, 카테터로 하지?”
“응. 다른 방법은 없어.”
“그럼 나도 카테터로 태아 뇌혈관에 접근해야겠네.”
“태아 뇌혈관이 얼마나 찢어지기 쉬운데…… 너 그러다가 애 잡아.”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넌 걱정 말고. 그 전에 부탁이나 하나 하자.”
“무슨 부탁?”
“이따가 일과 끝나면 말이야.”
준후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 * *
그날 저녁.
정규 스케줄을 마친 준후가 다시 산부인과 병동을 찾았다.
스테이션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아는 체를 했다.
“신 교수님께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 과장님.”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준후는 간호사와 함께 가까운 병실을 찾았다.
못 보던 얼굴이 나타나서 그런지 산모들은 호기심 반, 경계하는 기색이 반이었다.
“환자분. 여기 이분은 신경외과 과장님인데요. 태아 진료에 관해서 연구를 할 것이 있다고 해서요.”
간호사가 사근사근 말을 이었다.
“혹시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무슨 연구를 하는데요?”
“태아의 뇌혈관 기형 시술입니다. 딱 10분만 부탁드립니다.”
준후가 딱해 보였을까, 산모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후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준후는 내공으로 태아의 뇌혈관을 탐색할 계획이었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궁극적으로 치료할 환자는 서보영의 태아인데 서보영은 이전에 진료를 본 병원들에서 폐쇄공포증이 있어 MRI 촬영을 못했다.
조영제 CT 또한 촬영할 수 없었다.
산모에게 조영제를 주입했다간 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수술 전 태아를 살필 검사는 초음파뿐인데…….
초음파만으로 태아의 뇌혈관을 자세히 살피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공에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준후는 산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의를 배꼽 위까지만 걷어 올렸다.
청진기를 산모의 볼록한 배에 대고 오른 손바닥은 산모의 배에 얹었다.
사실상 청진기는 쇼였다.
진짜는 손바닥이었다.
준후는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산모의 복부로 흘려보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내가기공의 수법을 활용해서 내공을 음파의 형태로 변형시킨 뒤 복부를 통과시켰다.
여기까지는 평소 하던 대로였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네.’
준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양수 때문에 내공이 제대로 전진하지 못했다. 물결처럼 흩어져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준후는 똑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시도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공은 양수를 출렁거리게 만들고서 맥없이 사라졌다.
진퇴양난이었다.
퍼붓는 내공을 늘리면 태아에게 부담이 갈 테고.
같은 방식을 고수하자니 의미 없는 짓을 반복하는 꼴이 될 듯 했다.
어찌 저찌 내공의 출력을 조절한다고 해도 태아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또한 변수였다.
내공은 정확히 태아의 머리를 통과해야 했다.
두피와 두개골을 지나서 뇌혈관을 샅샅이 훑어야 했고 그 지도를 준후에게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 검사에서 준후는 내공을 아기 다루듯 섬세하게 통제해야 했다.
이번 작업만 성공하면.
조화경의 고수 중에서는 내가 제일 강해지겠군.
준후는 차라리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를 마냥 정신 승리라고 볼 수는 없었다.
실제로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었을 때마다 준후는 한층 성숙하고 성장해왔다.
준후는 산모의 복부로 흘려보내는 양을 미세하게 늘려갔다.
태아의 자세와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며.
음파 형태의 내공에 다시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내공을 음파로 발산하는 작업은 많이 해봤지만 형태로 수렴하는 작업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온몸에 징그러운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준후의 얼굴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산모의 배에 얹은 오른팔은 파르르 떨렸다.
“휴우.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다 참고 버티는 거죠.”
준후가 가운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최대한 밝은 척했다.
연구는 계속 되었다.
산모들의 도움을 받아 준후는 내공으로 태아의 뇌혈관 지도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진행은 지지부진했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준후는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